유모차를 사랑한 남자 - 인간 존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심리학 탐험 16장면
조프 롤스 지음, 박윤정 옮김, 이은경 감수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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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최근에 심리학 실험을 다룬 책을 몇 권 읽었다. 이전에 심리학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심리학 개론을 읽었다. 흔히 예상한 내용과 달리 뇌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여 살짝 지겹고 질렸다. 하지만 요즘 심리학 실험을 다룬 책들이 나오면서 예전에 심리학에 대한 환상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동시에 잘못 알고 있던 수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것은 참 어렵다. 심리학자라고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실험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이론들이 뒤바뀌는 현실을 보면 그 길이 더욱 험난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학자들이 연구에 뛰어들고, 새로운 이론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고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실린 16개의 사례들 중 한둘은 누구나 한 번쯤은 여기저기에서 들은 기억이 있는 유명한 이야기다. 서문에서 저자는 사례연구의 뛰어난 점과 약점에 대해 말한다. 그것을 감안하고 읽다보면 예상외의 많은 정보를 알게 된다. 또 책으로 출간되어 당연하게 생각했던 몇 가지들에 의문을 제기한 것을 보면서 비판적 책읽기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저자도 말했듯이 사례연구는 개인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게 해주고, 박진감이 있고, 재미있다. 그리고 그 사례들이 일상적이지 않고 특이한 것들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이 책에 실린 16개의 이야기가 딱 그런 것들이다.

 

적지 않은 이야기 갯수다. 여기저기에서 본 내용도 있지만 이 책의 구성은 상당히 흥미롭다. 사례연구에 대한 간략한 요약을 한 다음 그 사례연구에 대한 논쟁을 보여주고 마지막에 뒷이야기로 현재 진행되는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덕분에 하나의 사례를 통해 사례와 논쟁의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알게 된다. 그래서 읽는 속도와 재미가 배가된다. 만약 몇 가지 사례에 대해 알고 있다면 기억을 더듬어 비교하는 재미도 있다.

 

원제를 보면 심리학의 고전사례연구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단순히 흥밋거리로 생각한 나에게 사례연구가 지닌 핵심을 잘 드러낸 제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자극적인 것이 번역서의 제목이지만 이 사례연구들이 심리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논쟁이 벌어지고 변하여왔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사례는 알고 있던 것이지만 편견에 사로 잡혀 있었거나 개인적으로 뜨끔하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38명의 이웃들 앞에서 죽어간 여자의 사례와 이브의 세 얼굴 사례다.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죽은 여자는 나도 또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만들고, 다중인격에 대한 사례는 한때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 우쭐한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또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의 사례는 예전에 누군가가 이런 사람이 있다고 하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는데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 놀라운 기억력이 꼭 축복인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란다. 이미지를 이용해 기억하는 방식은 현재 기억력과 관련된 책에서 많이 다루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암기교육에 올인 하는 사람들이 눈여겨 볼 대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다른 사례들도 익숙한 이야기들이 많은데 현재까지의 논쟁이나 흐름을 알게 된다는 점에서 강한 장점이 있다.

 

전체적으로 흥미롭고 유익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이 사례연구들이 특이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듯이 보이지만 그 기저에 흐르는 이론과 분석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특이한 사례를 일반화하면 오류도 많이 발생하겠지만 그 대상이 인간임을 생각하면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알 수 있다. 역시 이야기를 좋아하는 나에겐 딱딱한 심리학 개론보다 이런 사례연구나 실험을 다룬 책이 더 맞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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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추적한 충격 에세이
오쿠노 슈지 지음, 서영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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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섬뜩한 표지다. 잘려나간 나무의 나이테는 잘린 사람의 몸체 같고, 잘린 나무 위에 앉은 소녀의 뚫린 가슴은 남은 가족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자극적인 제목과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는 표지를 생각하면서 책 소개를 읽다보면 이 속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무서울까 미리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담담하다. 물론 그 담담한 내용이 남은 가족들의 감정을 직접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40년 전 1969년 소년A는 상처 입은 몸으로 학교에 들어온다. 자신과 친구 히로시가 남자들에게 공격당했다고 말한다. 선생과 학생들이 그 현장을 달려갔을 때 이미 히로시는 죽어있었다. 끔찍하게 목이 잘린 상태였다. 현장엔 소년A가 말한 남자들의 흔적은 없었다. 바로 소년A가 범인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사건 전개로 시작하여 작가는 소년A가 아닌 피해자 가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사랑하는 아들이자 오빠였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살해당한 것이다. 이 놀라운 사건 속에서 작가가 주시한 것은 이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 가족들의 삶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도 1997년 일본에서 벌어진 놀라운 소년 살인사건 때문이다. 그는 많은 글에서 다루는 살인자들의 삶이 아닌 피해자의 삶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우리에게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현재 일본과 우리나라의 청소년 범죄에 대한 법률이 어떤지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미성년자들의 범죄는 전과가 되지 않고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고 갱생이란 이름으로 사회에 복귀한다. 소년 범죄자들의 갱생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과 피해자들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을 보여주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뒤바뀐 삶에 주목한다. 흔히 우리는 때린 놈은 안절부절하고, 맞은 놈은 편안하게 잠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참혹하게 살해당한 아들을 둔 가족은 평생 뻥 뚫린 가슴과 불안정하고 심하게 손상당한 삶을 살고, 가해자는 지역유지인 변호사로 살고 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지 않고. 물론 이 글에서는 일방적으로 피해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다보니 가해자의 마음고생이나 어려움에 대한 묘사가 없다. 하지만 책의 끝 부분에서 가해자의 행동을 잠시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아도 상당히 황당한 반응이다.

 

시간은 마음의 아픔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참혹하게 살해당한 아들을 둔 부모에겐 시간도 결코 좋은 치료제가 아니다. 한 번 뒤틀린 삶은 쉽게 바로 펴지지 않고, 남들이 그냥 흥밋거리로 보는 사건조차 그들에겐 엄청난 고통이다. 술을 잘 못하지만 성년이 된 아들과 술 한 잔 할 생각을 한 아버지의 마음이나 아들의 죽음에 자신의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나 오빠가 죽음으로써 타인의 시선을 견뎌내지 못하는 동생은 수많은 책에서 다루어진 가해자 가족들의 해체나 붕괴 이상으로 충격적이다.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 퇴색할 법도 한 사건 기억이 점점 가슴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는 현실은 피해자 가족에 대해 우리가 너무나도 무심했음을 반성하게 한다.

 

최근 몇 권의 책에서 청소년 범죄를 다룬 것을 보았다.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흉악한 범죄에서 가벼운 처벌로 용서를 받는 것이 옳은가 고민하게 만든다. 이전이었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 생각이 많이 흔들린다. 그 이유는 범죄가 더욱 잔인하고 계획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솔한 사죄가 없는 가해자들에게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은 어떻게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은 표지가 주는 무시무시함과 달리 차분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삶에 대해 잘 나타내주었다. 피해자의 여동생을 주요 화자를 등장시켜 그 가족의 변천사를 보여주는데 제3자가 보았을 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너무 피해자 가족 중심이다 보니 가해자의 시선이나 가족들의 삶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가해자가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니 그 심정을 잘 알 수 없겠지만 소년A의 부모의 삶은 한 번 들어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범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진지하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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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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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바와는 조금 다른 소설이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 담긴 비밀을 풀어내는 스릴러로 생각했는데 모험소설이다. 긴박하고 잘 짜인 구성은 아니다. 몇 가지 상황이나 전개나 흥미를 유발하지만 거장들이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느낌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나 자신의 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 가독성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각각 다른 등장인물들이 연결되면서 풀어지는 내용이 결코 튼튼하지가 않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지극히 할리우드적이다.

 

매력적인 두 남녀가 등장한다. 소설은 두 사람의 호감을 나타내어주지만 신기하게도 사랑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 주인공 핀 라이언과 남자 주인공 필그림 공작은 유산 상속으로 엮인다. 핀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아버지가 생긴 것이다. 이 당혹스러운 순간을 작가는 깊이 있게 표현하기보다 빠르게 다른 장면으로 넘기면서 독자가 감상에 빠질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생략된 이야기와 감정들은 책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덕분에 많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매워야한다. 좋은 의미만 있지는 않다.

 

이야기는 세 축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두 주인공 핀과 필그림이 한 축이고, 바타비아 퀸호의 선장인 핸슨과 악명 높은 해적 칸이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세 축들이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물론 중심축은 핀과 필그림이다. 하지만 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려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존재는 마지막까지 숨겨져 있다. 이 소설에서 그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악당은 아니다.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주 무대인 동남아로 넘어온다. 그 매혹적인 나라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사건들은 단순히 관광지로만 인식하고 있던 나를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작가가 어느 정도 사실을 강하게 부각시킨 부분도 있겠지만 아직도 그 지역에 해적들이 출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 각각 다른 인물들이 쫓는 것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운반하다 사라진 금궤다. 다른 소설들에서도 많이 본 것이지만 여기엔 정화의 군단까지 등장하면서 규모와 역사를 확장한다. 하지만 역시 이 확장된 규모와 역사들이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려지지 않음으로써 긴박감이나 사실감이 떨어진다. 그래도 폭풍우 속을 향해하는 바타비아 퀸호의 모습은 대단히 흥미롭고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멋지고 거대한 영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여러 가지 정보와 사실들이 나오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강한 상승효과를 불러오지는 못하고 있다. 한 폭의 그림에서 시작하여 보물찾기로 이어지는 그 일련의 과정이 매끄럽지도 않고,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만나게 되는 그 과정도 너무 많은 생략으로 약간 생뚱맞게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충분히 살아있지 못한 것도 하나의 단점이다. 이 모두가 어쩌면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 영향일 수도 있다. 렘브란트의 유령이란 제목에서 미술과 관련된 팩션이나 거대한 스케일이란 설명에서 긴장감 가득한 이야기를 기대한 탓인지도 모른다. 렘브란트와 보물찾기란 두 소재를 머릿속에서 너무 쉽게 재단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충분히 그 재미를 살려내지 못한 것은 영상적 이미지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인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부 사항이 누락된 이야기가 긴장감과 재미를 주긴 쉽지 않음을 작가는 잊은 것일까? 할리우드 영화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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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공장 골목
존 스타인벡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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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읽었다. 학창시절 그의 장편 두 편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이제야 그의 다른 소설을 읽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의 일이다. 이유를 찾자면 그의 대표작 두 편을 보면서 다른 책들에 관심이 많이 사라진 것과 그 당시 그 두 편을 제외하곤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두 편은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이다.

 

지금은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억만 있지 세부적인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이 작가는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준다. 그래서 이 소설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이번에도 만족스럽게 읽었다. 상류층이 아닌 하층민의 삶이 상당히 노골적이면서 익살스럽게 그려져 읽는 즐거움을 준다.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은 그 깊숙한 내면을 파고들어 샅샅이 파헤치지는 않지만 삶의 한 면을 잘 나타내준다.

 

이 소설에선 매력적인 인물들이 셋 있다. 중국인 상점주인 리청과 부랑자이지만 자존심이 있는 맥과 생물학 연구소를 운영하는 닥 이렇게 세 명이다. 이 세 사람은 독립적인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서로가 엮여 있다. 후반부로 가면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는 모두 맥 패거리와 관련이 있는데 이때 가장 고생을 하는 이는 닥이다. 이 닥이란 인물도 참으로 특이한데 통조림공장 골목 캐너리 로의 유명인사이자 사람 좋고 모두가 좋아하는 인물이다. 이렇기 때문에 맥 패거리가 그를 위해 파티를 열려고 하고, 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터진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조용하면서 강하게 흐르는 정이 느껴진다. 아마 이 장면들이 이 소설에 재미를 주지 않나 생각한다.

 

작가가 그려낸 리청은 상당히 계산적이다. 동양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한 방식인지 아니면 이 인물만 특이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맥이나 다른 인물들과의 거래는 항상 이해득실을 따진다. 물론 인간성마저 이익으로 환산하지는 않는다. 자신과 거래했던 인물이 자살했을 때 그가 보여준 조그마한 친절이나 맥이 사고를 쳤을 때 대하는 모습을 보면 본질적으로 이익만 쫓는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가게는 수많은 상품들이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와도 같은데 짧은 묘사 속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인물들이 특이하고 강한 인상을 준다면 가장 활동적이면서 생기 가득한 인물이 맥이다. 특히 그와 함께 살고 있는 패거리들은 소설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바텐더로 일하면서 술을 모으거나 자동차를 멋지게 고치거나 싸움을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패거리다. 한마디로 놀고 먹어면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무리다. 하지만 이들은 약간은 지루할 수 있는 거리의 풍경과 삶에 힘차게 뛰는 대동맥으로 곳곳에 활기와 즐거움을 전해준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각각의 특이한 인물들을 보는 즐거움은 읽을지 모르지만 재미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힘겨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을 보면 그 시대의 한 모습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은 살아간다는 것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많지 않은 분량에 너무 많은 인물들이 나와 약간은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인물들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이들이 서로 엮이는 장면을 보면 살며시 웃음을 짓게 된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흥겹게 어울리는 모습은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즐거움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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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쟈핑와 지음, 김윤진 옮김 / 이레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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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무수한 사람들 속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친구라는 범위를 어디까지 규정지어야 할까? 이 산문집을 읽다보면 그 광범위한 교제 범위와 친구들에 대한 애틋함이 전해진다. 그 속에서 내가 살아온 길을 돌아보게 만들고, 반성하게 만들고, 감탄하게 만들고, 눈시울을 붉히는 일들을 만난다. 그 놀라운 만남이 단지 몇 년이 아닌 20년이 넘는 세월을 거쳐 온 것임을 알고는 조금 위안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어떨까 생각해본다. 역시 부족함이 많다.

 

친구. 참 편안하고 가슴 떨리는 단어다. 어떤 순간은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가 어떤 때는 감정의 충돌로 서로 상처를 주는 존재다. 하지만 친구는 역시 자연스럽게 서로를 위로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싸우고 함께 걸어간다. 그 과정은 삶 속에서 계속해서 이어진다. 과거의 친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만나지 못하거나 연락을 하지 않게 되고, 새로운 만남으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가끔은 이해관계로 이어진 친구도 생기는데 역시 이런 친구는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이 책 속에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쓴 글이다 보니 당연하다.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면 우리와 비슷하면서 다른 모습을 많이 보게 된다. 유교를 문화적으로 공유한 나라이니 당연할 수 있지만 민족의 차이는 곳곳에서 느껴진다. 얼마 전 읽은 이중톈 교수의 중국인에 대한 글을 연상하게 만든다. 비슷함 속에서 다름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도 친구라는 단어가 주는 편안함과 따스함은 변함이 없다.

 

작은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글은 친구라는 주제를 놓고 보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는 과감하게도 책의 첫 쪽에서부터 작은 어머니 이야기로 시작한다. 문화대혁명의 어려운 시기에 자신을 키워주고 격려해준 그 분을. 이 글을 읽다보면 조용히 젖어드는 감정에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부모님에게 잘 해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과 옛날에 다 크면 많이 도와드려야지 생각했던 그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시는 아버지의 일화는 평소 무뚝뚝하시던 아버지가 나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놀랐던 옛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이 두 어르신이 자신의 삶의 기초에서 영향을 미친 분들이라면 자신의 글과 관련한 스승들의 이야기나 자신을 만나러 오는 수많은 친구들의 이야기는 점점 각박해지고 이해관계로 엮여가는 현실을 생각하면 가슴 한 곳을 따뜻하게 만든다. 생각보다 빠르게 읽으면서 내용들의 많은 부분을 세세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글 속에 흐르는 감정과 분위기는 책을 덮고 난 지금도 남아있다. 간결하고 명쾌한 문장은 가독성을 높여준다. 중국 발음으로 표기된 인명과 지명은 예전 한자음으로 기억하는 나에게는 쉽게 머릿속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왠지 모르게 자꾸 한자음으로 변환하려는 본능이 꿈틀거리면서 글 자체가 주는 재미를 조금씩 떨어트리기도 한다.

 

쟈핑와. 가평요라는 이름으로 이전에 번역된 몇 권이 있다. 개인적으로 기억하는 <폐도>라는 책과 조금 전 검색한 <조바심>이란 소설이다. 얼마 전 헌책방에서 <폐도>를 구했지만 그 엄청난 두께에 놀라 아직 시작도 못하고 있는데 또 다른 책에도 눈길이 간다. 이 책 속에서 책벌레에 대해 말한 대목이 생각난다. 언제 읽을지 모르면서 사 모으는 나 자신이 살짝 부끄럽기도 하지만 이 책을 읽다 생긴 작가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니 어쩔 수 없다. 작가의 수많은 친구들을 글 속에서 만나면서 나 자신의 친구들을 생각하는 기회를 가져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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