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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조림공장 골목
존 스타인벡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정말 오랜만에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읽었다. 학창시절 그의 장편 두 편을 아주 재미있게 읽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 이 점을 생각하면 이제야 그의 다른 소설을 읽었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의 일이다. 이유를 찾자면 그의 대표작 두 편을 보면서 다른 책들에 관심이 많이 사라진 것과 그 당시 그 두 편을 제외하곤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두 편은 <분노의 포도>와 <에덴의 동쪽>이다.
지금은 사실 기억이 가물가물한다. 재미있게 읽었다는 기억만 있지 세부적인 내용은 거의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언제나 이 작가는 내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심어준다. 그래서 이 소설에 눈길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이번에도 만족스럽게 읽었다. 상류층이 아닌 하층민의 삶이 상당히 노골적이면서 익살스럽게 그려져 읽는 즐거움을 준다.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은 그 깊숙한 내면을 파고들어 샅샅이 파헤치지는 않지만 삶의 한 면을 잘 나타내준다.
이 소설에선 매력적인 인물들이 셋 있다. 중국인 상점주인 리청과 부랑자이지만 자존심이 있는 맥과 생물학 연구소를 운영하는 닥 이렇게 세 명이다. 이 세 사람은 독립적인 이야기를 만들기도 하지만 대부분 서로가 엮여 있다. 후반부로 가면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는 모두 맥 패거리와 관련이 있는데 이때 가장 고생을 하는 이는 닥이다. 이 닥이란 인물도 참으로 특이한데 통조림공장 골목 캐너리 로의 유명인사이자 사람 좋고 모두가 좋아하는 인물이다. 이렇기 때문에 맥 패거리가 그를 위해 파티를 열려고 하고, 이 때문에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터진다. 이 과정을 들여다보면 상당히 거칠고 무뚝뚝하지만 조용하면서 강하게 흐르는 정이 느껴진다. 아마 이 장면들이 이 소설에 재미를 주지 않나 생각한다.
작가가 그려낸 리청은 상당히 계산적이다. 동양인들의 삶을 이해하는 한 방식인지 아니면 이 인물만 특이한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맥이나 다른 인물들과의 거래는 항상 이해득실을 따진다. 물론 인간성마저 이익으로 환산하지는 않는다. 자신과 거래했던 인물이 자살했을 때 그가 보여준 조그마한 친절이나 맥이 사고를 쳤을 때 대하는 모습을 보면 본질적으로 이익만 쫓는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가게는 수많은 상품들이 숨겨져 있는 보물창고와도 같은데 짧은 묘사 속에서도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다른 인물들이 특이하고 강한 인상을 준다면 가장 활동적이면서 생기 가득한 인물이 맥이다. 특히 그와 함께 살고 있는 패거리들은 소설 전반에 활기를 불어넣어준다. 바텐더로 일하면서 술을 모으거나 자동차를 멋지게 고치거나 싸움을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패거리다. 한마디로 놀고 먹어면서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무리다. 하지만 이들은 약간은 지루할 수 있는 거리의 풍경과 삶에 힘차게 뛰는 대동맥으로 곳곳에 활기와 즐거움을 전해준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각각의 특이한 인물들을 보는 즐거움은 읽을지 모르지만 재미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힘겹게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힘겨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을 보면 그 시대의 한 모습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화려한 불빛 아래에서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움직이는 인물들이지만 결코 좌절하거나 웃음을 잃지 않는 그들은 살아간다는 것이 주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많지 않은 분량에 너무 많은 인물들이 나와 약간은 산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인물들 하나하나가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이들이 서로 엮이는 장면을 보면 살며시 웃음을 짓게 된다. 작은 것에 만족하고 흥겹게 어울리는 모습은 책을 모두 읽은 지금도 즐거움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