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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유령
폴 크리스토퍼 지음, 하현길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생각한 바와는 조금 다른 소설이다. 렘브란트의 그림 속에 담긴 비밀을 풀어내는 스릴러로 생각했는데 모험소설이다. 긴박하고 잘 짜인 구성은 아니다. 몇 가지 상황이나 전개나 흥미를 유발하지만 거장들이 보여주는 잘 만들어진 느낌을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나 자신의 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 가독성이 떨어진 것일 수도 있지만 각각 다른 등장인물들이 연결되면서 풀어지는 내용이 결코 튼튼하지가 않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은 지극히 할리우드적이다.
매력적인 두 남녀가 등장한다. 소설은 두 사람의 호감을 나타내어주지만 신기하게도 사랑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여 주인공 핀 라이언과 남자 주인공 필그림 공작은 유산 상속으로 엮인다. 핀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아버지가 생긴 것이다. 이 당혹스러운 순간을 작가는 깊이 있게 표현하기보다 빠르게 다른 장면으로 넘기면서 독자가 감상에 빠질 시간을 주지 않는다. 이렇게 생략된 이야기와 감정들은 책의 마지막까지 이어지는데 덕분에 많은 부분을 상상력으로 매워야한다. 좋은 의미만 있지는 않다.
이야기는 세 축을 중심으로 이어진다. 두 주인공 핀과 필그림이 한 축이고, 바타비아 퀸호의 선장인 핸슨과 악명 높은 해적 칸이 다른 축을 이루고 있다. 이 세 축들이 돌아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물론 중심축은 핀과 필그림이다. 하지만 이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려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 존재는 마지막까지 숨겨져 있다. 이 소설에서 그렇게 호기심을 자극하는 악당은 아니다. 그리고 빠르게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주 무대인 동남아로 넘어온다. 그 매혹적인 나라에서 벌어지는 무시무시한 사건들은 단순히 관광지로만 인식하고 있던 나를 놀라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작가가 어느 정도 사실을 강하게 부각시킨 부분도 있겠지만 아직도 그 지역에 해적들이 출몰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 각각 다른 인물들이 쫓는 것은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이 운반하다 사라진 금궤다. 다른 소설들에서도 많이 본 것이지만 여기엔 정화의 군단까지 등장하면서 규모와 역사를 확장한다. 하지만 역시 이 확장된 규모와 역사들이 세밀하고 정밀하게 그려지지 않음으로써 긴박감이나 사실감이 떨어진다. 그래도 폭풍우 속을 향해하는 바타비아 퀸호의 모습은 대단히 흥미롭고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다가온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멋지고 거대한 영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다.
여러 가지 정보와 사실들이 나오지만 전체적인 이야기 속에서 강한 상승효과를 불러오지는 못하고 있다. 한 폭의 그림에서 시작하여 보물찾기로 이어지는 그 일련의 과정이 매끄럽지도 않고, 각각의 등장인물들이 만나게 되는 그 과정도 너무 많은 생략으로 약간 생뚱맞게 느껴진다. 등장인물들의 개성이 충분히 살아있지 못한 것도 하나의 단점이다. 이 모두가 어쩌면 제목에서 풍기는 이미지 영향일 수도 있다. 렘브란트의 유령이란 제목에서 미술과 관련된 팩션이나 거대한 스케일이란 설명에서 긴장감 가득한 이야기를 기대한 탓인지도 모른다. 렘브란트와 보물찾기란 두 소재를 머릿속에서 너무 쉽게 재단해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충분히 그 재미를 살려내지 못한 것은 영상적 이미지에 너무 많은 공을 들인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부 사항이 누락된 이야기가 긴장감과 재미를 주긴 쉽지 않음을 작가는 잊은 것일까? 할리우드 영화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