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이 죽었습니다 -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추적한 충격 에세이
오쿠노 슈지 지음, 서영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섬뜩한 표지다. 잘려나간 나무의 나이테는 잘린 사람의 몸체 같고, 잘린 나무 위에 앉은 소녀의 뚫린 가슴은 남은 가족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하다. 자극적인 제목과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는 표지를 생각하면서 책 소개를 읽다보면 이 속에 담긴 내용이 얼마나 무서울까 미리 짐작하게 된다. 하지만 내용은 생각보다 담담하다. 물론 그 담담한 내용이 남은 가족들의 감정을 직접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지금부터 40년 전 1969년 소년A는 상처 입은 몸으로 학교에 들어온다. 자신과 친구 히로시가 남자들에게 공격당했다고 말한다. 선생과 학생들이 그 현장을 달려갔을 때 이미 히로시는 죽어있었다. 끔찍하게 목이 잘린 상태였다. 현장엔 소년A가 말한 남자들의 흔적은 없었다. 바로 소년A가 범인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사건 전개로 시작하여 작가는 소년A가 아닌 피해자 가족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다. 사랑하는 아들이자 오빠였던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살해당한 것이다. 이 놀라운 사건 속에서 작가가 주시한 것은 이 사건의 원인이 아니라 가족들의 삶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도 1997년 일본에서 벌어진 놀라운 소년 살인사건 때문이다. 그는 많은 글에서 다루는 살인자들의 삶이 아닌 피해자의 삶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우리에게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현재 일본과 우리나라의 청소년 범죄에 대한 법률이 어떤지 정확하게 모른다. 하지만 미성년자들의 범죄는 전과가 되지 않고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고 갱생이란 이름으로 사회에 복귀한다. 소년 범죄자들의 갱생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과 피해자들을 위해 소요되는 비용을 보여주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뒤바뀐 삶에 주목한다. 흔히 우리는 때린 놈은 안절부절하고, 맞은 놈은 편안하게 잠든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참혹하게 살해당한 아들을 둔 가족은 평생 뻥 뚫린 가슴과 불안정하고 심하게 손상당한 삶을 살고, 가해자는 지역유지인 변호사로 살고 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를 빌지 않고. 물론 이 글에서는 일방적으로 피해자의 시선으로 서술되다보니 가해자의 마음고생이나 어려움에 대한 묘사가 없다. 하지만 책의 끝 부분에서 가해자의 행동을 잠시 보여주는데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아도 상당히 황당한 반응이다.

 

시간은 마음의 아픔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참혹하게 살해당한 아들을 둔 부모에겐 시간도 결코 좋은 치료제가 아니다. 한 번 뒤틀린 삶은 쉽게 바로 펴지지 않고, 남들이 그냥 흥밋거리로 보는 사건조차 그들에겐 엄청난 고통이다. 술을 잘 못하지만 성년이 된 아들과 술 한 잔 할 생각을 한 아버지의 마음이나 아들의 죽음에 자신의 정신을 놓아버린 어머니나 오빠가 죽음으로써 타인의 시선을 견뎌내지 못하는 동생은 수많은 책에서 다루어진 가해자 가족들의 해체나 붕괴 이상으로 충격적이다. 사라져가는 기억 속에서 퇴색할 법도 한 사건 기억이 점점 가슴 속 깊은 곳에 뿌리를 내리는 현실은 피해자 가족에 대해 우리가 너무나도 무심했음을 반성하게 한다.

 

최근 몇 권의 책에서 청소년 범죄를 다룬 것을 보았다. 단지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흉악한 범죄에서 가벼운 처벌로 용서를 받는 것이 옳은가 고민하게 만든다. 이전이었다면 당연히 그렇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 생각이 많이 흔들린다. 그 이유는 범죄가 더욱 잔인하고 계획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솔한 사죄가 없는 가해자들에게 피해자 가족들의 입장은 어떻게 되어야 할지 모르겠다.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반드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은 표지가 주는 무시무시함과 달리 차분하지만 피해자 가족들의 삶에 대해 잘 나타내주었다. 피해자의 여동생을 주요 화자를 등장시켜 그 가족의 변천사를 보여주는데 제3자가 보았을 때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너무 피해자 가족 중심이다 보니 가해자의 시선이나 가족들의 삶을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가해자가 인터뷰를 하지 않았으니 그 심정을 잘 알 수 없겠지만 소년A의 부모의 삶은 한 번 들어볼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범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만든다. 진지하고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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