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에 안녕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7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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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해피엔드는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나 소설 등에서 해피엔딩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사회가 안정되어 있을수록 비극을 즐기고, 위험도가 높고 불안정할수록 코미디 등을 즐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말대로라면 현재 우리의 사회가 어떤 모습일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나 자신도 말이다.

이 미스터리 단편 모음집은 해피엔드를 노골적으로 지양한다. 읽다보면 읽음직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거기에 예상한대로 흘러가는 결말과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지면서 만족도를 높여준다. 일상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낯선 상황으로 들어가면서 만들어내는 비극과 반전이 바로 그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과 서술 트릭을 이미 전작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에서 경험했지만 단편 속에서 만나니 전혀 새로운 느낌이다. 

1999년부터 2007년 사이에 잡지에 실었던 열한 편의 단편을 모았다. 각각 분량이 다르다. <천국의 형에게>같은 단편은 편지 형식으로 분량이 두 쪽 정도다. 하지만 이 짧은 이야기 속에 함축된 많은 이야기를 담고 반전을 보여준다. 길다고 해도 중편이라고 할 정도의 길이를 가진 이야기는 없다. 이 단편집에서 비교적 긴 <강 위를 흐르는 것>은 명확한 사실을 밝히기보다 추리와 가능성만으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역할을 바꾼다. 마지막에 진실이란 단어가 과연 모두에게 행복한 것일까 하고 묻고 하나의 행복이 다른 행복을 불러오는 것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처음으로 나온 이야기 <언니>는 예상한 전개를 보여주지만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말로 이어진다. 서술트릭을 잘 사용하는 작가의 능력이 그대로 드러난다. 언니에 대한 질투가 과연 그렇게까지 확대될 이야기인가는 뒤로하고 섬뜩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벚꽃 지다>는 가정 폭력을 다루지만 이것을 가족내부의 시선과 이웃의 눈을 교차시키면서 보여주고 있다. 이 전환을 통해 속과 겉이 얼마나 왜곡될 수 있는지 환기시키고 의문을 품게 만들고 트릭 속으로 빠지게 만든다. <지워진 15번>은 점점 불안과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상 수위로 높여가면서 파국으로 이끌고 마지막 문장은 애잔한 느낌을 전해준다.

<죽은 자의 얼굴>은 섬뜩한 장면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현재에서 과거로 들어가 만난 사건이 다시 현재에 재현되는데 그 결말이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대가족 속에는 숨겨진 비밀이 얼마나 많을까! <살인 휴가>는 한 스토커에 대처하는 여자 이야기다. 중반까지는 스토커에 시달리는 여성의 심리와 행동을 반영한다면 마지막 몇 쪽은 광기와 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진짜일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은 각자의 몫이다. 참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바로 <영원한 약속>이다. < in the lap of mother > 은 도박 중독을 조심하라면서 바로 옆에 도박장을 만드는 우리의 모순된 현실에 대한 비극적 결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존엄과 죽음>은 한 노숙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선의에 의한 것이든 악의에 의한 것이든 폭력은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에 펼쳐진 반전의 한 단어는 역시 서술트릭의 대가답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방역>은 읽을 당시는 친구와 선행학습에 대해 이야기할 때다. 유치원에서 자신의 딸이 중하위라는 말에 선행학습을 말하고 있었다. 자세하고 깊게 그 아이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지만 남에게 뒤쳐진다는 불안이 어떤 것인지 조금은 짐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아내가 아이를 가르치면서 보였다는 반응은 소설 속 장면들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단순히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 속 문제임을 더욱 절실히 느꼈다. 한국의 현실이 일본의 과거임을 자주 느끼는데 이번도 마찬가지다. 불안과 공포와 아이에 대한 소유욕과 욕망 등이 뒤엉켜 있고, 부모의 역할을 점점 강요하는 사회 속에서 한 가족의 불안정한 공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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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모가와 호루모
마키메 마나부 지음, 윤성원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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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를 읽으면서 호루모가 뭔 말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해 재미있게 읽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소설에서 호루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 이 대항전이 어떤 식으로 펼쳐지고, 그 이면에 숨겨져 있는 약간의 의미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전투가 펼쳐지는 대항전을 재미있게 볼 수 있었고, 청춘남녀들의 미묘한 사랑 이야기도 쉽게 몰입할 수 있었다.

에필로그를 제외하면 모두 여섯 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로맨틱 교토, 판타스틱 호루모>가 연작으로 읽힌다면 이번 소설은 한 남자가 화자로 나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 주인공의 이름은 아베고, 그는 가난한 고학생이자 삼수생이다. 그가 이름부터 이상한 동아리 교토대 청룡회에 가입하게 된 것은 부족한 생활비를 채우기 위해서다. 그 방법은 신입생 모집 동아리에 가서 한끼 식사를 때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한끼 식사를 위해 간 곳에서 첫눈에 반하는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사와라 교코. 그가 반한 것은 특이하게도 이쁜 얼굴이 아니라 코다. 그렇다고 그녀가 못생긴 것은 아니다. 단지 아베가 코에 더 집착한다는 의미다.

이 소설을 판타지 청춘연애소설로 분류하는 것도 바로 이런 사랑 때문이다. 아베는 교코를 좋아하고, 교코는 또 다른 동기인 아시야에게 첫눈에 반한다. 이런 묘한 관계 속에 벌어지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호루모 대항전이란 판타지 경기와 더불어 뒤로 가면서 상승효과를 드러낸다. 하지만 진정한 재미는 이런 엮인 관계가 아니라 개성 강한 캐릭터 때문이다. 첫 대항전에서 귀어를 잘못 말해 호루모를 외친 귀국자녀 다카무라나 일자머리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구스노키 후미 등이 바로 그들이다. 

다카무라는 호루모를 외친 후 사무라이 머리를 하고 돌아다니며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아베의 고민을 들어주고 나중에 제17조를 행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구스노키는 그 존재가 미미한 듯하지만 은근히 강한 인상을 준다. 특이한 외형 덕분에 본짱이란 별명으로 불리지만 알고 보면 무서운 실력을 지니고 있다. 알 수 없는 듯한 그녀의 마음이 드러나는 장면은 어느 정도 예상한 것이지만 보는 재미를 준다. 이 둘은 아베가 집착하는 코를 가진 사와라 교코 때문에 벌어진 사건을 무사히 해결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후반부의 재미는 바로 이 둘이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랑과 집착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소설은 아베의 행동과 심리를 통해 묻고 있다. 처음에 아베가 교코에게 빠진 것이나 교코가 아시야에게 반한 행동이 이런 질문을 던진다. 청춘의 열정에 휩싸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순수한 사랑인지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젊은 시절 누구나 경험하듯이 이 같이 뜨거운 감정은 빨리 끓어오른 것만큼 빠르게 식는다. 물론 이 감정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경우는 역시 소수다. 그런 점에서 교코와 아시야의 결합은 사랑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집착이라고 해야 할지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지금에야 안 것이지만 이 소설은 작가의 처녀작이다. 이 작가와 함께 비교되는 모리미 도모히코의 처녀작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하지만 모리미 도모히코가 몇 편의 소설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 것을 생각하면 부족하게 느껴진다. 아직 겨우 두 권 읽은 이 작가를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현재는 그런 생각이 든다. 아직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작품을 읽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뭐 정확히는 어떤 작품이 대표작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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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거짓말 - 카네기 메달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0
제럴딘 머코크런 지음, 정회성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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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는 거짓말을 둘로 나눈다. 하나는 말 그대로 거짓말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것은 칸트의 철학으로 넘어가면 상당히 난해해지기 시작한다. 사실 이 부분은 나도 어려워하는 부분이니 그냥 넘어간다. 제목대로라면 엄청난 거짓말이 분명한데 어떤 것일까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대판 아라비안나이트란 광고 글도 보이는데 한 거짓말쟁이가 풀어내는 수많은 이야기가 살짝 그런 분위기를 풍기기도 한다. 원제를 보면 “A Pack of Lies다. 출판사에서 확대해서 제목을 바꿨는데 시선을 끌기에는 좋지만 내용과는 조금 맞지 않는 것 같다.

에일사가 숙제를 위해 도서관에 갔다가 한 남자를 만난다. 그가 바로 놀라운 이야기꾼 MCC 버크셔다. 처음엔 그냥 노숙자거나 부랑자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그녀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그녀가 생각한 것은 엄마가 그를 뿌리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의 제안에 엄마가 고개를 끄덕인다. 공짜로 일하고 가게까지 지키겠다고 하니 말이다. 아빠가 죽은 후 홀로 힘겹게 포비 골동품점을 지키던 그녀에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이렇게 그는 골동품점 한 곳을 차지한다.

레딩에서 왔다는 버크셔는 특별히 하는 일이 없다. 앉아서 책 읽는 것이 그의 일이다.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직원이다. 그런데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고객이 관심이 보이는 골동품을 거기에 얽힌 멋진 이야기로 반드시 사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는 한 골동품만은 사지 않게 만들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모두 열한 개의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바로 이 이야기들이 하나의 단편소설로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미있고, 모험담, 로맨스, 코미디, 추리물, 비극, 공포물 등의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다. 

소설의 구성은 사실 간단하다. 도입부와 반전을 담고 있는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 늘 손님 한 분이 오고 하나의 골동품에 관심을 가진다. 이때 슬며시 나타난 버크셔 씨가 나타나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고, 그 사연에 빠진 고객이 물건을 사는 것이다. 이 단순한 구성이 지루할 것도 같은데 전혀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 것은 역시 각각의 이야기 때문이다. 읽다보면 처음엔 비극이 또 나오겠구나 생각하는데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가 나와 기대(?)를 저버린다. 이 때문에 손님이 찾아오면 나도 모르게 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기대하게 된다. 

다양한 장르를 다루고 있지만 하나의 흐름이 있다. 그것은 미신, 거짓말쟁이, 가치, 탐식, 명예와 신뢰, 불같은 성격, 허영, 배반, 자존심, 공포 등의 명사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 교훈도 살짝 담고 있다. 다만 교묘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홀려 놓치기 쉬울 뿐이다. 또 하나 책을 읽으면서 계속 버크셔의 정체에 의문을 달게 된다. 이미 광고 글에서 놀라운 결말에 대한 언질을 받았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감수성 예민한 소녀와 과부와 나이를 정확히 가늠할 수 없는 버크셔의 관계도 어떤 식으로 결말을 맞이할지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렇게 이 책은 호기심을 끝까지 품게 만들고,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게 만드는 매력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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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랩소디>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토마토 랩소디
애덤 셸 지음, 문영혜 옮김 / 문예중앙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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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에 토마토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다시 토마토를 열심히 먹은 적이 있다. 건강 관련 TV프로가 아닌가 생각한다. 한때는 무척 즐겨 먹었던 야채인 토마토를 잘 먹지 않을 때였다. 아마도 물기 있는 토마토를 포크 등으로 찍어 먹어야 하는 약간의 번거로움과 다른 단 음식들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도 그냥 집에 토마토만 놓아두면 손이 잘 가지 않는다. 대신 방울토마토는 잘 먹는다. 이런 귀차니즘은 건강과 식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런 나에게 토마토를 가열하면 더 좋다는 정보가 효율을 발휘하기는 힘들다. 가끔 먹는 스파게티로 대신 할 뿐이다. 토마토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수많은 추억과 기억이 떠오르는 것을 보면 이 야채가 우리 삶에 참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모양이다.

이 소설의 무대는 중세 토스카나 지역이다. 큰 도시가 아니라 조그마한 마을이다. 하지만 이 조그마한 마을 속에서 벌어지는 ‘사랑, 욕망, 그리고 금지된 열매에 관한 우화’는 결코 작지 않다. 개성 강한 인물들과 사랑스러운 남녀를 등장시켜 아슬아슬한 상황들을 연출한다. 책 중간중간에 작가가 개입하고, 가공의 작가 논문을 등장시켜 극의 전개를 설명한다. 이런 설정은 잠시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와 주변을 둘러보고,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예상하게 만든다. 이 잠시 동안의 시간이 바로 다음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기도 한다.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몇 가지 설정에 의해 이야기는 진행된다. 첫 째는 당연히 남자 주인공 다비도의 할아버지 논노에 대한 것이다. 유대인인 그가 그 유명한 콜롬보를 따라 아메리카 여행을 다녀왔고, 오면서 토마토 씨앗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이 설정은 살짝 뒤로 가면서 흐려지지만 메디치 가의 노골적인 패러디인 메두치 가의 등장으로 인해 풍성한 상상력이 빚어내는 즐거움에 빠지게 만든다. 메두치 가의 놀라운 가계도와 코시모 대공의 변신 등은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마지막엔 놀라운 반전을 펼친다.

가장 중요한 설정은 역시 두 남녀의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토마토 소스와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음식 피자다. 다비도가 토마토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고, 마리가 올리브에 대한 전문가다. 이 둘은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이 둘의 사랑은 유대인과 이탈리아인 사이란 거대한 틈이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두 남녀에게 이런 틈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순수한 열정과 사랑이 있을 뿐이다. 다만 이 둘의 사랑을 질시하고 이로 인해 이익만 얻으려고 하는 악당 주세페가 있을 뿐이다. 이 악당은 유일하게 소설 속에서 음모를 꾸미고, 혹시 무슨 나쁜 일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하게 하고, 어떤 결말로 이어질까 기대하게 만든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 속에서 잔혹하고 가차 없는 그의 행동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주세페의 손발로 움직이는 베니토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주세페에 의해 정신이 피폐해졌지만 아직도 이성이 남아있고, 미신과 질투로 똘똘 뭉친 인물이다. 완전히 그의 영향력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가끔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시도로 인해 생기는 에피소드는 웃음과 즐거움을 던져준다. 이 인물과 함께 메두치 가의 요리사 루이지는 의미심장한 요리법을 전해준다. 그것은 분노를 섞어 요리하기다. 처음엔 무심코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점점 일상의 삶으로 옮겨오기 시작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가끔 혹은 자주 이런 요리를 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들이 나오는 것을 보니 아주 긴 역사와 전통을 지닌 요리법인 것은 분명한 모양이다.

토마토가 한 마을에 정착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인물은 신부 굿 파드레다. 그의 놀라운 외모뿐만 아니라 이력도 흥미롭다. 그가 존재함으로서 토마토가 올리브와 결합을 하게 되고, 소스로 변하게 된다. 당시 마을 사람들은 토마토를 금지된 열매이자 먹으면 죽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불식시킨 인물이 바로 그다. 덕분에 다비도의 사랑이 힘을 얻고, 마리의 삶에 열정과 활력을 불러온다. 그의 첫 등장에서 생각한 만큼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지만 큰 흐름 속에서 주요한 역할을 변함없이 하는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이야기의 흐름만 쫓아가지 않고 살짝 주변을 둘러보면 풍성한 볼거리와 재미가 널려있다. 에피소드 속에서, 하나의 가계도에, 요리사의 요리 속에, 두 문화의 충돌 속에, 숨겨진 과거 등에 말이다. 물론 아쉬움도 있다. 그것은 그 마을 사람들이 각운을 맞춰 말하는 느낌을 충분히 누리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웃음과 울음의 두 상관관계를 녹여낸 부분은 삶의 지닌 희비극을 제대로 보여준다. 아픔 속에 담겨 있는 웃음과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라는 노래 가사처럼 그 속에 담긴 슬픔 등이 가슴으로 와 닿는다. 그리고 읽는 동안 나의 미각은 많은 고생을 했다. 토마토를 베어 물고 그 즙을 입가에 흘리는 모습에서, 올리브 절임에서, 토마토 소스가 만들어진 후 만들어진 원시적인 피자의 모습 등에서 끊임없이 입맛을 다신다.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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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롱뇽과의 전쟁>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도롱뇽과의 전쟁
카렐 차페크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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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렐 차페크란 이름을 듣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알게 된 것이 2~3년 정도다. 예전에 sf문학 관련된 해설에서 그의 희곡 에서 로봇(robot)이란 단어가 처음 사용되었다는 것을 읽었지만 작품으로까지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그것은 학교에서 받은 교육이 영미문학과 서유럽문학 중심이었기에 그런 것도 있고, 카렐 차페크가 어떤 인물인지 해설자조차도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현실에서 세계문학이란 이름으로 나오는 책들이 대부분 그런 종류고, 베스트셀러 중심으로 흘러가는 출판 현실에서 문학의 변방인 그를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래전 헌책방에서 절판된 책을 찾아다닐 때 카렐 차페크의 철학 3부작 중 한두 권을 산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그에 대해 제대로 알고 산 것은 아니다. 그 책을 사기 전 누군가가 아주 급박하게 구하는 글을 유심히 읽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놓친 걸작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이 당시 나의 책에 대한 얕은 지식 때문에 놓친 책들이 한두 권이 아니다. 절판 혹은 희귀판들이 싸게 또는 별로 비싸지 않은 가격으로 팔렸는데 그냥 지나갔다. 내 관심이 베스트셀러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아쉬운 순간들이다. 이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책읽기 취향을 그대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은 언제나처럼 신간을 훑어보다가 발견했다. 반가웠다.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있었는데 덜컥 내손에 들어왔다. 기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는데 산만한 편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노랗고 푸르고 빨간 색지가 책 중간 중간에 삽입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전에 헌책방에서 구한 철학소설이란 이름이 얼마 전에 읽은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같이 힘겨운 책읽기를 예고하는 듯했다. 그래서 다른 책을 먼저 읽고 미뤄 두었다. 그런데 이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가독성이 좋았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졌다. 예상보다 재미있고 빠르게 읽었다.

재미와 속도감을 주지만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몰입도를 높여주고 진도가 잘 나가지만 이야기가 담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과 도롱뇽의 관계 변화와 힘의 역학 관계를 우화적으로 읽어야 할지 아니면 그 당시 세계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것으로 봐야 할지 고민되었다. 뭐 이런 고민은 서평을 위한 것이지 책읽기와는 사실 별 관계가 없다. 서평이 아니라면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이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릴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머릿속은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 

판타지나 sf로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도롱뇽이란 존재 때문이다. 도롱뇽이 등장하는 첫 부분을 읽을 때 러브크래프트의 단편 중 한 편을 읽는 듯한 기분을 받았다. 반 토흐 선장이 타나마사라는 섬 사람들의 공포를 무시하고 데블베이란 곳으로 가서 어둠속에서 도롱뇽을 처음 보는 장면에서 말이다. 하지만 곧 반 토흐 선장이 이 도롱뇽이 지닌 사업성을 파악하고 G.H. 본디를 찾아가서 새로운 사업을 이야기할 때 이전 세기의 노예무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도롱뇽이 지닌 경제성을 파악한 사람들의 행동에서 폭력과 약탈과 잔혹함 등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아니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시선에 담긴 마음과 행동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는 않다.

작가는 특별한 주인공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고 가지 않는다. 중간 이후 도롱뇽에 대한 기사를 스크랩했던 포본드라 씨를 등장시켜 시대의 변화를 보여줄 뿐이다. 반 토흐 선장이 도롱뇽을 이용해 진주 캐기를 기획할 때만 해도 한편의 모험소설을 연상했지만 그의 출현은 거기까지다. 이후 놀라운 도롱뇽의 번식과 그들의 특수한 능력을 놓고 벌어지는 토론을 보면서 세계 시장을 보는 사업가의 시선을 경험한다. 도롱뇽이 신기하고 놀라운 존재에서 일상의 존재로 바뀌는 순간은 결코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이 변화 속에서 작가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특히 각 나라가 도롱뇽을 이용해 군비확장을 꾀하는 부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군비확장과 도롱뇽과의 전쟁 속에서도 작가가 은근히 주장하는 것이 하나 있다. 누가 이 도롱뇽들에게 무기 등을 제공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도롱뇽들에 의해 하나씩 대륙이 물에 잠길 때조차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데 이것은 지금에도 변함없는 현실이다. 작가의 통찰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리고 포본드라 씨가 시대의 변화에 따라 도롱뇽를 보는 관점이 변하는 장면들은 하나의 사물이나 사람이 그 한 시점만으로 평가할 때 어떤 문제나 의문이 생길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이것은 역사가 하나의 시점이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파악해야 하는 것임을 역설한다. 

아직 제대로 이 책을 소화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평생 두고두고 소화해야 할지도 모른다.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 것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역사와 세계를 보는 시각도 흥미롭기 때문이다. 다양한 문체와 장르를 오가는 구성과 편집은 전혀 재미를 떨어트리지 않는다. 약간의 우려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포만감에 빠져 하나하나 소화시키기 바쁘다. 글을 거의 다 쓴 지금 다시 펼친 곳에서 읽을 당시 유심히 생각했던 몇 개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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