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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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자전적 에세이다.

일기와 창작 노트가 결합한 느낌이다.

이 에세이는 시간 순으로 진행된다. 나중에 그의 나이를 보고 잠깐 놀란다.

첫 소설 <개미>가 출간되기 전까지 그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잘 드러난다.

정말 한국에서 대박 난 그 소설은 수많은 개작을 거친 결과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소설이 나오게 되었는지 보여주는데 대단한 열정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 소설에 대해 칭찬하고 추천했던 친구의 모습이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의 소설들을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20대에 읽었던 소설 중 몇 권은 나의 취향과 너무 달랐다.

<개미>에서 느낀 재미가 천사 등으로 넘어가면서 사라진 것이다.

실제 그의 소설 중 일부는 프랑스에서 판매가 부진했다.

이 에세이에 한국에 대한 인용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엄청난 판매고 덕분이다.

그의 소설 중 최고 판매부수가 35만 부 정도인데 한국에서는 백만 부 넘은 소설들이 있다.

특히 단편집 <나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단편집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대목도 상당히 재밌다.


병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이 어떻게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결합한 결과다. 물론 우연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우연도 그의 꾸준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언론사에서 정규직 직전에 잘린 것이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자신의 열정과 도전과 모험심은 그가 앞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마냥개미 이야기는 그의 도전 정신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아주 위험한 행동이지만 열정과 호기심은 다른 사람이 제어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작가가 되기 전 그의 이런 수많은 경험은 작품 속에 다양하게 녹아든다.


한 권의 성공이 다음 이야기의 성공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성공을 더 이어가기 위해 그는 자신만의 글쓰기 루틴을 만든다.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이런 루틴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일상 생활 속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필요에 의해 각색하고, 작품 속 등장인물로 집어넣는다.

흔히 말하는 소설가 친구를 두면 생기는 일들을 그도 그대로 진행했다.

그를 처음 영성의 세계로 인도한 친구 자크와 그의 스승 이야기는 아주 현실적이다.

그의 강렬한 경험과 기억과 달리 그 스승은 그 소년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스승보다 그 친구 자크인데 둘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는 두 번 결혼했고, 한 번 동거하는 중이다.

각각의 연인에게 아이 세 명을 얻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나이 차가 상당히 많이 난다.

그 중 첫째는 얼마 전 재밌게 읽었던 소설의 작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영매를 작품 속에 자주 다룬 것을 생각하면 왠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의 일상들이 소재가 되어 소설로 바뀌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가들 이름이 나온다.

SF 소설의 거장들이다. 이 글을 보고 다시 그들의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작가는 각 장마다 타로 카드를 배치했다.

이 카드를 해석하고, 그 카드의 해석과 이야기를 연결한다.

보통 이런 카드는 그냥 간단하게 보고 지나가는데 그의 설명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차분하게 들여다본 그 카드는 그 단어와 더불어 머릿속에 조금씩 각인되었다.

그의 소설이 가장 흥행한 한국에 대한 애정은 그가 2년마다 방문한다는 글에서 잘 나타난다.

새로운 번역본 <꿀벌의 예언>이 얼마 전에 나왔는데 프랑스에서 21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보는 꿀벌이 얼마나 생태계에 중요한지 이제는 조금 안다.

이 소설에는 어떤 내용이 더 들어가 있을지 궁금하다. 살짝 내용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한다면 이 에세이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한 번에 훑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좋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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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 트리플 10
심너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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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10권이다.

SF 작가가 이 시리즈에 올라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3편의 SF 단편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경장편 정도로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단편집이었다.


첫 단편 <대리자들>은 과학의 발달이 배우의 연기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순수한 인간의 몸으로 연기를 하는 시대가 끝났음을 알려준다.

현실의 AI가 이미 사진 같은 사람을 그려내는 시대가 되었기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전직 아이 배우가 컴퓨터 그래픽에 이미지를 빌려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연기할 필요도 없이 얼굴과 목소리와 몸매만 빌려주면 된다.

현지 로케도 사라지고, 낭비되는 필름도 없다.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다.

여기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여친을 등장시켜 주인공의 혼란을 더 부각시킨다.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철학이 없는 사람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은 표제작이자 흔한 방식의 SF소설이다.

반전처럼 꾸며진 마지막 상황까지 오는 과정은 한 편의 좋은 이야기다.

좋은 선배, 높은 급여, 쉬운 일, 하지만 다른 동료들의 낯선 모습들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재밌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아무리 좋은 보안 프로그램을 깔아 놓아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란 것이다.

특히 비밀번호 이야기를 할 때는 순간 뜨끔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몇 광년이란 거리는 다른 여타의 SF소설처럼 낯선 거리다.


<문명의 사도>은 로마를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꾸며져 있다.

인류가 우주로 나가고, 새로운 문명을 만난다.

인류를 위해 광산 행성, 농업 행성 등을 만들어내는데 주인공은 농업 행성의 집정관이 된다.

그가 웜홀을 통해 도착한 곳을 지구와 닮은 농업 행성으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만난 실피움은 그의 의도를 무너트린다.

실피움의 실체를 알게 된 이후 그와 제국의 황제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이 황제는 인공지능인데 인간의 감성보다 논리가 우선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에세이 세 편의 글로 자기를 소개하기>는 작가 3년 차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창작 노트라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소설들은 언제나 가볍게,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당연히 이번 소설집도 그렇다.

장편은 아직인데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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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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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다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도 늘 이런 시간으로 가득하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어 할 것이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라면 ‘나 혼자’ 있는 시간은 아주 소중하고 의미 있다.

늦은 밤이나 아주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 잠깐 이런 순간을 즐긴다.

일상 여유보다는 시간을 짜낸 부분이라 이 즐거움은 곧 피곤함으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이 순간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홀로 오랜 시간을 보낼 때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게 다가왔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 책 속 22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현재와 과거 속에서 이런 시간들을 찾아낸다.

읽다 보면 코로나 19 상황에서 벌어진 일들도 몇 편 나오는데 몇몇은 아주 놀랍다.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빈집들은 하나씩 늘어난다.

이런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삶을 이어나간다.

어느 순간 이 공포의 시간을 잊은 듯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로만 가득했다면 코로나 19 에세이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 많은 이야기들은 각자의 인종과 성별과 과거와 현재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당연히 공감할 부분도 많고, 밑줄 끝기하는 문장들도 계속 나온다.

물론 나의 삶과 너무 달라, 현실적 괴리 때문에 공감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다.


22명의 작가들 중에서 솔직히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는 줌파 라히리가 유일하다.

이름을 아는 유일한 작가이지만 단 한 권도 소설을 읽은 적은 없다. 사 놓기만 했다.

작품으로 넘어가면 이전에 읽었거나 집에 고이 모셔 둔 책들이 있다.

내 취향과 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거나 번역이 되지 않은 작가들이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를 읽으면서 아주 재밌게 읽은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에이미 션의 <홀로 걷는 여자>는 대단히 재밌고 흥미로웠다.

멜리사 페보스의 <금욕 서약>은 돌아보니 왠지 단편 소설처럼 다가온다.


한 편 한 편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고, 내 능력 밖이다.

읽다 보면 아시아계나 흑인 여성 등의 글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한국에 살다 보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인종 차별 등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물론 성 차별의 문제로 넘어가면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여성과 외로움에 대한 글 중 일부는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강한 인상을 준다.

외로움이 지닌 가장 억압적인 특징으로 “상상력을 제한하고, 삶은 결코 더 나아가지 않을 거라 속삭이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꿈꾸지 못하게 스스로를 얽매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기준으로 과연 외로움이 이런 작용을 했던가? 일부는 맞다.

작가의 상황이나 경험이 이런 글로 이어졌다는 부분은 안타깝다.


인종 차별에 대한 가장 무시무시한 현실적 표현도 나온다.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침대에서 자고 있다 살해를 당해도 그 이유를 당신한테서 찾으며 비난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니까 말이다.”

인종 차별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건에서 우린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먼저 탓하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의도적인 일이다.

이런 차별 문제가 곳곳에 드러나지만 영화 같은 차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이 한 권의 에세이 속에 담겨 있다. 멋진 일이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처럼 ‘여자 혼자 영화 보기’를 권하는 글도 있다.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 보는 여성을 많이 봤기에 나에겐 특별한 일이 아닌데 미국은 다른 모양이다.


여성 작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백인이 아닌 인종도 적지 않다.

사실 이런 비율은 이 책이 의도한 바를 잘 보여준다.

여성과 비백인이 혼자 있게 되면서 경험한, 경험하는 일들은 백인 남성과는 다른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남성 작가들의 글에서는 여성과 비백인의 글과 다른 이야기가 많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나에게 백인 여부는 이야기 속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인종을 고백할 때 앞에 나온 글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많은 작가의 에세이라 단숨에 읽기엔 쉽지 않지만 쉬엄쉬엄 읽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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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 - 닐 게이먼과 26인 작가들의 앤솔러지
로디 도일 외 지음, 닐 게이먼 외 엮음, 장호연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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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닐 게이먼과 알 사란토니오가 기획한 책이다.

닐 게이먼을 포함해서 27명의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다.

장르는 판타지, 호러, SF 등 다양하고, 분량은 모두 제각각이다.

작가 이름을 보면 상당수의 작가들이 낯익다.

낯선 작가들 중 일부도 검색해보면 책 제목이 낯익은 경우가 많다.

인터넷 서점에는 이 수많은 작가들에 대한 정보를 넣지 않았다. 조금 아쉽다.

책 마지막에 간략하게 이 작가들에 대한 정보가 나오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그리고 장르도 뒤섞여 있어 독자가 읽으면서 스스로 분류해야 한다.


솔직히 말해 27편을 읽다 보니 앞에 읽었던 이야기 몇 편은 내용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

책을 뒤적이면 금방 책 내용이 되살아나지만 이럴 때 저질 기억력은 정말 아쉽다.

모든 단편에 대한 간략한 감상을 적고 싶지만 인상적인 몇 편만 적는다.

나의 저질 기억력 속에서도 강한 인상을 남긴 단편들은 그렇게 많지 않다.

닐 게이먼의 <진실은 검은 산의 동굴>, 월터 모슬리의 <주브널 닉스>

로런스 블록의 <잡았다 풀어주기>, 제프리 디버의 <치료사>, 조 힐의 <계단 위의 악마> 등이다.

물론 이 소설들과 다른 의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단편들도 있다.

쌍둥이의 삶을 다룬 조이스 캐럴 오츠의 <화석 형상>

갑자기 피를 갈구하게 된 남성 이야기인 로디 도일의 <피>

읽으면서 누가, 왜? 의 의문을 품게 한 다이애나 윈 존스의 <서맨사의 일기> 등이다.


이런 앤솔로지는 작가가 많아질수록 취향을 많이 탄다. 어쩔 수 없다.

늘 좋아한 닐 게이먼의 단편은 처음엔 약간 혼란스러웠지만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주브널 닉스>는 읽으면서 앤 라이스의 <뱀파이어 연대기>가 떠올랐다.

<잡았다 풀어주기>는 뒤로 넘어가면서 연쇄살인마의 본색이 서서히 드러난다.

<치료사>는 가공의 설정이 잠시 나를 혼란스럽게 했고, 예상 밖의 결말로 놀라게 했다.

<계단 위의 악마>는 문단의 구성이 눈길을 끌고, 마지막으로 갈수록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렇게 다섯 편을 놓고 보니 판타지와 스릴러 소설들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들이다.

아! 월터 모슬리는 낯선 작가인데 이 이야기를 장편으로 바꿔도 재밌을 것 같다.


기대를 많이 했지만 취향을 탄 소설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척 팔라닉의 <패배자>다.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내용이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이클 무어콕의 <이야기들>도 다른 이야기를 기대한 탓인지 잘 집중하지 못했다.

가장 긴 단편 중 하인 엘리자베스 핸드의 <매콜리의 벨레로폰 첫 비행>도 역시 취향을 탔다.

뭔가 강렬한 한 방이 나올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조안 해리스의 <맨해튼의 도깨비불>도 도입부에 비해 후반부가 조금 아쉽다.

팀 파워스의 <평행선>은 읽으면서 이 상황에 대한 의문이 계속 들었다. 진짜일까 하는 의문이다.

커트 앤더슨의 <스파이>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그가 한 이야기가 사실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마이클 마셜 스미스의 <불신>도 마지막 문장으로 읽고, 그의 존재를 의심하게 되었다.


다른 책들을 읽으면서 조금씩 단편들을 읽었다.

워낙 두툼한 분량이라 단숨에 읽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취향에 따라 가독성이 많이 변했다.

늘 그렇듯이 분량에 대한 예측이 잘못되어 갑자기 이야기가 끊어진 것처럼 다가온 것도 있다.

피터 스트라우브의 <영적 스승 맬런>이 대표적이다.

스튜어트 오넌의 <실종자가 묻힌 자리>는 마지막 문장을 다시 읽고 그 심리 묘사가 새롭게 다가왔다.

캐럴린 파크허스트의 <결혼 선물>도 역시 마지막 문장이 아주 인상적이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뒤적이면서 이런 재미와 반전을 재발견했다.

언제 시간이 난다면 이 단편 중 몇 편은 여유를 가지고 다시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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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이재호 지음 / 고블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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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종이책으로 처음 출간한 SF 장편소설이다.

리디북스에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 <이재호 SF 시리즈 세트>로 올라와 있다.

이력을 보면 SF 작가 활동이 몇 년 되었고, 나름 좋은 성과도 거두고 있다.

이런 이력과 출판사와 책을 추천한 사람과 장르가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최근에는 한국 SF소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부족하다.

그래서 한국 SF소설이 나오면 먼저 눈길이 가고, 몇 권은 사 모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부분들이 많다.


일단 책의 가독성이 생각보다 훨씬 좋다.

침팬지 필립의 변신 혹은 진화 과정에서 생기는 사건은 영화 <에일리언>을 떠올린다.

이후 이어지는 사건과 결말 부분은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었던 SF 소설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독자의 경험이나 성향에 따라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해는 달라질 것이다.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작가의 후기는 마지막 장면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알고 있는 우주에 대한 과학적 상식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약간 하드 SF 소설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액션도 살짝 가미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액션이 현란하게 시선을 잡아 끌 정도는 아니다.


심우주 테라포밍을 위해 우주선 라온제나호가 출발한지 2년이 지났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지의 소행성에 갑자기 난파한다.

우주선에 탄 선원들은 우주선을 수리해 목적지로 향하려고 한다.

이때 선원 중 한 명이 이상한 돌 하나를 가지고 선내로 들어온다.

이 돌은 다양한 빛을 품어내는데 선원들은 아스틸베라고 부른다.

이 돌을 본 침팬지 필립이 가지고 간다. 다른 곳에 놓아두어도 찾는다.

그리고 필립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수현과 수화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인간의 말을 한다.

인도의 베탄다를 읊을 정도다. 갑작스럽게 진화한 것일까?

하지만 수현을 엄마처럼 따르던 그때의 그 침팬지는 아니다.


또 하나 우주선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생긴다.

구아바의 DNA 활성도가 5.7배나 높아지면 더 빨리, 더 자주 구아바 주스를 마시게 된다.

좋은 일이라고 할 수만 없는 것은 그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특수 반응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이런 이상이 필립의 변신과 맞물리면서 우주선을 공포로 몰아간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치나 장면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후반부의 닥터 션의 돌출 행동에 대한 설명은 아쉬운 대목이다.

앞부분에 갈등을 조금 심어 놓거나 단순한 생존 욕구만 부각시켜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 몇 개 있다.

하나는 우주선 밖으로 나간 선원이 보이저2호의 유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 흔적과 마지막 장면을 연결하면 제목의 껍데기가 의미하는 바는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이 소행성의 운동 방향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소행성과 충돌해 그곳에 정박해 있다면 소행성과 함께 어딘가로 날아가는 중이다.

만약 어딘가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어딘가의 위성으로 돌고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적인 설명 생략인지, 아니면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제목과 마지막 장면과 우주를 구아바 씨에 비교한 것들 생각하면 나만의 결론에 도달한다.

그럼 다시 작가는 왜 이런 우주를 그려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했다고 하는데 더 길게 내용을 보강했으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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