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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이재호 지음 / 고블 / 2023년 5월
평점 :
작가가 종이책으로 처음 출간한 SF 장편소설이다.
리디북스에 작가의 단편 모음집이 <이재호 SF 시리즈 세트>로 올라와 있다.
이력을 보면 SF 작가 활동이 몇 년 되었고, 나름 좋은 성과도 거두고 있다.
이런 이력과 출판사와 책을 추천한 사람과 장르가 이 책을 선택하게 했다.
최근에는 한국 SF소설이 많아졌지만 여전히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부족하다.
그래서 한국 SF소설이 나오면 먼저 눈길이 가고, 몇 권은 사 모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소설은 나의 예상을 뛰어넘는 부분들이 많다.
일단 책의 가독성이 생각보다 훨씬 좋다.
침팬지 필립의 변신 혹은 진화 과정에서 생기는 사건은 영화 <에일리언>을 떠올린다.
이후 이어지는 사건과 결말 부분은 예전에 어딘가에서 읽었던 SF 소설의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독자의 경험이나 성향에 따라 마지막 장면에 대한 이해는 달라질 것이다.
이런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작가의 후기는 마지막 장면을 다시 한번 더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과학적으로 알고 있는 우주에 대한 과학적 상식을 파괴하기 때문이다.
약간 하드 SF 소설의 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액션도 살짝 가미되어 있다.
그렇다고 이 액션이 현란하게 시선을 잡아 끌 정도는 아니다.
심우주 테라포밍을 위해 우주선 라온제나호가 출발한지 2년이 지났다.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미지의 소행성에 갑자기 난파한다.
우주선에 탄 선원들은 우주선을 수리해 목적지로 향하려고 한다.
이때 선원 중 한 명이 이상한 돌 하나를 가지고 선내로 들어온다.
이 돌은 다양한 빛을 품어내는데 선원들은 아스틸베라고 부른다.
이 돌을 본 침팬지 필립이 가지고 간다. 다른 곳에 놓아두어도 찾는다.
그리고 필립이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수현과 수화로 대화를 나누었는데 갑자기 인간의 말을 한다.
인도의 베탄다를 읊을 정도다. 갑작스럽게 진화한 것일까?
하지만 수현을 엄마처럼 따르던 그때의 그 침팬지는 아니다.
또 하나 우주선에서 예상하지 못한 변화가 생긴다.
구아바의 DNA 활성도가 5.7배나 높아지면 더 빨리, 더 자주 구아바 주스를 마시게 된다.
좋은 일이라고 할 수만 없는 것은 그 원인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우주의 특수 반응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이런 이상이 필립의 변신과 맞물리면서 우주선을 공포로 몰아간다.
이 소설의 후반부는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장치나 장면이 상당히 많이 들어 있다.
개인적으로 후반부의 닥터 션의 돌출 행동에 대한 설명은 아쉬운 대목이다.
앞부분에 갈등을 조금 심어 놓거나 단순한 생존 욕구만 부각시켜도 충분했을 텐데 말이다.
이 소설에서 작가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간 것이 몇 개 있다.
하나는 우주선 밖으로 나간 선원이 보이저2호의 유물을 발견한 것이다.
이 흔적과 마지막 장면을 연결하면 제목의 껍데기가 의미하는 바는 달라진다.
다른 하나는 이 소행성의 운동 방향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소행성과 충돌해 그곳에 정박해 있다면 소행성과 함께 어딘가로 날아가는 중이다.
만약 어딘가로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면 어딘가의 위성으로 돌고 있어야 한다.
작가의 의도적인 설명 생략인지, 아니면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제목과 마지막 장면과 우주를 구아바 씨에 비교한 것들 생각하면 나만의 결론에 도달한다.
그럼 다시 작가는 왜 이런 우주를 그려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단편을 장편으로 개작했다고 하는데 더 길게 내용을 보강했으면 더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