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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분의 1의 우연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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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신문의 <독자 뉴스사진 연간상>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A신문은 아마추어들의 사진을 월별로 상을 준 후 연말에 연간상을 준다. 이번 연간상은 <격돌>이다. 이 사진은 도메이 고속도로 야간에 발생한 연쇄 추돌 사고 장면을 담고 있다. 5중 충돌 장면을 찍은 것인데 놀라운 것은 세 대의 차량에서 솟는 화염이 소용돌이를 틀며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을 위에서 찍었다는 것이다. 평에 의하면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하고 그 박력과 효과가 월등한 작품이다. 보통 보도 사진이 사고 후의 잔해 등을 찍는 반면에 이 사진은 사고 발생 순간을 거의 찍은 것이다. 심사위원장이 이것을 10만분의 1의 우연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주인공은 이 우연을 하나씩 파헤치고 반격한다.

 

세계를 뒤흔든 유명한 사진들이 많다. 그 중 몇 작품은 연출이라는 말도 들린다. 그 상황을 극대화시키는 순간을 제때 포착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소설 속에서 <격돌> 이후 많은 아마추어 작가들이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여 응모한다. 심사위원장도 중간에 어느 정도 연출이 필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어릴 때는 사진은 사실만을 보여주는 도구라고 배웠다. 하지만 이 사진이 어떻게 연출되고 편집되는가에 따라 원래 상황이 왜곡되고 뒤틀린다. 포토샵의 발전은 이것을 더 부추긴다. 작년 대선의 몇 장면은 너무 유명하다. 요즘 종이신문을 보지 않아 매체 사진에 관심이 없지만 가끔 의도에 의해 편집된 사진이, 연출된 사진이 나온다. 재벌가의 코스프레는 대표적인 연출이다. 이 연출에 대해 주인공은 또 다른 연출로 복수한다.

 

보도 사진이 나오면 늘 두 진영이 싸운다. 사람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어떻게 셔터를 누를 수 있냐고 하는 것과 그것은 사진가의 직업이자 사명이란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두 진영 사이를 수없이 오고 갔다. 그것은 사진이 담고 있는 내용에 따라 바뀌었다. 도입부에 <격돌>을 두고 벌어지는 독자와 신문사와의 논쟁은 이것에 대한 것이다. 작가는 사실 이 문제를 파고들기 위해 이 상황을 만든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이 연출로 만들어진 장면들이란 것이다. 오랫동안 다루어져 온 논쟁을 밖으로 끄집어낸 후 그 이전으로 돌아간다. 바로 왜 이 사고가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고. 그리고 진실이 드러났을 때 피해자 가족 등을 내세워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격돌>을 찍은 야마가 교스케, 이 사고로 약혼자를 잃은 남자. 이 둘도 서로 격돌한다. 피해자 유족인 남자는 사고의 진실을 파헤치고 이것을 복수로 풀려하고, 교스케는 어느 순간 이 사실을 알게 되면서 반격을 가하려고 한다. 정확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남자는 교스케가 연출했던 것처럼 상황을 연출한다. 처음에는 그 장면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몰랐는데 사건이 발생한 후 그 흔적으로 뒤따라갈 때 그것이 드러난다. 연출 대 연출의 격돌이다. 어떻게 보면 여기서 멈췄다면 더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복수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연출 속에 예상하지 못한 마무리를 여운으로 남기고 끝난다. 이 마지막 장면을 어떻게 해석할지는 개인에게 달렸다.

 

어떻게 보면 이야기가 조금 부족하다. 연출된 상황을 파헤치기 위한 끈질긴 노력은 오히려 기술적인 문제를 파고든다. 어떻게 이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하고. 그리고 교스케에 대한 정보가 수집된다. 이 수집된 정보와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단서가 확신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에 한 남자의 집념이 담겨 있지만 감정들은 밖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차분히 진행될 뿐이다. 세밀하고 치밀한 설명으로 장면과 상황을 만들어내지만 인간은 그 뒤로 숨어버린 것이다. 이 숨은 인간이 앞으로 나올 때 연출로 통해 바뀐 모습을 보여준다. 냉혹하고 치밀하고 차가운 복수가 펼쳐진다. 얼마나 증오가 심해야 이런 냉철한 복수로 이어질까? 보도와 인명보다 개인적으로 연출에 대한 연출의 복수라고 이 소설을 읽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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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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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15주년. <퍼레이드>, <악인>을 넘어서는 작가의 신경지란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거대한 스케일, 질주하는 속도감, 하드보일드란 평이 이전 작품의 기억과 더불어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너무 높은 곳까지 기대가 올라간 것일까? 아니면 취향을 타는 것일까? 모두 읽은 지금 그의 초기작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분명 재미난 이야기지만 그것이 왠지 모르게 현실을 너무 넘어선 것 같다. 이 초월이 소설보다 만화의 설정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속도감 있게 읽는 와중에 그들에게 몰입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프롤로그에 일본 NHK는 아시아에 CNN같은 뉴스 네트워크 GNN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주도자인 시마 회장이 여자 문제, 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물러나면서 사라진다. 그리고 현재로 넘어온다. 첫 시작은 호치민에서 벌어지는 살인이다. 이 살인이 벌어질 때만 해도 각 나라의 정보조직 사이에 암투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한국, 일본, 중국의 정보 조직이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각국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설정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다카노나 데이비드 김 등이 힘들게 얻은 정보를 정부 정보조직에 넘기지 않고 돈이 될만한 곳에 파는 것이다. 이때부터 이들의 정체에 대한 혼란이 생겼다. 더 나아가면서 그들이 돈을 쫓는 사람이나 조직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스파이소설이다. 이미 세계화와 다국적기업화가 진행된 상태에서 국적은 큰 의미가 없다. 애국을 내세운 마케팅을 펼치지만 그것은 이익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이런 국제 현실에서 정보를 가진 자들은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해주는 조직 등에게 정보를 판다. 이 정보를 얻거나 지키기 위해 그들은 폭력을 동원한다.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짓 정보를 흘리고, 적과 손을 잡고, 다시 배신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흔하게 말하는 의리는 사라지고 돈만 남는다. 물론 살짝 감상적인 의리나 사랑 등을 넣어서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이 세계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더 지루하고 힘들다.

 

AN통신. 주인공 다카노의 근무처다. 그런데 이 회사 이상하다. 처음 다오카가 납치되었을 때 다카노가 보여준 행동부터 그렇다. 납치된 사실을 알리고 조직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데 이 사실을 숨긴다. 그리고 그를 구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이때만 해도 왜 그런지 몰랐다. 부하를 끔찍하게 아낀다 정도랄까. 하지만 이 회사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 장난처럼 말한 것이 실제 존재한다. 이 설정은 또 하나의 시간제한으로 진행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이 정보 조직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려줄 때 앞에 풀어둔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알게 된다.

 

스파이소설답게 광범위한 지역을 무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베트남, 중국, 일본, 미국까지. 각 나라도 한 지역만 다루어지지 않고 다양한 도시와 지역을 옮겨 다닌다. 이 규모와 더불어 진행되는 정보조직 사이의 대결은 긴장감을 불어넣고 속도감을 높여준다. 데이비드 김과 AYAKO의 결합, 다카노와 장하오의 협력, AYAKO와 앤디 황과의 밀약 등은 쉴새 없이 흘러간다. 여기에 일본 정치인 이가라시 다쿠의 등장은 이 소설이 일본 소설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한다. 앞에 벌어진 격렬하고 위험하고 잔혹한 정보 전쟁이 양심과 애국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정보는 돈이란 사실을 끼워 넣어 너무 많이 기우는 것을 예방했지만.

 

개성 강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재미있다. 속도감도 상당하다. 하지만 역시 너무 많이 나간 이야기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것은 일본 만화를 읽을 때 자주 느꼈던 혹은 보았던 설정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자주 나온다. 그냥 재밌게 읽어도 되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정보가 우선순위에 올라가고 사람은 그 뒤로 처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너무 심하게 흔든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구성이나 전개가 조금 허술하게 느껴진다. 재미와 속도감이 만들어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면, 이전 작품과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불만스런 작품이다. 시리즈로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면 또 어떤 느낌일지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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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의 왕자 - 조던 메크너의 게임 개발일지 1985~1993
조던 메크너 지음, 장희재 옮김, 조기현 감수 / 느낌이있는책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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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영화 <페르시아의 왕자>가 개봉되었을 때 같은 이름의 PC 게임이 생각났다. 하지만 이 책 제목을 보았을 때는 같은 제목의 영화가 생각났다. 이 연상 작용은 같은 이름 때문에 생겼지만 실제 이 둘은 한 프로그래머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가 바로 이 일기의 주인공인 조던 매크너다. 게임을 할 때는 언제나 게임이 재미있는지, 아닌지만 생각하지 그 게임을 만든 프로그래머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감안하면 내가 이 책의 저자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 좀더 관심을 가진다면 제작사와 유통사를 알겠지만.

 

이 책은 부제에서 나온 것처럼 1985년부터 1993년까지 페르시아의 왕자 게임 개발일지다. 단순히 개발에 대한 일기만 내놓은 것이 아니라 그 시기 동안 그가 경험하고 고민하고 방황한 모든 것에 대한 기록이다. <카라테카>의 성공 이후 그는 게임 개발자로 자신만만했다. 페르시아의 왕자에 대한 개략적인 설계를 해놓은 상태지만 영화 극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 때문에 한동안 방황한다. 당연히 게임 개발은 지연된다. 이 방황이 결코 짧지 않다. 몇 개월 동안 프로그래밍에 손을 뗀 상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에 우선 순위를 둔 결과다. 여기엔 단순히 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글을 읽고 대리인이 팔겠다고 하거나 관심을 가진 많은 감독이나 제작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게임 개발에 집중했을 때도 가끔 있었다.

 

일기라고 하지만 매일 쓴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한 줄 정도고, 어떤 날은 상당히 길다. 하지만 길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전체 흐름 속에 한 프로그래머가 이루고자 한 모든 의지와 노력이 담겨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그 시대 게임의 흐름도. 현재 기준으로 보면 엄청나게 뒤처진 작품이지만 그 시대 기준으로 보면 획기적인 작품이다. 또 그 시대 컴퓨터와 게임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그 시대를 살았던 나조차 이렇게 많은 종류의 게임과 컴퓨터가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책 이전에 팟캐스터를 통해 PC와 게임에 대한 개요를 듣지 못했다면 엄청나게 낯설었을 것이다. 뭐 들었다고 아는 것은 아니지만.

 

10대 소년이 한 개발자로 성장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좌절과 성공이 같이 다루어진다. 한 사람이 모든 게임을 개발했다는 자체가 대단하다. 음악이나 지엽적인 몇 가지에서 외부의 도움을 받았지만 프로그래밍은 거의 그가 마무리했다. 이 일련의 과정들이 이 책을 게임 개발자의 필독서란 평가를 받게 만들었다. 단순히 개발일지가 아니라 개발 도중에 발생한 수많은 문제와 오류 등을 시간과 노력 EMDD으로 극복해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성공이 만들어낸 부유함과 미래에 대한 확신은 부럽다. 하지만 부가 쌓여갈 때 일에 대한 갈증을 토로하는 그를 보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80년대 후반부터 초반까지 PC게임 산업에 대한 개략적인 흐름을 아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수많은 PC와 게임 타이틀은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 나에게도 낯익은 것들이 곧잘 나온다. 실제 해본 게임은 몇 없겠지만. 페르시아의 왕자도 잠시 동안 해본 적이 있는 게임이다. 워낙 집중을 하지 않아 레벨을 그렇게 올려놓지 못했지만. PC쪽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같이 움직인다. 지금은 약해졌지만 한때는 신규 CPU가 나오면 그에 맞춰 고사양의 PC게임이 출시되곤 했다.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인가.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에게는 잠시 추억에 빠지게 하고, 게임 개발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는 어떤 과정에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알려준다. 그리고 생각보다 재밌고 빠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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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인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제3인류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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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읽었다. 느낌을 간단히 정리하기 쉽지 않다. 그중 하나는 이 2권이 이제1부란 점이다. 2권 끝까지 오기 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마무리다. 물론 이야기 전개 상 중간에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은 있었다. 하지만 1부 끝이란 단어를 보자 작가가 만들어낸 지구와 인류 역사가 되풀이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대충 그려졌다. 실제 이 예상이 맞는지는 모두 출간된 다음에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꺼번에 시리즈 전체를 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면 완결되기 기다리라고 하고 싶다. 1부를 모두 읽고 다음 이야기를 추측하는 재미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라면 더욱더!

 

작가는 자신이 쓴 소설들을 기반으로 장대한 서사를 구축했다.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지구를 가이아로 본 것이다. 의식을 지닌 지구를 이야기의 한 축으로 삼고, 주인공 몇 명을 등장시켜 현재 상황을 설명한다. 그 사이사이에 뉴스라는 매체를 통해 지구 상에 발생하는 몇 가지 중요한 소식을 삽입한다. 여기에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앞으로 벌어질 사건을 암시하거나 정보를 제공한다. 구성만 본다면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지구 탄생에서 현재까지의 역사를 다루면서 미래도 같이 보여준다는 점에서 엄청난 작업임이 분명하다.

 

제목과 가이아의 의식이 교차할 때만 해도 제3인류의 모습을 가이아의 의식을 이어받은 초능력자 정도로 생각했다. 아마 영화 <X맨>의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남극 탐사에서 거인을 발견했을 때도 역시 현재 인류의 진화 정도로 생각했다. 거인이 인류의 10배 크기인 17미터란 정보를 제공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주인공 중 한 명인 다비드 웰즈가 피그미 족을 연구하기 위해 아프리카로 갔을 때도 역시. 여기서 10배수란 숫자가 계속해서 그대로 적용될 것이란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인류의 키가 좀더 작아지는 것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면서 17센티로 만들었다.

 

이 사이즈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통해 기존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다. 인류의 탄생은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 가져오고, 이후 각 나라의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연결해서 제1인류를 만들어낸다. 고대문헌과 성경을 재해석한다. 이 모든 역사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은 것은 의식있는 지구 즉 가이아다. 가이아는 석유를 자신의 기억이라고 말하면서 현재 인류가 채굴하는 것을 거부한다. 아니 인류의 개발 자체를 거부한다. 이 반작용으로 해일이나 지진을 일으키는데 가끔 정확한 타격이 되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이 피해를 입기도 한다. 더 진행되면서 더 정확해지기는 하지만.

 

핵무기의 개발과 무차별적 개발의 결과로 인한 자원 고갈과 환경 재앙, 야만적인 자본주의의 본성과 종교적 광신 등이 현재 지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모습은 가이아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신의 피부와 기억을 빼앗아 가는 제2인류가 가이아는 불만이다. 가이아는 인류를 진화시킨 이유로 외계에서 날아온 소행성 충돌 때문이라고 말한다. 거대한 소행성은 그에게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을 심어주었다. 대기를 만들어 조그만 소행성은 지표에 도달하기 전 타버린다. 하지만 거대한 소행성은 엄청난 충격을 준다. 그 결과 우리가 알고 있는 공룡이나 다른 생명체의 멸종으로 이어졌다. 이런 과학적 상식을 가이아의 기억과 연결시켜 설명한다.

 

가이아에게 현재 인류에 대한 불만은 인류가 우주선을 만들어서 소행성 충돌을 막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인류에게 중요한 것은 각 나라의 정권 획득, 유지와 자본의 이익이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큰 적은 종교적 광신으로 사로잡힌 이란이다. 무수한 핵무기 개발과 종교적 광신으로 뒤덮인 나라로 묘사하는데 이 때문에 새로운 인류의 탄생과 진화가 이루어진다. 이란이 만든 800곳에 달하는 핵무기 발사 기지를 파괴하기 위한 특공대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정보 부족 때문인지 모르지만 강한 불만이 있다. 이란이란 나라를 모르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새로운 인류인 에슈마의 탄생도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든다.

 

에슈마의 탄생과 인류가 가이아의 보복으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과정은 끔찍하다. 전염병으로 엄청난 사람이 죽는다. 이 장면은 기아와 폭력으로 도배되어 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비해 인류의 감소는 상대적으로 적어 보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류의 행동은 그 이전과 변함이 없다. 가이아의 다음 행동이 예상되는 부분이다. 이런 설정은 책 중간에 풀어놓은 이야기 속에 조금씩 담겨 있다. 3보 전진과 2보 후퇴와 같은 방식이다. 인류의 오만과 무분별한 개발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작가는 그것을 가까운 미래로 설정했다. 무섭다. 이 모든 구성과 전개는 기존 설정을 빌려오면서 새롭게 각색한 것이다. 그의 최근 작품을 많이 읽지 않아 놓친 것들이 많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엄청나게 방대한 이야기를 소설 속으로 끌고 들어왔는데 과연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잘 마무리할지 모르겠다. 허술한 부분이 곳곳에 조금씩 보이지만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예상한 결론으로 이어진다면 많이 실망하겠지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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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앉는 자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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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초반에 밋밋한 전개와 상황 등으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비슷한 이름이 주는 혼선이 번거로웠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매년 있었던 반창회. 벌써 10년. 그들의 기억 속에 그 당시 학창시절은 자신들만의 것으로 왜곡되어 기억된다. 이런 그들에게 같은 반 친구였던 교코의 놀라운 성공은 단순히 이야기 거리를 넘어 질투와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이 소설에 화자로 등장하는 다섯 명의 반 친구들은 교코를 중심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술트릭이 자리잡고 있다.

 

학창시절 예뻤고 지금도 예쁘지만 무명의 연극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다 사토미, 친구들에게 남자 한 번 사겨보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 사토미 사에코, 거짓말로 자신을 치장한 미즈카미 유키, 오랫동안 유키를 짝사랑해온 시마즈 겐타, 지역 방송 아나운서로 활약하고 있는 다카마 교코 등이 이 소설의 화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친구들에게 숨겨왔다.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친구란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던 추억 속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다. 작가로 바로 이 이야기를 현실과 엮어서 풀어낸다. 그들이 가진 민낯을 하나씩 밝혀낼 때 교코를 통해 이루려고 한 욕망은 산산조각난다.

 

이야기는 졸업 10년 후 반창회에서 화제가 된 교코에서 시작한다. 유명 배우가 된 그녀를 반창회에 불러오자는 것이다.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맡은 것은 사토미다. 그녀의 역할은 간단하다. 만나 소식만 전하면 된다. 하지만 학창시절 그녀보다 더 예뻤다고 자신했던 그녀에게 교코의 풍격은 자신이 지닌 비루함을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숨겨둔 현재의 비밀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서서로 무너진다. 이야기 첫 주자이자 이 소설에서 교코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한 명씩 반창회와 연락을 끊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가장 불쌍한 친구는 사토미 사에코다. 자기 외모의 결점을 잘 생긴 남자로 보충하려 한다. 과거 기억 한 자락은 기에가 자기에게 온 편지를 찢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로부터. 이후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재까지 온다. 학창시절 기에의 남친은 잘 생긴 마사키. 하지만 둘은 헤어지고 각각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그런데 이 마사키가 사에코를 유혹한다. 어린 나이가 아니지만 달콤한 그의 말에 넘어간다. 불안해한다. 불안은 오해로 이어지고, 결국 폭발한다. 그리고 숨겨져 있던 과거의 진실이 밝혀진다. 왜곡되어 있었던 기억은 질투에 의한 것이었을까?

 

이후 다른 친구들의 사연도 이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교묘한 서술트릭과 치밀하고 섬세하면서 미묘한 심리묘사를 통해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고 풀어낸다. 도입부에 복선처럼 깔아둔 이야기가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한 순간에 바꿔버린다. 자신의 틀에서 이해하고 묻어두었던 감정과 삶들이 산산조각난다. 추악한 비밀이 밝혀지고 엄청난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순간에 약간은 훈훈한 결말을 맞이한다. 교코를 통해 성장한 것이다. 반창회를 떠난 것이 성장의 한 징표처럼 다루어졌지만 사실은 과거의 나쁜 기억을 털어버리고 현재의 나를 찾은 것이다. 그 사이에 아픔이 가끔 자리한다. 섬세한 책읽기가 요구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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