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은 움직이지 않는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서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데뷔 15주년. <퍼레이드>, <악인>을 넘어서는 작가의 신경지란 광고 문구가 눈길을 끈다. 거대한 스케일, 질주하는 속도감, 하드보일드란 평이 이전 작품의 기억과 더불어 기대감을 높인다. 하지만 너무 높은 곳까지 기대가 올라간 것일까? 아니면 취향을 타는 것일까? 모두 읽은 지금 그의 초기작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일까? 분명 재미난 이야기지만 그것이 왠지 모르게 현실을 너무 넘어선 것 같다. 이 초월이 소설보다 만화의 설정에 더 가깝게 느껴졌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속도감 있게 읽는 와중에 그들에게 몰입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프롤로그에 일본 NHK는 아시아에 CNN같은 뉴스 네트워크 GNN을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이 계획은 주도자인 시마 회장이 여자 문제, 경비 유용 의혹 등으로 물러나면서 사라진다. 그리고 현재로 넘어온다. 첫 시작은 호치민에서 벌어지는 살인이다. 이 살인이 벌어질 때만 해도 각 나라의 정보조직 사이에 암투가 벌어지는 것 같았다. 한국, 일본, 중국의 정보 조직이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각국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설정 말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예상하지 못한 장면들이 나온다. 다카노나 데이비드 김 등이 힘들게 얻은 정보를 정부 정보조직에 넘기지 않고 돈이 될만한 곳에 파는 것이다. 이때부터 이들의 정체에 대한 혼란이 생겼다. 더 나아가면서 그들이 돈을 쫓는 사람이나 조직이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스파이소설이다. 이미 세계화와 다국적기업화가 진행된 상태에서 국적은 큰 의미가 없다. 애국을 내세운 마케팅을 펼치지만 그것은 이익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이런 국제 현실에서 정보를 가진 자들은 그 가치를 가장 높게 평가해주는 조직 등에게 정보를 판다. 이 정보를 얻거나 지키기 위해 그들은 폭력을 동원한다.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다. 거짓 정보를 흘리고, 적과 손을 잡고, 다시 배신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흔하게 말하는 의리는 사라지고 돈만 남는다. 물론 살짝 감상적인 의리나 사랑 등을 넣어서 포장하는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이 세계에 중독된 사람에게는 보통 사람들의 삶이 더 지루하고 힘들다.

 

AN통신. 주인공 다카노의 근무처다. 그런데 이 회사 이상하다. 처음 다오카가 납치되었을 때 다카노가 보여준 행동부터 그렇다. 납치된 사실을 알리고 조직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데 이 사실을 숨긴다. 그리고 그를 구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이때만 해도 왜 그런지 몰랐다. 부하를 끔찍하게 아낀다 정도랄까. 하지만 이 회사에는 엄청난 비밀이 있다. 장난처럼 말한 것이 실제 존재한다. 이 설정은 또 하나의 시간제한으로 진행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리고 이 정보 조직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려줄 때 앞에 풀어둔 이야기를 이해하게 되고,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 세계화와 자본주의가 어디까지 나갔는지 알게 된다.

 

스파이소설답게 광범위한 지역을 무대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베트남, 중국, 일본, 미국까지. 각 나라도 한 지역만 다루어지지 않고 다양한 도시와 지역을 옮겨 다닌다. 이 규모와 더불어 진행되는 정보조직 사이의 대결은 긴장감을 불어넣고 속도감을 높여준다. 데이비드 김과 AYAKO의 결합, 다카노와 장하오의 협력, AYAKO와 앤디 황과의 밀약 등은 쉴새 없이 흘러간다. 여기에 일본 정치인 이가라시 다쿠의 등장은 이 소설이 일본 소설임을 분명하게 깨닫게 한다. 앞에 벌어진 격렬하고 위험하고 잔혹한 정보 전쟁이 양심과 애국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정보는 돈이란 사실을 끼워 넣어 너무 많이 기우는 것을 예방했지만.

 

개성 강한 캐릭터를 등장시켜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재미있다. 속도감도 상당하다. 하지만 역시 너무 많이 나간 이야기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다. 이것은 일본 만화를 읽을 때 자주 느꼈던 혹은 보았던 설정이다. 물론 우리나라도 자주 나온다. 그냥 재밌게 읽어도 되는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정보가 우선순위에 올라가고 사람은 그 뒤로 처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를 너무 심하게 흔든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리고 구성이나 전개가 조금 허술하게 느껴진다. 재미와 속도감이 만들어내는 것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것을 기대한다면, 이전 작품과 같은 것을 기대했다면 불만스런 작품이다. 시리즈로 다음 이야기가 나온다면 또 어떤 느낌일지는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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