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앉는 자리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선영 옮김 / 문학사상사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솔직히 말해 초반에 밋밋한 전개와 상황 등으로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비슷한 이름이 주는 혼선이 번거로웠다. 하지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고 다음 사람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매년 있었던 반창회. 벌써 10년. 그들의 기억 속에 그 당시 학창시절은 자신들만의 것으로 왜곡되어 기억된다. 이런 그들에게 같은 반 친구였던 교코의 놀라운 성공은 단순히 이야기 거리를 넘어 질투와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한다. 이 소설에 화자로 등장하는 다섯 명의 반 친구들은 교코를 중심으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되돌아본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서술트릭이 자리잡고 있다.

 

학창시절 예뻤고 지금도 예쁘지만 무명의 연극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다 사토미, 친구들에게 남자 한 번 사겨보지 못했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 사토미 사에코, 거짓말로 자신을 치장한 미즈카미 유키, 오랫동안 유키를 짝사랑해온 시마즈 겐타, 지역 방송 아나운서로 활약하고 있는 다카마 교코 등이 이 소설의 화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친구들에게 숨겨왔다. 함께 고등학교를 다녔다는 이유로 친구란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던 추억 속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다. 작가로 바로 이 이야기를 현실과 엮어서 풀어낸다. 그들이 가진 민낯을 하나씩 밝혀낼 때 교코를 통해 이루려고 한 욕망은 산산조각난다.

 

이야기는 졸업 10년 후 반창회에서 화제가 된 교코에서 시작한다. 유명 배우가 된 그녀를 반창회에 불러오자는 것이다.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전해주는 역할을 맡은 것은 사토미다. 그녀의 역할은 간단하다. 만나 소식만 전하면 된다. 하지만 학창시절 그녀보다 더 예뻤다고 자신했던 그녀에게 교코의 풍격은 자신이 지닌 비루함을 더 강하게 느끼게 만든다. 숨겨둔 현재의 비밀이 밖으로 표출되면서 서서로 무너진다. 이야기 첫 주자이자 이 소설에서 교코로 이어지는 사람들이 한 명씩 반창회와 연락을 끊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가장 불쌍한 친구는 사토미 사에코다. 자기 외모의 결점을 잘 생긴 남자로 보충하려 한다. 과거 기억 한 자락은 기에가 자기에게 온 편지를 찢었다는 사실이다. 그것도 자신이 좋아했던 남자로부터. 이후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현재까지 온다. 학창시절 기에의 남친은 잘 생긴 마사키. 하지만 둘은 헤어지고 각각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 그런데 이 마사키가 사에코를 유혹한다. 어린 나이가 아니지만 달콤한 그의 말에 넘어간다. 불안해한다. 불안은 오해로 이어지고, 결국 폭발한다. 그리고 숨겨져 있던 과거의 진실이 밝혀진다. 왜곡되어 있었던 기억은 질투에 의한 것이었을까?

 

이후 다른 친구들의 사연도 이것과 별 다를 바가 없다. 교묘한 서술트릭과 치밀하고 섬세하면서 미묘한 심리묘사를 통해 잔잔하게 이야기를 이끌고 풀어낸다. 도입부에 복선처럼 깔아둔 이야기가 전체 이야기의 흐름을 한 순간에 바꿔버린다. 자신의 틀에서 이해하고 묻어두었던 감정과 삶들이 산산조각난다. 추악한 비밀이 밝혀지고 엄청난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 같은 순간에 약간은 훈훈한 결말을 맞이한다. 교코를 통해 성장한 것이다. 반창회를 떠난 것이 성장의 한 징표처럼 다루어졌지만 사실은 과거의 나쁜 기억을 털어버리고 현재의 나를 찾은 것이다. 그 사이에 아픔이 가끔 자리한다. 섬세한 책읽기가 요구되는 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