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 - 에릭 드루커의 다른만화 시리즈 4
에릭 드루커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화려한 수상 경력과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는 다른만화 시리즈 중 한 권이라 관심이 갔다. 사실 다른만화 시리즈를 읽으면서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다. 아직 읽지 않은 <바시르와 왈츠를>를 언젠가 읽게 되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보면 더 확신이 생긴다. 가볍게 읽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속에 담고 있는 내용이 결코 가볍지 않은 그래픽노블이기에 이번에도 역시 기대를 많이 했다. 그런데 책을 받아 넘겨보면서 당황했다. 단 하나의 지문도 대사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읽어온 만화는 대부분이 일본만화의 영향을 받았거나 일본만화다. 그 덕분에 내용에 상관없이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않는 작품들이 많다. 나중에 그 작품들의 가치를 깨닫고 몇 편 읽기는 했지만 알게 모르게 놓친 작품이 적지 않다. 아마 어릴 때 이 작품을 손에 들었다면 대충 넘겨보고 한 곳에 팽개쳐두었을 것이다. 그림체는 판화 같고, 대사는 없고, 뭔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뭔 이야기인지 정확히 모르지만 이 색다르고 강렬한 그림과 그림으로 전하는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판화 같다고 했는데 사실은 스크래치보드 작업으로 만들어졌다. 판에 잉크를 바른 뒤에 그것을 면도칼로 긁어내는 방식이다. 이 방식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판화 느낌을 준다. 의도된 작업이다. 이 작업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이야기는 날카로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준다. 한 컷 한 컷을 따로 두고 보아도 멋진 작품인데 이야기로 이어진 것을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그 강렬함을 조금은 잊게 된다. 그것은 그림 탓이 아니라 대사와 지문이 없다보니 상상력으로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끝없이 유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상상력이 어느 순간은 확신 부족으로 뭔 뜻인가 고민하게 만들지만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게 도와준다.

모두 세 편의 단편 만화가 실려 있다. <집>, , <대홍수>다. 별도의 작품들이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로 이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착각한다. 아마 비슷한 그림체와 남자 주인공의 행동과 모습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모양이다. 첫 작품 <집>은 한 소년이 아침 무렵 잠에서 깨어나 부모가 성교하는 모습을 보고, 창밖으로 한 노동자가 텔레비전 앞에서 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힘없고 지처보이는 노동자가 방송 시작과 함께 잠에서 깨어 직장으로 향하는데 빠른 발걸음과 더불어 점점 활기차게 변한다. 이 과정을 속도감과 힘찬 동선으로 이어간다. 그런데 도착한 직장은 폐쇄되었다. 이후 그는 처진 어깨를 가지고 집에 온다. 집은 퇴거명령이 떨어진 상태다. 작품 해설에는 직장을 잃은 사람이 집까지 잃게 된다는 것으로 풀어내는데 동의한다. 노숙과 부랑자가 단순히 개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 경제적 문제란 점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곳곳에 상징과 의미를 심어 놓아 아는 만큼 보이게 만들었다. 

은 사실 <집>과 이어진 이야기로 착각하고 읽었다. 지하철로 들어간 한 남자의 기이한 환상과 경험이 다루어지는데 원시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음악과 춤이 이어지고, 자유를 만끽하고, 강한 열정으로 사랑을 나눈다. 그런데 이것이 꿈이다. 현실에서 그를 깨우는 것은 무섭게 생긴 개와 경찰이다. 쓸쓸하게 지하철을 벗어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도 무력하고 처량하다. <대홍수>는 지하철 밖으로 한 남자가 나오면서 시작한다. 제목에서 끊어지지 않았다면 의 그 남자로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것도 염두에 두고 그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남자가 그리는 그림 속에서 이 만화 속 유일한 단어들이 나온다. 한 에스키모 사냥꾼 이야기다. 위에서 세는 빗물을 우산으로 막고 다른 그림을 그리는데 비오는 날 강한 바람에 우산과 함께 날려간 후에 발생한 모험이다. 마천루와 공장을 지난 후 도착한 곳은 놀이동산이다. 그곳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한 곳에서 두 면에 걸쳐 아주 의미심장하고 함축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아트 슈피겔만의 <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를 말한 그 대목이다. 이후 이어지는 시위장면과 대홍수는 또 다른 것들을 생각하게 만든다. 

미국의 뒤틀린 가치관과 뉴욕이라는 대도시에서의 소외라는 주제로 했다지만 나에겐 도시 빈민과 그들의 삶에 더 눈길이 간다. 뉴욕의 마천루와 부랑자나 좀도둑으로 변하는 그를 보면서 현실의 무거움과 무서움을 느낀다. 스크래치보드 작업으로 만들어진 그림과 다양한 장면 구성은 보면서 호흡을 조절하게 만들고, 한 면에 실린 그림을 통해 작가의 의도를 유추한다. 그것이 맞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하는데 이 낯설음을 생각하면 그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하소설이니 마음의 눈이니 아름답다고 하는데 지금 이 순간 고개를 끄덕인다. 컷과 컷 사이에, 컷 그 자체에서 수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충분히 아름답기 때문이다. 혹시 일본만화에 질렸다면 혹은 그림만으로 충분하다면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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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형사 유키히라의 살인 보고서 여형사 유키히라 나츠미의 두뇌게임 시리즈 2
하타 타케히코 지음, 김경인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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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실 일본 드라마 <언페어>의 원작인 <추리소설>에 대한 정보를 듣지 못했다면 그냥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드라마를 보면서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유키히라의 지저분한 집안 모습이다. 시노하라 료코가 맡은 그 역할은 개인적으로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것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그녀의 이미지 때문이지 연기에 불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일본 드라마를 예전부터 즐겨보는 편이지만 왠지 모르게 미스터리 드라마에 가면 흥미를 잃곤 한다. 그렇게 많은 일본 소설을 읽으면서도 말이다. 물론 단편으로 완결되는 작품은 좋아한다. 다만 <언페어> 같이 원작을 10부작 정도를 만들 경우 그렇다.

이야기는 사건에 직접 뛰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한 의사와 소녀와 사신 이야기로 시작한다. 의사는 암에 걸린 환자에게 어떻게 말할까 고민하고, 소녀는 엄마의 두 번째 살인으로 변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사신은 의사 하야카와의 삶과 시간과 죽음을 다룬다. 이 프롤로그를 보면서 이들이 어떤 관계가 있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곧 전작 <추리소설> 후에 벌어진 사건 해결 후 파티를 하는 경시청 수사1과로 돌아오면서 사라진다. 쓸데없이 아름답고 두 번의 살인으로 이름을 전 국민에게 알린 유키히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3개월 된 유아 납치사건이다. 보통 같으면 그녀가 갈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유아 납치사건으로 제정신이 아닌 엄마를 진정시키고 질문을 던지기 위해 그녀가 발탁된 것이다. 물론 현장에 여형사가 있다. 하지만 그 여형사는 신참이다. 파티를 뒤로 하고 유키히라는 현장으로 달려간다. 너무나도 유명해진 그녀의 등장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끌 수밖에 없다. 비록 그것이 예상을 벗어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게 피해 엄마를 만난 그녀의 행동은 매뉴얼을 벗어났다. 그 파격을 통해 그녀는 상대를 흔들고 감정 속에 묻혀 있던 사실 몇 가지를 끄집어낸다.

피해자 가메야마 후유미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연 3백만 엔 수입의 가난한 그녀다. 일반적인 유괴가 돈을 빼앗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면 앞뒤가 맞지 않다. 혹시 가짜는 아닐까? 이런 의혹이 현장에서 생길 무렵 납치범에게 전화가 온다. 이제 본격적인 유아 납치사건으로 변한다. 그런데 이 범인 특이하다. 기존 납치범과 다르게 전혀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고 끊는다. 덕분에 현장의 일은 더 어려워진다. 상황에 변화가 없기에 형사들이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이런 와중에도 유키히라는 움직인다. 전 남편을 찾아가고, 용의자를 하나씩 지워간다. 하지만 그녀가 현장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들키고 만다. 인터넷에 올려지고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프롤로그에 나온 사신과 유아 납치가 과연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고민을 한다.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납치범의 정체가 윤곽을 드러내지만 왜 이렇게 돈이 되지 않는 납치를 할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그녀가 이 사건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 인터넷에 알려진 후 그는 노골적으로 유키히라와의 통화를 원한다. 이어지는 독백으로 범인은 쉽게 짐작이 되지만 아직 분명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읽으면서 어떤 식으로 이 범인에게 다가갈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이 일련의 과정을 작가는 사실 정밀하고 세밀하게 그려내지는 않는다. 빠른 속도로 나아가게 하면서 유키히라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든다.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는 재미있고 빠르게 읽힌다. 유키히라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기존 공식을 깨트리는 동시에 약간은 정형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교과서적인 형사지만 자신의 아이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시간 속에서 점점 낯설어진다.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그녀가 들이는 노력 등과 그녀의 딸을 생각하면 왠지 낯설다. 하지만 바로 이 낯설음이 차가운 가면 뒤에 숨겨진 그녀의 진짜 모습인지도 모른다.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과 이어지고, 새로운 연쇄살인이 드러난다. 이 속에 펼쳐지는 반전은 사실 감탄할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삶의 어두운 부분을 보게 된다. 이 어둠이 각각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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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변호사 - 붉은 집 살인사건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들녘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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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처음 책 표지와 제목과 두 권이 같이 나온 것을 보고 외국 유명 추리소설 번역본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국 추리소설이다. 이전에 발표한 단편을 모은 책이 아니라 장편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된 것이다. 그것도 어둠의 변호사 시리즈로 말이다. 좀처럼 추리소설 시장에서 보기 힘든 출판이다. 이런 상황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 현직 판사가 쓴 본격 미스터리라니 얼마나 매혹적인가! 시리즈는 늘 가능하면 1권부터라는 생각을 가진 내가 첫 권을 뽑아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둠의 변호사 고진은 작가처럼 판사 출신이다. 그가 왜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로 변신했는지 정확하게는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서 그 단서를 살짝 흘려 보여주지만 뭔가 계기가 된 사건은 아직 말하지 않는다. 이것은 시리즈가 이어지면 한 번쯤은 반드시 다루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왜 그가 어둠의 변호사로 불리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이야기 첫 부분에 나온다. 변호사지만 법원에 가지 않고 의뢰인을 만나서 조용하고 은밀하게 해결하기 때문이다. 소송 등으로 사건을 크게 만들거나 남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사건을 처리하는 그의 탁월한 능력은 의뢰인의 입맛에 딱 맞다. 

우면산 언더배기에 의뢰인 남광자의 집이 있다. 이 집의 소유자는 그녀가 아닌 오빠 남성룡이다. 그런데 문패엔 서태황이란 이름도 같이 있다. 약간의 의문을 가지고 들어간 집에서 남광자를 통해 고진은 이 집안의 기이하고 섬뜩한 사연을 듣는다. 그것은 서태황의 아버지 서판곤이 광자의 엄마를 살해한 것과 얼마 전에 서태황의 아내가 살해당한 사건이다. 서판곤은 광자 남매의 의붓아버지다. 그가 아내를 죽인 후 달아났고, 얼마 후 시체로 발견되었다. 이 살인은 광기의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서판곤이 세금 문제 때문에 집 명의를 아내 앞으로 한 것이다. 이 때문에 살인사건 후 서태황이 오히려 남성룡에게 얹혀사는 모양새가 된다. 엄마를 죽인 살인자의 아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비록 그들이 어렸다고 해도 말이다.

광자가 고진을 부른 것은 이 집안의 살인사건을 해결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오빠 남 교수가 암으로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유언을 작성하면서 딸 진희 다음으로 그녀가 아닌 서 누군가를 2순위로 삼은 것이다. 육십이 넘은 그녀가 만약 한 푼도 상속을 받지 못하면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어둠의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통하지 않고 노후를 보장받을 방법을 찾으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고진도 가족 내부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의뢰를 간단하게 마무리하고 나오려는데 남진희가 나타난다. 그는 그녀의 미모에 반하고, 그 집안의 광기와 살인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놓고 이야기는 진행된다. 그는 남진희 때문에 과거 사건을 조사한다. 그의 곁에는 강력계 팀장 이유현이 있으면서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을 도와준다. 하지만 선대의 살인사건은 마무리되었고, 서태황 아내의 살인사건은 그 어떤 용의자도 찾지 못한다. 미궁 속에 빠진 사건을 뒤지면서 관계자와 가족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하는데 이전처럼 특별한 허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이 바로 이 알리바이 부분이다. 작가는 치밀하게 알리바이를 구성해놓고, 고진을 통해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면서 이야기를 회오리 속으로 밀어 넣는다. 한 번 빠지면 그 혼란 속에서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본격적인 사건이 펼쳐지는 것은 남진희의 죽음부터다. 그녀는 부산 달맞이 고개 별장에서 추락해 죽었다. 현장 검증 결과는 추락사의 가능성이 높지만 고진은 그 집안의 광기어린 내력을 생각하면서 타살 가능성을 조사한다. 이번에도 역시 그녀의 죽음으로 득을 볼 사람들의 알리바이를 조사한다. 용의자들은 남 교수와 동생 그리고 서태황 가족이다. 그런데 약간의 허점은 있지만 좀처럼 깨어지지 않는다. 고진은 다시 반복적인 알리바이 조사에 집착하고, 그 허점을 찾는다. 하지만 쉽지 않다. 너무 탄탄하다. 작가는 등장인물과 용의자를 두 집안사람으로 한정시켜 놓고 이야기를 그 속에서 풀어낸다. 

전체적으로 잘 읽히고 몰입하게 만든다. 트릭과 알리바이를 통해 추리하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중간에 갑자기 찾아와 살게 된 노인의 정체가 밝혀진 뒤에도 독자들에게 정확한 추리를 할 수 있는 단서 제공에 인색하다. 인물들의 성격을 약간은 공식처럼 풀어놓았고, 트릭과 알리바이를 조금은 과장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사건을 해결하고 탐정 역인 고진이 사건을 해설하는 부분에서 장광설이 이어지지만 왠지 모르게 쉽게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악의 유전자를 너무 과장한 탓일까? 명탐정처럼 중심에서 사건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면서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이런 아쉬움 속에서 현직 판사의 경력은 세부적인 법률 등에서 힘을 발휘한다. 개인적으로 다음 작품에서 어떤 발전이 있을지 궁금하다. 매력적이면서 약간은 어설픈듯한 이 두 콤비의 활약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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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령들의 귀환 - 1636년 고립된 한 마을에서 벌어진 의문의 연쇄살인사건 꿈꾸는 역사 팩션클럽 3
허수정 지음 / 우원북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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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왕의 밀사>로 눈여겨보았던 허수정의 작품이다. 전작에서 탐정 역을 맡았던 박명준이 다시 등장한다. 이 두 작품 사이에 <제국의 역습>을 포함하면 박명준 시리즈 세 번째 작품이다. 소개 글을 보면 앞으로 이 시리즈 계속 나올 모양이다. 반가운 소식이다. 이번 작품은 지난 작품들과 차이가 있다. 그것은 사건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조선이고, 유명한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설정은 작가의 상상력이 잘 발휘될 수 있게 만들지만 동시에 현실성을 제대로 담지 못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번 소설의 경우 이 둘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을 탄다. 하지만 후자에 더 가깝다.

이야기는 현재에서 시작하여 과거로부터 첫째 날까지 오고, 다시 오늘이 내일로 이어진다. 이 흐름 속에서 박명준과 오카다가 어떻게 만났고, 왜 이 까마귀 가득한 마을로 오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머리 둘 달린 까마귀와 불로장생 전설은 조금 황당한 이야기지만 예전에 까마귀 고기에 정력에 좋다고 거의 씨가 마른 것을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것을 작가가 염두에 두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의 배경 이야기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꿈속에서 여자아이를 보는 것을 시작한다. 그의 아픈 과거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여자아이 도모에다. 눈을 뜬 그가 마주하는 것은 낯선 여자다. 어리둥절하다. 그리고 한 남자가 옆에 있다. 함께 한 동행을 찾는다. 옆에 누워 있다고 한다. 그들은 승냥이 떼에게 쫓길 때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다. 오카다가 떨어지는 그를 감싼 바람에 부상이 적었다. 그들이 만난 것은 불과 열흘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런 친절을 베푼다. 고맙다. 자신들을 구해준 윤성호에게 그를 오촌 아저씨라고 소개한다. 이런 그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대구 감영에서 온 김경덕이다. 

대구 감영에서 그가 온 것은 이 마을 어귀에서 발견된 시체 때문이다. 내장들이 모두 사라진 시체가 그의 시선을 끌었다. 5년 전 머리 둘 달린 까마귀를 찾아온 사람들이 사라졌을 때 그는 이 마을을 조사한 관리다. 그러다 이상한 시체가 발견되자 상사에게 졸라 다시 왔다. 이 이상하고 불길한 마을에 단 한 명의 수하도 대동하지 않고 말이다. 그런 그에게 박명준이 보여주는 행동과 추리력은 반가운 것이다. 이제 그는 명준을 대동하고 이제까지 자신이 찾은 단서들을 돌아보며 조사에 박차를 가한다. 홀로 오면서 생긴 불안감을 들어내기 위해 조금은 무리한 방법을 사용한다. 

시간적 배경은 1693년으로 후금이 조선을 일차 침공한 이후다. 아직 전란의 기운이 남아 있는 시점이다. 대구 팔공산 근처 고립된 마을에서 발견된 시체와 이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은 심상치 않다. 그리고 마을 중심에 위치한 성황당의 위치나 모습이 조선의 것과 달라 어색하다. 마을을 다스리는 인물이 신관이란 것도 낯설다. 여기서 은연중에 일본색을 드러낸다. 김경덕이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신관을 만나자고 했지만 그는 두 달째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마을의 낯선 기운을 파악한 그가 그들을 흔들기 위해 내부에서 협력자를 구하고자 한다. 보부상을 하는 이기성이다. 다시 이어지는 연쇄살인의 시작은 바로 이때부터다.

이중첩자 노릇을 하려고 한 이기성이 신관을 찾아갔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살해당한다. 그 시간에 박명준 등은 망령 같은 일본 무사를 보게 된다. 지독하게 외지인에게 배척적인 마을에서 이런 망령은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다음 날 시체는 발견되고, 김경덕은 자신이 거의 회유했다고 믿은 그의 죽음에 분노한다. 마을 촌장과 마을 조직의 조장 역을 맡은 강태범을 범인의 배후 등으로 몰아간다. 촌장 집에 모여 사건을 조리 있게 추리하던 명준의 말을 증명할 증거가 나온다. 이상하고 낯선 모양새다. 그런데 김경덕이 이 증거를 가지고 너무나도 강하게 강태범을 몰아붙인다. 명준이 말리는 것도 무시하고 말이다. 그러다 또 하나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오기 위한 하나의 시발점일 뿐이다.

작가는 한 마을 속에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켰다. 동생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명준과 동행한 오카다, 그들을 구해준 윤성호와 그의 딸 연화, 대구 감영에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온 김경덕, 그 마을에서 유일한 선비인 장수봉, 무슨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성황당을 지키는 꼽추, 그리고 실질적으로 마을을 지배하는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신관 등이 그들이다. 사건들이 이어지고, 불안감이 고조되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역시 박명준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심에 있는 것은 전쟁으로 고생한 고을 사람들과 그들이 숨기고 있는 비밀이다. 그의 날카롭고 명석한 추리로 하나씩 답을 찾아내지만 역시 사건을 막아내지는 못한다. 이것은 어쩌면 탐정이란 역할이 지닌 한계인지도 모른다. 전작에 비해 약간의 아쉬움이 있지만 이 시리즈 계속해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한국소설에서 보기 드문 탐정을 계속해서 만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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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부크 부인의 초상 샘터 외국소설선 4
제프리 포드 지음, 박슬라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잘 읽힌다. 재미있다. 몸 상태가 거의 최악임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읽었다. 사실 처음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직 한 번도 읽은 적 없는 작가고, 사람을 보지 않고 초상화를 완성하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기 때문이다. 과연 사람을 보지 않고 제대로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생겼다. 이런 저런 의문과 약간의 불안감을 몇 쪽 읽지 않아 날아갔다. 왜 수많은 독자들이 가독성과 재미를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그의 다른 책에 눈길이 간다.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피암보는 부호 리드의 요구에 따라 리드 부인의 초상화를 완성한다. 그런데 이 초상화가 실물과 전혀 닮지 않았다. 리드의 불륜이 들통나자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피암보에게 아내의 초상화를 의뢰한 것이다. 부호 리드의 바람은 성공한 듯 보인다. 하지만 화가 피암보는 돈에 자신의 영혼을 판 기분이다. 이런 때 한 맹인이 찾아온다. 일 년 동안 그림을 그려서 버는 돈보다 많은 액수로 그를 유혹한다. 이 돈을 받으면 그가 바라는 그림을 그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다. 이 한순간의 선택이 그를 혼란과 공포의 시간으로 몰아간다.

맹인 왓킨이 데리고 간 곳은 부자들이 사는 곳이다. 이런 곳에 산다면 약속한 금액을 지불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간 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하나의 병풍이다. 그 병풍 뒤에서 샤르부크 부인이 초상화를 의뢰한다. 거액을 미끼로 말이다. 그런데 조건이 괴이하다. 자신을 보지 않고 초상화를 완성하라는 것이다. 만약 자신과 똑같은 초상화를 그려낸다면 약속한 금액의 두 배를 주겠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녀를 보지 못할 뿐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를 상상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런 그림은 초상화가 아니고 상상에 의한 인물화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는 유혹에 넘어간다.

두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하나는 피암보가 샤르부크 부인을 만나고, 그곳에서 얻은 이미지를 바탕으로 하나의 인물상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 작업이 단순히 상상력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가 존경하는 화가이자 아편 중독자인 셴즈가 곁에서 도와준다. 그는 단지 상상력만 동원할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이야기 속에서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있는 실재적인 기록을 찾으라고 한다. 이 작업은 그녀의 이야기가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고, 그녀가 지닌 미스터리에 한 발 더 다가가게 만든다. 물론 그만큼 위험도 높아지지만 말이다.

다른 하나는 샤르부크 부인의 과거사다. 그녀의 과거는 피암보에게 혼란과 환상을 심어준다. 그녀의 이야기는 창조된 것처럼 느껴지고, 나중에 미스터리를 해결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무녀로서의 능력과 환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라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특히 그녀의 이야기와 피암보 등이 발견한 단서가 만나는 부분에선 또 다른 미궁으로 독자를 몰아간다. 혹시 앞으로 계속해서 이런 미스터리가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피암보와 샤르부크 부인의 만남과 대화가 중요한 축으로 작용한다면 1893년 뉴욕에서 발견되는 피눈물을 흘리는 시체는 추리소설의 재미를 만들어낸다. 독립된 하나의 사건이 아님을 알 수 있기에 과연 누가 이런 살인을 저지르는지와 어떻게 그런 피해자를 만들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거기에 샤르부크 부인의 정체는 무얼까 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혹시 하고 생각한 것은 정답이 아니고, 또 다른 추리는 역시 맞았다. 약간 낯익은 설정이라 쉽게 파악할 수 있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정이 재미를 손상하지는 않는다. 다만 전체적인 완성도에 조그마한 아쉬움을 줄 뿐이다.

작가는 후기에서 엄밀한 의미의 역사소설로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개인적으로 읽으면서 이 사실을 알아서 그런지 한 번도 역사소설로 생각한 적이 없다. 오히려 판타지나 스릴러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이것은 장르를 구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는 동시에 이 작품이 다양한 장르를 품고 있음을 알려준다. 다양한 풍경과 재미를 전해주면서 책읽기에 몰입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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