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욤 뮈소의 두 번째 작품이다. 사실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두 편 있다. 첫 번째 소설과 가장 큰 흥행을 한 세 번째 소설 <구해줘>다. 물론 이 두 권도 가지고 있다. 이 둘을 빨리 읽지 않는 것은 역시 사놓은 책이란 것과 다음에 책읽기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을 위한 저축용이다. 하지만 언제 읽게 될지 모른다. 그렇게 쌓여있는 책이 한두 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책은 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아니 읽게 된다.

초기작이란 점이 사실 가장 마음에 들었다. 최근에 나온 작품들이 조금 매너리즘으로 빠지는 듯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함없는 속도감과 재미를 주지만 반복적인 구성과 전개는 예측 가능한 결말로 다가가는 느낌을 준다. 이것은 예전부터 좋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연속해서 읽다가 마주하는 문제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 초기작을 읽지 않은 경우 오히려 신선함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신선함이 부족하다. 그의 작품 특성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1972년 가을 한 소녀가 호수에 빠지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한 소년이 뛰어든다. 소녀를 구하지만 소년은 죽음의 상태에 이른다. 그리고 시간이 바뀐다. 그 당시 소년 네이선은 성인이 되었다. 그는 그 소녀 말로리와 결혼을 했고, 예쁜 아이를 낳았고, 자신의 일에 너무 빠졌고, 사랑하는 아내와 이혼을 했다. 뉴욕의 성공한 M&A 기업 변호사가 된 네이선에게 이런 과거는 아픔이지만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다. 아니 큰 아픔이지만 일로 이것을 잊고 살아가고자 한다. 이러다 한 의사가 그를 찾아온다. 그가 바로 가렛 굿리치다.

네이선은 그를 처음 본 순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낯설다. 기억 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이 의사의 갑작스런 방문은 성공을 향해 달리던 그의 삶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이렇게 네이선의 삶은 변하고, 신비로우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처음 의사가 나타났을 때 뭐지? 하는 의문이 있었다. 그의 역할이 결코 가볍지 않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에게 자신도 모르게 끌려 다니는 네이선의 행동은 이런 의문을 더욱 부채질한다. 그리고 그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에서 보여준 능력은 그의 존재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게 한다.

굿리치의 능력은 특별하다. 죽을 사람을 미리 아는 것이다. 저승사자의 예지력 같은 것이다. 작가는 이 능력을 메신저라고 부른다. 처음 네이선이 이 능력을 보았을 때 부정하고, 의심하고, 분노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굿리치의 능력은 한정되어 있다. 단지 죽을 사람을 미리 알 뿐이다. 운명 지어진 사람의 삶을 바꿀 정도는 아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찾아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렇다. 자신이 곧 죽는다는 것이다. 여기부터 이 소설은 본격적으로 삶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네이선은 아내 말로리 집안 가정부의 아들이었다. 어린 아내의 생명을 구해주었지만 부유한 그녀의 부모는 딸이 그와 친밀하게 지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사람을 보기보다 그 집안을 더 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결혼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관계는 굉장히 소원하다. 이런 과거는 네이선이 변호사가 되어 성공을 향해서만 달려가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하지만 이런 열정과 욕망이 오히려 사랑하는 아내와 멀어지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거기에 그들의 아들이 유아돌연사로 죽은 후에는 더욱 거리감이 생긴다. 그 후에 다른 환경과 사고 속에서 자란 두 부부는 충돌하고 헤어진다. 

앞에 깔아놓은 이야기만 보아도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펼쳐질지 대충 알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배경을 단숨에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양파 껍질 벗기듯이 하나씩 드러내면서 호기심을 자극한다. 굿리치의 등장, 그의 능력, 사람들의 죽음, 자신의 죽음, 사랑하는 아내, 과거의 사실들, 사건과 사고, 사랑의 회복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이 속도감 있으면서 매끄럽게 흘러간다. 바로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장기를 마음대로 발휘하는데 그 속엔 사랑의 감정과 두려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모두 읽은 후 다시 한 번 역시 기욤 뮈소라고 외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10년, 그들이 왔다 -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 누구인가?
이상각 지음 / 효형출판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대한민국 역사에서 1910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연도다. 그해가 바로 얼마 전까지는 한일합방으로, 지금은 경술국치로 불렸던 해이기 때문이다. 한국사람 유전자에 그 해와 그 당시의 매국노들은 깊이 각인되어 지금도 일본이라면 치를 떨게 만들 정도다. 물론 일부 보수 세력이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고 선동을 하고 바람을 쏟아내지만 현재까지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몇 년 뒤면 어떨까? 일제 치하 35년 동안 사람들 뇌리 속에 뿌리박힌 친일사관과 문화가 현재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냥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서기 1910년, 경술국치, 조선 병탄 시나리오의 일본인이 누군가? 하고 저자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인 21명은 낯익은 인물과 낯선 인물이 교차한다. 학창시절 역사시간에 배운 인물도 깊이가 얕아 이름과 그 놈이 나쁜 놈이다는 것 정도에 그쳤는데 이 책은 그들의 죄상을 차분하게 보여준다. 당시 일본의 시대상과 변화를 같이 그려내면서 그 인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하는데 이 부분이 사실 가장 매력적이다. 물론 이 시각은 한국의 것이라는 한계가 있을지 모르지만 양심적 지식인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내용들이다. 그리고 최근 연구 결과를 통해 새롭게 평가한 부분은 역사가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알려준다.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은 정한을 꿈꾸었던 인물들이고, 다음은 열도의 침략자들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사랑했다고 말해지는 사람들을 다룬다. 이들 개개인의 평가는 시대와 그 나라에 따라 많이 변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제국주의 욕망을 가지고,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진실보다 거짓과 폭력으로 조선을 대했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 입장에서 근대화와 조국 번영에 큰 기여를 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위선과 거짓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바로 이 부분을 지적하고 그들을 평가한다.

21명의 일본인 중에서 두 명이 일본 천황이다. 이것은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천황이 어떤 존재였는지 알려주고, 그들이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여러 국가에 어떤 잘못을 했는지 보여준다. 목적에 의해 신으로 군림했다가 패전으로 인간임을 선언하고 목숨과 자리를 보전한 그들을 보면 맹신과 우상에 휘둘린 일본 국민이 불쌍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그 속엔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아시아인들의 피눈물과 죽음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731부대와 관련한 최근 연구 결과는 히로히토의 거짓과 위선을 낱낱이 벗겨버린다. 이 사실이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의문이지만 말이다.

첫 다섯 명은 일본이 조선을 정복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그 중심인물들이 누군지 보여준다. 그중 ‘식민은 문명의 전파’라고 외친 니토베 이나조의 말은 최근 친일세력의 주장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두려움마저 느끼게 만든다. 그 유명한 이토 히로부미를 지나 명성황후 제거의 선봉에 선 이노우에 가오루를 만나게 되면 그 당시의 살인자들이 단순한 야쿠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강제 병탄 후 역사를 왜곡하고, 국민성을 무시하고 굴절시키면서 그들이 노렸던 바를 현재의 우리 모습에서 만나게 될 때 친일 세력을 완전히 뿌리 뽑지 못한 역사의 아픔이 머리와 가슴을 아리게 한다.

마지막 장에서 다룬 한국을 사랑했다고 알려진 사람들에 대한 분석은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조선 문화에 심취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연구들이 오히려 문화 통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에선 그가 이룩한 업적들의 이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독교란 틀 속에서 조선의 구원을 찾으라고 외친 우치무라 간조의 주장은 그가 사랑했던 일본과 예수란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또 다른 방식의 통치에 대한 옹호임을 말해준다. 그 후 만나게 되는 박연의 연인 가네코 후미코와 후세 다쓰지 변호사와 아사카와 다쿠미 등의 열정과 인본주의는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하고 깊은 감동을 준다. 동시에 전후 반일감정과 반공산주의에 의해 그들의 업적이 폄하되고 무덤이 훼손된 것에선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 책은 조선 병탄 시나리오를 다루지만 똑같이 우리에게 우린 과연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공정하고 인간적으로 대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마 대부분 아니라고 할 것 같다. 이 땅에 온 수많은 이민자와 산업연수생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역사를 읽고 공부하는 이유가 그 시대를 통해 현실을 알고 개선하기 위한 것임을 생각하면 그 사유의 장을 현실의 우리에게 확장하는 것도 좋은 경험과 공부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망령을 제대로 알고 그것을 지우는 것이 일차적인 목적이겠지만 우리의 현재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도 중요한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용헌의 동양학 강의 1 - 인사편
조용헌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5월
평점 :
품절


학창시절 무협과 홍콩 영화에 미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강호란 단어는 너무나도 친숙하고 반갑다. 그가 말하는 강호동양학이 강단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을 풍찬노숙하면서 얻은 것이라 그런지 어느 순간에는 한편의 구수한 옛날이야기 같은 때도 있다. 서문에 썼듯이 그의 강호동양학은 8할은 강호에서, 2할은 강단에서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런 다양한 삶의 만남과 경험은 그의 글 곳곳에 스며들어 있고, 이야기 하나하나가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현재 <조선일보>에 연재 중인 인기 칼럼 ‘조용헌 살롱’을 1권 인사편, 2권 천문편으로 나누어 새롭게 펴낸 책이다. 신문에 연재된 것이다 보니 각 이야기의 분량이 제한되어 있다. 결코 두 쪽을 넘지 않고, 이야기는 간결하게 진행되고 마무리된다. 긴 호흡으로 깊은 생각을 하면서 읽기에는 조금 부족하지만 스스로 채담가라고 한 것을 생각하면 알맞은 선택이다. 긴 세월을 연재한 탓인지 시대의 상황과 맞는 이야기도 많아 기억을 되살려 보는 기회를 가지기도 한다. 부담 없이 가볍게 읽을 수 있고, 과외로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인사편은 인물, 사회, 문화, 문명으로 나누고, 천문편은 자연, 천문, 종교, 인문으로 구분한다. 각장을 작은 범주로 나누고, 그 밑에 다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낸다. 신문 연재 당시 글들을 그 내용에 따라 묶어서 구분한 것이다. 이 구성을 보면 그가 가진 관심과 지식의 영역이 얼마나 폭넓은 지 알 수 있다. 단순히 폭만 넓은 것이 아니라 내공 또한 상당히 깊다. 배움을 위해 그가 경험한 일들이 곳곳에 나오는데 부럽고 대단함을 느끼게 된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다보니 이전에 그의 다른 책에서 이미 만난 것도 많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른 책에서 좀더 세부적으로 다룬 이야기가 이 책에선 간략하게 말해지고 있다. 긴 세월을 연재한 탓인지 하나의 이야기가 다시 말해지는 경우도 있다. 아마 이것은 그가 글을 쓰던 당시 사회 분위기나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 그의 경험이 아무리 다양하고 깊을지라도 모든 것을 기억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살짝 아쉽다. 어쩌면 그의 폭넓은 지식에 대한 조그마한 질투인지도 모르겠다.

만약 이 책의 제목에서 말한 동양학을 유교, 불교, 노장사상 등을 하나의 흐름이나 학문적으로 다룬 것으로 기대했다면 잘못된 선택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문칼럼의 한계 속에서 편집된 책이다. 그런데도 이런 제목을 붙인 것은 그의 동양학이 강호란 수식어를 앞에 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학 사전처럼 쉽고 간편하게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는데 짧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지만 깊은 학문의 세계로 인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미는 있다. 그리고 알아야 하는 것은 그의 강호학에 바탕이 되는 것이 정통 동양학의 외양을 띄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가 주장하는 강호동양학에 대한 어렴풋한 그림자를 볼 수 있었지만 실체를 그대로 얻는 것에는 실패했다. 재미있고, 잠시 생각에 잠기고, 다른 시각에서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게 되지만 역시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전체를 엮어서 풀어내고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만약 풍수지리, 주역 등에 관심이 많다면 저자의 깊이 있는 해석과 단상으로 많은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리진이 되라 -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
강신장 지음 / 쌤앤파커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처음 저자 이름을 보았을 때 sbs 프로그램 중 하나인 <강심장>이 생각났다. 어쩌다 케이블에서 조금 볼 뿐인 프로그램인데 이름이 유사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런 생각을 한 것이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은 나의 집중력과 관찰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인간이 가진 묘한 심리작용 때문이다. 거기에 자기계발서나 비즈니스 관련 서적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취향을 덧붙이면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다. 아마 그 이유를 말하라면 ‘운명을 바꾸는 창조의 기술’이란 문구에 혹한 탓일 것이다.

먼저 서문을 읽으면서 ‘오리진’을 “스스로 처음인 자, 게임의 룰을 정하는 자, 새 판을 짜는 자, 원조가 되는 자, 그리하여 세상을 지배하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하는 자”(12쪽)라고 할 때 고개를 끄덕이면서 드라마 <공부의 신> 원작인 일본만화 <꼴지, 동경대 가다!>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거기에서 동경대를 가야하는 이유 중 하나로 게임의 룰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보아 넘길 수 있는 대목이지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삶의 주인이 되느냐, 아니면 평범하거나 지지부진한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기준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두 열 개의 장으로 나누어 오리진이 되는 방법을 설명한다. High Love, High Pain & Joy, High Time & Place, High Mix, High Concept, High Tough, High Soul, High Story, High Slow, High Action 등이다. High란 공통 단어를 제외하면 각 장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핵심 단어만 남는다. 하지만 여기에 High란 단어를 붙인 데는 이유가 있다. 단순한 강조를 위한 것도 조금 있지만 그 핵심 단어를 기존의 것과 확연히 구분하기 위해서다. 그 예로 Love와 High Love의 차이를 ‘애절함’의 차이로 본 것이다. 

사랑. 참 많이 나온다. 일에 대한 사랑은 너무 진부하다. 그런데 애절함을 넣으면서 분위기는 바뀐다. 견디기 어렵도록 애가 타는 마음이 남들은 보지 못한 것들이 보이게 하고, 나만의 오리진을 만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마수걸이일 뿐이다. 그 다음 단계로 창조를 만드는 두 가지 원천으로 ‘아픔을 들여다보는 힘’과 ‘기쁨을 보태는 힘’을 꼽는다. 여기서 아픔은 외로움, 그리움, 슬픔, 불편함, 번거로움, 진짜 아픔을 모두 포괄한다. 그리고 기쁨은 즐겁고, 재미있고, 편리하고, 아름답고, 웃기는 등을 말한다. 확장된 단어 속에 담긴 뜻을 보는 순간 이 힘의 의미를 쉽게 깨닫게 된다.

저자의 이야기는 더 나아가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라고 말하고, 기존의 것을 뒤집고 섞어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 컨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하이터치를 ‘내가 먼저 주는 것’으로 정의한다. 그러면서 먼저 주어야 할 것으로 웃음, 재미 그리고 약간의 야함과 역발상, 인간관계의 미묘한 감정을 풀어주는 것들, 공감하고 행동할 의미와 명분, 꿈과 판타지 등을 꼽는다. 영감을 다룬 이야기 속에서 줄탁동시의 고사를 인용한 부분을 읽으면서 새롭게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다.

하이소울의 키워드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역시 ‘그까이꺼!’다. 한때 개콘의 유행어였던 것인데 ‘모든 불가능은 상상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신념!’(193쪽)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기존의 것을 확 뒤집어엎는, 기존 가치를 전복하는 대단한 상상력을 꺼내는 정신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울의 높이가 상상력의 높이를 결정한다고 한 부분에서 나의 높이는 어디에 있을까 의문이 생겼다. 이야기의 힘을 말하는 대목에선 최고의 이야기꾼으로 뱀장수를 꼽았는데 어릴 때 그들의 이야기에 폭 빠진 경험이 있기에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마지막으로 느림을 선택했는데 이 속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가족, 내면 혹은 정신, 자연, 격의 없음, 작은 것, 인간미, 검약과 절제 등이다. 속도에 매몰되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가치관들을 되살렸다.

마지막 장에서 아홉 영감을 다시 구분하고 연결시키면서 마무리한다. 그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역시 몰입과 집중력이다. 이런 바탕이 없다면 그것은 모래 위에 세워진 성과 같다. 그리고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도 창조에 대한 열망만 있다면 누구나 오리진이 될 수 있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벤자민 프랭클린의 “어떤 사람들은 25세에 이미 죽어버리는데 장례식은 75세에 치른다”(261쪽) 말에선 나는 장례식만 기다리는 존재가 아닌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단숨에 읽었지만 저자의 바람처럼 곁에 두고 가끔씩 차분히 읽는다면 오리진의 길을 찾는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무스 1 - 원숭이탑의 어릿광대
릴리 탈 지음, 문항심 옮김 / 양철북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먼저 표지가 시선을 끌었다. 책 소개를 보니 왕자가 적국의 광대가 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광대 미무스, 그가 왕자란 말인가? 아니면 다른 인물이 있나? 소개 글에 나온 내용을 보면 너무나도 매력적인 인물이다. 이렇게 표지와 광대 미무스에 빠져 읽기 시작했다. 그리곤 단숨에 빠졌다. 2권을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와 결말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광대들의 활약에 푹 빠졌다.

오랜 세월 다투었던 두 왕국이 화해를 맺기로 한다. 빈란트의 왕 테오도가 교활한 계략을 꾸민 것이다. 몽필 왕국의 필립 왕을 초대하고, 다시 배신자를 이용해 플로린 왕자마저 결혼으로 가장해 사로잡는다. 왕과 대신들은 지하 감옥 속으로 들어가고, 왕자는 미무스라는 광대의 제자로 보내진다. 이 시대의 광대는 그 누구도 사람 취급하지 않는 존재다. 그는 재주를 보여주고, 왕이 던져주는 조그마한 호의에 기대어 살아간다. 가장 높은 곳에 있던 플로린 왕자는 이제 가장 낮은 것으로 굴러 떨어진 것이다. 그것도 열두 살의 어린 왕자가 말이다.

왕자 플로린에서 꼬마광대 플로린으로 바뀌면서 이야기는 변한다. 왕실의 예절이나 격식은 사라지고, 광대가 익혀야 할 기예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그가 광대로 전락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부왕이 잡힌 모습을 보고 분노하고, 미무스와 말꼬리 잡기를 하며 뛰어난 실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단순히 이 실력만으로 테오도 왕이 그를 광대로 만든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광대가 가장 낮은 취급을 받고, 남을 웃기기 위해 자신을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필립 왕에게 복수를 꿈꾸는 그에게 이 일은 정말 딱 맞는 탁월한 선택이다. 

한 나라의 왕자가 광대에게 맡겨졌다고 해도 금방 변하기는 무리다. 당나귀 귀와 방울을 달고 우스꽝스러운 외모로 움직여야 하는 역할에 만족할 리가 없다.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고, 왕과 대신들을 구하려는 의지는 가득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열두 살의 어린 광대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발에는 족쇄가 채워져 있고, 좁쌀죽은 양도 부족하여 늘 배가 고프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그에게 도망갈 기회가 생긴다. 당연히 함정이다. 테오도 왕은 그가 도망가면 지하 감옥에 있는 부왕과 대신이 어떤 무시무시한 일을 당할지 모른다고 협박한다. 이후 그의 활동 영역은 성을 결코 벗어나지 못한다. 

소설은 광대로 전락한 왕자 플로린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배고픔과 현실 앞에 광대의 기예를 연마하고, 가슴 한 곳에 왕자의 긍지를 가지고 산다. 하지만 현실은 점점 더 그로 하여금 광대로 살아가게 만든다. 하나 둘 씩 기예를 연마하고, 배고픔에 자기도 모르게 원수인 테오도 왕이 던져준 음식에 몸이 움직인다. 스승인 광대 미무스의 노력에 의해 조금씩 실력이 나아지지만 왕자의 정체성을 완전히 잃을 정도는 아니다. 그렇지만 미무스의 도움이 없다면 그의 목숨은 파리 목숨보다 더 쉽게 날아갈 수 있다. 현실을 마주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면서 왕자 플로린은 성장한다.

광대 미무스. 그는 대단하다. 웃음 뒤에 어떤 슬픔이 숨겨져 있는지 모르지만 뛰어난 재주와 신랄한 풍자와 해학으로 분위기를 이끌어간다. 플로린이 왕자에서 광대로 변하게 돕는 것도 그의 생존을 위한 것이다. 특히 왕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간 곳에서 그가 보여주는 탁월한 연기와 풍자와 해학은 그 시대의 부패상과 삶의 단면을 아주 잘 드러내 보여준다. 그 자신이 풍자의 한계선을 결코 넘지 않으면서 좌중을 휘어잡고, 웃음으로 인도하는 장면은 정말 대단하다. 특히 마지막에 보여준 일생일대의 연기는 결코 평범한 광대가 펼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소년의 성장 속에 시대의 모순과 부패를 풍자해서 같이 보여준다. 처음에 테오도 왕의 계략에 빠진 필립 왕의 행동에 약간 의문이 생겼지만 뒤로 가면서 단순히 하나의 설정으로 다가온다. 왕자 플로린에서 광대로 변하고, 그 속에서 성장하고, 친구를 만나고, 광대로 살아가고, 고민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빠르게 전개되면서도 재미있다. 큰 기대가 없었던 탓인지는 모르지만 속도감 있고, 즐겁고,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다른 책을 검색하니 절판이다. 조금 아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