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신화 작가의 발견 4
김보영 지음 / 행복한책읽기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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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김보영을 처음 만난 것은 <누군가를 만났어>란 작품집을 통해서였다. 당시 한국 sf문학에 큰 기대를 가지고 있지 않던 나에게 이 작품집은 큰 충격을 주었다. 예상하지 못한 재미와 수준 높은 구성과 전개를 펼쳐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 후 이 작품집에 이름을 올린 세 사람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많은 작품들이 나오지 않거나 앤솔로지 중심의 단편만 나오면서 아쉬움을 주었다. 그러다가 특히 많은 관심을 두었던 배명훈의 장편이 나왔고, 이번엔 김보영의 단편들이 두 권으로 묶여 출간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두 권으로 묶인 책 중에서 첫 권은 앞의 몇 편을 제외하면 이미 <누군가를 만났어>에 실린 작품이다. 아직 읽지 못한 초기작 몇 편이 나를 유혹하는데 차후 읽을 예정이다. 이번 중단편선은 sf와 판타지의 교차점에 있는 작품들이 많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그녀의 작품 중에서 하드sf가 준 재미가 무척 강렬했던 것을 생각하면 좀 의외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그녀만의 특성들이 묻어나고,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면서 풀어내는 이야기들이 나도 모르게 그 상황과 설정에 집중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단편들은 앞의 세 작품이다. <진화신화>는 <삼국사기> 중 고구려본기 제6대 태조대왕 실록에서 발췌한 사실 몇 개에서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은 작가의 상상력을 거치면서 진화한다. 이 진화는 종의 진화로 이어지면서 가속화되고, 민초의 아픔과 지배자의 탐욕이 맞물리면서 역사는 새로운 길로 들어간다. <땅 밑에>는 하강자라는 존재를 통해 지하 탐험이 이어지고, 그 깊고 끝을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도전과 탐험은 긴장감을 불러온다. 결말에 이르러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펼쳐진다. 작가는 하강자를 산악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데 개인적으로 이 단편을 읽으면서 동굴탐험가들이 연상되었다. 

<지구의 하늘에는 별이 빛나고 있다>는 이전에 읽은 해외걸작 sf단편선 중 한 편이 연상된다. 그 작품과 달리 이번 작품에선 제목인 문장을 통해 상상력이 펼쳐지고, 한 특수기면증 환자의 편지를 통해 그 세계를 그려낸다. 밤도 없고, 잠도 없는 세계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병인 그 행성에서 2만 5천 광년을 넘어온 문장이 자신의 병을 새롭게 돌아보고, 다른 문화와 환경이 빚어내는 현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몽중몽>은 <스크립터>와 더불어 가장 어렵게 읽었다. 이 두 작품은 인간, 존재, 추상적 관념 등이 뒤섞여 있는데 충분히 집중하지 못해서인지 그 재미를 완전하게 누리지 못했다. 꿈이 이어지고, 깨고, 이어지는 과정 속에서 그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나 게임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존재를 가상현실과 실제 현실에서 어떻게 해석해야할지 어려움을 겪었다. 

<거울애>는 거울의 이미지를 사람을 통해 표현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한 소녀 소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인데 섬뜩한 느낌을 준다. 동시에 나의 감정이 만약 다른 사람의 행동으로 나타난다면 어떤 느낌일까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0과 1사이>는 누구나 겪게 되는 학창시절을 둘러싼 이야기인데 현실에 대한 풍자적 모습이 강하게 담겨 있다. 양자역학과 시간여행기를 통해 그려지는 미래 속의 현실은 현실의 그림자이자 가능성이 사라진 동시에 열린 시간이다. 하지만 어릴 때 경험했던 일들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마지막 늑대>는 먼 미래 이야기다. 용이 세상을 지배하고, 사람을 애완동물처럼 키운다. 이 애완동물 중 한 명이 늑대로 불리는 저항세력을 찾아오는 과정과 이유를 보여주는데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실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사실과 큰 차이를 보인다. 개인적으로 그 소녀의 성장을 다루면서 미래의 변화를 담은 장편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노인과 소년>은 한편의 우화를 읽는 느낌을 준다. 자기 확신과 강력한 의지와 뚜렷한 목적의식이 어떤 의미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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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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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속도감으로 읽히고, 몰입하게 만든다. 프랑스에서 더 인기 있다는 말에 살짝 더딘 속도로 읽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완전히 기우였다. 세 장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속에서 변신할 수밖에 없는 벤의 상황은 각각 다른 느낌과 재미를 준다. 성공한 월가의 상속 변호사에서 살인자로, 살인자에서 죽은 사람으로, 자신이 죽인 인물로 살아가면서 우연히 성공한 사진작가로 변신하는데 이 과정들이 세밀하고, 그 상황과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다. 

벤은 월가의 성공한 상속 변호사다. 하지만 그의 꿈은 사진작가다. 젊은 시절 잠시 사진작가를 꿈꾸며 살아보지만 실패한다. 꿈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아버지가 제시한 현실에 안주한다.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들을 가진 중류층 이상의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삶이 풍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아내 베시는 작가의 꿈을 꾸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가정주부에 머문다. 자신의 삶이 변한 것을 남편 탓으로 돌리지만 그녀 또한 벤처럼 이상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안주한 것이다. 

벤의 삶도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베시의 삶은 더욱 그렇다. 안정적이고 화목해 보이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그 이면은 남과 다를 바가 없다. 아내와의 화해를 바라지만 이미 틀어진 베시가 그를 계속 무시하고 냉대한다. 이상한 낌새를 발견한다.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 잠시의 불륜이 아니다. 분노가 치솟지만 이성으로 억누른다. 하지만 술은 이성을 잃게 만들고, 그 때문에 아내는 더욱 멀어진다. 거기에 불륜상대가 그를 자극한다. 이미 자신을 잃고, 격해있던 그는 우발적으로 살인한다. 이 첫 장에서 작가는 한 중산층 남자와 가정의 허상을 벗겨내고, 인간이 지닌 나약한 심성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 장으로 가면 한 편의 스릴러 같다. 그가 죽인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마저 사라지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자세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 자신의 죽음을 포장하기 위한 노력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분명 살인자가 분명한데 왠지 모르게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그의 도망이 성공하길 바란다. 자신이 살인자로 잡히고, 아이들이 살인자의 아이로 남게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의 행동과 대처는 냉정하고 치밀하다. 다른 사람으로 서류상 변했다고 하지만 그 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 장은 사실 가장 흡입력이 강하다. 불안한 도주 속에 잠시 머문 마을에서 찍은 사진 때문에 호평을 받고,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이 만남이 화재 현장을 마주하게 하고, 멋진 현장 사진을 찍게 한다. 젊은 시절 그렇게 갈망하던 성공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는 이미 벤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은 새로운 삶도 과거의 삶도 모두 변한다는 의미다. 꿈꾸던 성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그가 살인을 하고, 자신을 버리던 순간 예정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아주 멋진 사진을 찍게 된 계기도 자신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 부조리한 현실은 뒤틀린 삶의 한 단면을 잘 표현해준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 지우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떨 때는 분명히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변신이 알려졌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혹은 그의 잘못을 아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또 어떨까? 변신이 즐거움으로 가기 위해서는 짧아야 하고, 그 순간들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벤은 그 순간들을 즐길 수 없다. 이 상황의 변화를 작가는 기발하면서도 빠르고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밖으로 드러난 일상 그 뒤에 숨겨진 삶의 진짜 모습을 포착하는데 이것은 좋은 사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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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7-0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합니다.
 
최악의 외계인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26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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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단편집은 사실 지난 번 단편집보다 가슴에 와 닿는 느낌이 덜하다. 그가 늘 보여주는 기발하고 황당한 이야기 뒤에 숨겨진 블랙유머가 잔혹함에 가려지거나 겉도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취향이 달라 그런 점도 어느 정도 있겠지만 강한 몰입으로 끌고 가는 단편이 많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어쩌면 첫 느낌의 강력함이 지워지면서 더 많은 기대를 한 탓인지도 모르지만 이 일곱 편의 단편이 충분하게 만족시켜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역시 평균 이상의 재미는 보장하는 작가다.

<기울어진 세계>는 그 세계만 기울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도 같이 기울어져 있다. 그 도시가 기울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알리려고 하지 않는 시장이나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은 현실 속에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다. 현실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부족하고 잘못을 인정할 줄 모르는 시장과 그 추종자들 모습이 지금의 한국 모습과 겹쳐 보인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에선 그 느낌이 완전히 전달되지 않는다. 

<최악의 외계인>은 역시 정치인에 대한 강한 풍자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외계인은 더 황당하다. 이 황당함이 전체적으로 완전히 녹아들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이해 부족인지는 모르지만 충분한 재미를 누리지 못했다. <꿈틀꿈틀 장관>은 해프닝의 연속인데 웃음의 포인트를 정확히 찾기가 힘들다. <고로하치 항공>은 일단 재미있다. 짧은 단편 속에 캐릭터가 살아있고, 황당한 조종사와 마을 사람들 대화 속에 유머가 살아있다. 쌍발비행기 기름을 넣기 위해 도로 위에 착륙시키고, 상대방이 피하길 바라는 그녀를 보면서 무대포 정신의 위험과 즐거움을 동시에 누린다.

언어에 대한 불신 탓인가 아니면 일본에서 흔히 말하는 겉마음과 속마음 차이를 표현한 것인지 모르지만 <관절화법>은 장면들을 상상하는 재미가 있다. 지구 대사가 된 개인간의 처절한 관절화법은 엉덩이로 이름쓰기의 업그레이드 버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늘을 나는 표구사>는 현재의 항공사고와 과거 일본에서 하늘을 날기 원했던 고키치를 연관시켜 약간은 평범하게 이야기를 전개한다. 하지만 마지막 문장에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앞의 이야기를 새롭게 보게 만든다.

가장 인상적이면서 잔혹했던 <이판사판 인질극>은 처음의 기발함이 엽기적인 장면으로 흐르면서 아쉬움을 준다. 아내와 아이가 재혼하려는 아내를 보기 위한 인질에게 잡혔고, 이를 구하려는 남편을 경찰이 무시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그 인질의 아내와 아들을 인질로 잡아 대치하는 이야기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해 그 가족을 구하겠구나 하는 추측은 엽기적인 장면들로 마무리되는데 그 기발한 발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점이 아쉽다. 엽기 속에 사람들의 극단으로 치닫는 심리와 그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사람들을 잘 보여주었지만 그 한계선을 넘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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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인형 모중석 스릴러 클럽 23
제프리 디버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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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링컨 라임 시리즈 중 <콜드 문>을 읽지 않았다. 이 작품 속에 잠시 캐트린 댄스가 등장한 모양인데 재미있는 것은 이번 소설에 링컨 라임이 잠시 등장하는 것이다. 이 순간의 만남을 보면서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 중 한 편이 생각났다. 이런 주인공들의 만남은 왠지 모르게 사람을 들뜨고 즐겁게 만든다.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영웅들을 모아서 한 편의 이야기를 만드는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만나면 이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구성과 설정을 잘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다. 공간은 캘리포니아다. 맨슨의 아들로 불리는 다니엘 펠의 새로운 사건이 드러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수퍼 감옥에 수감된 그를 심문하기 위해 걸어다니는 거짓말 탐지기로 불리는 캐트린 댄스가 온다. 감옥 속에서 치열한 심리전을 펼치면서 이 둘은 대결한다. 펠은 살인범들이 흔히 하는 가족 문제로 협박을 하고, 감옥에 갇힌 그를 생각하며 댄스는 조금은 안심한다. 심문을 끝낸 후 조금 찜찜한 구석이 있다. 사건을 다시 검토하는데 이상한 것이 보인다. 그가 수감된 시기와 살인도구가 발견된 시간이 맞지 않다. 감옥에 전화를 해서 이상함을 알리려는 순간 감옥은 불탄다. 사람을 죽이는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펠은 간수들을 죽이고, 그를 사로잡으려고 했던 형사마저 화염 속으로 밀어 넣고 탈출한다. 이제 펠과 경찰들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연쇄살인사건이 발생한다.

기본 구성은 댄스와 펠의 대결이다. 펠은 외부에서 제니의 도움을 받아 탈출을 하지만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움직일 때마다 조금 늦게 혹은 적시에 댄스가 나타나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댄스가 펠을 쉽게 사로잡는 것도 아니다. 이 둘의 추격전은 긴장감을 불러오는 동시에 다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하고 기대감을 고조시킨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펠의 능력과 위협은 일반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고, 댄스의 다음 대처가 어떻게 펼쳐질까 기대하게 만든다. 지배하려는 자와 거짓말 탐지기의 대결은 심리적으로 강한 긴장을 유지하고, 빠른 속도감은 강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잠자는 인형이란 바로 펠의 가족 살인사건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소녀에 대한 별명이다. 사실 책을 읽기 전 이 소녀가 펠의 탈옥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펠의 관심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가 꿈꾸는 패밀리는 검사 등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르다. 이런 착오가 그의 행적을 뒤좇는데 어려움을 제공한다. 그를 도와주는 제니의 정체가 쉽게 파악되지 않음으로서 더욱 어렵다. 특히 펠과 제니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면서도 긴장감을 계속 유지하게 만든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관계가 아직 완전하게 굳어진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다. 

댄스와 펠은 모두 동작을 통해 사람의 심리를 파악한다. 한 명은 분석하기 위해서, 다른 한 명은 지배하기 위해서다. 이 둘의 이런 분석은 단순히 동작만을 기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을 둘러싼 정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단순히 정보만 주어진다고 이런 일이 가능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을 테지만 그 정보를 제대로 읽고 분석하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그래서 둘의 능력은 돋보이고, 대결은 긴장감을 불러온다. 잡히지 않기 위해서, 혹은 가족이나 다른 사람들이 피해자로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말이다.

링컨 라임 시리즈와는 달리 증거물을 분석하면서 살인자를 좇기보다 그 사람의 정보를 통해 심리를 분석하고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낸다. 이것은 가끔 프로파일러가 정보와 감정이입 등을 통해 살인자로 순간 변신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댄스가 만나는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계속 분석하게 만든다. 이런 심리묘사는 디버의 특징인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반전과 더불어 깊게 몰입하게 만든다. 진실이라고 믿었던 사실 속에 숨겨진 거짓은 언제나 멋진 반전의 소재가 되고, 빠르게 읽히는 재미와 속도감은 역시 디버란 찬사를 보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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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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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열 개의 강의를 통해서 정의에 대해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정의를 이리저리 뒤집고, 세 가지 항목에 초점을 맞춘다. 행복 극대화, 자유 존중, 미덕 추구이다. 이 셋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면서 정의가 무엇인지 말한다. 피상적으로 생각하던 정의가 이렇게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공리주의, 자유주의 등의 각각 다른 시선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기존 인식을 뒤흔든다. 이 흔들림이 즐겁고 유익하다.

첫 장부터 그는 묻는다. 옳은 일하기에 대해서 말이다. 2004년 미국 플로리다에 허리케인이 덮치고, 많은 사람이 죽고 엄청난 금전적 손실이 발생했다. 이후 가격폭리 논쟁이 발생했는데 평소 2달러 얼음주머니가 10달러에 팔리고, 건설업자는 지붕을 덮친 두 그루의 나무를 치우는데 2만 3천 달러를 요구했다. 이런 엄청난 가격폭리는 결국 논쟁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리고 상이군인을 둘러싼 논쟁도 소개하는데 그것은 어느 정도 상처를 입어야 상이군인으로 등록되는가 하는 문제다. 최근 많아지고 있는 정신이상을 제외하고 있는 현실에 의문을 던진다. 마지막 사례로 선택에 따라 한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여러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을 설정하고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질문한다. 

보통 나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쉽게 대답할 것이다. 가격폭리는 너무 심하고, 정신이상도 상이군인으로 등록되어야 하며, 한 사람의 목숨과 몇 사람의 목숨의 무게는 똑같다고 말이다. 이런 대답이 쉽게 나오는 것은 공식처럼 배운 바를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하나씩 반박 논리를 제시한다면 쉽게 그것을 다시 반박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논리가 일관성을 가지고 다른 사례에서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서 사실 자신할 수 없다. 그것은 아직 나에게 정확한 철학이 정립되지 않았고, 정치적 이해도 같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옳은 일하기를 지나면 그 유명한 벤담의 공리주의를 살펴본다. 그것을 반박하면서 자유지상주의를 논쟁의 대상으로 삼고, 오랜 세월 동안 논쟁의 대상이 되어온 징집과 고용이란 문제를 펼친다. 사실 한국의 상황에서 이 문제는 정말 민감하다. 하지만 미국 역사에서 만나게 되는 새로운 사실들은 인식의 폭을 우리에게까지 확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었다. 그리고 대리출산을 둘러싼 법해석과 논쟁은 새로운 시대의 변화와 문제를 그대로 보여준다. 모성이 사라지고 단순히 아이를 낳기 위한 살아있는 기계처럼 된 인도 여성들의 현실은 경악스럽다.

한때 너무나도 어렵게 읽은 칸트를 다시 만나면서 쉬운 몇 가지는 이해가 되었지만 역시 어렵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존 놀스의 평등 옹호를 만나게 되면서 나 자신의 입장을 다시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역사 속에서 현재의 나의 위치와 입장을 풀어낸 해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고, 몇 가지 이론적인 허점으로 답을 내지 못한 것을 해결하게 만들었다. 이 책의 저자가 존 놀스의 정의론을 비판해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는 대목은 저자의 다른 책에 관심을 가지게 만든다.

소수집단우대정책과 선조들의 잘못에 대한 사죄와 배상 문제는 매킨타이어의 “‘나는 사회적, 역사적 역할과 지위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이다.”(312쪽)란 말에서 왜 이것이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이것은 저자의 주장과 가장 가까운 입장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여기엔 행복을 극대화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미덕을 추구하는 등의 여러 개념과 엮여 있다. 그리고 정의를 올바른 분배만의 문제가 아니라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라고 한 대목에선 다시 올바른 가치 측정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저자가 이를 해결하는 하나의 방안으로 공동선을 추구하는 새로운 정치를 제시한다. 독자에게 또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읽었던 정의를 복기하게 만든다. 

정의에 대한 질문과 의문을 번갈아 가면서 정의를 파헤치는데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게 한다. 가볍게 읽기는 조금 힘들지만 읽으면서 혹은 읽고 난 후 얻는 소득은 크다. 현실에서 실제 부딪히는 문제들을 다루고 있기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의를 편협하게 해석하려는 현실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정의에 대한 물음에 답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물음에 대한 사고만으로 성장하게 만든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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