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대단한 속도감으로 읽히고, 몰입하게 만든다. 프랑스에서 더 인기 있다는 말에 살짝 더딘 속도로 읽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완전히 기우였다. 세 장으로 나누어진 이야기 속에서 변신할 수밖에 없는 벤의 상황은 각각 다른 느낌과 재미를 준다. 성공한 월가의 상속 변호사에서 살인자로, 살인자에서 죽은 사람으로, 자신이 죽인 인물로 살아가면서 우연히 성공한 사진작가로 변신하는데 이 과정들이 세밀하고, 그 상황과 분위기를 잘 연출하고 있다. 

벤은 월가의 성공한 상속 변호사다. 하지만 그의 꿈은 사진작가다. 젊은 시절 잠시 사진작가를 꿈꾸며 살아보지만 실패한다. 꿈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아버지가 제시한 현실에 안주한다. 아름다운 아내와 두 아들을 가진 중류층 이상의 가정을 가지고 있지만 그 삶이 풍족하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아내 베시는 작가의 꿈을 꾸지만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가정주부에 머문다. 자신의 삶이 변한 것을 남편 탓으로 돌리지만 그녀 또한 벤처럼 이상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안주한 것이다. 

벤의 삶도 만족스럽지 못하지만 베시의 삶은 더욱 그렇다. 안정적이고 화목해 보이는 것처럼 포장하지만 그 이면은 남과 다를 바가 없다. 아내와의 화해를 바라지만 이미 틀어진 베시가 그를 계속 무시하고 냉대한다. 이상한 낌새를 발견한다. 아내에게 애인이 있다. 잠시의 불륜이 아니다. 분노가 치솟지만 이성으로 억누른다. 하지만 술은 이성을 잃게 만들고, 그 때문에 아내는 더욱 멀어진다. 거기에 불륜상대가 그를 자극한다. 이미 자신을 잃고, 격해있던 그는 우발적으로 살인한다. 이 첫 장에서 작가는 한 중산층 남자와 가정의 허상을 벗겨내고, 인간이 지닌 나약한 심성과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두 번째 장으로 가면 한 편의 스릴러 같다. 그가 죽인 사람의 흔적을 지우고, 자신마저 사라지게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자세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불안과 긴장이 고조되고,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 앞에 자신의 죽음을 포장하기 위한 노력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분명 살인자가 분명한데 왠지 모르게 그에게 감정이입이 되면서 그의 도망이 성공하길 바란다. 자신이 살인자로 잡히고, 아이들이 살인자의 아이로 남게 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의 행동과 대처는 냉정하고 치밀하다. 다른 사람으로 서류상 변했다고 하지만 그 불안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지막 장은 사실 가장 흡입력이 강하다. 불안한 도주 속에 잠시 머문 마을에서 찍은 사진 때문에 호평을 받고,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이 만남이 화재 현장을 마주하게 하고, 멋진 현장 사진을 찍게 한다. 젊은 시절 그렇게 갈망하던 성공이 펼쳐진다. 하지만 그는 이미 벤이 아니다. 자신의 과거가 드러나는 것은 새로운 삶도 과거의 삶도 모두 변한다는 의미다. 꿈꾸던 성공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그가 살인을 하고, 자신을 버리던 순간 예정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아주 멋진 사진을 찍게 된 계기도 자신을 버렸기 때문이다. 이 부조리한 현실은 뒤틀린 삶의 한 단면을 잘 표현해준다. 

자신의 과거를 모두 지우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어떨 때는 분명히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변신이 알려졌을 때 문제가 될 수 있다면 어떨까? 혹은 그의 잘못을 아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또 어떨까? 변신이 즐거움으로 가기 위해서는 짧아야 하고, 그 순간들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벤은 그 순간들을 즐길 수 없다. 이 상황의 변화를 작가는 기발하면서도 빠르고 속도감 있게 보여준다. 밖으로 드러난 일상 그 뒤에 숨겨진 삶의 진짜 모습을 포착하는데 이것은 좋은 사진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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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해요 2010-07-01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