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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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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읽는다. <눈먼 자들의 도시> 이후 처음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의 소설이 집에 더 있지만 읽은 책은 이 책 이전에 <눈먼 자들의 도시>가 유일하다. 하지만 워낙 강한 인상을 받았기에 나오면 항상 위시리스트에 올려놓고 한 권씩 샀다. 나에게 사라마구는 그런 존재다. 자주 읽지 않지만 단 한 권으로 영혼 깊은 곳에 아주 강한 인상을 각인시킨 작가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구약성서의 첫 살인자 카인을 재해석했다. 이전부터 그의 작품을 꾸준히 읽은 사람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아주 불경한 듯하게 느껴진다. 물론 이 불경함은 기독교도에게 해당한다.

 

그렇게 두껍지 않다. 분량만 놓고 보면 2~3 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읽으면 더 긴 시간이 걸린다. 그만의 독특한 문장 구조 때문이다. 문단과 화자의 구분이 없어 문맥으로 파악해야 하기에 집중하면서 읽어야 한다. 순간 문맥을 놓치면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다. 천천히 집중하면서 읽으면 아주 공들여 쓴 문장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문장들 속에 작가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널어놓았다. 기독교 국가 태생인 작가이기에 가능할 것 같지만 <구약성서> 속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인간적으로 풀어놓은 책은 정말 오랜만이다.

 

카인. 동생 아벨을 죽인 죄로 평생 유랑하면서 산다. 머리에는 살인자의 낙인이 찍혀 있다. 그런데 카인과 여호와의 대화는 공모자라는 인식을 처음부터 심어준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후 카인은 수많은 현재를 유랑하면서 구약성서 속 이야기를 재해석하고 비틀고 논리적 허점 등을 지적한다. 소돔과 고모라를 비롯한 수많은 학살과 파괴의 현장을 둘러본다. 왜 이런 파괴와 학살을 저지르는지 여호와에게 묻는다. 욥의 시련은 단지 사탄과의 내기에 의해 일어난다. 그가 받은 시련은 단지 자신을 부정하지 않는 것을 보기 위한 것일 뿐이다. 비신자이자 이성에 의해 판단하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런 부분들을 작가는 하나씩 지적하고 직접적으로 말한다.

 

카인이 유랑하면서 본 현재들은 수백 수천 년의 역사지만 그는 그 시간을 현재로 살아간다. 하나님이 그에게 벌로 내린 능력이기도 하다. 이 저주는 그가 여호와를 긍정하고 믿게 만들지 않고 회의하고 부정하게 만든다. 이것은 구약성서가 가진 비이성적이고 일방적 강요에 대한 이성적 반응이다. 대화와 용서를 통해 구원을 얻을 것이란 기대는 학살과 파괴들에 의해 산산조각난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그는 외면한다. 아니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강요한다. 이 믿음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징벌이 내려온다. 그래서 읽는 동안 불편했다. 현재 나의 이성이 이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비기독교적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도와 대화를 하면 그들은 늘 신앙을 내세운다. 나는 논리와 과학과 이성을 말한다. 이야기는 평행선을 탄다. 대화의 결론은 없다. 신의 뜻을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말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그럼 묻고 싶다. 왜 그 신을 믿느냐고? 인간을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교리문답에 이에 대한 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작가들이 이미 다루었다. 나의 이성을 이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신자와 비신자의 차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머릿속에 계속 든 생각도 바로 이것이다. 무결점이라고 하지만 자신이 만든 세상을 자신이 바라는대로 운영하지 못하고 새롭게 만드는 모습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비슷해 보인다. 다 알지 못하기에,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기에 리셋해야 하는 경우처럼. 노아의 이야기가 가장 마지막인 것은, 그 이야기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전개를 펼쳐보이는 것은 단순히 발칙한 상상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존재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다. 우리가 종교인과 논쟁하는 것에 대한 작가의 의견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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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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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미도서상 수상작이다. 분량도 적지 않다. 700쪽이 넘는다.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책이 재미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나의 몸 상태가 나빠 며칠을 그냥 보냈기 때문이다. 이 긴 장편을 읽으면서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 갔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들의 삶에 고개를 끄덕이고, 어떤 상황이나 장면에서는 너무나도 낯설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장면이나 상황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알고 있던 미국의 부흥기 속의 어두운 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빈민가의 모습과 흑인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 등은 현재 기준으로 아주 놀라운 모습이다.

 

그들. 이 소설 속에서 가리키는 그들은 엄마인 로레타와 그녀의 아들 줄스와 딸 모린이다. 이 2대의 1937년 여름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까지 시간을 다루고 있다. 그 시간은 어느 부분에서는 아주 세밀하게 다루어지고, 어느 순간은 생략된 채 다른 시간대로 넘어간다. 갑자기 시간이 바뀌면 그들의 삶은 다른 모습을 가지고 등장한다. 개인적으로 이 시간의 비약이 낯설다. 왜냐고? 그 빈 시간을 작가가 자세하게 설명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이야기 속에 이 부분이 다루어지지 않으면 독자의 상상력으로 그곳을 채워야 한다. 의문으로 남겨둬야 하는 곳도 적지 않다.

 

가난은 대물림을 한다. 그것을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공부를 하는 것이다. 처음 줄스가 태어났을 때 보여준 몇 가지 장면과 설명은 줄스의 밝은 미래였다. 하지만 현실은 쉽게 이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맹모삼천지교의 한 사례인가 싶게 그는 주변에 쉽게 물든다. 책을 좋아하는 모린의 경우도 더 나은 미래가 보이는 듯했지만 자신이 선택한 탈출구가 막히고, 폭력이 곁들어지면서 오히려 퇴보한다. 이렇게 적고 보면 이들이 못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이들은 미남 미녀다. 이 외모를 이용할 기회를 잡지도 못했고, 제대로 활용조차 못한다. 읽으면서 계속 안타까웠던 것은 이들의 삶이 늪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장면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이다.

 

로레타. 열여섯의 그녀는 예뻤다. 하지만 그녀가 남자 친구와 동침한 밤 그 남자 친구가 총에 맞은 채 발견된다. 그 남친도 하층민의 양아치 같은 인물이지만 멋진 외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죽음에 대해 정확한 살인자를 작가는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로레타의 오빠 브록일 것이라고 추측하는 글만 나온다.(작가의 발문에서 브록이 죽였다고 말한다) 그러다 경찰 웬들을 만나 이 상황을 벗어난다. 이 웬들이 로레타의 첫 남편이 된다. 평온한 중산층의 삶이 펼쳐질 것 같은 순간 부정으로 하워드가 경찰에서 짤린다. 시골로 내려간다. 이곳에서 두 딸을 더 낳지만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다. 이 웬들 가족이 가장 고요하게 보낸 시기가 바로 이때다.

 

디트로이트로 온 그들의 삶이 도시 하층민을 벗어나지 못한다. 남편이 직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그는 사고로 죽는다. 줄스가 일을 해서 가족의 생계 일부를 책임지지만 충분하지 않다. 로레타도 일한다. 줄스는 공부에 관심이 없다. 어수선한 사회분위기와 빈곤은 가장 확실한 신분 상승의 방법인 교육으로부터 줄스를 멀어지게 한다. 나중에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일로 사라진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열정적이고 운명적인 사랑은 평화로운 삶을 방해한다. 그와 네이딘의 사랑은 이성으로 분석하기에는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 존 업다이크의 <브라질>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정이입을 많이 한 인물이 줄스인데 그의 삶이 정말 많이 흔들리고 불안하다.

 

모린의 삶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어린 나이에 집안 살림을 맡아 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선택한 매춘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상황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 불안한 순간들이 이어지다 새로운 아버지의 폭력 앞에 무너질 때 그녀의 삶도 퇴보한다. 오랜 침묵 끝에 되돌아온 그녀가 보여준 모습은 자신의 어머니와 별 다른 차이가 없다. 유부남과의 사랑과 결혼이 목표다. 충분히 자립적인 여성으로 자랄 수 있었던 그녀의 과거를 떠올리면 그 안타까움은 배가 된다.

 

가볍게 읽기에는 분량도 많고 내용도 무겁다. 도시 빈곤과 인종 문제가 그 바닥에 조용히 깔려 있고, 안정적인 중산층을 바라는 목소리도 계속 나온다. 그런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삶은 주변에 의해 흔들린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들’은 중산층일 수도 있고, 도시 빈민들일 수도 있다. 낯선 시대와 나라를 배경으로 다룬 소설이다 보니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강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 나의 삶과 우리의 삶과 어떤 차이가 있고, 비슷한 부분이 있는지 계속 떠오르기 때문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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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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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캐롤>의 원작소설이다. 이 소설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가 다른 필명인 클레어 모건으로 출간했었다. 나중에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이 책의 페이퍼백이 거의 백만 권 정도 팔렸다는 것이다. 레즈비언이 주인공인 소설이 이렇게 성공하다니 정말 대단하다. 처음 출간된 시기가 1952년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이제는 동성애가 우리의 일상에 낯익은 것이 되었지만 그때만 해도 많은 사회문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읽으면 책 속 몇몇 표현이 잘 이해된다.

 

하이스미스가 빈곤했던 시절 백화점에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자전적인 요소가 일부 담겨 있지만 그렇게 길게 다루고 있지는 않다. 단지 도입부의 몇 장면이 그대로 인용된 것 같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은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지만 평생 동안 작가의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 되었다. 로맨스 소설 팬에게는 아쉬운 일이겠지만 스릴러 팬에게는 다행한 일이다. 이 성공에 의해 로맨스 작가로 전업했다면 우리가 즐겼던 그 수많은 서스펜스 작품을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나중에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친 것이 분명한 리플리 같은 주인공도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레즈비언 소설이라고 규정했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다. 단지 그 두 사람이 여자였을 뿐이다. 그 두 주인공인 테레즈와 캐롤은 그 시대의 금지된 사랑을 한다. 먼저 끌린 것은 분명 테레즈다. 하지만 이 끌림은 캐롤까지 끌어당긴다. 이제 겨우 스무 살의 테레즈에 비해 더 성숙한 캐롤은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긴다. 테레즈의 행동과 심리를 작가는 아주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캐롤>이란 제목만 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사람이 캐롤 같지만 실제는 테레즈다. 그녀는 무대 디자이너인데 경험이 거의 없다. 당연히 일이 없다 보니 부업을 해야 한다. 그 장소가 바로 백화점이다. 작가가 이 소설의 아이디어를 얻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이 두 사람에게는 남편과 연인이 있다. 캐롤에게는 이혼을 진행 중인 남편과 딸이 있고, 테레즈에게는 리처드라는 남자 친구가 있다. 리처드는 테레즈를 사랑하고 그녀와 함께 갈 유럽 여행을 꿈꾸고 있다. 만약 캐롤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이 둘은 배를 타고 유럽으로 갔을 것이다. 하지만 캐롤의 등장은 테레즈에게 사랑을 일캐워주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게 만든다. 아직 한 번도 여자와 잔 적이 없는 그녀의 떨림과 기대와 긴장감은 이 소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다. 그리고 일방적으로 그녀에게 끌려가는 듯한 모습과 반전처럼 펼쳐지는 캐롤의 감정은 이야기 중간중간에 나왔던 그녀의 행동에 대한 답이 된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드러낼 때,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상대가 있을 때 그 사랑은 아주 불타게 된다. 이 책의 전반부는 그 감정을 드러내는 과정이라면 후반부는 이 사랑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동차로 여행하는 두 연인의 하루하루가 새로운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아주 큰 기회가 된다. 그 누군가가 바로 캐롤의 남편이다. 아직 이혼 중인 부부고, 동성애가 금기시되던 시절임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연인들 사이의 시련은 둘 사이에 생기기도 하지만 그 사랑이 뜨거울 때는 대부분 외부에서 비롯한다.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 있거나 이 때문에 이익을 바라는 사람이 있을 경우는 더욱 그렇다.

 

사랑과 그리움은 자신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테레즈의 행동과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강한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행동과 심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동성애와 상관없이 말이다. 장애는 두 사람 사이의 사랑을 가름하는 하나의 척도가 되기도 한다. 현실의 벽은 아주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끝까지 읽으면서 예상한 결론과 다르게 끝났을 때 조금은 놀랐다. 작가는 이것이 성공의 이유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 공감한다. 이들의 사랑에 자신들의 감정을 이입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로맨스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그 재미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지만 하이스미스의 유일한 로맨스 소설이란 것과 테레즈의 변화무쌍한 심리를 들여다본 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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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미식가 - 외로울 때 꺼내먹는 한 끼 에세이
윤시윤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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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예능 작가 18년차이지만 검색을 하니 연기자 윤시윤만 나온다. 현재는 <라디오 스타> 방송 작가라고 한다. 그 외 몇 편의 작품을 제외하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글만 가지고 평가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처음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외로운 미식가란 제목과 간단하게 본 책 내용으로 음식에 대한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각 장의 제목은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감칠맛, 짠맛 등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 담긴 이야기는 그녀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예능 방속 작가의 느낌이 곳곳에 살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겁고 처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도 감성에 젖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며칠 되지 않아 또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심하다. 더 많은 나이와 경험이 말랑말랑한 글로 표현되어 있다. 라디오에서 한두 번 정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계속 읽으면 지친다. 그녀의 넋두리와 감상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나 자신도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쉬움, 두려움, 설렘, 외로움 등의 감정들은 단편적으로 흘러나올 때 그 순간은 나쁘지 않지만 계속 이어지면 공감 너머의 감정만 남게 된다. 그래서 좋고 감각적이고 순간 공감할 수 있는 글도 감정의 소모를 부채질한다. 아마 이 책을 내가 이십 대나 삼십 대 초반에 읽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작가도 책 속에 말하지만 음식이나 맛집에 대한 정보는 없다. 혹시 제목에서 풍기는 음식과 맛집에 대한 정보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 심어진 감정의 파편들을 맛보고 싶다면, 그 감성을 즐긴다면 딱 맞는 책이다. 이런 점에서 호불호가 생길 수 있다. 맛집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음식에 대한 추억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음식에 대한 기억들이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방송 예능 작가의 매력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몇 가지 편견도 같이.

 

외로울 때 꺼내 먹는 한 끼 에세이란 부제가 있다. 정말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단숨에 읽으면 나처럼 지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현재 기분이 달달하다면 단맛을 읽고, 인생의 쓴맛을 보았다면 쓴맛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맛들은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한 번씩 맛보는 것이다. 그래서 취향을 타는 책이 된다. 헤어짐과 그리움, 사랑과 엇갈림, 작은 오해가 쌓여 만들어내는 사연 등은 시간 속에서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한 것이다. 사랑이 왜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흔한 대답은 그 뻔함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흔히 마흔이란 나이를 불혹이라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그런 위치까지 간 사람은 몇 명 없다. 쉽다면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더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다. 삶의 다양한 굴곡과 맛들은 결국 ‘인생은 맛있다’란 긍정으로 마무리된다. 지금 내 상태에 따라 이 말에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하나씩 그 맛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더 긍정하게 될 것이다. 누가 젊은 시절 가슴 찢어지는 듯한 사랑의 아픔을 한두 번 맛보지 않았겠는가. 시간이 지나면 그 맵고 쓰고 짠 그 맛이 추억이란 조미료에 의해 달거나 감칠 맛이 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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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고양이 3 - 야!야!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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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3권이 2권과 같이 나왔다. 그리고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더 등장했다. 이번에는 참새와 비둘기 부부다. 지붕에서 떨어진 아기 참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비둘기 부부 이야기로 끝난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 만큼 기존 사람들의 비중이 많이 떨어진다. 특히 할아버지. 하지만 첫 이야기에 등장하여 참새들의 서식지와 동물을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전편에서 아주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반가운 모습이다.

 

이전까지 이야기에서 큰 비중이 없었던 고양이 주인의 오빠인 안경남이 이번 참새 이야기에서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애니 덕후의 모습도 잠시 보여주지만 밀웜과 관련된 몇몇 에피소드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냉장고에 둔 밀웜과 새끼 참새에게 먹이를 주다 고양이들이 덮쳐 쏟은 후 참새들이 회식을 하는 장면 등은 실제 내 주변에서 일어난다면 아주 깜짝 놀랄 일이다. 거미애호가들에게 가장 일반적인 먹이라고 하지만 생긴 것이 구더기와 비슷하니 그냥 무덤덤하게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나중에 애칭까지 붙여준 장면은 짧지만 강렬했다.

 

새끼 참새가 떠난 자리를 금방 비둘기 부부가 채운다. 이 부부는 원래 닭이 살던 곳을 차지해서 새끼까지 낳고 산다. 우리의 귀엽고 겁 많은 콩고양이들은 이번에도 이들에게 밀린다. 작가가 고양이들의 눈을 통해 비둘기의 먹이주는 장면을 그려낼 때 예전에 본 다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콩알이 팥알이 엄마 장면이 잠시 나와 애틋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그 전에 자신들이 자라 고양이 인간처럼 변한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이 나와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마담 북슬은 이번에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집에 서식하는 말벌을 단숨에 처리하고, 고양이의 애교에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마담 북슬을 흔드는 일이 생긴다. 그것은 옆동네 고양이가 텔레비전에 나와 인기 얻는 것을 보고 질투한 것이다. 고양이가 개처럼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인기를 얻었는데 콩알과 팥알이도 훈련을 통해 이런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고양이들을 간식으로 유혹해서 훈련을 시키려고 하지만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진 모습만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항상 강한 모습만 보여줬던 마담 북슬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진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기존 캐릭터들은 여전히 그 매력을 뽐내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놀이에 열중하고,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은 꼼꼼하게 관찰할 대상이 된다. 이 만화의 매력 중 하나라면 간결한 그림체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는 동물들 관찰이다. 참새나 비둘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이 간간히 등장하여 존재감을 드러낸다. 등장 빈도에 비해 나의 시선을 끄는 존재는 역시 아빠다. 이 시대 아버지의 한 면이 잘 녹아 있어 더욱 공감하게 된다. 현재 5권까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더 나올 수도 있고. 다음에는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여 콩알이와 팥알이의 생활을 모험으로 이끌고, 재미를 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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