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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들의 고군분투 생활기
제스 월터 지음, 오세원 옮김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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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지 선정 2009년 10대 소설, 끌린다. 하지만 더 마음을 끌어당긴 것은 에드거상을 수상한 <시티즌 빈스>의 작가란 사실이다. <시티즌 빈스>를 읽었냐고? 아니 사놓고 아직 읽지 않았다. 그런데 왜냐고? 그것은 이 상이 의미하는 바를 알기 때문이다. 가끔 읽게 되는 미국 신문사 10대 소설이나 무슨 무슨 상 받았다는 작품을 읽으면서 힘들어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했고, 역시 예상한대로 재미있으면서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뭐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호평을 하던 유머를 포복절도하면서 읽은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를 강타한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한 가족의 삶을 다룬다. 가족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가장의 이야기다. 그는 우연히 아이들이 먹을 우유를 사러갔다가 예상하지 못한 경험을 한다. 잊고 있던 마리화나를 피운 것이다. 이 일이 가정파탄의 시발점이냐고 한다면 아니다. 시발점은 서브프라임 사태에서부터 발생한 경제위기다. 아니 좀더 파고들면 그들이 너무 낙관적으로 미래를 보았고, 흥청망청 소비를 했다는 것이다. 뭐 그때는 모든 언론에서 그렇게 환상을 심어줘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말이다. 

주인공인 맷은 위기 전 다니던 신문사를 나와 시로 경제정보를 제공하는 사이트를 운영하려고 한다. 아이디어 좋다. 그런데 경제성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미래에 대한 무한한 낙관과 그 동안의 승승장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굴곡 없는 삶은 단번에 다가온 위기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게 만든다. 정확한 판단을 내려 빠르게 옮겼어야 할 수많은 올바른 판단이 사라졌다. 그 이후의 삶은 말 그대로 급전직하다. 집값은 떨어지고, 집을 담보로 잡았던 금융업체들은 자꾸 변한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창 거품 논란에 빠져있는 우리의 부동산 시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지방의 저축은행들이 하나씩 무너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미 시작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 

우연히 세븐일레븐에서 마주한 아이들에게서 마리화나를 얻어 피운 후 그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다. 다가온 경제파산을 막기 위해 그는 다른 방법들을 찾는다. 그런데 없다. 나중을 위해 모아둔 연금마저도 바닥이 난 상태다. 모두 정리한 후 손에 들어온 금액은 만 불이 되지 않는다. 당장 갚아야 할 금액이 3만 불이 넘는데 말이다. 거기에 아내의 동태가 수상하다. 다른 남자가 생긴 것 같다. 이름은 척이다. 어릴 때 사귄 남자다. 아내와 잠자리를 한 지도 오래되었고, 불안감은 커진다. 자신감을 상실한 남자가 할 찌질한 행동인 척의 가게 찾아가기도 한다. 뭔가 약점을 찾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다. 이혼했다는 사실에 더 위축된다. 이렇게 소설은 경제적 위기와 가정 불안이라는 두 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중산층의 몰락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수많은 매체에서 만들어낸 환상에 빠진 사람들의 삶 일부를 살짝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멋진 집을 사고, 큰돈을 들여 수리를 하고, 사립학교에 보내고, 좋은 차를 산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자신의 돈으로 산 것은 거의 없다. 모두 빌린 돈이다. 앞으로 몇 년에서 30년 정도 갚아야 할 돈이다. 낙관적이고 안정된 경제에서 이런 상황은 별일 아니다. 위기는 상상도 할 수 없고, 생각보다 빠르게 그 돈을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아니다. 이자와 원금상환으로 허덕인다. 이때 한 대 핀 마리화나는 새로운 돌파구처럼 보인다. 남은 돈 모두를 투자해 고수익의 마리화나 장사로 빚을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솔깃하다. 주변 시장도 어느 정도 있다. 모든 것을 정면에서 마주하길 두려워하는 ‘나’의 현재 모습이다. 아마추어가 이런 사업을 하기 쉬울 리 없다. 문제가 생긴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재미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상황과 유머와 캐릭터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 속에 미국 중산층의 시각을 하나씩 깨트린다. 위만 보고 살던 삶에서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그냥 풍경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아니 혐오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그 가꾸어진 이미지가 깨어질 때 진실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가 아등바등 살기 위해 몸부림 칠 때 아내의 부정을 두려워하며 움추릴 때 그에게 연민을 느낀다. 한 가장의 넋두리 같은 이야기에 공감을 한다. 미국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너무 우리 주변의 삶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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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름 모중석 스릴러 클럽 27
루스 뉴먼 지음, 김지현 옮김 / 비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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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호불호는 극단적으로 갈린다. 어떤 이는 점수를 주기 힘들 정도라고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극찬을 한다. 책을 읽기 전 먼저 본 감상은 점수가 아주 낮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인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도대체 얼마나 형편없기에 이런 표현을 쓰나 하고 말이다. 솔직히 말해 이 감상은 중반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개성 없는 전개와 구성이 이것을 부채질했다. 초반 묘사나 서술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의 일상이 하나씩 등장하면서 긴장감이 떨어졌다. 조금 밋밋하게 다가온 것이다. 이것은 책 후반으로 올 때까지 지속되었고, 취향과도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몇몇 서평 중에서 가장 많이 공감하는 것은 영화 <프라이멀 피어>를 인용한 것이다. 중반까지는 이 영화와의 연관성을 깨닫지 못했다. 중반이 지나고 마지막으로 치닫게 되면서 그 유사한 설정과 전개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연쇄살인범을 둘러싼 교묘한 심리전이 마지막 반전으로 하나씩 풀려나가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까지 오기 전은 강렬함이나 긴장감이 부족했다. 이제는 너무나도 진부한 듯한 다중인격장애를 다루고 이 공식에 상황을 대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상황과 설정이 반전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긴장감이나 몰입도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 기숙사방에서 한 여자가 배가 갈린 채 죽어있고, 다른 여자는 기절해있다. 그 옆에 피투성이 남학생이 서 있다. 시체는 준이고, 기절한 여자는 올리비아, 피투성이 남학생은 닉이다. 이 장면은 단순하게 해석하면 굉장히 쉽다. 그런데 이 상황과 정황이 많은 오해를 불러온다. 이 오해 중 하나가 소설의 핵심인데 이것을 좋아하느냐 않느냐에 따라 많은 호불호가 갈라지는 것 같다. 여기에 제목에서 암시했듯이 올리비아를 다중인격장애로 다루면서 의심과 의문을 더욱 심화시킨다. 과연 누가 연쇄살인범인가와 다음 희생자는 누굴까 하고.

준은 사실 케임브리지 대학생 중 세 번째 희생자다. 그녀 앞에 아만다와 일라이저가 있다. 이 두 소녀는 형사 스티븐에 의해 연쇄살인사건으로 파악되었지만 두 피해자의 사체 차이가 이를 부인하게 만들었다. 이후 발생한 세 번째 희생자는 연쇄살인임을 알려준다. 여기에 프로파일링을 위해 스티븐의 친구이자 정신과 의사인 매튜가 등장한다. 그는 사건 현장과 기록들로 범인상을 추리하고, 준 옆에서 정신을 잃은 채 발견된 올리비아를 면담하는 역할을 한다. 이 책의 재미 대부분이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둘의 심리전과 숨겨진 과거와 진실이 하나씩 드러나는 부분들이다. 그리고 펼쳐지는 반전은 너무 낯익은 구조라 신선함이 떨어진다. 하지만 과거와 진실이 반전으로 풀리면서 몰입도를 높여간다.

많은 스릴러를 읽으면서 항상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 생기고 있다. 이 이야기 뒤에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의심한다. 이 의심이 때로는 범인을 정확하게 추리하고,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게 만든다. 하지만 대부분은 단순한 의심이나 막연한 추리일 뿐이다. 또 여기서 취향이 나타난다. 내가 범인을 맞추었는가가 아니라 작가가 쓴 트릭이 정당한가 하는 의문에서 말이다. 이 소설도 그런 취향을 탄다. 사실 작가들은 독자들을 속이기 위해 책 속에서 많은 트릭을 부린다. 정당한 게임을 펼치는 작가도 있지만 역으로 끼워 맞춰야만 그렇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드는 작품도 있다. 여기까지는 뛰어난 작가들이다. 그렇지 않은 작가는 트릭이 너무 쉽게 읽는 중에 밝혀진다. 그럼 이 작품은 어떨까? 쉽게 밝혀지는 작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긴장감을 이어가면서 다시 앞으로 돌아가 단서들을 조합할 정도도 아니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에 초반부터 몰입하지 못한 것은 대학생들의 과거를 재현하는 장면들이 너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실이 더 강한 흡입력을 가지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과거는 핵심적인 것으로 상황을 연결시켜야 하는데 이런 유기적인 결합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런 해석이 나의 오만일 수도 있다. 먼저 본 서평의 영향일 수도 있다. 인정한다. 하지만 읽으면서 더 깊게 몰입하지 못한 것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인물들의 캐릭터에 감정이입이 깊게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 것일까? 의문이 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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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숲, 길을 묻다 네이버 캐스트 철학의 숲
박일호 외 지음 / 풀빛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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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하나 말하고 지나가자. 여기서 말하는 철학은 저자들도 말했듯이 서양철학을 의미한다. 가끔 우리는 철학하면 당연히 서양철학을 연상한다. 동양철학, 한국철학 등으로 구분할 때는 그것을 다룰 때뿐이다. 물론 서양철학사란 제목으로 책이 많이 나와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 고대 철학자란 말을 할 때는 당연히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을 생각한다. 또 근대 혹은 현대 철학이란 말을 쓸 때도 서양 철학자들의 이론을 지칭한다. 그러니 철학이란 큰 범주 속에 서양철학은 동등하고, 동양철학이나 한국철학은 아래엔 놓인 것처럼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이 책 제목에서도 그런 인상을 주기에 서두에 푸념을 조금 늘어놓았다.

모두 22명의 서양 철학자가 등장한다. 고대의 탈레스로부터 근대의 데이비드 흄까지다. 시대도 고대, 중세, 근대로 나누었다. 고대철학자가 끝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이고, 중세의 시작은 아우구스티누스다. 중세의 끝은 오컴의 면도날로 유명한 윌리엄 오컴이고, 근대의 시작은 예상 외로 마키아벨리다. 그가 예상 외였던 것은 한 번도 철학자로 생각한 적이 없고, 유명한 정치공학 저서 <군주론>의 저자 그 이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대표 저서가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불러온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시대를 대표할만한 철학자였나 하는 부분에서는 이 책을 읽은 지금도 의문이다. 아니면 나의 공부가 너무 부족하거나.

예전에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자연 철학자에 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번 책보다 굉장히 깊이 들어갔는데 상당히 어려웠다. 당연히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당시 그 저자가 왜 그렇게 그들을 중시했는지 조금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학교 암기 교육에 충실했던 탓인지 그 기억들은 점점 사그라지고 단순히 외웠던 단어와 정의만 머릿속에 남았다. 그들이 주장하고자 했던 핵심은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서 간결하지만 그들이 왜 중요한지 짚어주었을 때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나마 아는 척을 했다. 아는 척만 한 것은 이 책이 읽기는 힘들지 않지만 그 내용을 자신의 것으로 삼기에는 쉽지 않은 책이기 때문이다. 

네 명의 철학자들이 각각 한 명의 서양 철학자들 기술하는 방식이다. 당연시 시간 순이다. 재미난 점은 시대 순으로 나눈 구성 속에서 철학자들의 수가 모두 틀린 것이다. 고대 철학자를 열 명이나 다루고, 중세는 겨우 네 명만 다루고 있다. 읽다보면 가끔 만나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고대 철학자들의 물음이 다시 중세와 근대에 반복되어 혹은 조금 변화가 생겨서 등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책을 읽을 때는 이런 점을 몰랐다. 알았다고 해도 고대 철학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선행하지 않았겠지만 만약 더 깊이 이해하고 공부했다면 이 간략한 책에서도 상당한 지식을 축적하고 나름의 철학을 세우는데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제목에서도 나온다. ‘길을 묻다’ 서양 철학사를 다루면서 저자들은 답을 말하기보다 각 철학자들의 물음을 우리에게 던져놓는다. 물론 위대한 철학자들이 제시한 핵심 답변도 나온다. 하지만 더 중점을 둔 것은 인물 중심의 철학사를 다루면서 길은 묻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각 철학자들이 내놓았지만 그것을 해석하고 흡수하는 것은 바로 우리다. 철학사에서도 나오듯이 스승의 철학에 반론을 제기하여 새로운 철학을 주장한 경우도 허다하다. 혹은 그것은 더 깊이 더 멀리 나아가 심화시킨 경우도 많다. 이런 과정과 인물을 이 책은 간략하게 다룬다. 저자들이 철학 입문자를 배려해서 쓴 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쉽게 읽히는 부분도 상당히 많다. 그렇지만 철학 용어와 정의가 많아지고 의미를 깊게 파고들어야 하는 부분에 도달하면 어려워진다. 이것은 예전에 <소피의 세계>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좀더 체계적으로 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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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 수사 제복경관 카와쿠보 시리즈 1
사사키 조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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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사사키 조의 연작 단편소설이다. 인구 6천 명이 거주하는 작고 조용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작고 조용한 마을을 생각하면 아무 일도 발생할 것 같지 않지만 현실은 다르다. 아무리 작은 마을이라도 문제는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마을 수상하다. 인구 비례로 따져도 너무 사건 사고가 없다. 경찰 경력 25년에 전 강력계 베테랑 형사였던 카와쿠보 아츠시는 주재 경관으로 이 마을에 와서 이 수상한 마을의 숨겨진 비밀을 하나씩 밝혀낸다. 추악하고 비열한 비밀은 다시 카와쿠보가 주재경찰로 오게 된 사건을 되돌아보게 한다.

모두 다섯 편이 실려 있다. <일탈>은 그가 처음으로 주재 경관으로 부임해서 맞이한 사건을 다룬다. 그것은 한 고등학생의 실종이다. 모자가정의 아들 미츠오가 아침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아 엄마가 경찰에 연락을 한다. 고등학생과 하룻밤 외박이라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런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고 탐문을 할수록 의문이 쌓인다. 그리고 신고 전날 밤 한 노파로부터 고등학생들의 다툼 소리에 대한 신고가 있었다. 바로 뭔가 연결된다. 그 다음날 미츠오는 도로 옆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이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한다. 베테랑 형사였던 그에게는 너무나도 뻔한 살인사건인데 말이다.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이런 황당한 일이 반복된다. 그것은 현경 수뇌부가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문 후 발생한 유착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업무와 상관없이 인사이동을 시킨 결과다. 베테랑들이 주인공처럼 주재 경관으로 빠지고, 총무를 하던 경찰이 현장에서 실제 사건을 다룬다. 조직에서 발생한 하나의 사건이 연쇄적으로 이어져서 나쁜 결과로 나온 것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러 발생하는 유착사고를 막기 위한 이런 조치는 카와쿠보가 주재하는 마을의 수상한 비밀과 묘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 마을은 자경단이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면서 숨기기 때문이다. 고립된 마을이 가진 특성과 이권은 주재 경관이 그냥 막 다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에 온 주재 경관은 정말 뛰어난 베테랑이다. 그들의 바람은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하고 추악한 비밀은 밖으로 드러난다.

각 단편들이 하나의 사건을 다룬다. 그 하나의 사건은 다른 것과 이어져 있다. <유한>은 처음에 총에 맞은 개 사건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곧 숨겨져 있던 옛 이야기들이 하나씩 나오고, 한 농장주가 죽게 되면서 살인사건으로 변한다. 경찰은 사라진 농장일꾼들인 중국인들을 범인으로 지목하지만 누구나 그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사실은 씁쓸하다. <깨진 유리>와 <감지기>는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마을이 연속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을 어떻게 대응하는지 잘 보여준다. 전과자라는 이유만으로 사실 확인을 제대로 하지 않고 배척하거나 부랑자란 이유로 그들을 연쇄방화범으로 몬다. 그들이 주장하는 마을의 안전과 평화는 <가장제>에서 얼마나 위선적인지 드러난다. 그들이 하는 것이라고는 조용히 덮어두고 외면하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 주재 경관이었던 타케우치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주재 경관이 해야 하는 일을 그는 사건을 만들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그냥 들으면 맞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면 폐쇄적이고 고인 곳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그냥 덮어두면서 확대재생산하는지 알 수 있다. 

이 연작소설이 시리즈로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다음 이야기 <폭설권>도 작업 중이라고 한다. 기대된다. 사사키 조가 쓴 <경관의 피>를 읽고 반했는데 역시 이번에도 경찰소설에 대한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다. 그리고 현실적이다. 주재 경관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분명하게 설정하고, 그를 한 명의 경찰이자 탐정처럼 활용한 것이다. 거기에 마을 정보원 역할을 하는 전직 우체국 직원 카타기리 요시오는 약방의 감초 같으면서도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이 둘은 묘한 관계이자 콤비인데 다음 이야기에서는 어떤 활약을 펼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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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살린 10명의 용기 있는 과학자들
레슬리 덴디.멜 보링 지음, C. B. 모단 그림, 최창숙 옮김 / 다른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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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기니피그 사이언티스트>란 제목으로 먼저 나왔던 책이다. 역자 이름이 다른데 이력을 조사하니 동일인이다. 최근에 제목만 살짝 바꾼 책들이 많이 나오는데 재간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상관없을지 모르지만 예전에 읽은 사람이나 저자에게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같은 책을 두 번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출판사와 다른 번역자가 새롭게 번역했다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출판사와 번역자라면 최소한의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재간임을 알게 된 것은 이 책에 열 번째로 나오는 과학자 때문이다. 스테파티아 폴리니라는 여성의 생몰연도와 책 내용이 조금 이상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 책에는 그녀가 1910년 생, 1999년 몰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녀가 참가했던 동굴고립실험 일자가 1989년 1월 13일이고, 그녀를 젊은 이탈리아 여성이라고 묘사한다. 그녀가 90세까지 산 것은 좋은데 80세에 실험에 참가한 것과 실험도중에 생리가 끊어졌다는 표현에서 단순히 잘못 기재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한 생몰연도를 알려고 검색하다 비슷한 목차의 책을 발견했고, 같은 책임을 알게 된 것이다.

재간 정보나 잘못 기재된 기록은 아쉽지만 책 속에 나오는 열 명의 과학자는 놀랍다. 그 중에서 퀴리 부인을 제외하면 대부분 낯선 것은 더욱 놀랍다. 그래도 조금은 이런 과학자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낯설다. 그래서인지 한 사람 한 사람이 놀랍고 신기하고 존경스럽고 흥미롭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몸을 실험도구로 사용한 결과로 우리가 얻게 된 수많은 혜택을 생각하면 약간 부끄럽다. 뭐 모든 것을 아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저자들은 이런 낯선 과학자들을 사람들 앞에 내놓으면서 우리가 자신에게 해 본 실험과 그들의 실험이 어떻게 다른지 머리말에서 분명히 말한다. 그 차이를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의 용기와 열정은 더욱 빛을 발한다.

열 명의 과학자 중 몇몇은 실험의 결과에 따라 목숨을 잃었다. 그 자신이 실험체가 되면서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이 실험체가 되었고, 그 때문에 연쇄적으로 그 분야의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그 시대의 한계는 존재했다. 이 한계는 책 구성 상에서 ‘이제는 알아요!’ 같은 내용을 통해 알려지고, 현재 과학이 어디까지 왔는지 알려준다. 덕분에 독자들은 열 명의 과학자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현재 그들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고 발전했는지 알게 된다. 

열 명의 과학자들의 실험을 읽다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실험이 너무나도 자극적이고 원초적이기 때문이다. 온도 실험을 위해 방의 온도를 높이면서 그 속에 머물거나 소화 실험을 위해 위 속으로 나무 튜브를 넣는다. 치과 수술을 위해 자신을 마취제 실험에 사용하고,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스스로 감염된다. 호흡 연구를 위해 바다 속, 땅 밑, 고지대를 오가면 실험하고, 드라마를 통해 인숙해진 심장 카테더법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알려준다. 이제는 당연한 것 같은 안전벨트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알 수 있고, 동굴 같은 곳에 고립된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보여준다. 이 일련의 실험을 단순히 흥밋거리로 본다면 특이하다거나 미친 것 아니냐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실험들이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을 생각하면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누구나 이 실험의 한두 가지 이상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동물들도 고통을 느낀다는 것이다. 인체실험까지 가기 전 우리는 수많은 동물들을 사용해 실험한다. 너무 당연한 듯 받아들이는 부분도 있지만 가끔 동물들의 고통을 무시할 때도 있다. 저자들은 자신을 실험체로 사용한 과학자들 이야기 속에 몇 번이나 집어넣으면서 이 사실을 강조하는데 이것은 역자가 인용한 그 잔혹한 독일과 일본의 인체실험 등과 묘하게 연결된다. 바로 과정과 결과에 대한 물음이다. 흥밋거리로도 재미있지만 과학과 실험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만들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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