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벽 4시에 꿈 때문에 깼다. 긴박한 상황이었다. MT인지 수련회인지 모를 새로운 곳에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막다른 곳이었다. 곧 외부에서 치명적인 공격이 닥칠 수 있었다. 허름한 나무집의 2층 같은 곳에 나무로 된 창들이 있었다. 우리는 2층으로 뛰어올라가 모든 문들을 걸어잠갔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침입이 예상되는 방향으로 노출된 창틀 3개 정도가 아예 분리되어 있어서 나무문인지 창문인지 모를 그걸 방패처럼 셋이서 하나씩 들고 막기로 했다. 대충 문틀과 비슷하게 끼워 맞춘 곳에서 저지선을 만들기로 했다. 그 순간 바로 기습을 당했고, 약속한 저지선에는 나 혼자 뿐이었다. 위급한 상황이라 여러모로 충격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잠을 깼다. 


그런데 잠을 깨는 그 짧은 순간 장면이 전환됐다. 회고 형식의 다큐같은 거였는데, 어떤 사람이 인터뷰 중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가 공격당한 오두막같은 것과 3D로 재현된 학살장면 같은 게 나왔다. 왜 이런 걸 보고있어. 같은 소리와 그러니까 왜 하필 이런 곳을 골랐어. 같은 소리가 함께 들렸다. 좀비물은 안 보는데. 분명 다음날 훈제오리 먹을 생각으로 자기전 내내 설렜는데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난리인지.


외할머니와 엄마는 가끔, 인생에 몇 번쯤 어떤 꿈을 꾼 적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태어나려고 할 때나(그러니까 나는 수정되지도 않았을 때부터 세트로 같이) 내가 대학 합격 발표가 나기 전 같은 어떤 큰 일이 있을 때쯤. 어릴 때는 그런 얘기를 듣고, 옛날 어른들이 하는 얘기지 하고 말았다. 그럴만도 한게 나는 인생의 대부분 시간동안 꿈을 별로 꾼 적이 없다. 베개에 머리를 대면 1초컷으로 잠들고, 쿨쿨 자면 아무 소리도 못 들었고, 꿈은 안 꿨다. 사주나 꿈같은 헛웃음이 날 것 같은 얘기들에 좀더 귀기울이게 되었을 때쯤인가. 아마 그 전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겠지만 그때는 전혀 연관지을 생각을 못했다.


많은 꿈을 꾸지 않는데, 유독 생생한 꿈들이 있다. 두 가지 타입인데 하나는 예지몽같은 꿈들. 일반적으로 운수좋다는 꿈이나 재수없다는 꿈. 얼마전 치과에 가기 직전에도 어금니 두개가 스르르 연달아 다른쪽도 스르르 빠지는 꿈을 꿨었다. 실제로는 사랑니 하나를 스르르 뽑았다. 이런 경우는 꿈내용 그대로인 시시한 예지몽이지만. 별 인상이 없는 꿈은 개꿈인데, 깨어서도 생생하면서 특징이 있는 꿈은 보통 예지몽이다. 다른 하나는 공포와 불안의 꿈이다. 쫓기고 도망치고. 깨고 나면 온 몸이 경직되있고, 호흡도 가쁜 꿈. 그런 꿈 자체를 안 꾸는 쪽이 아니라 진짜 죽임을 당할 것 같은 직전의 순간에 깨는 쪽으로 진화했다. 


7, 8월같으면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깊이 자지도 못했고 그런 꿈도 꿨을 법 하다. 근데 어제밤에 대체 왜? 아 그래도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참. 쉬면서 좋아지는 게 아니라 점점 민감해지기만 하다 9월이 끝나버리면 큰일이다.



집 앞이고 머리를 자르기만 하고 올 거라서 핸드폰만 들고 미용실에 갔는데 염색까지 하게 되서 오랜만에 밀리로 책을 봤다. 책읽아웃 삼천포책방 정주행을 하다가 첫회에 이다혜 기자님 편을 듣고 <아무튼, 스릴러>를 봤다. 스릴러 에세이라니 은근한 스포 천국일 것 같아서 보기 싫었는데, 당분간 스릴러는 많이는 안 볼 것 같아서 그냥 봤다. 의외로 안 본 책 천지였는데, 은밀한 스포 천국인 건 맞았다. 그래도 이건 보긴 봐야할 것 같아서 갑자기 보게 된 애거서 크리스티. 몇번이고 볼만한 기회는 있었는데 그때마다 애거서는 포와로지. 근데 아무도는 포와로가 안 나와. 독립편이야. 라고 해서 귀찮네.. 시리즈물도 보고 독립편도 봐야되네.. 하고는 항상 미뤘었다. 


그러니까 겉으로는 분명 좀 시시한 것 같았다. 도입부부터 확 빨려들어가는 힘도 없고, 등장인물도 많아서 소개 부분도 좀 지루하고. 예고되는 동요를 보면 하나씩 다 죽나보네 약간 뻔해보이는 명작. 게다가 인물 파악이 정확하게 안 됐는데 대화가 많아서 누가 누구 말인지 여러 번 다시 돌아가서 찾아야했다. 일단 사건이 시작되니 전개가 매우 빠른 건 좋았다. 반전(!)도 매우 좋았다! 역시는 역시. 이유가 있다. 아마 이후에 많은 작품들이 이 책에서 영향을 받아 가지를 뻗어나가고, 나는 그 세세한 가지들을 먼저 만나서겠지. 더 일찍 봤으면 좋았을걸. 급변하는 사회 분위기로 자연스러운 겨롸인지 영국 작가들은 정신질환(편의상..)을 소재로 잘 썼던 것 같다. 분명 읽을 때는 별거 아니게 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읽은 스릴러여서인지 내적으로는 무척 긴장했나보다. 꿈 속에서 막다른 2층의 오두막에 갇히는 설정은 여기서 따왔다고 추정한다.



<시녀이야기>를 먼저 확인하고 보고싶어했다. 그런데 통 심상치 않은 책이어서 잠정적으로 같이 볼 책 목록에 올리고 나니 먼저 보면 김샐 것 같았다. 그래서 어차피 차례차례 보게 되겠지만 눈먼 암살자를 먼저 보게 됐다. 그런데 기똥찬 책을 같이 읽는 데에는 항상 위험이 따른다. 동시에 같이 보는 재미가 있는데.. 내가 아니면 니가 반칙으로 먼저 볼 위험.. 최전선의 3인방은 아마 이 배신과 위험이었다고 추정한다. 

는 억지 억지스러워.. 

설마 다들 나만 빼고 먼저 보고 있는 걸까. 

아니야. 이건 예지몽 타입의 꿈이 아니었어.


 후일 100년 전쟁, 혹은 지노어의 전쟁이라고 알려진 전쟁이 구십구 년 째 되던 해였어. 우주의 다른 차원에 위치한 지노어 행성에는 엄청난 지력과 엄청난 잔인함을 갖춘 도마뱀 인간이라는 존재들이 살고 있었어.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 외모를 보자면, 210센티미터의 키에 몸은 비늘로 덮여 있고 회색이었어. 고양이나 뱀의 눈처럼 눈에는 세로로 긴 선 모양이 나 있었어. - 8부, 눈먼 암살자 - 아어아의 복숭아 여자들, 124p


비교가 되지 않는 전력차와 잔인한 대학살의 비밀은 그냥 도마뱀 인간들 때문인 것 같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는 압도적인 체급과 화력이었다. 그리고 정확한 회고와 액자형식은 여기서 가져온 게 틀림없어. 그래도 솔직히 인간적으로 도마뱀 인간 외계인이라니 너무하지 않나 싶은 내면의 소리까지 섬세하게 반영되었으니까. 



전작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를 본 적 있다. 왠만하면 별 다섯개를 주는 내가 별 네개를 줬다. 진짜 별 네개였으면 도서관에서 이번 책을 만났을 때 안 빌렸을 거면서. 아마 필요해서 빌린 책을 다 보고 위로를 받았으면서 그런 위로가 필요한 상황이란 걸 인정하면 안 되니까 아닌 척 별 네개를 준 것 같다. 이번 책도 슬그머니 가져왔지만 막상 빌려와서 보고있으니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었네 싶다. 이번 책은 꼭 별 다섯개를 그대로 줘야지. 김형경의 심리훈습 에세이들이 좋았던 것처럼 서늘한여름밤의 책도 자신 스스로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고 있어 참 좋다. 


 근데 어쩔 수 없잖아.

 아무래도 나는 열심히 사는 걸 좋아하는 거 같은데.

 때로 넘어져도

 나아가고 있다는 증거라도 생각하고 싶은걸.

 단지 괴로움을 피하며 살고 싶은 게 아니야.

 괴로울지라도 원하는 걸 원하는 대로 하고 싶어. - 43p


대충 시간 흘려보내기에 대체로 실패하면서 절절하게 느끼는 건 참 아무래도 나도 열심히 사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너무 열심이라 넘어지는 줄을 모르는 건 좀 문제라는 걸 이제는 안다. 열심 안에 늘 취해 살고 싶고 어떤 괴로움은 반드시 피하면서 살고 싶다. 



가끔 나에게 완벽주의자 타입이라며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매번 부인해왔다, 정확하게 책과 같이 생각하고 있었다. 한달동안은 푹 쉬기로 정했고, 그걸 정확하게 지키기 위해서 그다음 6개월과 그다음 6개월, 그리고 그다음 2년을 준비해두고서야 이 큰 일을 벌였다. 그래도 처음 설정해보고 가보는 다가올 7개월이 낯설고 확신하고 외우고 그래도 100% 확신할 수는 없어서 불안한 모양이다. 그래서 오늘 새벽에 이 사단이 났다고 인정해야 하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링크입니다. 실은 저는 제기준선 안에서 완벽주의자입니다. 그래서 가끔 인생이 예상대로일 때 침착하고, 대부분은 무시하면서 지내요.

그래도 이번부턴 다르게 노력하고 있어요.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있다. 열심히 하지 않기를 택하고 있고, 가만히 있기를 택하고 있다. 일찍 깨도 더 자기를 택하고 있다. 잘 하고 있다 싶지만 실은..

귀찮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그러니까 지금 해보자를 택하고 있다. 그런 것 까지 할 시간은 없어 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다시 시간은 충분해를 택하고 있다. 결국 잘 되고 있지 않다.


소극적인 저항처럼 열성적인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없다. 그 저항의 대상이 되는 사람의 성격이 비인간적이지 않다면, 그리고 저항을 하는 사람의 소극성이 전혀 무해하다면, 전자는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경우 자신의 판단력으로 해결하기 불가능하다고 판명되는 것을 상상력으로 관대하게 추론하고자 애쓸 것이다. -38p


스물넷에 이 책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변호사에 빙의되서 책의 처음부터 끝까지 미쳐버릴 것 같았다.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을 보는 동안 속이 너무 답답했다. 구치소까지 가서야 약간의 시원함과 찝찝함이 있었는데, 너무 답답해서 시원하고 찝찝할 겨를도 없었고 끔찍했다. 이번에는 약간 바틀비 쪽에 빙의된 것 같다.


택하지 않았는데 해고당하고, 쫓겨나고, 갇히는 바틀비. 어쩌다보니 걷고 있는 이 낯선 길과 이상한 나 자신이 완전하게 나 때문인 건 아니고, 상황 때문이 크다는 생각. 그래서 아마 유튜브 알고리즘이 엉뚱하고 정신에 해로운 걸 보여줬어, 누군가 잘못된 장소를 골랐어 같은 소리들로 나타났다고 추정한다.



원제는 시냅스적 자아. 번역자가 좀더 쉽게 지금의 제목으로 바꿔보았다고 한다. 시냅스에도 홀리고, 자아에도 홀렸는데. 치밀하지 못하게 대충 홀린 대가를 치르고 있다. 우선 뭐가 나를 나로 만드는건지를 우리 뇌가 어떻게 우리를 우리로 만드는지로 바꾼다. 그리고 자아를 어떤 것들의 총합으로 정의한다. 그래서 그 어떤 것들과 시냅스가 닿아있는 지점을 풀어가는 중이다.


 신경반응에서의 이런 변화는 조건화된 공포행동의 발달에 선행하며, 신경의 변화가 행동학습을 가져온다는 것을 시사한다. ... 방어조건화는 사람과 동물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그것은 신속히 일어나며(중립적인 자극과 혐오스런 자극을 한 번 결합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래 간다(경우에 따라서는 평생 간다). ...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이 시스템의 정교한 작동 때문에 오히려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조건화는 더 이상 우리 삶에서 활용될 일이 없어도 지워 버리기가 어렵고, 이따금 전혀 해롭지 않은 사물들에 대해서까지 그것을 두려워하도록 조건화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진화의 지혜는 종종 비용을 요구한다. - 5장 시간 속의 모험, 218p


예지몽 말고 공포와 불안의 꿈의 경우에는 트렌드가 있다. 어릴 때는 주로 정체모를 괴물에게 쫓길 때가 많았다. 좀더 자라서는 액션영화같은 데 주인공으로 쫓길 때가 많았다. 요즘은.. 오늘 아침 말고는 보편화할만 기억이 없다. 공포행동의 낌새가 있으면, 경험으로 미리 더 발달시켜놨던 시냅스들이 새로운 상황을 더 집중적으로 학습하게 만든다. 그래도. 어차피 대부분의 지혜는 비용을 요구한다. 내가 움켜쥔 작은 지혜들도 그랬다. 조금이라도 쓸만한 지혜는 그만한 비용을 요구했다. 반대로도 작용했던 것 같다. 큰 비용을 치렀을 때, 더 괜찮은 지혜가 더 깊숙이 심어진 것도 같다.


새삼 

루틴의 힘에 감탄할 수 있어서

인정하기를 인지하기를 인정해서 감사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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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9-03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많이 읽으셨네요~!!엄청난 종합 페이퍼네요~!! 저도 꿈을 가끔 꾸는데 전 전혀 기억이 안나더라구요 ㅜㅜ

link123q34 2021-09-04 08:39   좋아요 1 | URL
새파랑님 감사해요~ 언제나 더 보고 더 쓰고싶은 다들 같은 마음. 꿈은 아마 단잠을 주무셔서 그럴듯해요ㅋㅋ 아우라 재밌게 잘봤어요! (얇기도 해서 더 좋았다는..ㅋㅋ) 쓰게 된 여정을 읽는데 너무 어렵고 혼란해지더라고요.. 덕분에 폭 빠져들고 멈칫멈칫하고 다른 책으로 확장되는 좋은 시간이었어요~
 

어제 치과 치료가 끝났다. 많은 돈과 오랜 치료가 필요할 걸로 기대했지만, 세 번만에 건강한 구강으로 복구됐다. 결과물은 순수한 내 뼈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주변의 내 뼈보다 오래 갈 거라는 이물질과 혼합된 상태다. 이번 치료 이전부터 이미 이물질과 혼합된 상태였지만 그 비율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이제 통증도 없고, 불안도 없다. 더 건강해지고, 더 자신감이 있다. 내 신체에 속했던 것이 상태가 좋을 때에는 외부의 물질과 인식단계에서부터 어떤 관계도 없었다. 어떤 문제 상황이나 결핍이 생겼을 때는 교체해야겠지. 그 앞에서 불안함도 자연스럽다. 교체 이후에는 구성물은 달라도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마음도 마찬가지겠지.


일을 그만두면서 각종 짐들을 차로 한가득 세 번이나 옮겼다. 그러다 차 안이 먼지와 흙과 곰팡이로 범벅이 되어서 청소를 했다. 물티슈로 닦고 발깔개를 털었다. 뒷자리는 쉬웠는데 앞자리는 아무래도 발깔개가 벗겨지질 않았다. 자세히 보니 갈고리같은게 깔개를 고정시키고 있었는데, 그걸 한 방향으로 당겨야만 분리가 됐다. 앉아있는 상태에서는 주로 발을 앞쪽으로 당기는 게 자연스러우니 최첨단 시스템이었다! 뒷자리의 발깔개는 한번 털면 먼지가 나오고, 두번째는 별로 안 나왔다. 앞자리의 발깔개는 한번 털었더니 시커먼 먼지가 나왔다. 스물다섯번까지 털었는데도 흑먼지가 나왔다. 땡볕이 찌는 한낮이라 스물다섯번까지만 털고 그만두었다. 그 상태로도 계속 타고 다녔으니 아직 흑먼지가 차있다고 해도 스물다섯번어치는 제거를 했으니까 아무 문제없다. 


대체 왜 시꺼먼 먼지가 그 얇은 깔개에 저장되어서 스물여섯번 이상을 털어야 깨끗해지게 되었을까? 우선 발깔개 회사의 기술력이 좋아서 인것 같고, 그 다음은 그 지경이 되도록 기술적으로 무심한 나 때문인 것 같다. 그 다음은 코로나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없고, 바빠, 언제나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차는 이동수단이지 다른 존재이유는 없어. 이런 생각도 지배적이었지만, 그 전에는 자주 부모님집에 갔다. 그때마다 나는 낮잠을 자고 뭔가 마미푸드를 먹었고, 아빠는 내 차를 가져가서 기름도 넣고 세차도 하고 발깔개도 털었던 것이구나. 코로나가 시작한 이후로 부모님집에 거의 안 갔고, 가더라도 잠깐 방문하고 바로 돌아왔었다. 시간이 많이 있으면 발깔개를 털고 관리할 수 있다. 차를 쓸 일이 없으면 털지 않을 수도 있다. 발깔개 먼지를 터는 일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알아도 할 수 없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무슨 크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나는 생활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에 몰라싫어만 반복했을까? 그게 뭐라고.


대체 내가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책, 이게 뭐라고.

그래, 내가 뭐관대.



동갑 작가의 세계관을 담은 에세이. <90년생이 온다> 스타일로 다른 세대가 바라본 특정 세대보다 그 세대에 속한 사람이 직접 썼다고 해 관심이 생겼고, 동갑의 기자라니 더 궁금했다. 미덕과 생존, 성공과 윤리. 충돌하는 가치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세계가 되었는지 책을 읽고 정확히 이해는 안되지만 이미 잘 아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주제들과 어쩔 수 없는 대응들에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혼란하기도 했다. 환경 때문인지. 나는 그래서 내가 한 세대의 주류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정확하게 비슷한 점들 때문에 오히려 비주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도 스스로 세대 주류를 대표해서 쓴 게 아니라고 재차 말하긴 한다. 그래도 좋았다. 이런 책과 이야기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 


 나의 일상을 소재로 세대 이야기를, 사회에 대한 생각을 펼쳐나가는 글쓰기는 처음 해보는 시도라 여간 손에 익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자로서 기사에 등장하지 않은 채 제3자로서 쓰는 글에 익숙해 '나'가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에세이 형식을 쓰는 것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민망하다. 대체 내가 뭐라고... -267p



'뭐라고'는 내 마음을 쉽게 여는 주문이라는 걸 몰랐다. 나의 첫 뭐라고는 독립책방에서 만났던 사노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분명히 그래서 눈길을 끌었고 맘에 들었을텐데도 분홍색 표지와 스모 그림을 부담스러워하면서 은밀하게 책을 받아 들고오던 날의 기억과 연결되어있다. 담아주려던 종이가방을 거절하고 아.. 역시 종이가방을 받아올걸 그랬나.. 생각했었다. 책표지가 뭐라고. 호쾌하고 솔직한 일본 할머니의 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많은 택을 붙였다.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밑줄을 하고, 택을 붙인 에세이였는데 가끔 다시 보면 그때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대부분은 같은 밑줄에서 다시 감탄하고, 새로운 밑줄을 더 샅샅이 친다.


 정말로 다들 훌륭하다. 화창한 날씨에 읽고 있자니 우울해 졌다. 어째서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기분이 가라앉는 것일까. 우울해하는 것도 질려서 참았던 오줌을 누러 화장실에 갔다. -아, 일 안 하고 싶다, 61p


 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필요할 때는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 없다. 필요한 건 에너지다. 운전을 하면서 일보다는 절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제 텔레비전에 한 달에 식비 1만 엔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나왔다. 두뇌를 풀가동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그 사람의 냉장고는 대체로 텅 비어 있었다. -아, 일 안 하고 싶다, 66p


책을 읽다 지겨우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오줌도 누고, 다른 책으로 바꿔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는 넉넉하다. 실제로 넉넉하지만 아직도 꼼꼼하게 넉넉하다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스물다섯번 털어둔 발깔개를 밟고 차를 몰고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저장해둔 식료품을 파먹지만, 또 다른 식료품을 저장한다. 점심에는 뭘 해먹고, 저녁에는 뭘 해먹지 고민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고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신이 날 때도 있다. 냉장고와 차장, 식료품재고장은 대체로 가득 차 있다. 아, 일 안 하고 있어서 좋아. 잠시지만. 사는 게 뭐라고.



 요조와 독서 팟캐스트라니 전형적인 조합이네, 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듣기 싫고 보기 싫어했는데. 나는 왜. 항상. 그렇게. 읽어보지도 않고 싫어했을까. 앞으로는. 아마. 어느정도. 깊이 심어놓은 편견들을 조금씩 열어서 펼쳐본 다음 후회하거나, 역시 싫어하려고 한다. 요조와 장강명의 에세이를 한권씩 읽었는데 지나치게 지난 시간을 후회했고, 두 사람의 다른 책이 더 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해서 금방 사라지는 것. 모두 각자 소중한 이유가 있다. 


 마흔 세 살 장강명은 매사가 무의미한 듯한 허무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그래서 나는 책에 집착한다. 읽고 쓸 때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할 감각의 세계를 떠나 의미와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는 그렇게 어린 왕녀를 만나고, 모험을 벌이고, 내 세상을 세운다. 마침내. - 내 인생의 책


 나는 그 작가들이 미래의 독자를 염두에 두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것이 진지하게 읽고 쓰는 사람들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 지금의 상식 대부분을 고작 50년 전 사람들이 들으면 격분할 것이다. 같은 원리로 50년 뒤의 독자들에게 존중받으려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테다. - 하느님 품으로 돌아오는 험버트 험버트와 옛 연인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내가 책을 좋아한 역사는 전형적으로 누구나 하나쯤 있을법한 동시에 나름대로 길고 굴곡지다. 언젠가는 꼭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볼 시간이 있다고 믿고 있다. 몇년 전까지는 책을 주로 읽었던 시기는 책숲에 숨어들었을 때다. 강렬한 태양 밑에 서있을 때는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좀 다른데 선선한 그늘도 자처하고, 세상 자신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상상해왔던 모습 그대로 책숲에 걸어들어왔다. 책, 이게 뭐라고.



미래 시점에서 지금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 참을 수 없게 멋지지. 미래 시점에서 볼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보는 사람도 멋지지. 그래도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까지도 보는 사람은 진짜 멋지지. 어떻게 멋지려고 하는게 그냥 처한 상황일 뿐인데도 후자 쪽이 좀더 멋지게 느껴진다. 그리고 왜 억울하지? 


 과거의 경험으로 판단할 때, 미래의 실험 천체 물리학에서 이루어질 여러 모험들을 통해서도 ①주류 천체 물리학자들은 완전히 옳고, ②우주 탐사선이 결과를 가져올 때까지 어느 학파가 옳은지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③탐사 결과, 훨씬 더 매력적이고 완전히 새로운 근본적인 문제들이 드러날 것임을 알 수 있다. - 우주에서의 실험, 360p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과거 시기에 어떤 한가운데에 있었던 사람이 지금 내 생각이 나중에 틀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걸 나는 칼 세이건의 책에서 처음 봤는데 심하게 멋졌다. 심하게 멋진 것은 다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좀처럼 따라해지지 않는다. 



박완서 선생님 책을 아껴보다가 아끼지 않고 이어서 봤다. 아껴보고 싶은 마음은 사실 두 가지 불안 위에 세워져있다. 이만한 글을 다시 책의 바다에서 언제 찾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는 불안. 조금씩 나눠서 자주 책의 영향권에 속하고 싶지만 한번에 읽어버린다면 이 책의 존재를 쉽게 잊고 지낼 것 같다는 불안. 요즘 계속 끼니마다 맛있는걸 사먹거나 해먹고 있는데, 맛있음이 주는 행복감이 매번 강렬하지는 않다. 어쩔때는 새로 요리를 해서 요리설거지와 먹은설거지가 매끼 생겨서 설거지를 하다보면 그냥 대충 각각 맛있음의 정도마다 삶의 만족감을 느끼는 게 지혜롭겠다고 생각한다. 책도. 그 영향력에 자주 노출되고 싶은 마음은 다음에 해결하자.


 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 생각을 바꾸니, 128p


생각해보면 내가 원해서 그렇게 살아온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는 기분이 든다.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기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어떤 커다란 일들이 생겨난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일들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언제든지. 미래의 어떤 일을 기점으로 일어나기 전과 일어나는 시점, 그 이후. 그 모든 시간대에서 좀더 유연해지면 좋겠다. 그래, 내가 뭐관대. 나에게도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



발깔개 스물여섯번 털기를 멈추고

마스터 초밥왕과 터진 김밥왕이 되고

비온뒤 산책하고 흙이 튄 종아리를 씻고

작은 생활의 면면을 발견하면서 신기해하고 감사한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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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은 미룬지 몇년인지 모르는 치과에 다녀왔다. 집 근처에 세 개의 치과가 있었는데 두 곳은 리뷰가 많고 평이 좋고, 한 곳은 리뷰가 적고 악평이 한개 있었다. 지역상품권이 되는 곳은 리뷰가 적은 쪽 한곳이었다. 일할 때 같았으면 (불가능했지만) 리뷰가 많고 평이 좋은 곳으로 갔겠지만, 여유가 있어서 악평이 한개 있었던 곳으로 갔다. 상태가 심각할 걸로 생각해서 처음에는 검진을 두 곳 정도 받아보고 치료를 할 생각이었다. 가보니 악평을 한 사람의 상황이 이해가 갔는데, 나에게는 나쁘지 않아서 그냥 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치아는 기대에 못 미치게 나빴는데, 결제하고보니 지역상품권 적용이 안되었다. 완벽하게 내가 일하기 전에 살아봤던 방식으로 진행이 돼서 묘한 기분이었다. 


세상을 인식하고 내 안에 적당하게 저장하는 건 내 생각과 마음이 한다. 일을 마치기 전에는 화요일에 근무를 마치고 나면 머리를 잘라야겠다 몇번이나 다짐했다. 막상 집에서 쉬기 시작한 첫 주에는 머리를 자를 필요를 못 느꼈다. 머리가 길던 짧던 의미가 없었다. 그런데 마지막 근무를 서던 화요일에 온종일 머리속에 역시 내일 머리를 잘라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수요일은 치과를 가기로 마음먹었고, 무시무시한 치료강도와 시간이 소요될 것 같은 기대감에 당장 잘라내고 싶지만 목요일에 잘라야 할 것 같았다. 


특별히 하고 싶은 머리는 없고 자른다는 생각만 있어서 귀찮은 마음에 마음속으로 취소를 한 것도 있다. 그런데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보다가 박완서 선생님 정말 멋진 분이네, 안 웃는 사진을 보면 그렇지 않은데 대부분 사진에서 웃고 있는 얼굴을 보면 보는 사람까지 마음이 온화하고 평온해지네 싶었다. 그런 표정과 마음들이 머리를 따라 자른다고 가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행히 사진에 찍힌 선생님의 머리는 사진촬영을 위해 따로 한 머리 같지는 않아서 (실은 꾸안꾸일 수 있다) 쉬울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미용실에서 이렇게 해주세요 하고 이 사진을 꺼내는게 망설여졌다. 이게 누구에요? 제가 좋아하는 작가분이에요. 무슨 책 있어요? ...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은 <그 많던 싱아를~> 한 권 봤는데 너무 오래되어서 대략적인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이야기가 재미있었던 느낌뿐이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선생님 머리를 따라하려면 솔직히 소설 한 권은 다시 읽어야 할 것 같고, 그래도 나목은 읽고 따라해야 하지 않을까? 한참 걸릴 거다. 역시 김하나 작가 사진을 꺼내기로 했다.


누구인지 말할 기회는 없고, 내 머리 상태로는 그 머리는 할 수 없어서 미용실 선생님이 뭐라고 한대로 한다고 했다. 당분간은 집에만 있어서 자르기만 할 생각이었는데 염색도 했다. 염색도 하고, 단발도 하고, 히피펌도 하고, 숏컷도 하고 다 해보네요. ㅎㅎ긴 생머리만 빼고요. 긴 생머리도 한번 했어요. 그때 한번 봤어요. 개인적으로는 그 머리가 제일 잘 어울렸어요. 아~ 맞네요. 세상에 기억력이 좋은 선생님이다. 살면서 외부 저장장치가 흩어져 있는 것도 나쁘지 않다. 머리는 아직 낯설지만 마음에 든다. 결과물이 이상할 때도 있는데 항상 마음에 든다. 아마 대부분 어떤 시간을 종료시키고 싶을 때가 아니면 머리를 하러 안 가기 때문일거다. 놀랍게도 과거의 기특한 내가 선결제해놓은 금액이 많아서 이번 종료식은 공짜였다. 전혀 몰랐다. 그대로 이사갈 뻔 했다.


엄마가 고등어 조림을 줬다. 8도막이 들어있었다. 나는 내장 쪽이 있는 도막은 안 먹고, 동거인은 먹는다. 이번에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동거인도 원래는 내장쪽 도막을 싫어했다고 한다. 나는 먹어보지도 않고, 생긴게 살만 있는 도막과 다르기 때문에 싫어했다. 그래서 나는 안 먹으니까 엄마는 나에게는 안 주고, 동거인에게는 그 도막을 줬다고 한다. 동거인도 처음에는 그 도막이 싫었는데, 막상 먹어보니 일반 살고기 도막보다 살살 녹는 맛있는 부위였다고 한다. 발라내는 게 좀 귀찮지만. 그래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고기 도막은 아빠와 나만 먹고, 살살 녹는 내장쪽 도막은 엄마와 동거인만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 나에게 그 도막이 끝까지 주어지지 않은 데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내가 어릴 때 아침에 믹서에 간 콩물을 먹기 싫어서 이상한 곳에 숨겨두고 유치원에 가버리면 엄마는 가끔 컵을 찾아 헤매다 잊어버렸고, 그 콩물컵은 어딘가에서 썩어서 냄새가 나면 위치가 밝혀지니까. 이상하게 스무살이 되어서부터는 그 따뜻하고 달콤한 콩물이 엄청 먹고 싶었는데, 아마 콩물도 박완서 선생님의 머리같은 거겠지.



<어린이라는 세계> 표지를 보면서 책과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표지를 볼 때마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는 게 책을 볼 준비를 해주고, 본 다음에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림 그린 사람 그림 더 보고싶다 인스타같은거 하겠지? 생각했는데 신간 코너에서 결국 만났다. 마음 귀퉁이가 몽글몽글해지고, 한가운데는 포근포근해진다. 오늘의 단어가 3~6컷 정도의 짧은 만화로 3편 정도 실리고, 짧은 글이 붙는다. 처음에는 그림만 쭉 보면서 정화되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보다보니 단정하고 소박한 글도 좋았다. 사계절로 네 장으로 나눠지는데 여름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았다. 지금이 한참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라 막 휴가를 시작할 때는 불만이 대단했다. 쨍한 한여름쯤은 쉴 걸로 계획했어서.

지금은 한낮에도 너무 덥지 않아서 역시 이래저래 좋다.



여, 여기부터

행, 행복해진다! 

라니!


나는

여, 여기가 끝이려면

행, 행동을 시작할때야.

주문을 외우고 머리를 잘랐는데?


그리고

휴, 휴~ 그동안 참 고생했다

가, 가장자리에서 조금 쉬자

주문을 외운다.


어쨌거나 머리스타일은 둘다 비슷하다.

나도 9월 말쯤에는 대충 한달의 일기같은 게 남겠지.



작가의 말을 보면서 처음으로 소설가 라는 직업 참 멋지다~ 감탄한다. 이렇게 하고싶은 말을 쏙쏙 뭉쳐서 하나의 요소로 집어넣고, 그걸 또 솜씨좋게 섞어서 재미진 전체를 만들고. 역시 배경이 하와이라서 읽기 편했을까 싶다. 작가가 열심히 숨겨뒀다는게 나에게도 비슷한 값어치의 보물이라서 보는 내내 즐겁고 편안했다. 주말 저녁 밥먹고 tv앞에 앉아 보는 가족드라마. 억지스럽지 않고 내 몸에 딱 맞아서 속시원하고 재밌는.


 (웃음) 그러니 여러분, 앞으로의 이십 년을 버텨내세요. 쉬운 일은 아닐 테지만 모퉁이가 찾아오면 과감히 회전하세요. 매일 그리되 관절을 아끼세요. 아, 지금 그 말에 웃는 사람이 있고 심각해지는 사람이 있군요. 벌써 관절이 시큰거리는 사람도 많지요? 관절은 타고나는 부분이 커서 막 써도 평생 쓰는 경우가 있고 아껴 써도 남아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불공평합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모든 면에서 닳아 없어지지 마십시오. - XX미술학부 졸업 축사 녹화본(1995)에서, 229p


모퉁인가 아닌가. 꼭 모퉁이인 것 같은데 진짜 맞나. 에이 아닐거야 아니겠지. 좀더 가야 나올거야. 이 정도면 모퉁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십년을 넘어서 막 과감히 회전을 한 것 같다. 타고난 부분이 다름이야 알고는 있었는데 어쨌거나 총량적으로 보면 인생이 참 공평하다는 것을 작년서부터 느낀다. 네, 어쨌거나 남은 십년도 잘 버텨내고 절대로 닳아 없어지게 가만두지 않을거에요. 모든 면에서.



어떻게 이럴수 있어.. 이런 이야기가 있을수 있어.. 완벽한 이야기인데 그래도 그래서는 안 되는 것도 있다.


 로라는 책을 별로 읽지 않았다. 대신 그림을 베끼거나, 여행과 역사에 관한 두껍고 학구적인 책에 있는 흑백 삽화를 색연필로 색칠했다.(바이올런스 선생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생각하며 로라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 271p


가슴이 철렁. 그래도 그래서는 안돼. 지루해서 그림만 보며 넘길 수도 있지만. 색칠까지 해서는 안된다고.. 야수파적 색감은 상관없지만 책에다 해서는 안된다고. 이 책 1권에서 불만인 부분은 딱 두 가지다. 딱 저부분 한가지와.. 오탈자? 개정판은 사정이 좀 나을까.


이야기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세살 차이인 체이스 자매를 중심으로 보게 된다. 동생이 생겼을 때 첫째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많지 않다. 하지만 둘째는 첫째가 먼저 취하고 남은 전략 중에서 골라야 한다. 내가 본격적으로 다루어보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책이다. 본격적으로 읽는 시간을 가진 것에 충분히 감사한다. 다행스럽게도 마거릿 애트우드 선생님의 첫 작품이다. 아직 남은 이야기가 더 많다. 부커상에도 관심이 생긴다.



요즘 다니는 큰도서관에는 페미니즘 책이 6칸이다. 올해 나온 책들도 몇 권 알아봤다. 대부분 살벌해보이는 와중에 (얇아서) 눈에 띄었다. 꼼꼼하게 다시 쓰고, 생각보다 글씨가 많고, 실루엣만 가득한 그림이 책과 잘 어우러진다. 엘라의 발이 커져서 흐뭇했는데, 실루엣 그림들은 한결같이 마르고 긴 목이었다.


"집에서 나와도 된다고 왜 진작 말해 주지 않으셨어요?"

신데렐라가 물었어. 대모 요정이 말했지.

"다른 애들 돕느라 나도 엄청 바빴거든. 그러다가 너희 집이 어디에 있는지 잊어버렸어. 또 나는 사람들을 도와주지만 그러려면 일단 그 사람이 도움을 청해야 돼. 너는 무도회 날 밤 전에는 도와 달라고 한 적이 없잖아."

(도움이 필요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는 게 좋다는 건 정말 사실이야.)-36p


정말 사실이다. 스스로에게, 남에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려면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인생 총량의 공평함이란 대부분 어떤 각성의 필요조건에 기대고 있다. 


강아지는 사랑이지. 케이크는 직접 근사하게 구워야지!


살살 녹는 고등어뱃살을 먹어보고 감탄하고

여성 작가가 쓴 여성 주인공의 이야기들을 재밌고 편안하게 읽고

끝!을 자꾸 자꾸 기념해서 감사한 며칠.

꺄 아껴보자~~ 신났다가 

날도 짧은데 뭘 얼마나 아껴~~ 그냥 보기로 한 감사한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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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02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링크 님의 한달살이 읽기 팬이 될 것 같습니다!!

link123q34 2021-09-02 19:48   좋아요 0 | URL
이럴수가!! 취지와 맞지 않게 한달을 알차게 써야겠어요ㅋㅋ 감사합니다~~♡
 

화요일은 하루 일을 하고 왔다. 일주일동안 크고 작은 마무리할 일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마지막 일 때문에 그만둔 곳으로 돌아가야해서 쉬면서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화요일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야 온전하게 내장들이 이완하는 게 느껴진다. 별 일은 없었지만, 스스로 이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이름지었구나 싶은 게 느껴진다. 일했던 10년동안 내내 몸과 마음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명상과 요가를 해보기 전에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두기 직전에서야 알았는데 일하는 동안은 심장과 가슴이 딱딱하고 뜨거워지고(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내장과 배는 얼고 뭉쳐진다. 이 똘똘 뭉쳐진 내장을 풀어주는 효과좋은 비법은 작년에 자기계발서 읽기에서 얻었다. 그동안 아무것(실용적이도 효용한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외면했던 것들이었다. 자기 전에 누워서 딱딱한 내장을 가지고 입으로 '감사합니다~'는 소리를 내면 스르르 내장이 풀렸다. 뭐가 감사한지 상관없었다. 주문은 효과가 있었다. 그래봤자 몇시간 뒤 아침에 눈을 뜨면 일하러 갔다. 그런데 화요일 밤 자려고 누웠는데 내장들이 편안하게 같이 누워있었다. 


뜨거운 가슴이나 뭉친 배는 사실 실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또 불편함이 없었던 건 마비된 통각이다. 베거나 까진 상처들이 아프지가 않았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편리한 몸이라서 좋아했다. 아프지 않고 피가 나고 밥을 먹다 눈에 보이면 발견됐다. 저녁에 씻다 물에 닿아도 쓰리지 않아 모를 때가 많았다. 내 눈이나 다른 눈에 띄어 시각적으로 인식하면 그제서야 아픔이 느껴졌다. 통각은 개별적이고 지나치게 주관적이지만 없는 것이기도 하고, 실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세상 눅눅하고 습한 책이나 영화를 보는 일도 얼마나 아무 일도 아닌 일이고, 동시에 참 아픈 일이다. 몸이 점점 참을 수 없을때까지는 언제든 경계태세를 하고 좀처럼 풀지 않아서 사소하고 사소하지 않은 몸의 일들은 모두 의식의 수면 아래에 잠겨있었다. 알아차렸다면 몇겹으로 채운 보호구를 효과적으로 풀어헤치려고 노력했을 텐데 그래본 적이 없어서 수면의 높이를 올리고, 또 올리려고 노력했고 그런 일에는 참 열심으로 다양하게 애썼다.


지난주는 예고된 하루 출근 때문에 뭐든 손에 잡히지 않고, 진득하게 뭘 하기 어려웠는데 책의 신은 참 다정하다. 궁여지책 시즌3는 그림책을 읽는다. 두 사람이 공유해준 추천 그림책주머니에서 두권을 골라 한달에 한번 이야기한다. 몽글몽글해지는 참 반가운 아이디어였는데 코로나로 단축 운영을 해서 도서관에 갈 수 없고, 일일이 사보고 고를 수는 없어서 은근 골치덩이였다. 그러니까 바로 그림책을 달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래도 한달살이 한정으로 뭐든 달리지 마는 시간을 보내보자는 다짐은 매일 아침 하고 있다. 처음으로 큰도서관에 평일 대낮에 가서, 어린이 책 서가에 다녀왔다. 성인 책들도 진열이 신기하게 되어있어 우연을 가장한 책과의 만남을 주선하는게 특징인 큰도서관이다. 어린이서가는 원래 그런건지 여기가 그런건지 알 수 없었는데, 더 작은어린이와 더 큰어린이용 책이 나누어져 있었다. 역시 어린이들의 창의성을 기르려는 목적인지 알 수 없게 책들은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다. 어린이서가에서 헤매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접했다. 안 그래도 흩뿌려져 있는 책들이(실제로는 아마도 질서있게 흩어져있지만, 이용자가 단지 익숙하지 않아 그럴 확률이 높다.) 책등이 얇아 분류기호가 잘 안 보인다.


책의 신은 크게 보면 다정하고, 너무 뜯어보면 혹독하다. 충분히 헤매면서 우연한 즉석만남을 가지면 좋았겠지만, 오래된 선약이 있는 책들만 후딱 챙겨올 생각이었다. 안온한 집에서 표지도 알콜솜으로 한번 닦고, 홍차도 우려서 느긋하게 효과적으로 볼 생각이었다. 에버노트 도서관별 재고 목록의 분류기호 지도에서도 이번에 방문할 곳만을 별표 표시를 해간 나는 (그 도서관 말고 도서관이라는 이데아 자체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타버리고 한 줌의 몸과 마음만 가지고 간 나는) 집에 돌아와서 시간을 보고 황당했다. 그래도 한달간 손목시계는 풀어두었다. 그래도 서둘러서 해야하는 일은 없긴 없다.



두 사람이 나눠준 많은 그림책들 중 아무래도 자기 자신에 대한 책들을 고르게 됐다. 어린거나 그대로 늙은거나 관심사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런 책들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요즘 어린이들이 좀 부러웠다. 좋은 책을 골라낸 목록에서 고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책들이 정말 아름답고 풍성하고 재미있었다. 단순하고 천진해지는 시간이었다. 표지그림은 명장면 중 명장면이었는데, 역시 표지에 실렸다. 실은 책 전체가 명장면 모음집이다. 


"이제 비가 멈출 모양이에요. 먹구름이 저기까지 물러갔어요."

"정말 그렇구나."

고기오는 비가 멈춘 게 기쁘면서도 한편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닭인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51p


고기오는 작은 꼬꼬꼬를 데리고 비를 피하러 동굴에 들어와서 지금 비를 피하고 있기는 하지만, 비가 멈추는 것도 안 멈추는 것도 걱정이다. 내가 닭인지 아닌지 생각해야 하는건지 모르는데 우선 코앞에 닥친 내가 닭인지 아닌지 증명을 어떻게 해내야 할지.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고 너희들도 모르는데 그래도 나를 좋아해주는 너희들을 떠날 수 있을까? 고기오가 두더지들을 떠나온 사건은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습관적으로 이름표를 붙인다. 고기오는 건강한 몸과 충분한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능력, 어떤 감지를 할 수 있는 인지력, 혼자라도 괜찮은 심지가 있어서 진짜 자기가 뭔지 헤매고 다닐 수 있는거야. 그래도 어쨌거나 고기오는 용감하고 멋진 게 맞다! 세상 진실한 용기 앞에서 감동받고 부러워한다. 디테일도 훨씬 더 많고, 담긴 메시지도 훨씬 더 많다. 


그냥님의 씩씩한 고오오오~기이이이~오오오오~~ 떠올라 배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문학상을 좇아 읽는 타입이 아닌데, 이 책을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 상의 전 수상작들도 찾아 보고 싶어졌다. 이이거는 진짜 어린이책 서가에 꽂혀 성인 독자를 소외시킨 명작이다. 글도 그림도 각각 아름답고, 그 조화의 아름다움은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림책을 보며 이렇게 펑펑 눈물을 흘릴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 기습으로 더 당했고, 그만큼 더 좋은 시간이었다. 


크고 큰 외로움과 텅텅 빈 마음과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지는 날. 

겨우겨우 지나가는 날들에 또 또 계속되는 이별.

다시 슬금슬금 다르게 차는 마음.


역시 디테일도 훨씬 더 많고, 담긴 메시지도 훨씬 더 많다. 고기오와 다르고 같은 결말도 충격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그냥님 만세~~



기록한 이후부터 알라딘이 정리해준 걸 보면 사노 요코의 책을 가장 많이 봤다. <사는 게 뭐라고>로 첫 발을 떼었을 때부터 진작 보기로 약속해둔 사노 요코의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처음 봤을 때 못생긴 고양이가 너무 충격이었는데. 솔직해서 심술맞아 보이는 고양이와 동화같지 않은 이야기가 점점 중독된다. 역시나 100만번 처럼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충격적이고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다. 역시 슬프게도 이야기에는 나오지 않는 표지 그림이 가장 명장면이다.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나는 고양이야.

고양이라고!"

고양이의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어요.


숲 속은 조용했어요.

고양이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여느 때와 똑같은 숲이었어요.

나뭇가지에서 작은 새가 노래하고,

나뭇잎 두세 장이 포르르 떨어졌어요.


발 밑에 고양이 고양이의 모자가 떨어져 있었어요.

파이프도 있었죠.

고양이는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입에 물었어요.

여느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어요.


고양이는 또 한 번 숲을 빙 둘러보았어요.

숲은 여느 때와 똑같았고, 고양이도 여느 때와

똑같았어요.

고양이가 벌떡 일어섰어요.

"그럼,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고등어를 먹어 볼까?"

고양이는 다시 산책을 나섰답니다.




마지막 장면이 제일 좋다. 나도 숨을 고르고 숲을 둘러보고 떨어진 내 모자를 주워 쓰고 벌떡 일어나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나는 고양이인가 아닌가 생각하고, 다디단 하루를 보내고, 나는 고양이라고! 역정내면서 아침에 홍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점심엔 오랜만에 홍차를 마시면서 책볼까? 차장과 책장 앞에서 콧노래를 하고, 발을 구른다. 공공의 책장 앞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모래알만 한 경험이라도 어떻게든 써서 뱉아내면 스르르 낫고, 약간은 슬그머니 나아졌던 적이 있다. 

보고 쓰면서 아주 작은 게 조금 살이 붙는 기분이 감사한 며칠.

묻어둔 자아를 살살 캐내면서 슬슬 기뻐해서 감사한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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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1-09-02 11: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긴긴밤 땡스투 들어온다면, 접니다.
:)

link123q34 2021-09-02 19:46   좋아요 0 | URL
꺄 이럴수가 땡스투란 누르는 것인줄만 알았지 뭐에요 감사합니다♡
 














1장 감정과 법


1 감정에 대한 호소

 영미 법률 전통이 감정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와 이런 태도가 암묵적으로 기반하고 있는 감정 개념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감정은 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지배적인 사회규범과도 연관되어 있다. 중요한 이익과 불이익을 가르고, 어떤 혜택과 손해가 중요한지를 가른다. 이 시각에서 세 가지 법이 작동한다. 

①'타당한 도발'에 관한 법 

②정당방위에 관한 법 

③형사범에 대한 양형선고 과정에서 동정심에 대한 호소가 갖는 역할


2 감정과 믿음, 감정과 가치

 감정은 대상이 존재한다. 대상의 존재로 믿음과 평가, 타당성이 발생한다. 믿음은 감정 자체를 구성하는 일부가 된다. 대상에 대한 평가는 대상을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나눈다. 그러니까 특정한 대상에만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 타당성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는 미래에 일어날 일을 평가할 때 중요하고, 진실성과는 다르다. 진실성은 증거와 신뢰성에 관한 문제다.


3 감정, 평가, 그리고 도덕 교육

 감정은 참인지 거짓인지 믿음을 판단 근거로 한다. 그렇다면 감정의 근거가 되는 믿음을 바꾸면 감정을 바꿀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래서 법과 도덕 교육이 중요해진다.


4 감정과 '이성적인 사람': 과실치사와 정당방위

 감정은 사람들의 평가를 포함한다. 법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평가를 유도할 수도 있다. 정당방위로 인한 살인의 경우 완전한 면책 대상이다.(영미법에서) 이것은 타당한 감정을 근거로 한다. 충동적 과실치사의 경우 죄가 경감된다. 이 경우 사람들이 자신이나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특정한 형태의 피해를 입었을 때 분노할 수 있다는 점을 공적으로 인정해주길 원하고, 그런 감정 자체가 적절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5 감정과 변화하는 사회 규범

 감정에 대한 평가는 시대의 지배적인 사회 규범을 반영하기 때문에 달라진다. 간통과 가정폭력에 대한 시각의 변화도 바뀌고 있다.


6 타당한 공감: 양형 선고 과정에서의 동정심

 양형 선고시 동정심은 과정의 일부이다. 동정심이 타당하고 적절하다는 가정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타당한 동정심은 피고인의 권리가 되고, 동정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는 증거를 제시할 권리도 생긴다.


7 감정과 정치적 자유주의

 감정을 평가의 기준으로 두게 되면 법 개념이 자유주의적이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을 기본으로 하고, 자연히 일정 정도 '타당한 불일치'가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에 대한 제한을 쉽게 정당화할 수 있게 된다. 반면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행위를 제약하는 것은 정당화하기가 훨씬 어렵다.


8 감정은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가

 자신의 아이를 죽인 사람을 살해한 부모의 경우 우리는 분노의 '형태'와 '역할'을 평가하게 된다. 분노와 두려움은 법률적으로 적절한 범주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혐오와 (제한된 범위의)수치심은 담고 있는 인지적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혐오와 수치심은 법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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