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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카의 뇌 -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36
칼 세이건 지음, 홍승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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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독자다. 그래도 시험을 위해 줄거리와 주제와 숨겨진 의미를 맞추는 일은 징그럽게 지루했다. 주변의 소설 읽는 사람들에게도 비슷한 말을 듣는다. 하지만 역시 직접 느릿하게 읽는 것은 좋아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 주변의 대부분은 시험 이전에 직접 읽는 맛을 본 독자들이다. 이미 읽는 맛을 아는데 강제로 남이 선별한 글을 읽고 답을 맞추라고 하니 싫은 것이다. 그래서 그 시기를 지나 - 꼭 지나서인 것은 아니다 - 다시 즐겁게 읽는 생활로 자연히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스스로 읽는 맛을 알게 되기 전에 강제로 시험의 재료로만 글을 접했다면? 그 뒤로도 읽기가 싫은 게 자연스러워 보인다. 어떤 특별한 기회가 있다면 사실은 자신이 글읽기, 책읽기에 흥미가 있다는 걸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런 기회가 없다면 달라지지 않는 게 당연해 보인다. 오늘은 다른 이야기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바로 과학이다. 이야기 자리에 과학을 대입해 상상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과학과 과학책이라는 것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우연하게 다시 접하면 본연의 맛을 경험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본연의 맛이라는 게 우리가 주입식으로 외운 것들과 다른 것이라면. 완전하게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 이 가정을 가능한 범위 안에서 확인해본다.



칼 세이건의 <브로카의 뇌>는 1970년대에 다양한 곳에서 있었던 강연 내용과 기고했던 칼럼 원고들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이다. 아인슈타인 평전부터 사이비과학자들, 카바 신전의 성스러운 돌, 외계 지성체까지 한편으로는 생뚱맞아 보이는 이야기거리들이 한데 섞여있다. 과학과 관련된 전문 지식들이 부분적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서문에서 콕 집어 말하는 것처럼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다. 한국에는 먼저 출판되었던 <에덴의 용>에서 인간 지성의 발달사를 다루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칼 세이건이 쓴 뇌과학 고전으로 기대하며 책을 열었다.(표지도 꼭 예쁜 뇌과학 책처럼 생겼다.)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의 뇌과학과 비교해보고 싶었던 야망과는 달리 '과학과 과학스러움에 대하여'라는 부제에 충실한 책이다.

※※※주의. 뇌과학책이 아닙니다.※※※


여러 장에 걸쳐서 사이비과학이나 유사과학에 대해 보여주는 칼 세이건의 태도는 대단히 감동적이다. 그 시작은 사이비과학이나 유사과학이 유행하는 이유다. 우리가 세계의 본질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로서 인기를 끌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사과학의 탄생을 우리들 자신의 욕구 발현의 방법 중 하나로 받아들인다. 다만 합리적인 방법으로 검증되어야 한다는 가정하에. 그리고 비판받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떠도는 수많은 사이비과학들을 어떻게 검증해야 할까? 무려 칼 세이건이 직접 시간을 내어 검증한다! 사이비과학의 가설들을 하나하나 논리구조를 확인하고, 사실을 확인한다. 이런 일들은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다.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꼼꼼하게 말도 안되는 내용들을 격파해나간다. 하지만 분명하게 검증의 시작 부분에서는 이것이 옳을 수도 있는 하나의 가설로 대우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데 이런 모습들이 진짜 과학이라는 태도인가 싶은 것이다.




이게 무슨 우주영화 이야기인가 싶은 부분들도 있다. 행성물리학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물리학이라는 글자만으로도 고개를 돌리고 싶은데, 행성물리학이라는 학문은 더욱 생소하다. 그런데 이 스타워즈 해설서에나 나올법한 행성물리학도 책을 따라 읽다보면 정말 우리에게 닥친 중요한 일처럼 느껴진다는 게 칼 세이건의 마력이다. 행성물리학이란 지구에서 우리가 물질들을 연구하는 것처럼 태양계의 다른 행성들에서도 공기를 조사하고, 지표를 조사하고, 내부를 조사하는 학문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앞으로 지구의 미래를 두고 갈림길에 섰을 때 판단기준과 도구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행성의 현재 상태가 지구처럼 생명체가 있었다가 멸종해버린 상태인건지 - 이런 경우 우리는 지구를 지금보다 더더욱 소중하게 여겨야한다 - , 또 생명체가 존재할 환경이 준비된 상태인건지. 이런 실용적인 이유 말고도 지구라는 행성이 우주의 수많은 행성 중 하나라는 것과 우리 인간도 그 안에서 수많은 생명체 중 하나의 종이라는 확장된 생각은 겸허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런 느낌들은 점점 과학을 한다는 건 이만큼 세상을 깊게 바라보는 일인건가 헷갈리는 것이다.


옆 동네 행정구역 이름도 잘 모르는데.. 밤하늘에 보이지도 않는 소행성 이름 하나 화성의 산맥 이름 하나가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칼 세이건에 따르면 확실한 소용이 있다. 어떤 여행지에 갔다가, 어떤 역사책을 읽다가 지명이나 고유명사를 접할 때 이야기가 있으면 호오거리게 된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지나 남아있는 지명이나 고유명사들이 전부 서양의 백인의 남성 과학자들뿐이라면 어떨까? 만약 미래에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더 넓은 우주를 무대로 생활하게 된다면 그때 남아있는 것은 그 과학자들의 이름 뿐일 것이다. 주류 기득권 범위 안에서 진지하게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모습도 상세하게 보여준다. 시야를 우주로 확장하고 그에 따른 넓은 시선으로 지명 명명에까지 관점을 적용하는 게 과학이 우리의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연결되는 것처럼 느껴져 또 한번 감동이었다.


어떤 챕터를 시작해도 그 감동은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도 그렇다. 앞으로의 과학이 기술의 발달에 따라 이전까지의 연구는 한순간에 뒤집힐 수도 있고, 지금의 주요 논의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을 한 시대의 최고가 하는 모습은 정말 감동 그 자체다. 이런 미래에 대한 태도는 칼 세이건이 여러 장들에서 해왔던 과거의 과학을 들추어보는 작업과 연결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실은 칼 세이건이 했던 여러 분야의 미래에 대한 예측들이 많이 들어맞은 것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코스모스>도 읽지 않은 나는 <브로카의 뇌>가 칼 세이건의 첫 책이다. 신기한 것은 읽다 보면 책 후반부로 갈수록 책에 반하고, 작가에 반해가면서 이야기를 끌어가는대로 기꺼이 휘둘리면서 따라가게 되는 점이다. 분명 책을 읽기 시작했던 초반에는 그래서 이게 대체 무슨 소용이고 나와 무슨 상관이며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 싶었다. 그런데 전혀 무관해보이던 이야기들이 결국 마지막에는 언제나 칼 세이건이 주장대로 바로 우리 시대의 일-30년 후인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더더욱 소중한-이며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아니면 최소한 이 일이 이렇게 중요하고 우리 시대의 어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한번 과학책-사실은 칼세이건의 책-을 읽는 일을 떠올려본다. 체험해본 바로는 그건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중요도를 떠나 하나의 가설로서 진지하게 대우해주는 것을 지켜보는 일이었다. 논리와 증거가 확실하다면 주류의 주장이 전복되는 것이 당연한 유토피아적인 세계를 접하는 일이었다. 또 소금 한톨, 뇌 하나, 벚나무 한 그루, 타이탄, 태양에 이르기까지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이상적이고 단정한 아름다움을 배우는 재미였다. 과알못을 데려다 차근차근 조곤조곤하게 과학이란 지식의 총합이나 결과가 아니고 사실은 이런 거야. 삶을 살아가는 태도이고 사고방식인 거거든. 그래서 이게 무슨 말인 거냐면 봐봐 이렇게 하는 거야. 이런 다정한 가이드를 따라가다 보니 대충 여기가 어딘지 모르게 스며들었고 이런 경험에 대해 글로 써보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궁금하다. 과연 이 책의 뒷부분이 정말 재밌는 이야기를 모아놓은 구성인건지, 아니면 칼세이건에 스며들어 재밌어진건지.


아주 짧은 4쪽의 서문에서 사실 나는 눈물을 찔끔 흘리고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이 문장 때문이었다. 지금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 속도가 정말 빠르다. 발달의 결과물들을 사용하고 혜택을 누리지만, 구체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느낀다. 당장 나는 지금 글을 쓰면서 사용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원리도 모른다. 가끔 궁금할 때는 있다. 아마 여기서 시간이 좀더 흐르면 컴퓨터나 인터넷같은 기술의 존재감 자체에 대해 인식하는 것 자체도 어려워지고, 그래서 어떤 궁금증을 가지는 것도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첨단의 과학과 기술과 인간은 점점 더 분리되어가지 않을까. 그래서 나도 칼 세이건을 따라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어쩌면 약한 의문을 품고 그나마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 미래사회로 내달리는 것 같은 이 독특한 이행기를 살아갈 특권을 가진 세대는 오직 한 세대뿐이다. 바로 우리 자신! 그래서 칼 세이건의 다른 책도, 다른 과학책들도 더 읽어보려한다.

과학책방 갈다의 [칼세이건 살롱 2020] 브로카의뇌 프로그램 참여 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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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된 불평등 - 첨단 기술은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을 분석하고, 감시하고, 처벌하는가
버지니아 유뱅크스 지음, 김영선 옮김, 홍기빈 / 북트리거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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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됐기 때문에 만들어지는 미래

 

 200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당신이 만약 살인을 하려한다면, 살인직전 체포되어 감옥에 수감된다. 범죄예방수사국에 의해 예방되지 않는다면 예정된 살인이 일어나기때문이다. 영화의 배경은 2054년의 워싱턴이다. 영화에서는 최소한 살인이 임박했을 때 예언자에 의해 예고된다. 그런데 지금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1974년부터 아동학대방지및처리법에 따라, 아동 학대와 방치를 예방하고, 조사하고, 기소할 수 있다. 효율적으로 아동학대를 예방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의 앨러게니 카운티에서는 통계모형 AFST를 도입했다. AFST는 앨러게니 가정 선별 도구의 약자로, 이 자동화된 전산시스템을 통해 각 가정을 20개 등급으로 나눠 아동학대 발생률이 높은 가정을 주시한다. 지역의 의료진들, 심리상담사들은 위험해보이는 아동의 발견시 신고가 의무적이다. 주변 이웃들도 어떤 아이가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면 익명으로 신고할 수 있다. 부모가 아동을 학대하거나 학대위험발생률이 높게 예상된다면 기관은 아이를 부모에게서 분리해 안전한 가정에 위탁한다. 아동학대는 한 사람의 인생에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 때문에 이 시스템은 합리적이며 정의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문제는 이 아동학대라는 개념의 범위와 판단이다. 위의 법에서는 아이의 건강 또는 복지가 손상되거나 위협받고 있음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그 아동의 복지에 책임이 있는 사람에 의한, 아동에 대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위해, 성적 학대, 치료 태만, 또는 가혹 행위.” 이 모두를 아동학대라고 말한다. 실제 조사된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신체적 학대나 정서적 학대보다는 방치이다. 여기에는 음식을 충분히 주지 않거나, 위생적인 집을 제공하지 않거나, 아플 때 병원에 데려가지 않거나, 일하느라 아이를 혼자 두는 것이 포함된다. 만약 당신이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양육한다고 가정하자. 돈을 벌기 위해 직장에서 일을 하는 동안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와 혼자 동네에서 놀고 있는 걸 이웃들이 발견하고 신고한다면 아동학대가 된다. 집에 돌아와 밀린 빨래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가 먹을 김치찌개를 끓이는 동안 아이가 마당에 나가있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만약 당신이 흑인이라면 아마 이웃의 백인들은 더 열심히 신고할 것이다. 한 번 신고가 접수되면 기관에서 조사를 하러 나오고, 조사에 협조적이지 않으면 그 자체로 등급의 위험도가 올라간다. 기관에서 조사나온 사람들이 현관에 있는 걸 본 이웃들은 그 집을 더 주시한다. 이 나쁜 되먹임의 모든 기록들은 자동화된 전산시스템에 저장되고, 삭제되지 않는다. 심지어 나의 아이에게도 기록이 남는다. 나의 아이가 자라 꾸린 가정에 대해 위와 같은 신고가 접수된다면, 같은 신고를 당한 기존 기록이 없는 가정보다 높은 위험등급이 매겨진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부모가 되기 전부터 낙인이 찍히는 것이다. 과장하면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아동학대예정자라는 낙인을 사회에서 받는 것이다.


 AFST는 통계모형이기 때문에 사람이 만든 알고리즘에 의해 작동하고, 사람의 편견으로 입력된 데이터를 학습해 시스템을 점점 완벽하게 만든다. 이 자동화된 전산시스템은 쉬지 않고 아동학대를 일으킬 확률이 높은 가정을 추적한다. 작은 실수라도 포착되면 자동화된 나쁜 되먹임의 과정을 거쳐 사회적으로 아동학대범으로 만들어진다. 썩은 사과를 찾으려던 스크리닝 시스템은 기계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으로 썩은 통으로 변신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예정된 살인을 앞두고 주인공은 자기를 죽이려는 살인예정자에게 말한다. ‘당신은 미래를 알고있으니 미래를 선택할 수 있소.’ 자동화된 불평등한 미래를 안다면 우리는 다른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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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쟁까지 -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와 세계의 길 사이에서
가토 요코 지음, 양지연 옮김 / 사계절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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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전쟁을 피할 수 있었던 세 번의 순간

 

일본은 전후 70년이 되는 2015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안보법을 바꾸는 선택을 한다. 필요시 개전을 위한 능동적선택이다. 이번에도 어떤 조건이 되면 개전을 한다는 피동적내용이 포함되어 있을까. 태평양전쟁 이전 10년동안 일본에는 세 번의 선택의 기로가 있었다고 한다. 그 세 번의 선택동안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에게 사실과는 다른 보도를 하고,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됐다는 거짓말을 한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일본 국민들은 아직도 전쟁이후 관련 사실들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느낀다. ‘왜 전쟁까지는 도쿄대 교수 가토 요코가 학교 밖 작은 서점에서 학생들과 역사를 강의했던 내용을 묶은 책이다. 1931년 만주사변부터 1941년 진주만 공습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를 사료를 통해 찾아 풀어냈다.

 

그 첫 번째 분수령은 리튼보고서이다. 리튼보고서는 국제연맹이사회가 만주사변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보낸 조사단이 작성한 보고서다. 당시 일본은 1차 세계대전(1914~1918) 후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었다. 조사단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와 당시 가입국이 아니었던 미국까지 포함됐다. 일본은 만주사변은 만주지역에서 일본의 관동군이 자체적으로 일으킨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리튼보고서는 장제스가 만주사태를 국제사회에 알리면서 조사하게 되었지만 일본을 중국과의 협상테이블에 앉히기 위해 중국보다는 일본에 유리하게 작성됐다. 일본 언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중국 위주로 작성되었다고 국민들에게 말한다. 이후 일본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면서 평화와 전쟁의 갈림길에서 첫 번째 선택을 했다.

 

두 번째 기점은 삼국동맹이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 이탈리아와 동맹을 맺는다. 독일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양국가임에도 일본과 동맹을 맺는다. 역사적으로 군사동맹은 가상의 적국을 위축시키려는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상대를 자극하는 결과를 가져온 때가 많았다. 전쟁에 가장 중요한 석유 비축량이 적어 미국과의 지구전은 불가능하므로 미국을 자극할 수 있는 삼국동맹을 피하자는 의견이 일본 내에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내무성의 언론 보도 지침을 보면 국민에게 정부의 대립을 숨기고 20일만에 동맹을 맺는다. 삼국동맹은 리튼보고서와 반대로 독일이 승기를 잡았을 때 일본이 이익을 보고자 버스에 탔다’. 동맹으로 미래의 석유자원은 확보하고 미국과 전쟁은 피하려던 일본의 바람과는 달리 독일에 의해 미국 견제와 관련한 부분들이 들어가게 된다.

 

세 번째 선택의 순간은 미일교섭이었다. 진주만 사건에 대해 알려진 것 중 하나는 미국이 일본의 암호를 모두 해독했었고, 일본의 공격을 유도해 참전할 구실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실제로는 일본군도 미군의 암호를 대부분 해독하고 있었고, 미국은 일본의 공습도 예측한 건 맞지만 필리핀같은 다른 곳으로 예상하고 있었다고 한다. 진주만 공습으로 미일교섭은 실패로 끝나지만, 두 나라는 각자 진지하게 교섭에 임하고 있었다. 미국은 대서양에서 영국을 위해 물자를 지원하고 있었기에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남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협정을 통해 진주하자 이에 미국이 일본에 대해 전면 금수 조치를 내린다. 이 조치로 일본은 미국의 최종 교섭안을 거절하고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다.

 

당시 국민들에 대해 저자는 교육을 받지 못한 국민이 대부분이었기에 판단할 기회조차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2016년의 강의에서 교수는 전쟁까지의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사료들을 찾아 가르치고, 학생들은 질문한다. 내정자들이 대미교섭이 실패한 것을 알았다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 하고. 교수는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상황을 공유하고 사과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는 올해 5·18 민주화운동 39년이 된다. 지난 2월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망언에 대한 사과와 징계조치 없이 맞이하는 5월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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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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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시바타 쇼가 1964년 서른에 내놓은 소설이다. 흑백사진을 찍듯 그 시절 일본 청춘들의 삶을 담담히 담았다. 청춘은 가슴속에 어떤 모양의 이상이라도 가지기 마련이다. 그 이상의 상실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기에 또 우리 모두 상처받기 쉬운 섬세한 존재이기에 이 소설은 여전히 유효하다. 자신도 20대에 이 소설을 읽었다는 평론가 신형철은 내 인생의 소설로 소개한다.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건 장편의 편지인데, 우편으로 받는 편지도 낯설고 장편의 편지도 낯설다. 희곡의 독백을 대신하며 자기 자신의 내면 깊은 곳까지 드러내는 편지의 내용도 낯설고, 그 낯설음만큼 편지라는 게 그립다.

 

소설은 주인공인 후미오가 헌책방에서 문제의 ‘H전집을 사면서 시작한다. 약혼자인 세쓰코가 책에 찍힌 도장을 알아보고 사노의 행적을 쫓다 자살한 사노가 죽기 전 쓴 편지를 구한다. 긴 편지에는 사노의 행적과 생각들이 모두 담겨있다. 사노의 편지를 읽은 후 후미오와 세쓰코의 관계에 이상전선이 흐른다. 후미오는 전과 다른 듯한 세쓰코에게 자살한 유코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쓰코는 멍하니 혼자 집에 돌아가는 길에 기차역에서 사고를 당하고, 그 사고로 후미오는 세쓰코에게 전에 느끼지 못한 소중한 감정을 느낀다. 몸이 회복되면 결혼해서 후미오의 직장 근처로 같이 가기로 했지만 세쓰코는 편지를 남기고 지방으로 떠난다.

 

사노와 유코는 죽기전 각각 소네와 후미오에게 편지를 남긴다. 사노는 대학교에서 공산주의자로 활동하던 시절 격렬했던 한 시위에서 도망친다. 그 죄책감에 공산당 지하군사조직에 들어간다. 그리고 일본의 공산당 군사조직은 해체된다. 그이후 대학에 돌아와 졸업 후 대기업에 입사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문득 자기 자신이 배신자라는 애써 잊고 있던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노는 결국 죽음을 택한다. 반면 유코는 죽음의 마지막 순간까지 후미오에게 자살한다는 속달 편지를 보내놓고 기다리다 죽음을 맞는다. 후미오는 여자친구와 친구들과 같이 놀러갔던 여행지에서 유코와 관계를 맺었지만, 도쿄에 돌아와 소원해진다. 후미오는 유코의 편지를 읽기전 장례식장에 가면서야 그 죽음이 자신과 관련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사노의 생각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것과 대조적으로 유코의 임신과 낙태는 은유적으로 표현된다. 시대와 공간이 반영되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소설 속 여러 여성인물들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시선은 불편하다.

 

이야기는 후미오의 시선으로 진행되지만 6장에서 세쓰코가 남긴 편지를 통해 또 하나의 시선을 보여준다. 세쓰코의 과거에 대해 묻지 않는 후미오 때문에 독자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직접 말한다. 활달하고 명랑한 소녀였던 세쓰코는 대학생활 동안 열심히 역사연구회 활동을 한다. 그 중 열심히 활동하던 노세라는 청년을 좋아하다 역사연구회도 해체되고, 좋아하던 노세라는 존재에 대한 이상도 깨진다. 체념속에 후미오와 약혼을 하면서 소박한 생활을 꿈꾸기도 하고 격렬한 사랑을 꿈꾸기도 한다. 하지만 사노의 유서를 읽은 뒤로 후미오는 깨닫는다. 후미오와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걸. 후미오가 마침내 결혼 이야기를 할 때 반대로 세쓰코는 후미오를 떠날 것을 결심한다.

 

후미오를 떠나는 세쓰코는 답답한 현실에서 탈출하려는 청춘의 모습을 보여준다. 탈출하고 싶은 욕망은 곧 살고자 하는 욕망이다. 살고자 하는 욕망은 세쓰코를 필요로 한다고 여기는 곳을 필요로 하게 한다. 화려한 성공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기 자신의 생활이란 걸 찾아낼 수 있는지 시험하러 도쿄를 떠난다. 체념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하면서 후미오의 생활에 맞추려 했지만 결국 나 자신의 생활을 찾아나선 세쓰코. 그래서 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아직도우리의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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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 런던에서 아테네까지, 셰익스피어의 450년 자취를 찾아 클래식 클라우드 1
황광수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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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으로 떠나는 셰익스피어 그랜드투어

 

여행은 언제나 설렌다. 좋아하는 책이나 영화, 음악, 음식을 주제로 여행을 간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랜드투어는 옛 귀족의 자제들이 르네상스의 발원지인 이탈리아와 교양의 바다 파리를 위주로 전문 가이드와 함께 떠났던 여행을 말한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1편은 평론가 황광수선생님을 안내자로 셰익스피어의 자취를 따라 여행을 떠난다. 탄생부터 죽기전 130여번 유서를 바꿔쓸 때까지 셰익스피어의 시간을 따라 그의 시간이 머물렀던 공간을 따라 작품 이야기가 나온다. 들른 도시를 대표하는 유명인의 작품 속 셰익스피어도 설명한다.

 

여정은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영국의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에서 시작한다. 셰익스피어가 연기를 하고 극본을 썼던 런던의 셰익스피어 글로브 극장을 거쳐 파리의 유서깊은 서점 셰익스피어앤컴퍼니로 이어진다. 사느냐 죽느냐로 유명한 햄릿왕자의 덴마크 크론보르 성을 지나 독일의 바이마르 괴테하우스에서 괴테가 바라본 셰익스피어의 시도 말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지나 콜로세움이 있는 로마로, 긴 여정은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 끝난다. 편집의 어려움이 있기야 하겠지만 관련된 사진들이 한두페이지가 지나서야 나오는 경우가 많아 조금 아쉬웠다.

 

셰익스피어를 따라가는 여정 중 풀어내는 작품의 수는 기대 이상이다. 직접 인용되는 작품만 스무개가 넘는다. 4대비극 뿐 아니라 다양한 작품이 소개되고, 인용한 부분은 저자가 직접 번역했다고 한다. 언어가 달라 셰익스피어 문학의 아름다움과 재치를 다 이해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아쉬운대로 저자의 설명을 따라 한글로라도 더듬더듬 따라간다. 형태의 아름다움을 다 느낄 순 없지만 현실을 반영하는 인간의 복잡한 심리는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느껴진다. 인간의 솔직한 욕망들과 본성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여서일 것이다. 또 대립하는 수많은 가치들은 어느 하나로 결론나지 않고 그 자체로 생생하게 작품속에서 존재한다. 벤 존슨의 평처럼 셰익스피어의 문학은 한 시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시대를 위해서 존재한다.

 

베네치아를 따라가다 베니스의 상인을 읽는다. 목차에서 보이는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들은 그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했다. 베니스의 상인이라면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는 안토니오를 말한다. 다시읽은 베니스의 상인에서는 변장한 포샤의 통쾌한 판결보다 샤일록의 억울함이 더 절절히 다가온다. 주인공은 안토니오보다는 샤일록과 포샤처럼 보인다. 이 작품은 그당시 유행하던 이야기와 연극작품을 모아서 지었다는 설도 있다.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의 1파운드 살 이야기와 포샤의 배우자를 정하는 세 상자 이야기를 셰익스피어가 섞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유대인 이야기와 베니스의 상인중 유대인 이야기가 삭제되었을 법도 하다.

 

423일은 셰익스피어의 사망일을 기념해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책의 날이다. 올해는 셰익스피어가 사망한지 403년이 된다. 아직까지도 전세계에서 셰익스피어에 관련한 책이 하루에 한권씩 출판되고 있다고 한다. 수많은 작품만큼 셰익스피어가 사랑받는만큼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가 떠돈다. 셰익스피어가 스트랫퍼드에서 런던의 극단에 나타나기까지 행적은 밝혀진 게 없다. 그 기간에 대한 추측과 설도 많다. 너무 많은 작품을 짧은 시간에 썼기 때문에 셰익스피어가 혼자 다 쓴 게 아니라는 설도 있다. 수많은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 중 현장감있는 사진과 함께 풍성하게 작품을 소개해 충분한 길잡이가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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