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치과 치료가 끝났다. 많은 돈과 오랜 치료가 필요할 걸로 기대했지만, 세 번만에 건강한 구강으로 복구됐다. 결과물은 순수한 내 뼈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 주변의 내 뼈보다 오래 갈 거라는 이물질과 혼합된 상태다. 이번 치료 이전부터 이미 이물질과 혼합된 상태였지만 그 비율이 미세하게 올라갔다. 그리고 이제 통증도 없고, 불안도 없다. 더 건강해지고, 더 자신감이 있다. 내 신체에 속했던 것이 상태가 좋을 때에는 외부의 물질과 인식단계에서부터 어떤 관계도 없었다. 어떤 문제 상황이나 결핍이 생겼을 때는 교체해야겠지. 그 앞에서 불안함도 자연스럽다. 교체 이후에는 구성물은 달라도 다른 시간이 펼쳐진다.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겠지만. 마음도 마찬가지겠지.
일을 그만두면서 각종 짐들을 차로 한가득 세 번이나 옮겼다. 그러다 차 안이 먼지와 흙과 곰팡이로 범벅이 되어서 청소를 했다. 물티슈로 닦고 발깔개를 털었다. 뒷자리는 쉬웠는데 앞자리는 아무래도 발깔개가 벗겨지질 않았다. 자세히 보니 갈고리같은게 깔개를 고정시키고 있었는데, 그걸 한 방향으로 당겨야만 분리가 됐다. 앉아있는 상태에서는 주로 발을 앞쪽으로 당기는 게 자연스러우니 최첨단 시스템이었다! 뒷자리의 발깔개는 한번 털면 먼지가 나오고, 두번째는 별로 안 나왔다. 앞자리의 발깔개는 한번 털었더니 시커먼 먼지가 나왔다. 스물다섯번까지 털었는데도 흑먼지가 나왔다. 땡볕이 찌는 한낮이라 스물다섯번까지만 털고 그만두었다. 그 상태로도 계속 타고 다녔으니 아직 흑먼지가 차있다고 해도 스물다섯번어치는 제거를 했으니까 아무 문제없다.
대체 왜 시꺼먼 먼지가 그 얇은 깔개에 저장되어서 스물여섯번 이상을 털어야 깨끗해지게 되었을까? 우선 발깔개 회사의 기술력이 좋아서 인것 같고, 그 다음은 그 지경이 되도록 기술적으로 무심한 나 때문인 것 같다. 그 다음은 코로나 때문이다. 나는 시간이 없고, 바빠, 언제나 더 중요한 일이 있어. 차는 이동수단이지 다른 존재이유는 없어. 이런 생각도 지배적이었지만, 그 전에는 자주 부모님집에 갔다. 그때마다 나는 낮잠을 자고 뭔가 마미푸드를 먹었고, 아빠는 내 차를 가져가서 기름도 넣고 세차도 하고 발깔개도 털었던 것이구나. 코로나가 시작한 이후로 부모님집에 거의 안 갔고, 가더라도 잠깐 방문하고 바로 돌아왔었다. 시간이 많이 있으면 발깔개를 털고 관리할 수 있다. 차를 쓸 일이 없으면 털지 않을 수도 있다. 발깔개 먼지를 터는 일이 존재한다는 걸 모르고, 알아도 할 수 없는 것과는 아주 다르다. 무슨 크고 중요한 일이 있다고 나는 생활의 모든 크고 작은 일들에 몰라싫어만 반복했을까? 그게 뭐라고.
대체 내가 뭐라고.
사는 게 뭐라고.
책, 이게 뭐라고.
그래, 내가 뭐관대.

동갑 작가의 세계관을 담은 에세이. <90년생이 온다> 스타일로 다른 세대가 바라본 특정 세대보다 그 세대에 속한 사람이 직접 썼다고 해 관심이 생겼고, 동갑의 기자라니 더 궁금했다. 미덕과 생존, 성공과 윤리. 충돌하는 가치들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세계가 되었는지 책을 읽고 정확히 이해는 안되지만 이미 잘 아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주제들과 어쩔 수 없는 대응들에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서 혼란하기도 했다. 환경 때문인지. 나는 그래서 내가 한 세대의 주류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정확하게 비슷한 점들 때문에 오히려 비주류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작가도 스스로 세대 주류를 대표해서 쓴 게 아니라고 재차 말하긴 한다. 그래도 좋았다. 이런 책과 이야기들이 더 많으면 좋겠다.
나의 일상을 소재로 세대 이야기를, 사회에 대한 생각을 펼쳐나가는 글쓰기는 처음 해보는 시도라 여간 손에 익지 않았다. 무엇보다 기자로서 기사에 등장하지 않은 채 제3자로서 쓰는 글에 익숙해 '나'가 이렇게 많이 등장하는 에세이 형식을 쓰는 것 자체가 어딘지 모르게 민망하다. 대체 내가 뭐라고... -267p

'뭐라고'는 내 마음을 쉽게 여는 주문이라는 걸 몰랐다. 나의 첫 뭐라고는 독립책방에서 만났던 사노요코의 <사는 게 뭐라고>. 분명히 그래서 눈길을 끌었고 맘에 들었을텐데도 분홍색 표지와 스모 그림을 부담스러워하면서 은밀하게 책을 받아 들고오던 날의 기억과 연결되어있다. 담아주려던 종이가방을 거절하고 아.. 역시 종이가방을 받아올걸 그랬나.. 생각했었다. 책표지가 뭐라고. 호쾌하고 솔직한 일본 할머니의 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고, 많은 택을 붙였다.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밑줄을 하고, 택을 붙인 에세이였는데 가끔 다시 보면 그때 좀 과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대부분은 같은 밑줄에서 다시 감탄하고, 새로운 밑줄을 더 샅샅이 친다.
정말로 다들 훌륭하다. 화창한 날씨에 읽고 있자니 우울해 졌다. 어째서 훌륭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기분이 가라앉는 것일까. 우울해하는 것도 질려서 참았던 오줌을 누러 화장실에 갔다. -아, 일 안 하고 싶다, 61p
돈이 필요할 때도 있었다. 필요할 때는 필요한 물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필요한 물건이 없다. 필요한 건 에너지다. 운전을 하면서 일보다는 절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어제 텔레비전에 한 달에 식비 1만 엔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나왔다. 두뇌를 풀가동하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다. 그 사람의 냉장고는 대체로 텅 비어 있었다. -아, 일 안 하고 싶다, 66p
책을 읽다 지겨우면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오줌도 누고, 다른 책으로 바꿔 읽으며 하루를 보낸다.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는 넉넉하다. 실제로 넉넉하지만 아직도 꼼꼼하게 넉넉하다는 주문을 외우고 있다. 스물다섯번 털어둔 발깔개를 밟고 차를 몰고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저장해둔 식료품을 파먹지만, 또 다른 식료품을 저장한다. 점심에는 뭘 해먹고, 저녁에는 뭘 해먹지 고민하는 게 귀찮을 때도 있고 아침에 눈을 뜰 때부터 신이 날 때도 있다. 냉장고와 차장, 식료품재고장은 대체로 가득 차 있다. 아, 일 안 하고 있어서 좋아. 잠시지만. 사는 게 뭐라고.

요조와 독서 팟캐스트라니 전형적인 조합이네, 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듣기 싫고 보기 싫어했는데. 나는 왜. 항상. 그렇게. 읽어보지도 않고 싫어했을까. 앞으로는. 아마. 어느정도. 깊이 심어놓은 편견들을 조금씩 열어서 펼쳐본 다음 후회하거나, 역시 싫어하려고 한다. 요조와 장강명의 에세이를 한권씩 읽었는데 지나치게 지난 시간을 후회했고, 두 사람의 다른 책이 더 보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과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해서 금방 사라지는 것. 모두 각자 소중한 이유가 있다.
마흔 세 살 장강명은 매사가 무의미한 듯한 허무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 발버둥친다. 그래서 나는 책에 집착한다. 읽고 쓸 때에는 아무것도 남지 못할 감각의 세계를 떠나 의미와 영원의 세계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나는 그렇게 어린 왕녀를 만나고, 모험을 벌이고, 내 세상을 세운다. 마침내. - 내 인생의 책
나는 그 작가들이 미래의 독자를 염두에 두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것이 진지하게 읽고 쓰는 사람들의 논리적 귀결이라고 생각한다. ... 지금의 상식 대부분을 고작 50년 전 사람들이 들으면 격분할 것이다. 같은 원리로 50년 뒤의 독자들에게 존중받으려면 우리 시대의 사람들 다수를 불편하게 만들어야 할 테다. - 하느님 품으로 돌아오는 험버트 험버트와 옛 연인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내가 책을 좋아한 역사는 전형적으로 누구나 하나쯤 있을법한 동시에 나름대로 길고 굴곡지다. 언젠가는 꼭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볼 시간이 있다고 믿고 있다. 몇년 전까지는 책을 주로 읽었던 시기는 책숲에 숨어들었을 때다. 강렬한 태양 밑에 서있을 때는 거의 읽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좀 다른데 선선한 그늘도 자처하고, 세상 자신있고 행복한 마음으로 상상해왔던 모습 그대로 책숲에 걸어들어왔다. 책, 이게 뭐라고.
미래 시점에서 지금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 참을 수 없게 멋지지. 미래 시점에서 볼 수밖에 없어서 그렇게 보는 사람도 멋지지. 그래도 그렇게 보지 않아도 되는데 그렇게까지도 보는 사람은 진짜 멋지지. 어떻게 멋지려고 하는게 그냥 처한 상황일 뿐인데도 후자 쪽이 좀더 멋지게 느껴진다. 그리고 왜 억울하지?
과거의 경험으로 판단할 때, 미래의 실험 천체 물리학에서 이루어질 여러 모험들을 통해서도 ①주류 천체 물리학자들은 완전히 옳고, ②우주 탐사선이 결과를 가져올 때까지 어느 학파가 옳은지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으며, ③탐사 결과, 훨씬 더 매력적이고 완전히 새로운 근본적인 문제들이 드러날 것임을 알 수 있다. - 우주에서의 실험, 360p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과거 시기에 어떤 한가운데에 있었던 사람이 지금 내 생각이 나중에 틀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걸 나는 칼 세이건의 책에서 처음 봤는데 심하게 멋졌다. 심하게 멋진 것은 다 따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좀처럼 따라해지지 않는다.

박완서 선생님 책을 아껴보다가 아끼지 않고 이어서 봤다. 아껴보고 싶은 마음은 사실 두 가지 불안 위에 세워져있다. 이만한 글을 다시 책의 바다에서 언제 찾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다는 불안. 조금씩 나눠서 자주 책의 영향권에 속하고 싶지만 한번에 읽어버린다면 이 책의 존재를 쉽게 잊고 지낼 것 같다는 불안. 요즘 계속 끼니마다 맛있는걸 사먹거나 해먹고 있는데, 맛있음이 주는 행복감이 매번 강렬하지는 않다. 어쩔때는 새로 요리를 해서 요리설거지와 먹은설거지가 매끼 생겨서 설거지를 하다보면 그냥 대충 각각 맛있음의 정도마다 삶의 만족감을 느끼는 게 지혜롭겠다고 생각한다. 책도. 그 영향력에 자주 노출되고 싶은 마음은 다음에 해결하자.
그때 만난 어떤 수녀님이 이상하다는 듯이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당신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이었다. 그래, 내가 뭐관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을 나에게만은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여긴 것일까. 그거야말로 터무니없는 교만이 아니었을까. - 생각을 바꾸니, 128p
생각해보면 내가 원해서 그렇게 살아온 것 같지만, 그렇지만도 않다는 기분이 든다. 정말 많은 사람들과 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기분.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많은 사람들에게 갑자기 어떤 커다란 일들이 생겨난다. 자기 생각과 다른 일들이. 나에게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언제든지. 미래의 어떤 일을 기점으로 일어나기 전과 일어나는 시점, 그 이후. 그 모든 시간대에서 좀더 유연해지면 좋겠다. 그래, 내가 뭐관대. 나에게도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날 수 있지.
발깔개 스물여섯번 털기를 멈추고
마스터 초밥왕과 터진 김밥왕이 되고
비온뒤 산책하고 흙이 튄 종아리를 씻고
작은 생활의 면면을 발견하면서 신기해하고 감사한 며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