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일은 하루 일을 하고 왔다. 일주일동안 크고 작은 마무리할 일들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마지막 일 때문에 그만둔 곳으로 돌아가야해서 쉬면서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화요일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야 온전하게 내장들이 이완하는 게 느껴진다. 별 일은 없었지만, 스스로 이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고 이름지었구나 싶은 게 느껴진다. 일했던 10년동안 내내 몸과 마음이 긴장하고 있었는데, 명상과 요가를 해보기 전에는 그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만두기 직전에서야 알았는데 일하는 동안은 심장과 가슴이 딱딱하고 뜨거워지고(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내장과 배는 얼고 뭉쳐진다. 이 똘똘 뭉쳐진 내장을 풀어주는 효과좋은 비법은 작년에 자기계발서 읽기에서 얻었다. 그동안 아무것(실용적이도 효용한것)도 아니라고 무시하고 외면했던 것들이었다. 자기 전에 누워서 딱딱한 내장을 가지고 입으로 '감사합니다~'는 소리를 내면 스르르 내장이 풀렸다. 뭐가 감사한지 상관없었다. 주문은 효과가 있었다. 그래봤자 몇시간 뒤 아침에 눈을 뜨면 일하러 갔다. 그런데 화요일 밤 자려고 누웠는데 내장들이 편안하게 같이 누워있었다.
뜨거운 가슴이나 뭉친 배는 사실 실생활에 불편함은 없었다. 또 불편함이 없었던 건 마비된 통각이다. 베거나 까진 상처들이 아프지가 않았다. 오히려 실용적이고 편리한 몸이라서 좋아했다. 아프지 않고 피가 나고 밥을 먹다 눈에 보이면 발견됐다. 저녁에 씻다 물에 닿아도 쓰리지 않아 모를 때가 많았다. 내 눈이나 다른 눈에 띄어 시각적으로 인식하면 그제서야 아픔이 느껴졌다. 통각은 개별적이고 지나치게 주관적이지만 없는 것이기도 하고, 실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세상 눅눅하고 습한 책이나 영화를 보는 일도 얼마나 아무 일도 아닌 일이고, 동시에 참 아픈 일이다. 몸이 점점 참을 수 없을때까지는 언제든 경계태세를 하고 좀처럼 풀지 않아서 사소하고 사소하지 않은 몸의 일들은 모두 의식의 수면 아래에 잠겨있었다. 알아차렸다면 몇겹으로 채운 보호구를 효과적으로 풀어헤치려고 노력했을 텐데 그래본 적이 없어서 수면의 높이를 올리고, 또 올리려고 노력했고 그런 일에는 참 열심으로 다양하게 애썼다.
지난주는 예고된 하루 출근 때문에 뭐든 손에 잡히지 않고, 진득하게 뭘 하기 어려웠는데 책의 신은 참 다정하다. 궁여지책 시즌3는 그림책을 읽는다. 두 사람이 공유해준 추천 그림책주머니에서 두권을 골라 한달에 한번 이야기한다. 몽글몽글해지는 참 반가운 아이디어였는데 코로나로 단축 운영을 해서 도서관에 갈 수 없고, 일일이 사보고 고를 수는 없어서 은근 골치덩이였다. 그러니까 바로 그림책을 달릴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래도 한달살이 한정으로 뭐든 달리지 마는 시간을 보내보자는 다짐은 매일 아침 하고 있다. 처음으로 큰도서관에 평일 대낮에 가서, 어린이 책 서가에 다녀왔다. 성인 책들도 진열이 신기하게 되어있어 우연을 가장한 책과의 만남을 주선하는게 특징인 큰도서관이다. 어린이서가는 원래 그런건지 여기가 그런건지 알 수 없었는데, 더 작은어린이와 더 큰어린이용 책이 나누어져 있었다. 역시 어린이들의 창의성을 기르려는 목적인지 알 수 없게 책들은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다. 어린이서가에서 헤매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접했다. 안 그래도 흩뿌려져 있는 책들이(실제로는 아마도 질서있게 흩어져있지만, 이용자가 단지 익숙하지 않아 그럴 확률이 높다.) 책등이 얇아 분류기호가 잘 안 보인다.
책의 신은 크게 보면 다정하고, 너무 뜯어보면 혹독하다. 충분히 헤매면서 우연한 즉석만남을 가지면 좋았겠지만, 오래된 선약이 있는 책들만 후딱 챙겨올 생각이었다. 안온한 집에서 표지도 알콜솜으로 한번 닦고, 홍차도 우려서 느긋하게 효과적으로 볼 생각이었다. 에버노트 도서관별 재고 목록의 분류기호 지도에서도 이번에 방문할 곳만을 별표 표시를 해간 나는 (그 도서관 말고 도서관이라는 이데아 자체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나는) (타버리고 한 줌의 몸과 마음만 가지고 간 나는) 집에 돌아와서 시간을 보고 황당했다. 그래도 한달간 손목시계는 풀어두었다. 그래도 서둘러서 해야하는 일은 없긴 없다.

두 사람이 나눠준 많은 그림책들 중 아무래도 자기 자신에 대한 책들을 고르게 됐다. 어린거나 그대로 늙은거나 관심사는 비슷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렸을 때 그런 책들이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요즘 어린이들이 좀 부러웠다. 좋은 책을 골라낸 목록에서 고르니 그렇기도 하겠지만, 책들이 정말 아름답고 풍성하고 재미있었다. 단순하고 천진해지는 시간이었다. 표지그림은 명장면 중 명장면이었는데, 역시 표지에 실렸다. 실은 책 전체가 명장면 모음집이다.
"이제 비가 멈출 모양이에요. 먹구름이 저기까지 물러갔어요."
"정말 그렇구나."
고기오는 비가 멈춘 게 기쁘면서도 한편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닭인 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거든요.
-51p
고기오는 작은 꼬꼬꼬를 데리고 비를 피하러 동굴에 들어와서 지금 비를 피하고 있기는 하지만, 비가 멈추는 것도 안 멈추는 것도 걱정이다. 내가 닭인지 아닌지 생각해야 하는건지 모르는데 우선 코앞에 닥친 내가 닭인지 아닌지 증명을 어떻게 해내야 할지.

내가 누군지 나도 모르고 너희들도 모르는데 그래도 나를 좋아해주는 너희들을 떠날 수 있을까? 고기오가 두더지들을 떠나온 사건은 상상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습관적으로 이름표를 붙인다. 고기오는 건강한 몸과 충분한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능력, 어떤 감지를 할 수 있는 인지력, 혼자라도 괜찮은 심지가 있어서 진짜 자기가 뭔지 헤매고 다닐 수 있는거야. 그래도 어쨌거나 고기오는 용감하고 멋진 게 맞다! 세상 진실한 용기 앞에서 감동받고 부러워한다. 디테일도 훨씬 더 많고, 담긴 메시지도 훨씬 더 많다.
그냥님의 씩씩한 고오오오~기이이이~오오오오~~ 떠올라 배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문학상을 좇아 읽는 타입이 아닌데, 이 책을 읽고는 생각이 바뀌었다. 이 상의 전 수상작들도 찾아 보고 싶어졌다. 이이거는 진짜 어린이책 서가에 꽂혀 성인 독자를 소외시킨 명작이다. 글도 그림도 각각 아름답고, 그 조화의 아름다움은 말을 잇지 못한다. 그림책을 보며 이렇게 펑펑 눈물을 흘릴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 기습으로 더 당했고, 그만큼 더 좋은 시간이었다.
크고 큰 외로움과 텅텅 빈 마음과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지는 날.
겨우겨우 지나가는 날들에 또 또 계속되는 이별.
다시 슬금슬금 다르게 차는 마음.
역시 디테일도 훨씬 더 많고, 담긴 메시지도 훨씬 더 많다. 고기오와 다르고 같은 결말도 충격적인 아름다움이었다. 그냥님 만세~~

기록한 이후부터 알라딘이 정리해준 걸 보면 사노 요코의 책을 가장 많이 봤다. <사는 게 뭐라고>로 첫 발을 떼었을 때부터 진작 보기로 약속해둔 사노 요코의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를 처음 봤을 때 못생긴 고양이가 너무 충격이었는데. 솔직해서 심술맞아 보이는 고양이와 동화같지 않은 이야기가 점점 중독된다. 역시나 100만번 처럼 어린이들이 보기에는 충격적이고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은 이야기다. 역시 슬프게도 이야기에는 나오지 않는 표지 그림이 가장 명장면이다.
"나더러 어쩌란 말이야? 나는 고양이야.
고양이라고!"
고양이의 헉헉거리는 숨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졌어요.
숲 속은 조용했어요.
고양이는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여느 때와 똑같은 숲이었어요.
나뭇가지에서 작은 새가 노래하고,
나뭇잎 두세 장이 포르르 떨어졌어요.
발 밑에 고양이 고양이의 모자가 떨어져 있었어요.
파이프도 있었죠.
고양이는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입에 물었어요.
여느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어요.
고양이는 또 한 번 숲을 빙 둘러보았어요.
숲은 여느 때와 똑같았고, 고양이도 여느 때와
똑같았어요.
고양이가 벌떡 일어섰어요.
"그럼, 오늘 저녁엔 오랜만에 고등어를 먹어 볼까?"
고양이는 다시 산책을 나섰답니다.

마지막 장면이 제일 좋다. 나도 숨을 고르고 숲을 둘러보고 떨어진 내 모자를 주워 쓰고 벌떡 일어나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고 있다. 나는 고양이인가 아닌가 생각하고, 다디단 하루를 보내고, 나는 고양이라고! 역정내면서 아침에 홍차를 마시면서 책을 보고, 점심엔 오랜만에 홍차를 마시면서 책볼까? 차장과 책장 앞에서 콧노래를 하고, 발을 구른다. 공공의 책장 앞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모래알만 한 경험이라도 어떻게든 써서 뱉아내면 스르르 낫고, 약간은 슬그머니 나아졌던 적이 있다.
보고 쓰면서 아주 작은 게 조금 살이 붙는 기분이 감사한 며칠.
묻어둔 자아를 살살 캐내면서 슬슬 기뻐해서 감사한 며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