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돌아보기. 피드백해서 잘 적용하고 수정해서 24년을 더 잘 보내보기 위해서.
시작할 때 급하게 준비없이 진입해서 우왕좌왕했지만 새롭게 열심히 보냈던 한 해였다. 구체적인 목표나 계획없이 시간들이 흘러갔지만 좌충우돌하는 와중에 마음 속에 있던 중요한 일들은 차분하게 진행을 시켰던 해였고. 최근 5년중 가장 책을 못 읽었던 해였고. 새로운 장난감을 찾아 행복에 빠졌고. 몸상태는 최근 5년중 역대급으로 가장 엉망이었다. 멀리 있는 중요한 사람들과 1번은 소통을 했고, 새로 사귄 친구는 0명. 중간 중간 정리하면서 피드백할 시간을 못 가졌는데 계속 필요는 크게 느껴서 그 점이 힘들었다.
내 1년이란, 분기란, 한달이란, 한주란, 하루란, 시간이란 뻔한 카테고리 구성이다. 일, 투자, 독서, 관심사, 건강, 관계가 전부. 거기에 주요 카테고리에 시간과 에너지의 80% 이상이 집중되는 것도 정해진 구성.
먼저 일부터. 올해 가장 큰 키워드는 복직이었다. 가장 중요한 목표도 드디어 일과 투자를 자연스럽게 병행하는 단계로 올리는 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가장 중요한 목표는 대차게 실패했다. 1분기, 넉넉잡아 2분기까지 안정적으로 복직을 하고, 3분기부터는 원활하게 병행하고자 했었다. 실제로는 1분기가 끝날 때쯤 일하는 나 자신이라는 자아는 안정이 됐는데, 직장 상황이 불안정한 상태가 계속되면서 에너지 소모가 너무 많았다.
또 2분기까지 여유있게 잡았던 복직 일정에는 사실 일적으로 더 하고 싶은 공부들을 마무리지으려는 생각도 있었는데, 공부할 시간과 에너지를 업무시간에 다 써버리고 탈진 상태로 집에 오니 골든 타임이 지나갔다. 그런데 지금 내 상황에서 필수적인 공부는 아니고 그냥 커리어를 마무리지을 때를 생각하며 정리하고 싶었던 거라 추가로 시간을 더 할애할 수는 없다. 이 부분이 가장 아쉽다. 하지만 이건 더 중요한 일들이 진행되고 나면 언제든 할 수 있는 공부다. 자아감에 중요한 부분이지만 시급하지 않은 공부. 여기까지가 올해 내가 실패했던 것.
하지만 어떤 이유라도 결국 내 시간과 에너지를 진심으로 때려넣은 곳에는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경험과 경험치가 선물로 숨겨져 있다.
올해 새로 일하게 된 곳은 내가 처음 일해보는 타입이었다. 이제까지는 두 가지였는데, 사장님과 나 둘이서 일하거나(물론 도와주는 샘들은 계시지만) 아니면 내가 사장이거나. 내가 들어갔을 때는 연중 가장 바쁜 시기이면서 기존에 사장님 외 2명이 같이 일하는 구조인데 모두 공석이었던 상황. 내가 1번 자리를 빠르게 채우고 2번 자리가 한달반 동안 구해지질 않았다. 그리고 2명이서 일할 때보다 규모가 커진 상황. 한달반만에 온 2번 자리 T샘은 하루만에 퇴사를 고민하다 10일만에 퇴근후 카톡으로 당일 퇴사했다. 그리고 다시 3월 한달간 혼자서. 4월에 온 Y샘은 4개월만에 퇴사를 정하고 한달뒤 퇴사했다. 그런데 원래 상대적 비수기인 여름 시즌부터 바빠지면서 매출이 한단계 점프했다. 다행히 9월에 온 B샘이 지금까지 같이 일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10월 중순인가 온 J샘이 같이 일하고 있고. 그런데 겨울로 진입하면서 매출이 한번더 퀀텀점프하면서.. 실상 4번 샘, 최소 3.5번 샘이 필요한 상황인데 최악의 구인시기로 사람이 구해지질 않는다. 아무튼 그래서 겨우 최소한의 인력은 안정이 됐는데, 그것보다 빠르게 매출이 늘어나면서 밑빠진 독에 물붓기 상태.
아무튼 나는 처음 경험해보는 동료가 있는 직장이라니?! 너무 기대하고 신났었는데. 파트타임 샘과 하루만에 퇴사한 샘들을 제외하고 정규 샘들만 보면 T샘은 1년차, Y샘은 신입, B샘은 4년차인데 여기 타입은 3개월차, J샘은 군대에서 막 돌아온 신입샘이었다. 신입 샘들을 보면서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내 신규 시절 생각이 많이 났었다. 그리고 천둥벌거숭이 시절 생떼같은 나를 같은 일을 시작한다는 이유만으로 환대하고 뭐든 가르치고 귀하게 여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셨던 고마운 분들을 떠올렸다. 일적으로 나를 키워준 샘들에게는 내가 갚을 것이 별로 없다. 이미 삶에서 많은 것들을 이루셔서. 내가 나로 잘 살아가는 모습을 가끔 전해드리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그래서 내가 가지게 됐던 소중한 직업에서의 원칙 중 하나는 신규 샘들에게 내가 받았던 호의와 다정을 전달하는 거다. 10년을 채울 때까지 그런 일이 실제로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그런데 올해 그 기회가 폭우처럼 쏟아졌다. 갑자기.
왜냐면 지금 사장님이 일적으로는 좋은데 약간의 성격장애가 있다. 워낙 작은 공간이다보니 경험이 많지 않은 신입 샘들에게 힘든 부분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지금 새로운 샘이 오신다 해도 같은 문제를 겪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 경험이 많지 않다 일적으로 괜찮은 곳이라는 판단을 하기 쉽지 않았을 거고, 성격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더 감정적으로 크게 느껴졌을 것.
여기 와서 새로운 사람을 이해하는데 MBTI가 생각보다 유용한 도구라는 걸 알게 돼서 관심이 커졌다. 들어오면서 한시간반동안 면접을 보면서 MBTI를 물어봐서 여기는 되게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내가 들어갈 당시 사장님과 S샘과 나 전원이 T성향이었던 것. 나는 너무 편했다. 처음으로 들어온 T월드에서 나만 이상하게 여겨졌던 지점들이 당연한 지점이 되면서 만족감이 높았다. 이후에 사장님과 퇴사자들에 대해 얘기하다가 내 가정을 듣고 확인해보니 이제까지 큰 갈등을 빚고 퇴사한 사람들이 전부 F타입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물론 T타입이라고 사장님의 그 성격장애 부분이 편안한 건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F타입이 일적인 부분과 감정적인 부분을 더 동일시하고 영향을 크게 받으면서 더 힘들게 느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같이 하는 B샘과 J샘은 F타입이긴 하다. 두 분이 반복되는 퇴사위기를 넘어 같이 일하는 이유는 좀 다르지만. 어쨌거나.
정서적으로 힘들어했던 T샘과 Y샘에게는 특히 더 애정을 쏟았는데. 왜냐면 내가 처음으로 받은 신규 샘들이었기 때문에. 그동안 다져왔던 원칙을 펼쳐볼 기회가 처음 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필요이상으로 에너지 소모를 너무 많이 했고, 퇴사 당시에도 타격감이 정말 컸다. 그 두 샘들에게 T인 내가 했던 일들은
- 눈치가 없어서 힘든지 안 힘든지 파악이 되지 않기 때문에 계속 물어보고 체크하는 것.
- 내가 물어볼 때 솔직하게 나에게 얘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편안하고 의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이 부분이 가장 익숙하지 않아서 힘들었던 부분.)
- 모르는 게 창피하거나 물어보는 게 힘들어서 묻지 못할까봐 업무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묻기 전에 먼저 처음부터 차근차근 알려주는 것.
- 크지 않은 실수는 덮어주고 격려하는 것.
- 큰 실수는 내가 사전에 예방하지 못했음을 알려주고 후처리를 하고 다음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
- 얼마나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칭찬하는 것.
- 지금 직장에서 업무 규칙들을 알려주면서 동시에 이 카테고리에서 있을 수 있는 다른 직장의 규칙들도 같이 알려주는 것. 그리고 지금 업무 규칙이 어떤 의미인지 왜 이런 규칙을 세우는지 이 규칙을 지키지 못하면 어떤 일이 생길 수 있는지 설명해주는 것. 또 그 경우 어떻게 후처리해야 하는지까지.
- 그리고 지금 여기 규칙들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어떤 관점이고,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규칙은 어떤 건지. 그리고 내가 구현하고 실험해봤던 이상적인 규칙들은 실제로 적용했을 때 어떤 점이 장점이었고, 단점이었는지. 내 주변에 다른 규칙을 가진 샘들은 어떤지. 스스로 직업관을 형성해가는데 시행착오를 덜했으면 해서. 그런 고민의 시간들이 한 명의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하기 때문에.
- 그래서 지금 여기 장점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 앞으로 어떻게 공부해가면 좋은지. 공부하다 빠질 수 있는 함정들과 시기와 중요성에 따라 우선순위를 두고 공부해야 할 것과 좀더 나중에 공부해도 되는 것 구분해주는 것.
- 힘든 점에 대해 공유한 부분은 내 선에서 최대한 예방하거나 막을 수 있는 부분은 범퍼 역할을 하고, 불가능한 부분은 사장님과 얘기해서 조정하기.
- 사회 초년생일때 내 경험과 상황에 맞춤함 돈에 관한 조언.
이 모든 걸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필요를 느끼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판단할 수 없어서 언니와 의논을 많이 했다. 내가 눈치없는 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도 체감하고, 일반적인 사람들과 생각의 차이가 얼마나 클지도 많이 얘기하고, 이걸 실행할 때 예상되는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정말 많이 얘기했다. 그때도 지금도 보통 나는 상대의 뜻을 모르겠다. 말하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 말해도 돌려서 말하거나 은유적으로 말하거나 비꼬아서 말하면 알아들을 수가 없어..
지금 돌이켜보면 특히 우리가 일하는 규칙에 대해서 가이드를 하면서 나 스스로도 흩어져 파편으로 있던 직업관을 정리하는 계기가 돼서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당시 내가 가졌던 오만한 생각. 사장님이 모든 걸 뚫는 창이라면 내가 모든 걸 막는 방패라는 것. S샘은 내가 들어가기 직전 한해 동안 퇴사로 스쳐지나간 샘들은 자기가 아는 정규 샘들만 10명 이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실패하기 전까지 사장님이 아무리 이상해도 좋은 사람이 있으면 같이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면 좋은 사람마저도 없는 곳도(아무런 장점도이 없는 곳도) 있기 때문에. 그런데 아니었다. 왜냐면 입사와 퇴사를 결정하는 건 각자 자기한테 정말 중요한 80%인데,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나머지 20% 부분이어서. 이 중요한 걸 나는 몰랐기 때문에 내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와 말이 무한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래서 두 샘들의 퇴사가 이중으로 나를 휘청이게 했던 것 같다. 샘들이 결국에는 퇴사한다는 사실과 내 생각이 틀리고 내가 실패했다는 것.
내가 애쓰면서도 주의했던 건 미묘하게 두 샘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면서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였는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부분에서는 샘들이 스스로 여기 장점과 단점에 대해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도우려고 정말 애썼지만, 맞지 않아 퇴사해야될 사람인데 나 때문에 자기 인생의 결정들이 지연되고 그것 때문에 힘든 시간을 추가적으로 소모하게 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 최종적으로는 T샘은 막판까지 난장판을 치고 퇴사했고, 나는 그런 분에게 내 에너지를 그렇게 많이 써서는 안 됐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런데 내가 사람 경험이 너무 적어서 그 경험을 하지 않고는 그런 사람을 구분하기 어려웠을 거고 동시에 굉장히 짧은 기간에 인연이 끝나서 여러모로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다. Y샘은 내가 봤을 때는 좋은 재료와 자질을 가진 사람이었다. 지금도 가까이서 Y샘이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아쉽다. 사장님과 맞지 않아 결국 퇴사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어디서든 멋지게 자기 몫을 하면서 성장할 사람. 한달만에 퇴사하려고 했는데 내가 하는 얘기들에 한번 더 있어보자 생각했지만 결국 안 맞아서 나간다는 얘기를 사장님께 전해듣고 또 한번 충격을 받았었다. 결국에 퇴사 분위기를 모르고 지나친 것, 나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 것 때문에. 물론 배움과 경험의 시간은 있었겠지만.
나한테 관계를 맺는 일은 너무 어렵다. 개인적인 관계야 내가 취사선택할 수 있지만, 일적으로 돕고 이끄는 상황이 되니 생각하지 못했던 상황에 너무 당황스러웠던 것 같다. 8월까지 나도 그 방면으로 실패하면서 성장을 하고 이후에 B샘과 J샘을 만나면서 달라졌는데. 너무 길어져서 다음 기회에.
아무튼 23년에 누가 나한테 맡긴 것 아닌 새로운 역할을 경험했다. 일반 회사에서 능력있는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보통 팀장급이라고 하는건지..) 겪는 문제들을 일부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일이라 의욕도 넘치고 재밌었고, 고민하고 애쓴 만큼 더 많이 배웠다. 원원했던 결과는 아니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이 성장했다.
일적으로 목표했던 것들은 모두 실패했다. 내가 가장 취약한 부분이고, 스스로는 경험하지 못했을 부분에서는 뜻밖의 기회로 폭풍 성장했다. 그래서 80%는 실패했고, 20%는 성과가 있었는데, 1년이 아니라 인생 전체로 보면 훨씬 좋은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