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나의 아버지 푸른도서관 43
최유정 지음 / 푸른책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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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관리인은 고아원으로 되어 있고 사회 복지사 선생님이 주기적으로 방문하고 관리해야 하는 위탁 아동, 연수의 뿌리 찾기를 오롯이 그려낸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자칫 감정 과잉으로 빠지기 쉬운 소재를 담담하지만 뭉클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유야 어찌됐든 자신을 버릴 수 밖에 없었던 부모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어떻게 없을 수 있겠느냐만은 그래도 핏줄은 그런 부모마저 찾게 만든다. 물론 그에 따른 혼란이야 있겠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한 것 같다. 그래서 뿌리 찾기의 여정은 마냥 즐거움과 기쁨만으로 얻어지는 아닐 것이다.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꺼내 놓는 것이 그 시작 일터. 그런 과정이 없다면 결코 앞으로 나아가지도 살아가면서 세상과 당당히 맞설 힘을 가지지 못할 것 같다.
어떤 부모건 자식을 버려야 할 때, 아무런 갈등이 없었을까? 어떤 경우든 오직 자식의 미래를 보고 결정 할 것이다.(요즘 뉴스를 통해 보는 비인륜적인 기사의 사람들이 아니라면)
온전한 입양이 되지 않는 연수는 아버지를 찾기로 한다. 그동안 잊고 지냈던 기억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사실, 아버지가 굉장히 착하고 선한 사람이었다는 말들을 아버지의 친구와 밥집 아주머니께 듣게 된다. 그리고 정신을 놓아버린 아버지를 요양병원에서 만난다.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 준 유일한 선물이자 소중한 추억이었던 나무 새에만 집착하는 아버지. 내 아들 연수꺼라며 누구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했던 나무 새와 유일한 가족 사진을 소중히 하며 아들을 그리워 했다는 것을 알게된다. 스위치가 꺼진 상태에서도 아버지는 그렇게 아들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자식들은 모른다. 부모의 사랑이 얼마만한 크기와 깊이인지.
작가는 미혼모 쉼터에서 만난 어린 엄마들에게서 조차도 그러한 사랑이 있음을 안다. 실제로 입양한 딸을 키우고 있어 불편하지만 아프게 마주해야 할 진실 앞에서 새처럼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 전달 된다. 부디 많은 아이들이 자신들의 앞에 놓인 진실에 더는 두려워 하지 않고 세상에 당당해지기를 바란다. 처절히 깨지더라도, 라고 말하면 잔인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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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쪽
"한길아, 넌 평화를 지키는 데 군대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그게 혹시 전쟁과 보이지 않는 적에 대해 두려워하도록 교육 받은 탓이라고는 생각 안 해?...." 

221쪽
"선생님은 잘 모르시죠? 꽃섬고개 아이들한테는 말이나 이성보다 주먹이 먼저예요. 어려서부터 그렇게 컸어요. 힘센 사람들 앞에서는 그냥 무릎을 꿇는 게 최고라는 걸 몸으로 배우고 살아요. 가끔 수틀리면 떼를 부리긴 하지만 그건 정말 그냥 억지지, 힘센 놈들과 맞서는 거는 아니거든요. 그냥 내가 안 다치기 위해서 적당히 참고, 적당히 눈치 보고 그렇게 살아요.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저도 그랬구요. 처음엔 자존심도 상하고, 창피하기도 하지만 그런 게 쌓이다 보면 그냥 무덤덤해지죠. 용만이도 그랬을걸요. 용만이는 애들한테 맞아도 웬만하면 잘 안 울잖아요. 울어도 소용없으니까. 그냥 애기 짓이나 하며 순간을 모면하죠. 그런데 용만이가 처음으로 용기를 낸 거잖아요. 왜냐하면 자기를 괴롭히기만 하는 경수한테 동병상련을 느낀 거거든요. 그 마음을 지켜 주고 싶었어요. 그냥 흐지부지하게 묻혀 버리면 용만이한테 뭔가 뿌듯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그냥 또 참고, 회피하는 거만 배우는 거죠.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중에 형들이나 이재성 선생님한테 혼이 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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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잃어버린 아이
데이브 펠처 지음, 신현승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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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미국은 엄마가 아이에게 행해지는 체벌도 아동학대로 보고 신고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의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강도와 수치가 보고 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친엄마인데...신음과 같은 비명이 새어나와 입을 틀어 막으며 읽어야 했다.
동생 기저귀에 붙은 똥을 강제로 먹게 하거나 비누를 입에 처 넣을 때도 있고 클로락스 세제와 암모니아를 이용한 가스로 인한 질식으로 고통스럽게 하거나 암모니아를 한 숟가락 떠서 먹이는 등의 믿기지 않는 일이다. 칼로 위협하거나 실제로 찔러 상처를 입히기도 했으니 이보다 더 끔찍한 것도 있을까 싶다.
사실 최악의 학대는 폭력이 대물림 된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주인공인 데이브는 폭력의 대물림이 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문제는 그 형제 자매들에게 있다. 물론 책에는 다른 형제들이 그러한 징후를 보인다거나 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분명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데이브의 동생인 러셀은 경우는 다르다. 늘 엄마 품에서 형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보면서 자랐고 너댓 살의 나이에 차가운 시선으로 쏘아보거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엄마의 '어린 나치'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고 짧게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굉장히 심각하다고 본다. 이럴 경우 엄마와 아이들을 격리 시켜 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다른 형제들 모두의 치료가 함께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에게서 행해지는 학대는 사람을 참으로 무력하게 할 것 같다. 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할 엄마, 또 엄마의 폭력에 대응할 힘이 부족한 아빠조차도 결국은 적대시 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을 구해줄 슈퍼맨이나 다른 상상속의 영웅을 꿈꾸지만 아빠도 떠나버리고 만다.
 이 엄마 정말 대단하다. 식구들을 장악하고 컨트롤 하는 능력 최고다.
엄마가 이렇게 심한 폭력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단지 할머니와의 큰소리가 오고 간 것으로 보아 엄마 역시 할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 뿐. 그래서 가정내 폭력은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해야 할 존재인 가족, 그중에서도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야 할 엄마를 미워하고 증오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럼에도 데이브는 가해자, 즉 엄마에 대한 증오는 당연시 되지만 그 보다 더 진한 증오의 대상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라는데 있다. 내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것, 자책과 겁쟁이라는 생각이 등이 자신을 혐오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이제 없어져야만 한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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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말을 해 사계절 1318 문고 52
미리암 프레슬러 지음, 유혜자 옮김 / 사계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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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마음을 끄집어 낼 수 있는 용기만 있다면 마음 속에 응어리가 쌓여 병이 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많은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그게 어렵다. 물론 가벼운 얘기는 할 수 있다. 정말 자신의 상처는 쉽사리 드러내기 어려운 법.
흔히 사춘기 아이들이 조용히 지나가는 게 더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건 나중에 더 크게 폭발 가능한 화산을 키우는 꼴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카린처럼 마음의 병이 몸의 병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요즘 청소년들을 보면,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울 애들을 보면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주절주절 잘 말해도 정작 자기의 얘기는 하지 않는다. 잘 살펴 보길. 혹 자기만 쏙 빼고 얘기 할 때가 있지는 않은지. 내 아이만 그럴까?
그래서 가끔은 시간이 흘러 그 당시 내 아이가 속상하고 상처 받았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성격도 있겠고 어렸을 때 부모의 거절이 반복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부모로서는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특히 사춘기가 되면 입을 닫아 버리니 그 속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러나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가 정작 무언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어서 말을 해>의 카린은 공부도 잘하고 동생도 잘 돌보는 착한 아이로 보인다. 그러나 미혼모인 엄마와의 보이지 않는 갈등과 친구들 사이에서도 열등의식 같은 묘한 반감으로 원만히 지내지 못한다. 고요한 듯 보이지만 내면엔 격정적인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카린이 어느 날 마음의 중압감이 몸이 아픈 것으로 나타나게 되고 결국은 심리상담을 받으며 자신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치유하는 과정의 심리가 잘 표현되고 있다.
화를 내는 것조차 억눌러 왔던 카린은 화를 내는 자신이 낯설고 두려워했다. 아니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고 했었다. 마음 속에 있는 분노와 고통을 밖으로 꺼내 놓는 것, 그렇게 심리상담소에서는 카린을 도와주고 학교와 연계된 시스템이 부러울 따름이다.
독일의 교육은 여러가지로 철저히 아이들을 위한 교육으로 마치 톱니바퀴가 잘 맞물려 돌아가듯 교육이 정신적인 것과 지식적인 단계를 함께 맞춰서 가고 있다. 부럽다.
교육은 지식을 머리속에 집어 넣는 것만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비틀리고 왜곡되거나 상처입은 마음을 먼저 치유하는 것은 마땅하다.
누군가가 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도 필요하고 자신을 좀 객관화 시켜 바라보는 연습은 늘 필요하다.
그러고보면 엄마들이 수다로 스트레스를 푸는 것이 근거 없음이 아니라는 것이 이 책으로도 증명되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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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엄마 낮은산 너른들 4
조은주 지음, 장호 그림 / 낮은산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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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겨울 지독히도 추웠다. 보일러를 틀면서 다음 달에 나올 고지서를 생각하고 또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하게 된다. 살기도 힘든데 이렇게 추워서야....바람을 막아주고 끼니 걱정을 하고 살지 않는 사람들이야 그깟 겨울이 얼마나 힘겹겠냐만은 정말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겨울 찬바람은 내가 상상하기 힘든 것일 게다.
8편의 단편은 모두 그런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였다.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이웃이었음에도 눈 한 번 질끔 감고 애써 외면해온 것은 아닌지....
치매에 방문을 밖에서 걸어 잠글 수 밖에 없는 처지의 <나무가 되고 싶은 할머니>, 재혼한 엄마를 따라 함께 살지만 할머니의 모진 말과 구박을 받는 선희, 자신의 처지가 호리병 속에 갇힌 것과 같음을 알고 용기를 내는 <호리병 속 작은 거인>, 얼음땡 놀이에서 술래가 잡으러 쫓오면 '얼음'했는데 진짜로 얼음처럼 몸이 굳어 자유롭지 못한 아이. "차라리 태어나지나 말지."하는 아버지의 말에 다락방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썩은 열매 같은 존재로 여기며 지내다가 봄햇살 같은 따스한 볕을 느끼는 이야기, <일흔아홉 번째 생일>은 나이들어 귀도 눈도 모든 것이 노후되어 쓸모없는 것처럼 아니 누구도 떠안지 않으려는 짐짝 같은 존재로 전락한 어머니의 모습은 길어진 수명이 결코 축복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을 무겁게 한다. 나도 언젠가는 나이 들 것이고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늙어갈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그 외에도 <가족의 탄생> <곰탱아, 너는 내 마음 아니?> 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마음을 아프게 한 이야기 두 편.
<어린 엄마> 냄비 속에서 서로의 숟가락이 부딪치는 작고 소박한 행복이 영원했으면.
차갑게 얼어 붙은 날씨. 불기 없는 부엌 창문에 쳐진 비닐마져 떨어져 나풀거리고 쌀은 떨어져 바닥을 드러냈다. 열여덟 언니는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열 살인 동생이 여섯 살 때 방 안에 나를 두고 나갔다고 했으니 언니는 열세 살에 엄마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어린 나이에 생활비를 벌고자 새벽 우유 배달도 마다 않는 기특한 언니에겐 가출한 남동생까지 몸도 마음도 편할 날이 없다.
철이 일찍 든 아이를 나는 결코 예뻐보이지 않는다. 그 내면의 슬픔과 안쓰러움에 맘이 더 아파오기 때문에. 왜 우리 사회는 이런 어린 엄마를 자꾸만 만들어 내는 것일까.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하는 세태와 어려운 경제를 탓하고만 있으면 이렇게 어린 엄마들의 짐은 누가 들어주나....

<희망이>희망이가 뛰어가는 그 길에 돌부리가 없었으면 하는 따뜻한 시선
머리 한 번 잘라주는 것으로 커다란 자선이라도 베푼 듯 하지만 실제로는 더럽다는 말을 입 밖에 뱉어냄으로서 그것이 위선이었음을 드러내는 미용실 여자는 바로 내 모습이기도 했다. 진정성이 결여된 베품이자 나눔.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나눔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이웃사랑이며 친구가 되는 것인데 그것보다는 자신에게 이 정도는 하고 사니까, 하는 면죄부는 아니었을까?
또 돈을 훔친 아이가 희망이라고 동네방네 수선스러움을 피웠다가 희망이의 순수하고 바보스러움을 이용한 다른 아이의 잘못임을 알게 된 미용실 여자는 희망이를 의심했던 자신의 잘못을 알게되었어도 결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 잔인함으로까지 비춰지기도 했다. 그 잔인성이 내게는 없었을까? 어떻게 미용실 여자에게 손가락질 하고 욕을 할 수 있을까?

물러설 것 같지 않던 겨울 추위도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고 베란다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뜻하기만 하다. 이 햇볕을 그들도 같이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공평할 것 같은 햇볕조차 누군가에게는 더 많이 더 따스한 것이 아니라 골고루 나눠 가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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