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잃어버린 아이
데이브 펠처 지음, 신현승 옮김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가 아는 미국은 엄마가 아이에게 행해지는 체벌도 아동학대로 보고 신고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 일어나는 아동학대의 수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강도와 수치가 보고 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럼 끔찍하다고 생각하는 범위는 어느 정도일까?
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 어떻게 저럴수가 있을까, 친엄마인데...신음과 같은 비명이 새어나와 입을 틀어 막으며 읽어야 했다.
동생 기저귀에 붙은 똥을 강제로 먹게 하거나 비누를 입에 처 넣을 때도 있고 클로락스 세제와 암모니아를 이용한 가스로 인한 질식으로 고통스럽게 하거나 암모니아를 한 숟가락 떠서 먹이는 등의 믿기지 않는 일이다. 칼로 위협하거나 실제로 찔러 상처를 입히기도 했으니 이보다 더 끔찍한 것도 있을까 싶다.
사실 최악의 학대는 폭력이 대물림 된다는 것에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주인공인 데이브는 폭력의 대물림이 없는 것으로 나오지만 문제는 그 형제 자매들에게 있다. 물론 책에는 다른 형제들이 그러한 징후를 보인다거나 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지만(분명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 데이브의 동생인 러셀은 경우는 다르다. 늘 엄마 품에서 형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보면서 자랐고 너댓 살의 나이에 차가운 시선으로 쏘아보거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는 엄마의 '어린 나치'로서 전혀 손색이 없었다고 짧게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굉장히 심각하다고 본다. 이럴 경우 엄마와 아이들을 격리 시켜 놓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다른 형제들 모두의 치료가 함께 병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인 가족에게서 행해지는 학대는 사람을 참으로 무력하게 할 것 같다. 자신을 보호해 주어야 할 엄마, 또 엄마의 폭력에 대응할 힘이 부족한 아빠조차도 결국은 적대시 할 수 밖에 없다. 자신을 구해줄 슈퍼맨이나 다른 상상속의 영웅을 꿈꾸지만 아빠도 떠나버리고 만다.
 이 엄마 정말 대단하다. 식구들을 장악하고 컨트롤 하는 능력 최고다.
엄마가 이렇게 심한 폭력을 하는 이유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단지 할머니와의 큰소리가 오고 간 것으로 보아 엄마 역시 할머니로부터 학대를 당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 뿐. 그래서 가정내 폭력은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참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랑해야 할 존재인 가족, 그중에서도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야 할 엄마를 미워하고 증오할 수 밖에 없는 현실. 그럼에도 데이브는 가해자, 즉 엄마에 대한 증오는 당연시 되지만 그 보다 더 진한 증오의 대상은 다름아닌 자기 자신이라는데 있다. 내가 실수를 했기 때문에 그만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라는 것, 자책과 겁쟁이라는 생각이 등이 자신을 혐오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폭력은 이제 없어져야만 한다. 어떤 이유를 들어서라도 예외를 두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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