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 둘째딸 마거릿 대처 - 영국의 前 수상
고승제 지음 / 아침나라(둥지) / 1994년 10월
평점 :
품절


대처 전 수상이 퇴임한 것은 20년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대처라는 인물의 비중은 줄어들지 않는다. 80년대부터 본격화된 세계화의 모습이 대처가 실천한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서브프라임 위기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게 되었지만 30년가까이 세계를 지배했던 흐름을 만든 사람으로서 대처의 의미는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대처의 비중에 비해 국내에 나온 대처에 관한 서적은 손에 꼽는다. 그리고 그 적은 수의 질도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문다. 그 적은 책중의 한권인 이책 역시 고만고만한 수준의 질을 보이고 있다.

저자의 이력을 보면 상당히 화려하다. 그 이력만큼의 질은 어느 정도 이책에 갖춰져 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아니다. 이책은 한 인간으로서 대처와 정치가로서 대처를 모두 조명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쓰여졌다. 이책을 읽고 나면 대충 대처가 어떤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그녀가 왜 그런 정책을 내놓게 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 그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수준까지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런 문제의 원인은 몇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많은 사실을 동원하여 대처라는 사람의 뼈에 살을 붙이는 작업이 되고 있지 않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저자가 한 인간으로서 대처를 느끼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책이 그리는 대처의 모습은 자신이 믿는바를 끝까지 관철하는 불도저이다. 그렇기 때문에 논쟁적인 싸움닭이지만 강한 신념의 에너지로 주위에 사람을 끌어당기는 카리스마를 풍긴다. 그러나 인간적으로 여유가 없고 각박하며 폭도 좁은 사람이다. 이책이 그리는 대처의 모습은 이렇게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대처의 묘사가 아니라 그 묘사까지 가는 과정이다. 그 과정까지 가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디테일들이 빠진 채 그냥 대처는 그런 사람이었다는 결론만 제시되는 느낌이 강하다.

그렇다면 대처리즘의 내용은 어떨까? 이책은 대체로 왜 대처가 그런 정책들을 내놓았는가를 대처의 내면적 동기에서 잘 설명하는 편이다. 그리고 대처리즘의 의의를 전후 영국의 역사에서 잘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사람으로서의 대처를 설명할 때와 같이 뼈다귀만 주어지는 느낌이지만 인간 대처보다는 이쪽이 훨씬 잘되어 잇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하다. 사실 이책이 쓰여졌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신자유주의라는 거대한 트렌드에서 대처가 의미를 갖는다. 특별히 영국에 관심이 크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우리가 지금 대처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런 것이다. 물론 이책도 그것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동시대에 같은 내용으로 집권한 레이건과의 비교가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라는 큰틀에서의 대처는 건드리지 않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이책은 입문으로서는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이책 한권으로 대처에 대해 알았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만 대처란 사람을 어디에서부터 알아 나가야 할지를 아는데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호주인 부부가 모로코의 페스에 허물어져가는 저택을 샀고 그 저택을 보수했다. 이 한 줄이면 이책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그 한줄로 요약되는 이야기의 내면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영화 카사블랑카로 알 수 있듯이 모로코는 일찍부터 관광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모로코가 관광대국이 된 프랑스 식민지를 거치면서 유럽에 일찍부터 알려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기만 하면 바로 닿는 지리적 거리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관광산업의 비중이 높은 나라인만큼 외국인에게 개방적이기도 하다. 저자 부부가 모로코의 고도인 페스에 집을 살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런 개방성때문이다. 실제 페스에 집을 산 것은 저자만은 아니다. 책을 보면 페스에는 리아드(저택을 의미) 열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이 저택을 구입해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거나 저자들처럼 별장으로 쓰고 있다.

그러면 왜 저자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이 페스에 집을 구입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페스란 도시의 특수성 때문이다. 페스라는 도시 전체가 이슬람 권에서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페스란 도시가 14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무슬림들이 만든 도시에서 보듯이 수천개의 좁은 골목만 있고 그 골목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중세에 만들어진 집들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고풍스러움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알람부라 궁전을 만든 장인들이 만든 아랍문화권 특유의 건축양식과 장식들이 아직도 살아있고 그대로 유지되는데서 오는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도 중세에 가깝다. 이웃이 죽어도 모르는 우리가 사는 도시의 이웃과 달리 페스의 사람들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정이 살아있느느 즉 공동체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외국인도 쉽게 받아들여지는 개방성도 갖추고 있다. 호주인인 저자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짧은 불어(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불어가 잘 통한다. 학교에선 불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대부분의 모로코인이 능숙하다고 한다)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페스의 공동체에 쉽게 끼어들어간다.

그러나 그러한 공동체가 살아있다는 것은 근대화되지 않은 이슬람권의 슬픈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가 자세히 그리고 있는 페스 사람들의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대다수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고 상당수 사람들이 변변하지 못한 수입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힘겨운 모습.

저자가 저택을 보수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자재들은 저자가 구입한 저택을 전통 모로코 양식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기 때문에 전통소재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소재들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14세기의 전통 수공업이 아직도 모로코에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든 1급 벽돌, 수제 문짝, 창틀, 수제 전통 타일들은 모두 페스 인근의 수공업자들이 아직도 중세기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고 있고 시장에서 파는 것들이다.

수백년된 저자의 저택을 중세에 사용되었던 기술로 다시 개보수하는 과정이 이책에는 자세히 설명된다. 그러나 저자들이 전통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 기술을 가진 기술자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 부부처럼 페스에 집을 구하는 외국인들이 페스에서 찾는 것은 바로 그런 시대착오적인 페스의 모습이다. 중세가 아직 살아있는 드문 곳.

이책은 수박겉핥기로 관광지를 스쳐가며 느낀 인상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모로코에 관한 인상비평식의 책은 여러권이 있다. 그러나 저자 부부처럼 모로코의 도시에 직접 집을 구해 그것을 현지인을 동원해 보수한 경험을 보여주는 책은 없다. 모로코에 사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모로코의 내면을 보고 싶다면 이책은 추천할만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버블 경제학 - 세계적 현상, 부동산 버블과 경제 시스템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다
로버트 J. 쉴러 지음, 정준희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위기는 기회라는 말이 있다. 경제위기는 분명 재앙이다. 그러나 경제위기는 시스템을 개혁할 명분을 주고 그 명분에 저항할 수 없는 정치적 정당성을 준다는 점에서 미래를 위한 기회일 수 있다. 외환위기를 겪었을 때 한국경제의 시스템이 완전히 바뀐 것이나 대공황으로 미국의 금융산업이 완전히 바뀌었고 경제 역시 개혁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서브프라임 위기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이책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이제 출구전략이 논의되고 있는 마당에서 서브프라임 위기도 이제 고비를 넘겼다. 그러나 대공황 이래 최대의 위기였던 이번 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이전과 같아질 수는 없다. 그러면 어떻게 방향이 달라질 것인가? 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서브프라임 위기가 한창 부풀어오르던 재작년, 아직 부시가 집권하던 시절에 쓰여진 이책은 위기가 한창일 때 그 위기 이후를 말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의 원제는 위기의 원인을 설명하는 버블 경제학이 아니라 solution이다.

저자가 이책을 썼을 때도 위기가 왜 일어났는지는 이미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불량 모기지를 증권화한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것이었고 2000년대 초부터 The Economist가 사상 최대의 거품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듯이 부동산 거품이 터진 것이 원인이엇다.

이책의 저자는 이미 언론을 통해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다시 설명하지는 않는다. 증권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관한 설명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단지 90년대부터 부동산 버블이 어떻게 키워졌는지를 간단하게 보여주고 그 버블이 키워진 과정을 행동경제학적으로 설명한다. 이자율이나 건설비, 인플레 등의 변수로는 버블을 설명할 수 없고 대부분의 버블이 그렇듯이 부동산 불패와 같은 사람들의 기대로 설명된다는 식의 행동경제학적 논리를 보여준다.

책의 후반은 뉴딜정책으로 새로운 금융인프라가 구축되었듯이 이번 위기는 그런 인프라를 구축할 절호의 기회라고 말하면서 저자는 이번 위기가 행동경제학적으로 설명되는 이유를 뿌리뽑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즉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었다면 버블이 그렇게 커지지 않았고 그 악영향도 지금같은 규모가 아니었을 것이라 말한다.

저자는 80년대 이후 금융산업의 트렌드가 불충분했기 때문에 이번 위기가 생겼다고 본다. IT기술로 정보를 빠르고 대량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되엇고 리스크 관리가 더 세련되었지만 그것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지금까지의 발전방향을 더 심화하는데서 해법을 찾는다. 저자는 금융정보를 공공재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 많은 정보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개하고 접근할 수 있게 만드는 정보의 민주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저자는 리스크 관리를 일부 금융산업을 위한 것이 아니라 만인을 위한 것으로 즉 민주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재작년에 쓰여진 책이지만 위기 이후를 말한다는 점에서 지금도 그 의미는 줄어들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위기 이후의 준비는 금융산업을 뒤로 후퇴시키지 않고 오히려 더 전진시켜서 금융민주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은 탄핵받는 금융산업의 모습에서 오히려 새롭게 느껴진다. 그러나 위기가 너무나 빨리 끝난 감이 있는 지금 저자의 주장이 얼마나 실현될 수 잇을지는 의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1 - 인도로 가는 길
김용옥(도올) 지음 / 통나무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올 김용옥이란 이름은 인문학 서적에서 하나의 브랜드이다. 그것도 상당히 막강한 지명도를 가진 파워 브랜드이다. 어떤 기업이든 브랜드를 구축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마케팅 이론의 상당부분은 브랜드 구축에 할애되어 있다.

브랜드가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을 건 상품에 대해 소비자는 특정한 기대를 갖는다는 것이다. 명품의류라든가 자동차같은 경우 써보기 전에는 질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벤츠니까 당연히~~ 하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벤츠라는 브랜드가 성공했다는 말이 된다.

그러면 문화시장에서 브랜드 구축에 성공한 김용옥이란 이름은 무엇을 보장하는가? 재미와 품질이다. 사실 김용옥이 쓴 동양철학서적들은 오리지널한 것은 거의 없다. 그의 말대로 김용옥은 아카데미에 묻힌 논의들을 대중이 맛보기 쉽게 포장을 바꿔 유통하는 지식의 거간꾼일 뿐이다. 물론 학자로서 그 자신의 오리지널한 이론도 잇지만 그것은 사실 거의 인기가 없고 그의 책을 읽는 사람들도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대개 모른다.

이책 역시 오리지널한 내용은 거의 없다. 이책의 내용은 석가모니가 살아 있을 때 그가 깨달은 것 그가 말한 것 그가 생각한 것 즉 후대에 그의 이름에 가탁하여 덧붙여진 것이 아니라 그의 오리지널한 사상이라 할 수 있는 부분만 추적해 근본불교의 교리를 재구성한 것이다.

가령 해탈, 열반이 불교의 목표라 생각한다 석가모니 생전에도 교단에서 그런 말은 쓰였다. 그러나 오늘날의 불교교단에서 말하는 뜻으로 말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깨달음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깨달음의 목표는 다들 알고 있듯이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내용은 연기론 하나 뿐이고 연기를 깨닫는 것이 고로부터의 해방이라는 것이다. 무아론이나 계정혜 3학이나 사성제등의 논의는 연기론에서 파생되는 것일 뿐이다.

이 정도의 내용이 이책의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요약한 것이다. 이런 정도는 사실 초기불교에 관한 서적이면 다들 논의하는 것이다. 어릴 때 현암사에서 나온 일본학자의 책을 본 기억이 나는데 지금부터 따지면 거의 반세기전의 책이다. 그런데도 이책의 내용과 그리 대차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면 이책을 왜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할만하다. 사실 초기불교에 관한 서적의 내용은 일정수준의 스칼라십을 갖춘 학자가 쓴 것이라면 대차가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이책은 김용옥이란 브랜드가 약속하는 품질이 있다.

김용옥이 쓴 책은 맛이 난다. 무슨 말이냐? 초기불교에 대한 책을 여러권을 보았지만 이책에 비하면 생고기를 씹는 느낌이다. 생고기를 씹어서 소화하는 것은 물론 그전에 익히는 것까지 독자 스스로 해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김용옥의 책들은 그런 과정을 저자 스스로 다해준다. 독자는 받아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아주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읽는 재미가 있게 쓰여진다는 것이 김용옥 브랜드의 장점이다. 이책도 예외는 아니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플루엔자 (양장)
올리버 제임스 지음, 윤정숙 옮김 / 알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선 한마디 하자면, 이책은 재미있다. 저자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고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다. 저자는 이책을 쓰기 위해 런던에서 시작하여 코펜하겐, 모스크바, 싱가포르, 상하이, 시드니, (뉴질랜드의) 오크랜드, 뉴욕을 돌면서 240명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책이다.

이책의 내용은 저자의 주장과 분석을 말하기 전에 항상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에 대한 임상심리학자로서의 성격분석이 제시된다. 이책이 두껍기는 하지만 240명과의 인터뷰 테이프를 모두 기록할 정도로 양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면접자의 말을 요약하고 그 요약에 기초해 성격을 그리는 것으로 이책의 내용은 진행된다. 그리고 저자가 파악한 캐릭터에 기초해 왜 그런 캐릭터가 만들어졌는지 그가 사는 도시의 문화를 근거로 분석하고 그 분석에 기초해 저자의 논지가 전개된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그 구체성때문에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이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플루엔자(왜 출판사에서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썼는지 잘 모르겠다.) 즉 부자병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저자의 논지는 말만 새로운 신조어일 뿐이지 그 개념의 내용은 그리 낯선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저자는 책에서 그가 만든 신조어의 뿌리가 되는 사회학 개념들을 여러번 언급한다. 저자가 어플루엔자(이하에선 부자병이라 하겠다)란 신조어 이전에 그 개념의 뿌리로 언급하는 것은 뒤르켐의 아노미라든가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상대적 박탈감 정도이다. 그리고 맑스의 소외 개념도 연관성이 있는 개념이다.

저자가 부자병이라는 말로 설명하려는 현상은 이렇게 도식화할 수 있다. 당신은 승진 또는 봉급인상을 바란다. 당신은 자신이 그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은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반응은 두가지 중 하나이다. 당신의 기대가 배신당한데 대해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것.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외적인 부당함이 아니라 당신이 기준을 만족할 만한 자격이 모자랐다면 당신은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하게 되고 우울함에 시달리게 된다.

저자는 왜 부자나라들일수록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고소득층의 엘리트일 수록 더 우울한 가라는 이상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부자병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만연된 우울증 증세는 유전자라든가 성격이라든가 하는 개인적 특성에 따른 현상이라기 보다는 아노미나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사회적 메커니즘을 시장 자본주의로 지목한다.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19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묘사하는 구절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은 개인주의이다. 그리고 개인주의가 등장하면서 이전 사회를 결합시켜주었던 가치관이 무너졌다. 자본주의 사회를 묶어주는 공통의 가치는 오직 돈 즉 시장에서 교환가능한 무엇일 뿐이다.

저자는 경제영역 뿐 아니라 사회영역까지 그런 시장교환의 논리가 확산되면서 등장하는 것이 부자병이라 설명하고 그런 병에 걸리기 쉬운 성격을 시장형 성격이라 말한다. 즉 자신을 시장에 내놓은 물건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며 자신을 파는 대가로 돈과 지위라는 공통적인 가치를 손에 넣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돈과 지위를 쫓는 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 동기가 문제라는 것이다. 즉 성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성공을 위해 성공하겠다는 동기라면 그 사람은 내적으로 불행해지고 우울증은 그 불행의 증상이라는 것이다. 돈과 지위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자신의 내적 기준에 따른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보통 속물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속물을 저자는 시장형 성격이라 부른다.

속물, 즉 내적 가치가 아니라 외적 가치에 맞춰 사는 사람들은 여유가 없고 인격적으로 매력이 없으며 불행하다. 이책은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것이 그런 속물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그 정점으로 저자는 뉴욕, 즉 소비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식 자본주의는 그런 속물을 초ㅚ대한 늘리는 시스템이라 지적한다.

이상이 이책의 논지가 되겠다. 저자의 논지는 그리 낯선 것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다. 더군다나 저자가 대안으로 이책의 마지막 장에서 제안하는 것은 사실 실현성이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자의 세계관은 19세기 낭만주의를 연상시킨다. 초기 자본주의의 반동으로서 과거 사회를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19세기의 낭만주의. 그리고 그 정치적 표현이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이었으며 그러한 정치적 정서를 정치적 낭만(고전으로 분류되는 칼 슈미트의 저서명)이라 부른다. 즉 그들의 대안이 현실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정치적 견해가 어떻든 이책만큼 풍부하게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 드물다는 점 그리고 재미있다는 점에서 이책은 추천할만 하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