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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플루엔자 (양장)
올리버 제임스 지음, 윤정숙 옮김 / 알마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이책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선 한마디 하자면, 이책은 재미있다. 저자는 뉴질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활동하고 있고 임상심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이다. 저자는 이책을 쓰기 위해 런던에서 시작하여 코펜하겐, 모스크바, 싱가포르, 상하이, 시드니, (뉴질랜드의) 오크랜드, 뉴욕을 돌면서 240명을 인터뷰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책이다.
이책의 내용은 저자의 주장과 분석을 말하기 전에 항상 저자가 인터뷰한 사람들에 대한 임상심리학자로서의 성격분석이 제시된다. 이책이 두껍기는 하지만 240명과의 인터뷰 테이프를 모두 기록할 정도로 양이 많은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면접자의 말을 요약하고 그 요약에 기초해 성격을 그리는 것으로 이책의 내용은 진행된다. 그리고 저자가 파악한 캐릭터에 기초해 왜 그런 캐릭터가 만들어졌는지 그가 사는 도시의 문화를 근거로 분석하고 그 분석에 기초해 저자의 논지가 전개된다.
이러한 서술방식은 그 구체성때문에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사실 이책의 제목이기도 한 어플루엔자(왜 출판사에서 원서의 제목을 그대로 썼는지 잘 모르겠다.) 즉 부자병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 저자의 논지는 말만 새로운 신조어일 뿐이지 그 개념의 내용은 그리 낯선 것도 아니고 모르는 것도 아니다.
사실 저자는 책에서 그가 만든 신조어의 뿌리가 되는 사회학 개념들을 여러번 언급한다. 저자가 어플루엔자(이하에선 부자병이라 하겠다)란 신조어 이전에 그 개념의 뿌리로 언급하는 것은 뒤르켐의 아노미라든가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상대적 박탈감 정도이다. 그리고 맑스의 소외 개념도 연관성이 있는 개념이다.
저자가 부자병이라는 말로 설명하려는 현상은 이렇게 도식화할 수 있다. 당신은 승진 또는 봉급인상을 바란다. 당신은 자신이 그것을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은 얻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신의 반응은 두가지 중 하나이다. 당신의 기대가 배신당한데 대해 분노하거나 좌절하는 것.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이유가 외적인 부당함이 아니라 당신이 기준을 만족할 만한 자격이 모자랐다면 당신은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좌절하게 되고 우울함에 시달리게 된다.
저자는 왜 부자나라들일수록 그리고 돈을 많이 버는 고소득층의 엘리트일 수록 더 우울한 가라는 이상한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부자병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만연된 우울증 증세는 유전자라든가 성격이라든가 하는 개인적 특성에 따른 현상이라기 보다는 아노미나 상대적 박탈감과 같은 사회적 메커니즘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 사회적 메커니즘을 시장 자본주의로 지목한다.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맑스의 공산당 선언에서 19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묘사하는 구절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은 개인주의이다. 그리고 개인주의가 등장하면서 이전 사회를 결합시켜주었던 가치관이 무너졌다. 자본주의 사회를 묶어주는 공통의 가치는 오직 돈 즉 시장에서 교환가능한 무엇일 뿐이다.
저자는 경제영역 뿐 아니라 사회영역까지 그런 시장교환의 논리가 확산되면서 등장하는 것이 부자병이라 설명하고 그런 병에 걸리기 쉬운 성격을 시장형 성격이라 말한다. 즉 자신을 시장에 내놓은 물건과 마찬가지로 생각하며 자신을 파는 대가로 돈과 지위라는 공통적인 가치를 손에 넣는 것만 생각하는 사람이다.
저자는 돈과 지위를 쫓는 것이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 동기가 문제라는 것이다. 즉 성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성공을 위해 성공하겠다는 동기라면 그 사람은 내적으로 불행해지고 우울증은 그 불행의 증상이라는 것이다. 돈과 지위의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자신의 내적 기준에 따른 대답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은 보통 속물이라 부른다. 그리고 그 속물을 저자는 시장형 성격이라 부른다.
속물, 즉 내적 가치가 아니라 외적 가치에 맞춰 사는 사람들은 여유가 없고 인격적으로 매력이 없으며 불행하다. 이책은 자본주의의 역사라는 것이 그런 속물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움직여왔다고 본다. 그리고 지금 그 정점으로 저자는 뉴욕, 즉 소비자본주의의 정점인 미국식 자본주의는 그런 속물을 초ㅚ대한 늘리는 시스템이라 지적한다.
이상이 이책의 논지가 되겠다. 저자의 논지는 그리 낯선 것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다. 더군다나 저자가 대안으로 이책의 마지막 장에서 제안하는 것은 사실 실현성이 의문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저자의 세계관은 19세기 낭만주의를 연상시킨다. 초기 자본주의의 반동으로서 과거 사회를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19세기의 낭만주의. 그리고 그 정치적 표현이 사회주의, 아나키즘 등이었으며 그러한 정치적 정서를 정치적 낭만(고전으로 분류되는 칼 슈미트의 저서명)이라 부른다. 즉 그들의 대안이 현실적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정치적 견해가 어떻든 이책만큼 풍부하게 현실을 담아내고 있는 책이 드물다는 점 그리고 재미있다는 점에서 이책은 추천할만 하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