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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의 집
수전나 클라크 지음, 서동춘 옮김 / 북노마드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이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호주인 부부가 모로코의 페스에 허물어져가는 저택을 샀고 그 저택을 보수했다. 이 한 줄이면 이책의 줄거리이다. 그러나 그 한줄로 요약되는 이야기의 내면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영화 카사블랑카로 알 수 있듯이 모로코는 일찍부터 관광으로 유명한 나라이다. 모로코가 관광대국이 된 프랑스 식민지를 거치면서 유럽에 일찍부터 알려졌고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기만 하면 바로 닿는 지리적 거리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관광산업의 비중이 높은 나라인만큼 외국인에게 개방적이기도 하다. 저자 부부가 모로코의 고도인 페스에 집을 살 생각을 하게 된 것도 그런 개방성때문이다. 실제 페스에 집을 산 것은 저자만은 아니다. 책을 보면 페스에는 리아드(저택을 의미) 열풍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많은 외국인들이 저택을 구입해 게스트하우스로 운영하거나 저자들처럼 별장으로 쓰고 있다.
그러면 왜 저자뿐 아니라 다른 외국인들이 페스에 집을 구입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것은 페스란 도시의 특수성 때문이다. 페스라는 도시 전체가 이슬람 권에서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은 페스란 도시가 14세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에 무슬림들이 만든 도시에서 보듯이 수천개의 좁은 골목만 있고 그 골목마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중세에 만들어진 집들은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고풍스러움에서 나오기도 하지만 알람부라 궁전을 만든 장인들이 만든 아랍문화권 특유의 건축양식과 장식들이 아직도 살아있고 그대로 유지되는데서 오는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그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생활도 중세에 가깝다. 이웃이 죽어도 모르는 우리가 사는 도시의 이웃과 달리 페스의 사람들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정이 살아있느느 즉 공동체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공동체는 외국인도 쉽게 받아들여지는 개방성도 갖추고 있다. 호주인인 저자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 곳에서 짧은 불어(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불어가 잘 통한다. 학교에선 불어를 가르치기 때문에 대부분의 모로코인이 능숙하다고 한다)로 의사소통을 하지만 페스의 공동체에 쉽게 끼어들어간다.
그러나 그러한 공동체가 살아있다는 것은 근대화되지 않은 이슬람권의 슬픈 모습이기도 하다. 저자가 자세히 그리고 있는 페스 사람들의 삶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대다수 젊은이들이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가 없고 상당수 사람들이 변변하지 못한 수입으로 가난하게 살아가는 힘겨운 모습.
저자가 저택을 보수하기 위해 사용하는 건자재들은 저자가 구입한 저택을 전통 모로코 양식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기 때문에 전통소재를 그대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 소재들을 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14세기의 전통 수공업이 아직도 모로코에 그대로 살아있기 때문이다. 손으로 만든 1급 벽돌, 수제 문짝, 창틀, 수제 전통 타일들은 모두 페스 인근의 수공업자들이 아직도 중세기와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만들고 있고 시장에서 파는 것들이다.
수백년된 저자의 저택을 중세에 사용되었던 기술로 다시 개보수하는 과정이 이책에는 자세히 설명된다. 그러나 저자들이 전통자재를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 기술을 가진 기술자를 구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자 부부처럼 페스에 집을 구하는 외국인들이 페스에서 찾는 것은 바로 그런 시대착오적인 페스의 모습이다. 중세가 아직 살아있는 드문 곳.
이책은 수박겉핥기로 관광지를 스쳐가며 느낀 인상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모로코에 관한 인상비평식의 책은 여러권이 있다. 그러나 저자 부부처럼 모로코의 도시에 직접 집을 구해 그것을 현지인을 동원해 보수한 경험을 보여주는 책은 없다. 모로코에 사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모로코의 내면을 보고 싶다면 이책은 추천할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