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싱커블 에이지 - 끊임없이 진화하고 복잡해지는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시대
조슈아 쿠퍼 라모 지음, 조성숙 옮김 / 알마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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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의 내용을 가장 잘 상징하는 것은 모래탑이다. 이책에 소개된 모래탑 실험의 내용은 이렇다. 모래를 한알씩 떨어트리면 원추형의 모래탑이 형성된다. 한알씩 떨어지는 모래들은 스스로 관계를 맺으면서 시스템을 형성하게 되고 가장 안정적인 형태로서 원추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계속 모래알이 떨어지다보면 어느 순간 모래탑은 무너지게 된다.

문제는 그 모래탑이 언제 무너질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그것을 알려면 모래입자들이 서로 이루는 관계의 시스템을 계산해내야 하는데 모래 한알이 추가될 때마다 그 관계의 시스템은 그때마다 달라진다. 한알 한알이 변수이고 그 한알 한알의 관계 역시 변수이다. 그러나 그 변수를 계산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이 모래탑은 복잡계의 예이다. 우연히 형성되는 시스템. 문제는 우리의 환경을 이루는 시스템들은 갈수록 복잡계의 성격을 갖는다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얼마전 무너진 글로벌 금융시스템도 복잡계이고 9.11로 달라진 국제안보환경도 복잡계이며 우리가 매일 참여하는 시장경제도 복잡계이다.

저자가 심각한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 시스템을 복잡계라 이해하지 않는 것이라 말한다. 예를 들어 국제안보 환경의 경우 냉전시대만 하더라도 뉴튼역학식의 단순 인과관계로 생각이 가능했다. 국제무대의 행위자는 국가이고 그 국가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했다. 그러나 알카에다나 헤즈볼라와 같은 비국가 행위자가 핵심 참여자가 되면서 그런 식으로 현실을 인식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서브프라임 대출 자체는 지금 같은 규모의 문제를 낳을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파생상품이나 헤지펀드도 각각으로 보면 지금 같은 규모의 문제를 낳을 거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이 매시업되면서 베이징의 나비가 팔락인 것이 멕시코만에 태풍을 만들 듯 예측할 수 없었던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예측불가능성 이것이 복잡계의 특징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복잡계가 우리의 환경일 때 우리는 어떻게 사고방식을 바꾸고 행동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가가 이책의 질문이다.

이책의 저자는 우선 우리의 뉴튼역학식의 단순한 인과관계 사고모델을 복잡계에선 쓸데가 없다고 지적한다. 복잡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복잡계에서 가능한 것은 일기예보에서처럼 직전에 조짐을 파악하고 경보를 울리는 것뿐이다. 내년 이맘 때 눈이 올지 비가 올지 태풍이 불지는 알 수 없다.

저자는 그런 조짐을 알려면 시스템적 사고를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시스템을 이루는 네트웍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베이징의 나비가 펄럭이는 것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환경에서 살아남으려면 언제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 그예로 저자는 경영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브라질의 셈코를 들고 있다.

셈코가 유명한 것은 출퇴근 시간도 업무도 직원 스스로 정하고 월급조차 스스로 정하며 사장도 직원이 몇 명인지 모르는 철저한 평형조직때문이다.

셈코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런 조직을 갖게 된 것은 적응의 결과였다. 현재 대표가 아버지의 후임으로 회사를 맡았던 무렵 브라질의 인플레는 연간 200%면 양호한 것이고 1000%는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금리도 높아졌다. 30%는 적은 것이고 1990년 무렵에는 1000%까지 물어야 했다.

셈코는 기술력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지만 이런 식으로는 운영이 될 수가 없다. 그래서 임금을 깎을 것인가 감원을 할 것인가 직원들에게 물었고 그들은 임금을 깎겠다. 대신 회사의 이익금을 분배해달라 회사비용으로 나가는 수표에 노조대표가 공동으로 사인하게 해달라고 했다. 잃을 것이 없었던 사장은 그러자고 했다. 그리고 회사는 2달만에 흑자로 바뀌엇다.

직원들이 의욕을 내게 된 것이다. 그후 살인적인 인플레가 진정된 후에도 사장은 그 시스템을 그대로 살리기로 했고 지금처럼 직원들이 스스로 자기 할일을 정할 있고 급여까지 스스로 정하는 철저한 분권조직으로 바뀐 것이다. 셈코는 이후 승승장구했다. 그것은 분권시스템이 적응력을 극대화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셈코의 예를 들면서 복잡계의 네트웍을 이루는 사람들이 바로 복잡계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의 열쇠라고 말한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사실 이책의 내용은 별 내용이 아니랄 수 잇다. 복잡계에 대해 알고 있다면 더더욱 별 내용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저널리스트답게 자신이 발로 뛰면서 얻은 사례들을 연결하면서 위에서 요약한 내용들을 생생하면서 알기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설명한다. 그리고 다양한 사례들이 동원되어 그려지는 이미지는 명료하다. 충분히 추천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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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미 예찬 - 고요함의 멋과 싱거움의 맛, '담백한' 중국 문화와 사상의 매혹 산책자 에쎄 시리즈 5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최애리 옮김 / 산책자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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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이야’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그 뜻은 맛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책은 바로 그 맛이 없는 것이 맛의 으뜸이라고 중국인들은 생각해왔고 말한다.

우리는 일생동안 밥을 먹고 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떫은 맛을 오미라 한다. 그 맛들을 조합한 것이 우리가 먹는 음식들의 맛이다. 그러나 그 5가지 맛은 물론 그 맛들을 섞어 아무리 맛있는 것을 만들어도 밥처럼 삼시 세끼를 일생동안 먹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기에 ‘밥맛’이 으뜸이라고 중국인들은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괘변처럼 들리는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을 반찬만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한끼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온갖 맛이 있는 반찬들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맛이 없는 밥과 함께 먹기 때문이다. 모든 맛은 밥의 맛없음 때문에 즐길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이책이 말하는 맛이 없음(無味)는 중국인들이 써온 말로 하면 淡이다. 담담하다고 말할 때 그 담이다. 그리고 담을 맛으로 말하면 물의 맛이다. 소리로 말하면 고요함이며 감정으로 말하면 평온함이다.

그러면 왜 淡이 중요한가? 맛이 없는 상태가 우리 혀가 느끼는 온갖 맛이 태어나는 잠재태이며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들의 잠재태이며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잠재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상태 이전의 그 잠재태의 상태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어차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물의 맛이 담이라 하지만 그것도 엄격히 말하면 어떤 맛이고 엄밀하게는 담이 아니지 않은가?

다른 예를 들어보자. 담을 사람으로 말하면 군자이다. 논어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어떤 기능에 한정된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전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도공이라든가 역관이라든가 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도제식으로 그것만 배워야 했다. 그러나 군자가 되고자 하는 사대부들은 실제 관료의 업무에는 쓸데가 없는 경전이나 읽으면서 교양을 쌓은 사람일 뿐이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만인을 다스릴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든 맛으로 바뀔 수 있는 무미 즉 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그릇을 만들고 말을 통역하거나 사람을 고치는 전문가와 같이 한정된 그릇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어떤 일에든 그 일에 맞는 그릇으로 바뀔 수 있는 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의 기본적인 능력 즉 중용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중용의 이미지로 많이 드는 것이 時中이란 말이다. 활을 쏘아 맞춘다는 말인 시중은 타이밍이란 말로 가장 잘 번역된다. 활을 쏘아 맞출려면(中) 때(時)를 맞춰야 한다. 활이란 그냥 과녁을 향해 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위를 당기는 감각을 알아야 하고 바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딱 맞을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는 바로 때를 볼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맞출 줄 아는 감각을 가진 사람이 군자라는 것이다.

이책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았던 성격은 평범한 사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성격에 고정되지 않은 물과 같은 사람이 이상이엇던 것은 어떤 맛으로도 변할 수 있는 잠재태로서 무미를 이상으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이다. 그리고 그런 물과 같이 어떤 그릇에도 자신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군자이며 남의 위에 설 수 있는 리더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다. 중국에서 살아보지 못한,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프랑스 사람이 어떻게 지구 반대편의 나라의 전통에 정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이렇게 쉽게 글로 써낼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오히려 한자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쓴 책보다 더 명쾌하면서 더 쉽게 쓰여져 있다. 물론 이책은 프랑스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기에 더더욱 알기 쉽고 명쾌하게 쓰여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화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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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 하버드대학교. 인간성장보고서, 그들은 어떻게 오래도록 행복했을까?
조지 E.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옮김, 이시형 감수 / 프런티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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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공자의 생애였다. 공자 스스로 자신의 일생에 대해 말한 것은 논어의 한 구절 뿐이다.

이책에도 인용되어 있는 그 구절에서 공자는 “내가 나이 15세가 되었을 때 배움에 뜻을 두었고(志學) 삼십에는 한 사람 몫을 하게 되었으며(而立) 사십에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했고(不惑) 오십에는 나의 사명을 알게 되었으며(知天命) 육십에는 세상을 알고 받아들이게 되었고(耳順) 70에는 자유를 얻었다(從心)” (논어 구절의 해석은 전적으로 리뷰어의 자의에 따른 것이니 원문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그 성장에는 단계마다 이루어야 할 과업이 있다고 말하는 이책의 내용은 거의 논어의 구절과 일치한다.

이책은 에릭 에릭슨의 성장이론과 프로이드의 방어기제 이론 두가지를 전제로 성인이 된 이후 노년에 이르기 까지 사람이 어떻게 성장해가는가를 실제 사례연구를 통해 설명한다.

에릭슨의 성장이론에 따르면 사람은 태어나서부터 세상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그 세계에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가를 배우게 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

어릴 때 배우는 가치는 세계에 대한 신뢰에서부터 시작해 자율성, 자제력, 근면을 15세 이전까지 배우게 된다. 그 이후엔 공자가 자신을 말한 것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가게 된다. 청소년기 이후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 우선되는 데 이 과정에서 배우자를 만나 친밀감(사랑의 하나라 에릭슨은 말한다)을 배우고 직업을 통해 자신감을 쌓으면서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즉 정체성을 세우게 된다.

성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이 확립된 후에는 자신이라는 좁은 세계를 주변으로 확대해 나보다 큰 다른 사람들에게로 자아가 확대되어 남을 돌보는 이타적 행동에서 기쁨을 얻고 의미를 찾게 된다. 자신의 사명이 나라는 작은 자아를 넘게 되는 것이다. 리더의 역할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라 간단하게 말할 수 있는 공자의 仁이란 개념과 비슷하다.

리더의 역할에서도 은퇴한 후에도 성장은 계속된다. 마을 공동체가 살아있을 때 노인들이 하던 역할처럼 공동체의 문화를 보존하고 가치관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공자가 노년에 노나라로 돌아와 교육에 뜻을 둔 것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 나이가 되면 경험이 쌓이고 세상이치를 알게 되면서 관대해지고 이해심이 많아진다. 경험이 많아질수록 즉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세상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이치 즉 지혜는 늘어나게 된다. (이책은 프로이트의 방어기제 이론을 일종의 그런 지혜라 본다. 예를 들어일이 어려울 때 남탓을 하는 투사와 같은 방어기제는 자신에게도 결과가 좋을 수가 없는 서툰 방어기제이다) 그리고 그 지혜의 축적은 노년에 정점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 정점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에릭슨은 그것을 (의미의) 통합, 공자는 자유라 불렀다.

이책은 이런 성장을 18살 대학 1학년생때부터 80이 가까워지는 나이까지 수백명의 일생을 수십년동안 인터뷰를 하면서 축적된 데이터를 통해 에릭슨의 성장이론을 실증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성장과정은 공자가 자신의 일생에 대해 말한 것과 너무나 흡사하다. 놀라운 일이다. 3천년이 가까운 시간의 간격을 두고도 사람의 사는 모습은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 옛날의 공자가 말한 삶의 이상도 지금을 사는 사람 그것도 공자를 모르는 나라인 미국인의 삶에서 유효하게 증명된다는데 놀랐다.

물론 우리 모두가 공자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이책에서 실증하고 있는 에릭슨의 이론은 보편이론이 아니다. 모두가 그런 과업을 단계마다 거치는 것도 아니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책이 말하는 것처럼 그 과업을 성공한 사람들의 노년은 몸과 마음이 건강했다는 면에서 에릭슨의 이론이 갖는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이상이 이책의 논리 프레임을 간략하게 정리해본 것이다. 그러나 이책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았던가 내가 이책에 소개된 사람들처럼 그 나이가 되었을 때 그럴 수 있을까? 아니면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나 자신을 돌아보았던 그 생각과 느낌들을 이런 요약으로 전달할 수는 없다. 그리고 그 느낌들을 글로 옮길 정도로 나 자신이 아직 지혜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할 수 있는 말은 이말 밖에 없을 것같다. 이책을 읽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해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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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혁 2012-07-13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소방안전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에릭슨을 잠깐 공부했는데...
어릴때 배운 공자 말씀이 생각나면서 사람의 일생에 대해 비슷하게 생각한다고 여겼습니다.
글을 쓰신분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것 같네요. 저랑은 깊이의 차이가 있을 듯 합니다만...
많이 배우고 갑니다.
 
부의 위기 - 중류층이 끝장난다
오마에 겐이치 지음, 지희정 옮김 /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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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성장기의 한국과 일본은 중산층 사회를 건설할 수 있었다. 일본이건 한국이건 대다수가 자신은 중산층이라 생각했고 그런 생각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실제 80년대 일본과 90년대 한국만큼 소득분배가 고른 나라도 없었다.

두 나라의 소득분배가 고를 수 있었던 것은 두 나라의 기업들이 일종의 사회복지 시스템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3보라 불리었던 종신고용, 연공서열, 사별노조는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했고 월급쟁이에겐 직업적 안정과 고소득을 보장해주었다.

그러나 버블이 붕괴한 이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 양극화가 시작된 것이다. 기업이 더 이상 유사 사회복지제도를 운영할 여유가 없어지면서 전체의 80%가 중하층으로 분류되는 사회로 바뀐 것이다.

양극화의 원인에 대해선 여러가지 설명이 있지만 이책의 저자는 일본이 성장기가 끝나고 경제의 수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단순한 경기순환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변화라는 것이다.

경제 자체의 구조가 바뀐 상황에서 고도성장기에 맞춰진 시스템은 구조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작년 도쿄 도심의 백화점이 폐점되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백화점은 중상층 이상을 타깃으로 한다. 그러나 대다수가 중산층이었던 사회가 대다수가 중하층 이하인 사회로 바뀌면서 백화점의 주요 타깃이던 중상층은 절대적으로 감소했고 상류층에 특화된 소수의 백화점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100엔 샵이 는다는 뉴스를 수도 없이 보았다. 중하층 이하의 소득에 맞는 업태가 팽창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대다수의 일본인들은 자신이 중류가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중산층이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과 인식의 괴리에서 번영하는 업태가 유니클로이다.

실제 일본의 중하층이라 해도 소득은 400만엔 이상이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는 충분히 상류층의 소득이다. 그러나 그런 소득을 가지고도 하류의 소비를 하는 것이 일본의 문제이며 그 해결책은 일본의 시스템이 유니클로처럼 바뀌는 것이라 저자는 본다.

1991년 이후 일본의 내수는 일관되게 마이너스 성장을 해오고 있다. 경제 자체가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경제에서도 유니클로의 확장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바로 일본의 바뀐 경제에 유니클로가 적합한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효율성이다.

가격대는 하류층도 약간 무리하면 살 수 있는 수준이지만 질은 중상층을 대상으로한 백화점 수준의 제품을 만든다. 가격은 낮고 질은 높으니 잘 되는 것이다.

유니클로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거품을 뺐기 때문이다. 질은 유지하면서 저가로 만들 수 있는 곳에 아웃소싱하고 재고를 줄이고 도매상이나 종합상사와 같은 중간에서 이익을 챙기는 유통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거품이 터진 이후 일본에서 승승장구 하는 기업들은 모두 유니클로와 같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성공이 소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에는 일본의 국가시스템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 시스템의 문제는 과도하게 권력이 도쿄의 중앙정부에 집중된 것이라 말한다. 캐치업 시절에는 없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강한 정부가 리드하는 것이 필요했었다. 그러나 캐치업이 끝나고 고도성장이 중단된 지금에 와서 그 시스템의 문제가 터지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에 모든 자원이 집중된 후 배분되는 시스템은 필연적으로 자원배분의 왜곡을 낳는다. 정치경제학에서 rent seeking(불로소득 추구)이라 말하는 기생충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 일본의 식료품 값이 천문학적이고 왜 그렇게 주거비가 비싸야 하며(거품이 터지고 반토막이 난 후에도 도쿄의 주거비 수준은 서울의 4배이며 세계최고인 런던의 90%이다) 왜 그렇게 물가가 비싼가? 중간에서 빨대를 꽂는 놈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아이언 트라이앵글이라 불렸던 정치-관료-재계의 서로 등 긁어주기는 아직도 해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소수의 농민을 위해 호주의 모든 농토를 살 수 있는 보조금이 지급되었는데 생산성은 세계최악이고 그 결과 식료품비는 세계최고인데도 시장개방은 꿈도 못꾼다. 표를 의식해야 하니 어쩔 수 없다.

대다수가 중하류가 된 상황에선 생활비를 낮출 수 있게 물가를 떨어트려야 하지만 월마트와 같은 대형 할인양판점은 지역 소상인의 생계(역시 방대한 표밭이다)와 중간상들의 생계를 위해 허용될 수 없다.

말도 안되게 복잡하고 쓸데없는 인허가 규제를 철폐하면 집값이 싸지고 땅의 공급도 늘어 주거비를 줄일 수 있는데 공무원의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니 이것도 안된다.

공무원은 실질적으로 1/3명 분의 일밖에 하지 않고 아웃소싱을 하면 공무원 수를 1/10로 줄일수 있지만 역시 최대 이권단체인 공무원을 건드릴 수 없으니 이것도 안된다.

저자는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중하류 사회 즉 양극화의 문제는 70년대 미국도 겪은 문제라고 말한다. 미국 역시 60년대까지 중산층의 나라였다. 양극화의 문제를 극복한 것은 작은 정부를 외치며 규제개혁을 시작한 레이건이었으며 레이건이 있었기에 클린턴의 8년 호황이 가능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에 필요한 것은 바로 레이건 식의 합리화라는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2000년대 이후 일본을 다룬 책을 보면 일본이 불쌍해진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이다. 지금도 우리가 겪고 있는 양극화의 문제는 일본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저자가 외치는 합리화가 일본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처럼 (정치의 무력화때문에) 한국에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서글퍼지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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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와 커뮤니티 경영 전략 - 세계1등 인터넷 신문에게 배우는
최은숙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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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미디어의 센터는 신문과 방송이었다. 그러나 인터넷 이제는 모바일로 미디어의 트렌드가 바뀌는 21세기에 20세기의 미디어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는 아직 분명한 답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인터넷이 대세인 것은 분명하기에 방송국과 신문사들은 대세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다. 저마다 웹 사이트에 자신들의 콘텐츠를 올렸다. 그러나 인터넷에 콘텐츠를 공개하는 것으로는 수익이 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인터넷에도 광고는 있고 그 광고의 수익은 빠르게 증가하고 잇지만 세발의 피이다. 오히려 무료로 공개된 콘텐츠가 기존의 수익모델의 근간을 흔들면서 자충수로 바뀌었을 뿐이다.

그러나 너도 나도 웹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무료로 공개하는 상황에서 혼자 웹의 흐름을 외면한다면 미래가 없다. 어쩔 것인가? 이책은 영국의 가디언 지가 그 문제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책에 소개되는 가디언의 인터넷 전략은 지금의 매체들이 겪고 있는 문제에 완전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가디언의 인터넷 부문의 광고 수익은 빠르게 증가하지만 이책이 쓰였을 때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가디언 지가 채택한 전략은 지금의 시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으로 보인다. 앞으로 킨들과 같은 이북 리더를 통해 새로운 수익모델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가디언 지가 채택한 전략은 브랜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다른 매체들이 마지못해 인터넷에 글려들어간 것이라면 가디언도 그것은 별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가디언 지는 할것이면 제대로 하자 어차피 미래는 인터넷이다는 생각으로 인터넷 전략을 전면 재검토한다.

Web first라는 전략을 채택한 것으로 가디언의 공격이 시작된다. 다른 신문들이 조간 인쇄가 들어가는 자정에 인쇄판의 기사들을 인터넷에 올리는 데 반해 가디언은 그때 그때 뉴스가 생기는대로 인터넷에 올리는 시스템으로 바꾼다. 인쇄판의 종속된 버전이 아니라 인터넷 자체를 독립된 매체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은 인터넷에 특화된 인터넷 자체의 미디어로 재탄생한다는 전략으로 나타난다. 가디언 인터넷 판에 블로그가 개설되면서 블로그를 가디언은 독자의 참여를 위한 공간을 내준다는 개념이 아니라 지면제약과 같은 인쇄판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터넷 자체의 특성을 이용한다는 개념으로 해석해 인쇄판에 실리는 칼럼으로 30-40%를 채우고 나머지를 우수필진을 선발해 블로그를 쓰게 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인쇄판도 인터넷판도 결국은 질이 승부하는 것이고 질은 콘텐츠에서 나온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댓글과 같은 피드백을 자유방임으로 놔두지 않고 운영자가 검열하는 방침을 세운다. 댓글 역시 질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브랜드의 질을 높여 가치를 올리는 전략에 비해 유저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은 부수적인 전략으로 생각된 것같다. 눈에 잘 안 띄는 곳으로 치우치게 편성한 것도 그렇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유저들의 활동이 활발한 것으로는 결과적으로는 잘못된 전략으로 판단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인터넷 자체의 세계성으로 인해 인터넷 트래픽의 과반수가 미국이나 캐나다 등의 영어권과 전세계에서 오게 되면서 가디언은 미국광고도 수주할 수 있게 되엇다. 이러한 가디언의 전략은 인쇄판으로는 전국지 꼴찌인 가디언을 인터넷으로는 1위로 올려놓게 만든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이책은 저자의 석사논문을 기초로 다시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논문식 문체가 그대로 남아있다. 물론 내용이 학술적인 것인 성격보다는 케이스 스터디의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읽기 어렵다거나 따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경영서적과 비교해 재미있게 쓰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미디어 산업에 관심이 있는 경우 읽어볼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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