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미 예찬 - 고요함의 멋과 싱거움의 맛, '담백한' 중국 문화와 사상의 매혹 산책자 에쎄 시리즈 5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최애리 옮김 / 산책자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밥맛이야’ 우리가 흔히 하는 말이다. 그 뜻은 맛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책은 바로 그 맛이 없는 것이 맛의 으뜸이라고 중국인들은 생각해왔고 말한다.

우리는 일생동안 밥을 먹고 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단맛 짠맛 쓴맛 신맛 떫은 맛을 오미라 한다. 그 맛들을 조합한 것이 우리가 먹는 음식들의 맛이다. 그러나 그 5가지 맛은 물론 그 맛들을 섞어 아무리 맛있는 것을 만들어도 밥처럼 삼시 세끼를 일생동안 먹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럴 수 있기에 ‘밥맛’이 으뜸이라고 중국인들은 생각해왔다는 것이다.

괘변처럼 들리는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다. 생각해보자. 우리가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을 반찬만 먹는다고 생각해보라. 한끼 배부르게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온갖 맛이 있는 반찬들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맛이 없는 밥과 함께 먹기 때문이다. 모든 맛은 밥의 맛없음 때문에 즐길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이책이 말하는 맛이 없음(無味)는 중국인들이 써온 말로 하면 淡이다. 담담하다고 말할 때 그 담이다. 그리고 담을 맛으로 말하면 물의 맛이다. 소리로 말하면 고요함이며 감정으로 말하면 평온함이다.

그러면 왜 淡이 중요한가? 맛이 없는 상태가 우리 혀가 느끼는 온갖 맛이 태어나는 잠재태이며 우리 귀에 들리는 소리들의 잠재태이며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의 잠재태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가 보고 듣고 맛보고 느끼는 상태 이전의 그 잠재태의 상태가 왜 중요한가? 그것은 어차피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물의 맛이 담이라 하지만 그것도 엄격히 말하면 어떤 맛이고 엄밀하게는 담이 아니지 않은가?

다른 예를 들어보자. 담을 사람으로 말하면 군자이다. 논어에 군자불기(君子不器)라는 말이 있다. 군자는 어떤 기능에 한정된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전에 전문가라는 사람들을 생각해보자. 도공이라든가 역관이라든가 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도제식으로 그것만 배워야 했다. 그러나 군자가 되고자 하는 사대부들은 실제 관료의 업무에는 쓸데가 없는 경전이나 읽으면서 교양을 쌓은 사람일 뿐이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것은 바로 만인을 다스릴 위치에 있는 사람은 모든 맛으로 바뀔 수 있는 무미 즉 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그릇을 만들고 말을 통역하거나 사람을 고치는 전문가와 같이 한정된 그릇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어떤 일에든 그 일에 맞는 그릇으로 바뀔 수 있는 물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모든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의 기본적인 능력 즉 중용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중용의 이미지로 많이 드는 것이 時中이란 말이다. 활을 쏘아 맞춘다는 말인 시중은 타이밍이란 말로 가장 잘 번역된다. 활을 쏘아 맞출려면(中) 때(時)를 맞춰야 한다. 활이란 그냥 과녁을 향해 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시위를 당기는 감각을 알아야 하고 바람을 볼 줄 알아야 한다. 딱 맞을 때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모든 상황에는 바로 때를 볼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타이밍을 맞출 줄 아는 감각을 가진 사람이 군자라는 것이다.

이책에서 중국인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보았던 성격은 평범한 사람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어떤 성격에 고정되지 않은 물과 같은 사람이 이상이엇던 것은 어떤 맛으로도 변할 수 있는 잠재태로서 무미를 이상으로 보았던 것과 마찬가지의 논리이다. 그리고 그런 물과 같이 어떤 그릇에도 자신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군자이며 남의 위에 설 수 있는 리더의 이상이었던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다. 중국에서 살아보지 못한, 그리스 철학을 전공한 프랑스 사람이 어떻게 지구 반대편의 나라의 전통에 정통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이렇게 쉽게 글로 써낼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었다. 오히려 한자문화권에 사는 사람들이 쓴 책보다 더 명쾌하면서 더 쉽게 쓰여져 있다. 물론 이책은 프랑스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기에 더더욱 알기 쉽고 명쾌하게 쓰여져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화에 대한 저자의 통찰력은 놀라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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