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의 제국 - 새로운 중국, 마오쩌둥을 넘어서
필립 판 지음, 김춘수 옮김 / 말글빛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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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는 중국의 재앙이었다. 중국혁명에 대한 평가는 시간이 더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마오라는 사람이 중국을 망쳐놓았다는데는 아무런 이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책의 저자는 그 재앙은 역사로서 지나간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중국의 문제는 마오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데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후르시쵸프는 권좌에 오르자 마자 스탈린 격하운동을 시작했다. 후르시쵸프는 스탈린의 죄악을 털어내고 스탈린의 망령에서 벗어나면 공산주의는 전체주의라는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오가 생각했듯이 공산주의는 전체주의로서만 유지될 수 있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공산주의라는 이념을 현실에 실현하려면 폭력으로서만 가능하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인간에 대한 오해에서 시작한 이념은 그렇게 밖에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후르시쵸프 이후 소련은 다시 전체주의로 복귀할 수 밖에 없었고 그의 스탈린 격하는 공산주의의 신뢰를 떨어트린 것 이외에는 아무런 한 일이 없었다. 자유와 공산주의는 공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잔인성과 권력욕에서 스탈린 못지 않았던 마오가 죽은 후 그의 뒤를 이은 덩샤오핑은 후르시쵸프 이상으로 전임자를 증오할 이유가 충분했다. 그러나 덩은 마오를 격하시키지 않았다. 마오를 욕하는 것은 공산당을 욕하는 것일 뿐으로 마오를 욕한다고 그의 죄가 공산당에게 대물림되지 않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마오는 공산당의 원죄가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중국의 문제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책은 천안문 세대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1989년 천안문 광장 앞에 모였던 젊은이들은 공산주의가 말하는 이상과 현실이 조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린 것은 폭력 뿐이었다.

자국의 시민에게 총을 겨누는 군대. 정상적인 국가의 군대는 아니다. 그리고 그 어그러짐은 마오로부터 시작된다. 마오가 중국을 망치기 시작한 것은 대약진 운동부터 였다. 전문가를 무시하고 어설픈 아마추어 감각으로 경제를 망치면서 수천만의 아사자를 낳았고 경제는 엉망이 되었다. 마오의 무능이 드러난 것이다. 마오는 대실패 이후 마음껏 당을 비판하라고 부추켰다. 소위 백화쟁명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백화쟁명은 자신의 무능을 덮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책략에 지나지 않았다. 반대파를 드러나게 하고 반대파를 처벌하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다. 이책은 백화쟁명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공산당의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한 환멸을 그린다. 이념운동인 공산주의에서 언행불일치는 파산선고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백화쟁명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이후 마오가 계획한 문화혁명은 10여년간 중국을 뒤흔들면서 중국을 파산시켰다. 이책은 문화혁명 당시 중칭에서 홍위병으로 활동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문화혁명이 어떻게 사람들의 도덕과 현실감을 무너트렸는지를 보여준다.

마오의 죽음과 함께 문화혁명의 광기는 끝났고 문화혁명은 부정되었다. 그러나 부정된 것은 마오의 죄만이 아니었다. 중국인들은 이념에 대해 냉소적이 되었고 그들이 쫓는 것은 돈 이외에는 아무 것도 없게 되었다. 이책은 개혁개방 이후 영혼이 사라진 공산당이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부패할 수 있었는지를 노동자, 철거민, 농민과 같은 약자들이 권력의 부패에 당하는 모습을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이책의 내용은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마오의 죄악이나 중국의 어두운 현재에 대한 책은 많다. 그 많은 책더미에 추가된 이책은 그러나 중국의 전체모습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 단지 현장에서 역사를 겪었고 그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포커스를 맞춰 그들이 직접 겪은 일과 그들이 느낀 감정을 기술할 뿐이다. 그리고 그 구체성이 이책의 뛰어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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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25-04-12 0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을 한번 돌이켜 보자. 지난주에 지나간 제주4.3 기념식은 공식적으로는 대한민국 정부가 3만명의 제주도민을 학살한 사건이다. 공식적으로 3만명이고 실제는 6만명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이다. 미군정 3년부터 한국전쟁까지 5년 동안 최소 20만명이 보도연맹 강제모집으로 이승만과 서북청년단, 친일경찰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을 당했다. 한국전쟁 기간에는 미군 폭격과 국군, 경찰에게 또 백만명 이상이 희생을 당했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 억압통치 시대에는 얼마나 많은 애국시민들이 고문과 의문사로 죽어갔는지 아시는가? 박원순 전 시장님의 야만시대의 기록을 보셨는가? 베트남을 무력 침략한 미제국주의에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살상병기 용병을 파견하여 베트남의 독립을 방해하고 민간인을 학살하고도 사죄와 보상을 하지 않아, 한국군에 대한 원한으로 증오비를 세워 ˝하늘에 닿을 죄악을 만대가 기억하리라˝라고 새겨둔 그들의 처절한 증오와 절규를 우리 대한국민은 몇명이나 기억하고 반성하는가? 미국의 이승만 대한민국 건국 이후로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윤석열 개망나니를 거치면서 얼마나 많은 애국자들이 친일파들의 손에 의해서, 천안함. 세월호. 이태원 등의 사회적 참사로 죽어갔는지 그대는 정녕 생각해보지 않는가? 남의눈에 티는 보면서 내 눈 속에 들보는 깨닫지 못한다는 말을 그대는 정녕 곱씹어보기를 바라노라.
 
와이어드 - 우리가 그들이고 그들이 곧 우리다
데브 팻나이크 지음, 주철범 옮김, 현용진 감수 / 이상미디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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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볼일 없는 맨 주먹으로 시작해 거대한 기업을 이룬 이야기들은 널렸다.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의 이야기에 공통된 것은 그들이 시장에 대한 직관을 가지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런 성공담들의 공통점은 이것을 사려는 사람은 무엇을 원하는가를 알고 그것을 만들어 팔았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러나 시장에 대한 직관으로 시작해 성공한 기업은 결국 자신의 성공 때문에 몰락해가는 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운명이다. 이책은 왜 그런 몰락이 시작되는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이책이 말하는 해답은 성공의 열쇠였던 시장에 대한 직관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위대했던 기업은 평범해지고 형편없어지면서 몰락한다는 것이다.

이책의 저자는 그런 성공과 몰락의 사이클이 생긴 것이 산업혁명 이후라고 생각한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자신이 만든 물건을 사는 사람을 개인적으로 아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고객을 직접 만나면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만든 물건을 그들이 어떻게 쓰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 분업이 일반화되면서 고객과 상인, 제조자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분리되었고 서로를 알지 못하게 되었다.

분업 덕분에 기업의 규모는 거대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거대해진 규모 덕분에 고객은 마케팅 보고서의 숫자에 불과하게 되었다. 여기서부터 시장의 직관이 사라지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시장의 직관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공감능력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느낌을 공감할 수 잇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누군가를 만난 적이 없는 누군가를 느낄 수는 없다.

고객과 분리되면서 고객이 숫자로 추상회될 때 기업은 공감능력은 잃어버리게 되었고 시장에 대한 직관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그런 직관을 잃어버릴 때 기업의 몰락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한 마디로 이책의 내용을 요약하면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면 팔린다는 말이다. 누구나 알고 잇는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모든 상식들이 그렇듯이 당연한 말이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이 지금의 경영이라는 말이다. 이책은 왜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런 상식을 어떻게 하면 되찾을 수 잇는지에 대한 책이다.

이책이 말하는 것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이 컨설팅한 기업들의 사례들과 강의를 하면서 겪은 경험들을 보여주면서 새롭지 않은 말을 완전히 새롭게 보여준다. 이책은 상식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책이 말하는 상식은 이책을 읽어나가면서 전혀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내 회사는 상식을 따르고 있는가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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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까? - 의사결정에 관한 행동경제학의 놀라운 진실
마이클 모부신 지음, 김정주 옮김 / 청림출판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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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간 경영학과 경제학에선 비합리성이 유행했다. 도마뱀의 뇌라는 말로 대표되는 뇌신경학의 영향이 두드러졌고 경제행위자의 의사결정은 주류경제학이 가정하는 것처럼 합리성에만 기초한 것이 아니라는 행동경제학이 유행했다.

이책은 그런 흐름에 대한 반론이다. 이책의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동안의 발전에 반대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 이책이 다루는 것은 행동경제학에서 제기했던 인간의 비합리성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리고 이책의 챕터들은 그동안 행동경제학 진영에서 제기했던 주제들이 상당부분 반영되어 있다. 저자는 비합리적성이 어떻게 우리의 의사결정을 왜곡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저자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래서 내일부터 나는 어떻게 다르게 행동해야 하는가? 이것이 저자의 질문이다.

그 물음에 대해 저자는 합리적으로 판단하라고 말한다. 1장에선 데이터를 분석하라고 말하고 2장에선 암시에 휘둘리지 말하고 말하며 3장에선 전문가라는 명함에 속지 말라고 말하는 식이다. 이책에서 제시하는 대안적 사고방식은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뒤에서는 복잡계에 대해 말하고 상황론을 설명하고 실력과 운이 실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책의 원제인 Think Twice 처럼 결정을 내리기 전에 한번 더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더 생각할 때 이책의 챕터들에서 소개된 것처럼 지금 이 상황이 복잡계의 결과가 아닐까? 또는 이것은 다른 상황적 논리에 놓인 케이스는 아닐까? 지금의 형편없는 실적에 운이 얼마나 작용한 것일까? 와 같은 질문을 던져보라는 것이다. 즉 합리적으로 자문해보라는 것이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다. 사실 이책은 뚜렷한 내용상의 통일성이 없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의 판단이 실수일 가능성이 높은 여러가지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판단을 내릴 때 행동지침을 제공하는 것이 이책의 목적이다. 이책의 가치는 이책이 그런 지침을 제대로 제공하고 잇는가에 있다. 그렇다면 이책은 그런 목적을 이루고 있는가? 답은 그렇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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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CEO 특강 2 - 글로벌 리더 EBS CEO 특강 2
『EBS CEO 특강』제작팀 지음 / 마리북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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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고른 것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국내업체의 CEO들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어서 엿다. 그러나 잘못 선택햇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이책에 등장하는 CEO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국내업체의 대표들인 것은 맞다. 그러나 이책은 그들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CEO들이 그런 업체를 어떻게 운영하는가에 대한 지상 강연을 모은 것이다.

이책은 CEO들 자신이 쓴 원고를 모아 엮은 책으로 그런 CEO들이 자신의 회사에 대해 설명하고 그 회사를 경영하면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있는가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가 그리고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기에 그런 원칙이 나왔고 전략이 나왔는지 등을 설명한다.

어떻게 보면 지루하기 쉬운 구성이다. 경험상 CEO들이 글을 잘 쓰는 경우를 보지 못했고 재미있게 말하는 경우는 더 보지 못했다. 그리고 이책에 소개되는 경영에 관한 이야기들이 경영학 서적들에 나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책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책의 가치는 경영현장에서 실제 어떤 경영을 하고 있는가 그리고 특히 한국의 경영현장에서 어떤 경영이 이루어지고 있는가를 조직에서 가장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을 듣는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시장에 넘쳐나는 경영서적들은 경영학자나 컨설턴트와 같은 사람들이 쓴 것이 많다. 현장성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물론 CEO들이 쓴 책도 꽤 있다. 그러나 한국인이 쓴 경우는 많지 않다. 한국인이 쓴 경우라도 대개 자화자찬의 (자신이 쓰지도 않은) 자서전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CEO가 자신의 회사에 대해 자신이 어떻게 경영을 하는가에 대해 쓴 글을 모았다는 점이 이책의 가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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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디자인 도시를 가다
김미리.최보윤 지음, 이덕훈 외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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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일이다. 소개팅에서 만난 여자가 부른 장소는 도심의 카페 같은 곳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내의 공원으로 나를 불렀다. 왜 그런 곳으로 오라고 했는지 묻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사는 곳을 보여주고 싶어한 것같다. 자신은 이런 곳에 살고 이런 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가 그런 곳에 사는 자신은 어떤 사람인가 말보다 몸으로 느끼라고 그렇게 약속장소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와의 만남은 그것이 끝이었다. 그녀도 나도 서로를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도 그녀와 같이 만남에 사려깊게 의미를 만들었던 사람은 없었던 것같다.

그녀가 불렀던 인천의 공원은 대단한 곳이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 옆에 작은 숲을 만들어 주민들이 산책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공원일 뿐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본다. 나는 그녀처럼 나는 이런 곳에 산다고 부를 수 있는 장소가 있는가?

유감이지만 없다. 내 나이 한자리일 때부터 살아온 서울의 이곳은 서울의 모든 곳이 그렇듯이 수없이 얼굴을 바꾸어왔다. 어릴 때 같이 놀았고 같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은 모두 떠나갔고 친구들과 놀던 장소도 철거되어 무표정한 빌라들과 대학건물로 채워졌고 이웃은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채워졌다 비워지고 다시 채워졌다.

이 거리라는 곳은 어떤 곳인가? 일어나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고 돌아와 잠을 자고 휴일에는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떠났다 다시 돌아와 쉬는 집이 있는 곳이란 의미 이외에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일까?

공공디자인이다 도시디자인이다 구호가 떠돌기 시작한지도 꽤 되었다. 우리도 살만하게 되었으니 이제 역사도 찾고 문화도 즐기고 삶의 의미도 여유도 있어야 하지 않냐는 말이다. 그러나 개인의 역사도 개인의 의미도 담지 못하는 도시에 역사가 있고 문화가 있고 의미가 여유가 담겨있는가? 모르겟다.

이책의 페이지들을 넘겨간다. 바르셀로나에서 베를린, 요코하마, 뉴욕, 런던, 파리, 그리고 (아날학파의 도시) 스트라스부르. 이책이 보여주는 도시들을 보면서 부러웠다. 거기엔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다. 의미를 만들고 지키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도시의 의미란 무엇일까? 아니 서울의 의미란 무엇일까? 의미란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하루 하루의 작은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목적지로 가는 데 보내는 시간들, 거기서 보내는 시간들이 쌓여 의미들이 만들어진다.

도시 디자인이란 그렇게 우리가 우리의 발과 눈으로 채워가는 시간들이 담기는 공간을 그리는 작업이다. 이책에 소개되는 도시들의 디자인은 외형적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그 디자인들이 아름다운 것은 외형 이상으로 그 디자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그 공간의 어떤 역할을 할지 그리고 그 역할이 어떤 의미를 만들지 배려하는 마음이 담겨 있기에 아름답다.

파리를 아름다운 도시라 한다. 물론 파리는 아름답게 디자인된 도시이고 관광지로서 충분한 자격이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파리의 아름다움은 루브르 박물관이나 샹제리제 거리 같은 곳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파리의 아름다움은 걷는 사람의 발과 눈에서 만들어진다.

오늘의 파리가 만들어진 것은 19세기였다. 자동차가 거리의 주인이 되기 이전에 재설계된 파리의 거리는 걷는 사람의 눈과 발에 맞춰져 있다. 회색과 갈색 톤으로 통일된 질감과 사람의 시선을 압도하지 않는 건물 높이에 맞춰져 있는 거리에는 가로수가 줄지어 잇고 쉴만할 때마다 벤치와 공원, 광장이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왠만한 시설은 자동차가 아니라 사람의 걸음에 맞춰져 배치되어 있다. 잠만 자다 일터로 또는 놀이터로 가는 거리가 아니라 일상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서 디자인된 것이다. 그리고 그 거리는 파리의 오랜 역사가 층층이 반영되어 개인과 역사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책에 소개된 도시들의 디자인에는 파리의 디자인처럼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가 읽힌다. 부러운 일이다.

물론 이책은 신문에 연재된 기획기사를 다시 책으로 묶어낸 것에 불과하다. 대개 그런 책들이 그렇듯이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책에는 위에서 언급한 디자인의 역할과 의미가 자세히 언급되는 것이 아니다. 신문에는 그런 논의를 위한 공간이 없다. 그러나 디자인의 그런 의미를 생각하면서 이책을 읽어나간다면 이책에 소개되는 도시들의 사진을 보면서 부러움을 느끼기에는 충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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