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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컬처코드 - 문화코드를 알면 트렌드가 보인다 ㅣ 알면 보인다
주창윤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5월
평점 :
2000년대 이전과 이후의 문화를 구분하는 가장 큰 라인은 미디어 권력의 이동이다.
미디어 없이 사회도 국가도 존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의 머리 속에는. 우리가 자신을 한국인이라 알고 바다 건너 일본이 있다고 아는 것은 TV에서 신문에서 확인하기 때문이다. 근대 국민국가가 미디어와 함께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근대사회에서 미디어를 지배한 것은 물론 신문과 방송였고 사람들은 그런 매체가 공급하는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소비자에 불과했다.
그러나 인터넷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인터넷은 정보의 흐름을 양방향으로 바꾸어 놓았고 사람들은 미디어의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가 되었다.
저자들은 미디어 권력의 이동이 가능하게 한 2000년대 한국의 시대정신을 게릴라 정신과 놀이 정신이라 부르며 그 정신의 주체를 참여세대(또는 P세대)라 부른다.
저자들은 해방 이후 한국의 세대를 10년 단위로 끊어 전후세대, 4.19세대, 청년문화세대, 386세대, 신세대, 그리고 참여세대로 구분한다.
"P세대는 월드컵, 대선, 촛불시위 등을 거치면서 나타난 세대로 사회 전반에 걸친 적극적인 참여 속에서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는 세대이다." 제일기획의 참여세대에 대한 정의이다.
그러나 대학생이 주축이었던 이전 세대들과 달리 참여세대는 모호한 것이 특징이라 저자들은 지적한다. 이 세대는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 걸쳐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전 세대의 문화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참여세대를 규정하는 힘은 특정연령대의 공유된 경험이 아니라 인터넷이란 새로운 미디어가 열어 놓은 공간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제일기획이 이 세대가 만들어지는 계기로 지적하는 월드컵, 대선, 촛불시위는 구체적으로 붉은 악마와 광장의 응원, 노사모와 같이 인터넷이 열어놓은 공간에서 일어난 이벤트였다. 인터넷을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인 연령대가 모두 참여세대의 문화를 만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참여세대는 개인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다. 이들은 인터넷이란 미디어가 주는 힘을 이용해 권위에 도전했다. 그들의 도전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이었다. 이 세대를 만든 계기가 된 월드컵 응원도 노사모도 촛불집회도 어떤 동원력 있는 집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게릴라적인 움직임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흐름은 구 미디어가 대표하던 질서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인터넷이란 공간은 놀이의 공간이었다.
"광우병 촛불집회는 게릴라 특성을 보여주는 것뿐만 아니라 진지한 놀이로서의 문화도 만들어냈다. 촛불집회에서 게릴라적 싸움만 있었다면 그것은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의 저항은 투쟁이 아니라 놀이였다. 1987년 6월 항쟁은 독재타도를 외치며 광화문과 시청거리를 메웠지만 모두 투쟁에만 몰두했지 놀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촛불집회는 게릴라로서의 놀이족, 놀이족으로서 게릴라의 성격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였다."
참여세대에게 인터넷은 장난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인터넷 게임, 블로그, 글 올리기와 댓글쓰기 모두 놀이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그러면 그들이 인터넷이란 장난감으로 갖고 논 것은 무엇인가? 저자들은 그들이 갖고 논 것들을 5가지 코드로 읽어낸다. 유목민 코드, 참여 코드, 몸 코드, 섹슈얼러티 코드, 역사적 상상력 코드.
그러나 그 구체적인 내용으로 들어갔을 때의 느낌은 우울하다. 몸짱, 야오이, 위버섹슈얼, 도피로서의 민족주의, 된장녀, 신상녀 등과 같은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좌절의 에토스이다.
저자들은 고구려를 소재로 한 사극이 대대적으로 유행한 것을 특징적으로 말한다. 왜 하필 고구려인가? "우리 민족이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 우리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간" '주몽'의 제작의도에 나오는 말이다. 지금이 별볼일 없기에 잘 나가던 옛날을 소환하는 것이 아닌가?
저자들은 촛불시위에서 표출된 반미감정도 역시 고구려 민족주의의 이면일 뿐이라 말한다. 2000년대의 반미는 약자로서의 반감이다.
현실의 '우리'에 대한 욕구불만, 또는 좌절은 '나'의 차원에서의 좌절 때문에 있는 것이다. 몸짱 얼짱이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외모에 대한 집착이 왜 있었을까? 보상심리가 아니었을까? 야오이는 왜 유행했는가? 왜 그렇게 소녀 소년 팀이 많은가? 로리를 원하기 때문이 아닌가? 현실에선 되지 않는 것을 이미지로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아닌가? 모두 현실에서 좌절된 욕망이 가상에서 충족되는 것들이 아닌가?
좌절은 분노를 낳는다. 그 분노는 미국을 향했고 기성정치질서로 향해 노사모가 되었다.
그러나 그 분노는 공적 대상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저자들은 개똥녀 사건이나 강사녀 사건에서 드러난 폭력성이나, 된장녀, 신상녀와 같은 여성을 지칭하는 말들에서 개인을 향해 분출된 분노를 읽는다.
물론 참여세대가 2000년대에 만들어낸 문화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대~한민국"이란 구호로 광장에 모였던 월드컵 응원은 그 시절의 꽃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돌아볼 때면 왜 그렇게 좌절과 분노가 지배적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