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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바이러스 - 생각을 전염시키는 바이러스, 밈
리처드 브로디 지음, 윤미나 옮김, 이인식 해제 / 흐름출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진화론의 고전이 된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단위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진화는 적자생존의 게임이다. 그런데 그 ‘적자’는 정확히 누구인가? 보통 그 답은 ‘종’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란 책 한권으로 진화의 단위는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을 확정짓는다. 그럼 진화가 유전자의 드라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도킨스는 유전자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자기복제일 뿐이라 말한다. 원시 바다에서 유전자가 처음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생존한 유전자는 자기복제에 성공한 유전자 뿐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유전자가 자기복제에 성공하기 위한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화의 주인공이 유전자라면 우리는 그리고 이 행성의 모든 생물은 그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유전자의 존재이유는 그리고 유일한 관심사는 자기복제일 뿐이지 더 똑똑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예뻐지는 것 같은 목적은 가지고 잇지 않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운반체인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우리가 비참하게 살더라도 유전자의 복제만 계속된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의 관점에선 토끼가 호랑이보다 더 성공적인 운반체이다. 생태계의 균형 상 호랑이는 숫자가 많을 수가 없다. 귀를 쫑긋 세우고 벌벌 떨며 일생을 보내며 누구의 입에 들어갈까 두려움에 떠는 것이 전부인 토끼의 삶이 호랑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토끼는 수가 많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어느 종이 더 효율적일까?
오직 자기복제를 통한 자신의 영생만을 원하고 그것 이외의 것은 관심 밖이기에 유전자는 ‘이기적’이라 도킨스는 말한다.
도킨스는 그런 이기적인 자기복제자의 생존논리는 유전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오직 자기복제를 통해 생존하고 영생하는 것이 존재이유인 모든 것은 이기적 자기복제자이다.
“신종의 자기복제자가 최근 바로 이 행성에 등장했다. 우리는 현재 그것과 코를 맞대고 있다. 그것은 아직 탄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며 자신의 원시 수프 속에 꼴사납게 둥둥 떠 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오래된 유전자를 일찌감치 제쳤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적 변화를 달성하고 있다.”(‘이기적 유전자’) 도킨스는 그 자기복제자의 이름을 ‘밈(meme)’이라 부른다.
도킨스는 문화 전달의 단위를 밈이라 부른다.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이기적 유전자’)
밈 역시 유전자만큼이나 이기적이다. 밈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인간이 창조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밈 역시 인간이 생존을 위해 만든 도구이며 유용성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밈의 자기복제가 성공적인가는 창조자인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와는 그리 상관이 없는 것같다.
“밈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유전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데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은 수백만 전 세계 사람들의 신경계 속에 하나의 구조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기적 유전자’)
밈은 유용하기 때문에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숙주인 뇌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른 뇌로 전파될 수 있는가에 따라 번성한다. 밈의 진화에서 적응도는 유용성이 아니라 자기복제의 효율성이 기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밈의 자기복제 메커니즘은 바이러스에 가깝다.
이책의 저자는 밈의 그런 기생성에 주목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제목도 ‘마인드 바이러스’이다. 밈을, 문화를 사람의 마음을 바이러스의 메커니즘을 통해 보는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가깝다.
밈은 정의상 우리 마음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다. 밈은 세계 그 자체이다. 우리가 밈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땅, 대기, 우주 공간도 모두 밈이다. 땅은 말 그대로 땅이지 우리가 편의상 만들어낸 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진리가 아니라 밈이라고 보기 시작하면 똑 같은 것을 지칭하기 위해 다른 밈(원소, 결정, 아원자 입자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전자현미셩으로 들여다보면 지구의 대부분이 빈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하라. 모든 구별은 이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밈은 우리의 마음 그 자체일 수 있기에 우리의 현실 자체이다. 그러나 밈의 자기복제 메커니즘을 바이러스와 같다고 보는 관점에선 밈이 참이냐 거짓이냐 유용한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도킨스가 제시한 밈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실제 밈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이책에서 정의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밈은 세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구별 밈(distinction-meme)이다. 현실을 작은 조각으로 자르는 칼과 같다. 두 번째는 전략 밈(strategy-meme)으로 어떤 원인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믿음을 말하낟. 전략 밈은 일종의 경험법칙으로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을 때 우회전을 하려면 일단 멈춘 다음 우회전한다, 경찰이 보이면 속도를 늦춘다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세번째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한 태도인 연상 밈(association-meme)이다. 각각의 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프로그래밍한다.” 소주 광고에 섹시한 여자 사진을 쓰는 것은 쓰는 이유는 우리 뇌에 섹시한 여자와 소주와 연결하는 연상 밈을 심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연상 밈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잇다면 한 사물의 존재가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유발한다. 결국 행동에 변화가 일어난다.”
“밈의 세가지 분류는 초기에 뇌가 사용되었던 방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뇌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생존과 번식을 도왔다. 동물의 뇌도 구별(어미의 얼굴, 포식자, 먹어도 되는 것), 전략(이동경로, 먹을 것을 찾아내는 방법), 연상(즐겁거나 위험했던 경험의 기억, 친구와 적에 대한 기억)으포 프로그래밍될 수 있다. 밈은 기본적인 뇌 기능을 활용한다. 뇌는 밈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위해 설계된 하드웨어다.”
저자는 다시 자연적으로 진화했는가 의식적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밈을 문화 바이러스(natural viruses)와 설계 바이러스(designer viruses)로 나눈다.
도킨스의 원래 이론에서 상당히 나아간 진전이다. 그러나 저자는 밈의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의도로 이책을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는 문화 바이러스와 설계 바이러스란 분류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밈의 바이러스성을 보여주고 우리가 밈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책의 상당부분을 밈이 유용성이 아니라 밈 스스로의 자기복제를 위한 자기복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텔레비전은 밈 진화의 용광로다. 본방 사수와 입소문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프로그램은 재빨리 사라지고 돌연변이와 변종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사업을 운영하고 돈을 관리하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해서가 아니라 가장 잘 퍼지기 때문에 널리 유행한다. 두가지는 관련이 있을 수도 잇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다큐는 ‘조작’, 예능은 ‘표절’, 드라마는 ‘막장’”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이었다. 짜증난다는 수도 없이 하면서 왜 막장 드라마를 계속 보는 것인가? 그 드라마가 ‘성공한’ 밈들로 조립되어 잇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왜 우리 인생과 문화, 특히 텔레비전에는 예술적이고 진지한 콘텐츠 대신에 무가치하고 저급한 쓰레기밖에 없는 거냐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답은 간단하다. 무가치하고 저급한 쓰레기가 더 훌륭한 복제자이기 때문이다.”
“‘주의를 기울이다(pay attention)’란 표현에서 pay란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에게 주의력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가 뭔가에 주의를 기울일 때는 의식적인 삶의 한 조각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묻는다. 우리의 주의를 뺏으면서 자신의 번식을 위해 우리를 이용하려는 밈들. 대중매체 덕분에 우리는 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막장 드라마 같은 것에 소중한 ‘주의’를 빼았기는 것은 그 드라마가 담고 있는 밈들이 “오래전 동물이었던 시절의 잔재인 생존과 번식”과 같은 우리의 본능이 새겨진 뇌의 회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퍼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널리 퍼지는 생각은 우리의 원시적인 뇌에 침투하기 쉬운 생각이다.” 뇌의 버튼을 눌러대면서 밈은 우리의 주의력을 빨아들이고 우리의 삶을 낭비하도록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새로운 밈은 트로이 목마처럼 우리의 유전자 버튼을 이용해 마음 속에 들어온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험의 경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성적 매력 같은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밈이 우리의 유전자 버튼을 눌러 관심을 끌어놓고 다른 밈을 몰래 끌고 들어오면 웬만해서는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저자는 이책의 상당부분을 우리의 원시적 뇌가 어떤 버튼을 우리의 뇌에 남겨두었는지 그리고 그 버튼을 밈이 어떻게 눌러대는지를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생존본능을 예로 들어보자. “위험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자 다시 한번 밈 진화에 불이 붙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것을 대부분 제거했지만 여전히 우리 삶은 위험 밈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보험업이 번성하고 호러영화가 인기있는 장르인 것을 예로 든다. 그리고 미신이 번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미신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위험보다 더 좋은 화젯거리는 그리 많지 않으므로 미신은 자유롭게 통요된다. 그래서 미신은 마인드 바이러스가 되어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행동에 영향을 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퍼뜨리도록 우리를 프로그래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