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 일기 쓰기부터 소설 쓰기까지 단어에서 문체까지
안정효 지음 / 모멘토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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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제목처럼 글쓰기에 대한 책이다. 글쓰기와 말하기를 어려서부터 강조하는 영미권에선 글쓰는 요령에 대한 좋은 책이 오래전부터 나와 있다. 책은 많고도 많지만 그책들의 요점은 대동소이하다: 간명하게 구체적으로 짧게. 형용사 3개로 요약된다.

글쓰기를 영어작문에서 배웠던 저자의 요점 또한 마찬가지이다. ‘있을 수 있는 것은 모조리없앤다’라는 저자의 원칙을 보자. 진행형의 ‘있다’, 가능성의 ‘수’, 부정대명사 ‘것’의 공통점은 앞에서 말한 3가지 원칙을 모조리 깬다는 것이다. 이 세가지 단어는 말을 늘어지게 한다. 구체적이지 않다. 말이 늘어지고 구체적이지 않기 때문에 말의 박력이 떨어져 간명하지 않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혀 있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대고 있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찍고 있다.”

저자가 이 문장을 어떻게 분석하는지 보자 “이렇게 말끝마다 진행형을 붙여놓는 까닭은, 대부분의 경우, 불안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짧은 단어나 짧은 문장을 구사하여 만든 짧은 표현을 두려워한다. 그런 문장을 쓰면 실력이 짧아 보일까봐 걱정이 되어서이다. 그러나 위 문장에서 ‘있다’라는 단어를 모조리 없애버려도 진행형은 멀쩡하다.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싸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한다. 그래서 길이 꽉 막혔다. 신경질이 난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려댄다. 한 청년이 디카로 이 장면을 촬영한다.

이렇게 ‘있다’만 솎아내더라도 오히려 문장이 간결해져서 힘이 생긴다. 같은 단락에 나오는 ‘보고 있다’와 ‘가고 있다’와 ‘하고 있다’와 ‘오고 있다’의 경우, 같은 말이 네 번이나 반복되어 너덜너덜해 보이지만, 모든 표현의 공통 분모인 ‘있다’를 없애버리면 ‘본다’와 ‘간다’와 ‘한다’와 ‘온다’가 되어, 모든 단어가 갑자기 다양한 모습을 저마다 뽐낸다. ‘있다’는 여드름처럼 모조리 짜버려도 손해 볼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장을 다듬을 만한 자신감과 용기가 없어서, 긴 문장이 유식하다는 착각에 빠져, ‘간다’를 ‘가고 있다’라고만 해서도 안심하지 못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까지 한다.

짧은 밑천이 탄로날까봐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서 너도나도 ‘있다’와 ‘것’으로 자꾸 문장을 잡아늘일 때는 오히려 혼자서 솎아내고 줄여야 눈에 잘 띈다.”

이외에도 저자는 여러가지 원칙을 말한다. 그러나 나머지 원칙들 역시 simple and clear란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가령 수동태를 쓰지마라는 영어권에서 널리 통용되는 원칙 역시 뜻을 명료하게 한다는 원칙에 따른 것이다.

접속사를 글더듬이라 부르며 다 쳐내라고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원칙은 동일하지만 조금 뉘앙스는 다르다. 이 경우에는 “눈에 걸리적거리는 단어들, 특히 긴 단어를 없애버리면 모든 문장이 간결해지고 압축된 문장에서는 폭발력이 생긴다.”고 말한다. 간결하게 말하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도 저자는 글을 너저분하게 늘어트리는 것은 두려움 때문이라 말한다. 두려움은 자신이 할 말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할 말을 모르는데 듣는 사람이 알아듣기를 바랄 수는 없다.

그러나 이책은 소설가가 소설가를 위해 쓴 책이다. 책의 상당 부분은 소설을 쓰는 방법에 할애된다. 지면이 상당한 만큼 여러가지 다양한 기법이 소개된다. 그러나 그 기법들을 모두 소개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저자의 입담을 재연할 재주가 없기도 하지만 리뷰에서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나머지 부분을 한 마디로 요약할 수는 있다: 소설가에게 영감은 없다.

“사람들은 흔히 작품이 순간적인 영감에서 싹이 튼다고 믿는다. 영감이 씨앗이나 마찬가지여서, 신으로부터 계시가 내리듯, 어떤 깨달음이 열리고, 그러고는 영감의 씨앗에서 뿌리가 힘차게 뻗어 내리면서 싹이 돋아나 나무가 자라고, 잎이 무성하게 피어나고, 꽃과 열매가 맺힌다고 상상한다. 그러나 나의 글쓰기는 결코 그렇게 쉬웠던 적이 없다.”

저자는 쉬웠던 적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책의 내용을 보면 저자는 영감을 믿지 않는다. 이책의 내용은 거의 저자 자신이 어떻게 소설을 써나갔는가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이 재미있게 읽히고 살아 숨쉬는 것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저자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말하는 것을 보면 그의 소설은 발냄새가 물씬 배어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어디를 가나 소설의 소재거리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 소재거리를 만나면 언제든 메모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같은 소설가들과 어울릴 시간도 없다. 아니 같은 글쟁이들과 어울려 봐야 맨날 같은 이야기나 맴돌게 되니 소설가에겐 치명적인 시간낭비다.

글쓰기 자체도 고상한 것과는 거리가 먼 막노동이다. 어떤 글쓰기건 어떤 창작활동이건 마찬가지이지만 쉽게 나오는 것은 없다. 땀 흘린 만큼이다. 그래서 저자는 자신의 일과를 ‘비낭만적’이라 말하며 “이른바 영감은 특히 장편소설의 경우 한 순간에 반짝 떠오르는 축복이 아니라 이렇게 오랜 시간이나 세월에 걸쳐 공을 들여 조금씩 쌓아 올리는 무형의 집 한채와 같다.”

사실 이책의 소설작법을 다루는 부분은 구체적인 소설 기법보다는 이렇게 직업인으로서 소설가가 어떤 자세로 태도로 작업에 임해야 하는지 어떤 관점으로 세상과 작품을 보아야 하는지에 더 많은 초점이 가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재미있게 읽힌다. 개인적으로 예술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이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소설작법으로가 아니라 소설가가 어떻게 사는가를 소설가의 일과를 보면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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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아트 앤 더 시티 - 예술가들이 미치도록 사랑한 도시
양은희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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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뉴욕 가이드북이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여행 가이드북과 달리 이책은 한가지 주제에만 포커스를 맞춘다. 뉴욕의 미술이라는.

이책은 뉴욕의 경제/문화의 중심이랄 수 있는 맨하튼의 거리를 따라 미술과 관계된 흔적들을 따라간다. 그 순서는 뉴욕미술사의 타임라인을 따라 그리니치 빌리지, 소호, 첼시 그리고 그 미술을 후원했던 부호들의 거리인 백만장자 거리, 그리고 뮤지엄 거리를 훑어간다.

뉴욕미술사의 흐름이 그러한 괘적을 따르게 된 이유는 경제 더 구체적으로는 부동산경제학에 따른 것이다.

미술가들은 가난하다. 그들 중에서 성공해 부와 명성을 얻게 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 당연히 수입이 별로 없는 그들이 집세를 내기 쉽지가 않다. 돈은 없는데 직업이 미술가이니 넓은 작업공간이 필요하다. 그러니 이들은 집세가 싼 곳을 찾아 모여들게 된다. 그런 거리로 유명했던 곳이 ‘마지막 잎새’의 무대로 유명한 그리니치 빌리지였고 소호였으며 지금은 첼시이다.

“1970년대 이후 소호는 뉴욕 미술계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까지 굳건하게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 그러나 지금은 첼시가 그 역할을 넘겨 받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소호도 그렇고 첼시도 미술가들이 모여들었던 것은 집값이 저렴한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가들이 모여들면서 화랑이 들어서고 동네가 변하고 그러면서 상권이 만들어지고 주거환경이 바뀐다. 그러면 집세가 올라가고 돈이 없는 미술가들은 다른 동네를 찾아 떠나는 것이다. “상권이 들어섰다가 빠져나가 폐허가 된 소호에 다시 상권이 들어서 상업지구로 변모한 것이다.”

그 과정을 저자는 이렇게 묘사한다. “이렇게 된 데에는 싼 값에 얻은 작업실을 공들여 고치고 수도관을 잇고 화장실을 개조하면서 만든 예술가들만의 독특한 동네 분위기가 문제엿다. 겨우 살 만한 곳이 됐다 싶으니까 새로움을 선호하는 젊은이들이 어울리면서 식당과 카페가 하나둘 생겨났다. 그리고 독특한 디자인의 생활용품, 주방제품, 인테리어 가구, 옷을 파는 가게들도 생겼다. 원가 특이한 것을 구하려면 이곳에 가면 된다는 소문도 퍼졌다. 주말이면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를 보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은 상권이 좋아하는 짭짤한 손님들이엇다.

유동 인구는 계속 늘어났고 소로는 번잡한 곳으로 변했다. 이렇게 되면서 1990년대 히우 소로는 관광, 쇼핑, 레스토랑 사업이 주를 이루는 뉴욕의 주요 상권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한때 예술가들이 살던 로프는 고급 주거 공간으로 수백만 달러에 팔렷다.

그러자 건물을 소유하지 못한 화랑들은 올라가는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됐다. 작업실을 가진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소호에서 밀려난 화가와 화랑들이 첼시로 모여들었다. 소호가 그랫던 것처럼 이곳도 빈 공장들의 자리엿고 버려진 곳이었다. 당연히 집세가 싸다. “소호에 있던 갤러리들과 화랑들이 이제 이곳에서 뉴욕 화랑과 뉴욕 현대미술의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3백 개가 넘는 화랑이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잇는데 이 정도 숫자면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많은 갤러리 집성촌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첼시도 소호의 전철을 밟아가는가 보다. “처음에는 싼 임대료 때문에 이곳으로 이주했는데 5년 전에는 1평방피트에 월 20달러였던 임대료가 벌써 50달러를 넘어 더 오르고 잇다. 그래도 같은 규모에 월 100달러가 넘는 소호에 비하면 아직도 천국이다.”

그러나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것같다. 맨하튼을 벗어난 퀸즈, 브루클린 지역까지 저자가 다루고 잇는 이유가 그것이다. 소호를 떠난 미술가들과 화랑들이 여기로도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이책은 뉴욕의 미술사의 괘적을 기본 줄거리로 거리 거리에 있는 유명했던 작가들의 흔적과 현재 뉴욕미술의 현장들을 소개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그러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해도 이책은 어디까지나 가이드북 스타일이다. 뉴욕미술사를 목표로 하는 책도 아니고 뉴욕미술이 어떻다고 말하는 책도 아니다. 단지 뉴욕미술계가 어떤 공간에서 살아왔고 살고 잇는가를 보여주고 그 장소들에 얽힌 에피소드들을들려주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책 한권을 읽고 뉴욕미술계가 어떻다는 감을 잡을 수는 없는 책이란 말이다.

그러나 다른 책과 함께 본다면 이책은 그 가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개인적으로 권하고 싶은 책은 요 근래 나온 것으로 ‘세계의 크리에티브 공장, 뉴욕’이다. 이책은 미술만을 다룬 책은 아니다. 미술가들은 물론 패션, 디자인, 광고, 문학, 언론, 음악과 같은 분야의 사람들이 어떻게 네트웤을 맺으며 그런 네트웤이 그들의 커리어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분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사는 공간과 어울리는 공간에 대한 분석이 자세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네트웤 분석에 치중하기 때문에 이책처럼 실제 그들이 살고 어울리는 공간이 어떤 곳이며 어떤 느낌의 공간인가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두권을 같이 읽는다면 왜 뉴욕에 예술가들이 몰려들며 그들이 실제 살아가는 뉴욕이 어떤 공간인가를 아는데 좋은 출발점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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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시대 - 소셜 네트워크를 활용한 비즈니스와 마케팅
클라라 샤이 지음, 전성민 옮김, 유병준 감수 / 한빛미디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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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세상이 시끄럽다. 시끄러운 것은 비즈니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이 등장햇을 때 우왕좌왕 기회를 놓쳤던 것처럼 이번에도 기회를 놓치지 않을까 불안하다. 소셜 네트웤에 대한 책도 쏟아진다. 그러면 정확히 소셜 네트웤으로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TV에서만 보던 김주하 앵커는 ‘나 여기 못 있겠어요’하고 문 열고 나갔다가 ‘죄송, 실수였어요’하고 다시 문 열고 들어오기도 한다. 모 그룹 회장님은 자주 농담을 하고, 김연아 선수는 한번 들어오긴 했는데 별로 말은 안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로봇은 계속 ;이.런.글.이.올.라.왔.습.니.다’하고 떠들고 한쪽에선 목소리 높이며 토론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와중에도 나는 ‘휴대폰이 보이지 않아요, 징징징’하면서 사람들에게 하소연하고 있고… 이것이 트위터다. 누구나 아무 때나 들어가서 노닥거릴 수 있는 4차원 카페. 사실 트위터의 팔로잉은 카페에 들어가 ‘아는 척’하는 것과 똑같다. 카페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대부분은 내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다 팔로잉하면서 우리는 ‘아는 척’을 시작한다. 그러다 진짜 친해지기도 하고, 알기는 알아도 데면데면하게 지내는 사람도 있게 된다. 사실 카페 바깥의 세상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다른 이들과의 관계를 조금 더 좁혀졌다는 것 정도일까.” (이요훈)

아마 소셜 네트웤의 실상을 가장 잘 요약하지 않았나 싶다. 인터넷도 마찬가지엿지만 소셜 네트웤도 역시 사람이 쓰는 도구일 뿐이고 그 사람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소셜 네트웤은 기존의 오프라인 인간관계를 더 강화하는 연장선이라는 것이 정확한 평가이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인간관계의 양만 강조되고 질이 홰손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1세대 사이트들에선느 이런 현상이 나타났지만 이용자들이 자신이 받아들이고 형성한 관계에 대해 더욱 세심해지면서 이와 같은 경우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온라인 소셜 네트워킹은 오프라인의 인간관계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잇다. 이전의 서비스들과 다르게 페이스북이 성공한 이유는 온라인 관계만을 지향하지 않고 오프라인 관계를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페이스북이 사람들이 소셜 네트웤에 기대하는 것에 잘 부응했기 때문에 소셜 네트웤의 대표적인 서비스가 될 수 있었다고 말하며 트위터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여전히 사람들이 사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며 기존의 삶의 문맥에 잘 맞춰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페이스북이 성공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 사는 모습은 그렇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 비즈니스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인터넷이 비즈니스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던 것처럼 소셜 네트웤 역시 지각변동을 일으킬 조짐이 보인다. 이책은 아직 초기단계인 소셜 네트웤으로 비즈니스 툴이 어떻게 변하는가를 다룬다.

가령 영업의 경우 영업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페이스북이나 링크드인에서 먼저 확인할 수 있다는 점, 상대방의 인맥을 먼저 확인하고 추천을 받아 영업을 더 쉽게 할 수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이전의 영업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영업을 더 쉽게 해주는 도구로서 소셜 네트웤을 말한다.

마찬가지 논리로 회사 자체를 영업한다고 할 수 있는 채용에서도 소셜 네트웤은 더 편리한 도구가 되어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마케팅은 영업과 채용과 달리 상당한 변화가 일어나고 잇다. 가령 광고의 경우 사용자들의 공개 프로필의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이전의 인터넷 광고보다 더 정밀한 타겟팅이 가능해졌으며 입소문 마케팅도 더 현실적인 대안이 되고 있다.

이책은 이런 내용들을 다룬다. 그러나 이런 내용들은 이책에서만 볼 수 잇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쏟아진 책들의 저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책의 내용들은 다른 책 어디에서 본 것일 것이다. 그럼 이책의 가치는 무엇인가? 규모에 있다. 지금까지 보아온 책들 중에서 이책이 다루는 범위는 가장 광범위하다. 소셜 마케팅에 관한 책을 한권 권하라면 이책을 권하고 싶다.

이책의 장점은 내용의 범위 만이 아니다. 실제 소셜 네트웤에 대한 컨설팅업체를 운영하고 잇는 저자답게 실제 사례도 광범위하게 다루어지고 잇으며 실제 업무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를 현실적으로 잘 보여준다.

이책이 다루는 범위와 현실성으로 보자면 작은 글씨이지만 450페이지는 오히려 적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저자는 필요한 내용만 축약해 넣기 위해 요점만 간단하게 필요한 사항을 잘 우겨넣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이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이책의 느낌은 교과서란 한 마디로 요약된다. 책의 구성도 경영대학원의 교재처럼 분야의 거의 모든 범위를 망라해서 요점만 적은 드라이한 문체로 서술되어 잇다. 읽는 재미는 없다는 말이다.

이런 책을 재미로 읽지는 않으니 그런 문제는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의 다른 약점도 역시 교과서적이다. 교과서가 그렇듯이 많은 범위의 내용을 우겨넣다보니 깊이가 부족해진다.

이책의 서술은 요점이 잘 짚어져 잇고 그 분야의 동향에 대한 개관을 얻는데 충분하게 잘 쓰여져 있다. 그러나 교과서들이 그렇듯이 개관에 그친다고 보면 된다. 실제 업무에 대한 힌트는 얻을 수 잇지만 실제와는 거리가 잇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분야의 어떤 책도 따라갈 수 없는 범위와 서술의 질을 갖추고 잇다는 점에서 추천할만한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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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달 2021-10-30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지호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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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이책을 쓰게 된 이유이다. “왜 역사는 따분하지 않은가? 역사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이다.”

역사는 우연의 연속이기에 재미있다. 그러나 역사가 우연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그리 재미있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역사는 우연적이면서 규칙적이기에 재미있다.

“우리는 필연적인 일보다는 끝없는 조사와 숙고로만 원인을 알 수 있는 것에 감동한다. 이에 비해 양극단에 있는 뚜렷한 법칙에 의해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상황과 완전히 마구잡이인 상황은 대개 우리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대상들이 역사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역사를 능동적으로 바꿀 방법조차 없이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발성은 우리를 매혹시킨다. 우리는 개별 사건의 인과적인 힘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든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화고 논쟁한다. 그 사소한 일들 모두가 각자 거대한 변화의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발성은 즉각적인 사건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왕국은 말굽에 박을 못이 부족해서 망할 수도 잇다.” (스티븐 제이 굴드, 저자의 인용)

역사는 왜 우발적이면서 규칙적인가? 이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역사가 과학이 될 수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이다.

저자는 과학으로서 역사의 모델을 비평형 통계물리학에서 찾는다. “이런 시스템에서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개별적인 사건들의 무질서 속에는 심오한 규칙성이 들어 있고 아주 간단한 통계법칙에 지배되는 경우도 많다.”

간단한 통계법칙의 대표적인 예는 멱함수(power law) 관계이다.


“모래알을 하나씩 계속 떨어트리면 넓은 모래산이 점점 높이 쌓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잘 쌓이지는 않는다. 모래더미가 커지면서 경사가 점점 가팔라져 나중에는 모래알이 경사면을 타고 조금씩 흘러내리게 된다. 조그만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 모래알은 아래로 미끄러져서 더 평평한 곳으로 가고 모래산은 더 낮아진다. 이렇게 해서 모래산은 커지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그 들쭉날쭉한 윤곽은 영원히 요동친다.”

복잡계를 설명할 때 거의 반드시 나오는 예이다. 이 실험을 고안한 백, 탕, 위젠필드는 모래산이 쌓이고 무너지는 리듬을 이해하려고 했다. “사태의 ‘전형적인’ 크기는 얼마인가? 다시 말해 다음 사태는 얼마나 클 것으로 기대되는가?” 그들의 질문이다. 그들은 컴퓨터 상에서 수천개의 모래더미를 만들고 수백만번의 사태를 일으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답은 없었다: ’전형적인’ 사태 따위는 없었다.

“어떤 때는 모래알 하나가 구르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고, 백 개 또는 천 개가 한꺼번에 구르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수백만개의 모래알이 한꺼번에 굴러내려 더미 전체가 무너지는 ‘격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왜 그럴까? 모래더미가 언제나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모래더미가 ‘악마 같은 불안정성’에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민감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물리학에선 ‘임계상태(critical state)’라 부른다.

임계상태에 있는 모래더미가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는 ‘역사’가 결정한다. 임계상태에 있는 ‘계’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고 프랜시스 크릭이 말한 ‘얼어붙은 우연(frozen accidnets)’에 민감하다. 모래더미 게임에서 모래알은 무작위로 여기저기에 떨어진다. 더미가 자라면서 모래알은 떨어진 곳에 그대로 ‘얼어붙고’ 그 모래알의 영향은 영원히 그 자리에 고착된다.”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를 발견한 크릭은 ‘얼어붙은 우연을 진화의 본질적 요소라 말했다. 생물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거의 항상 생물의 생존과 생식 능력을 저하시키고, 따라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변종은 대개 멸종한다. 그러나 어쩌다 드물게 돌연변이가 적응성을 높여서 집단 전체로 퍼질 수 잇다. 그러면 그 우연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그 뒤로 일어나는 그 종의 모든 진화는 이 새로운 도약대에서 시작하게 된다. 진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누적된다. 역사는 얼어붙은 우연이 만든 구불구불한 경로를 따라 진행되며 이 얼어붙은 우연이 바로 역사적 우발성이 구체화된 것이다.”

물리법칙이 얼어붙은 우연을 허용하지 않으면 세계는 평형상태가 되어 모든 것은 풍선 속의기체처럼 균일하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리법칙이 한 장소에 고착되는 결과를 허용하면 거기에 따라서 미해가 진행되는 바탕이 변경된다. 물리법칙이 역사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개입하는 임계상태에선 시간이 개입하지 않는, 즉 가역적인 ‘평형’ 상태에 있지 않다. 비가역적인 비평형 상태에 있을 때 그 계를 복잡계라 부르며 그러한 계를 연구하는 물리학을 비평형 물리학 또는 복잡계 물리학이라 부른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은 비평형 물리학에서 찾아야 한다. 비평형 물리학의 개념들은 역사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특별히 조율된 것이다.”

저자는 폴 케네디의 ‘제국의 흥망’을 그 예로 든다. “국가의 경제력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늘었다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떤 국가의 경제적 기반은 점점 약화되고 어떤 국가는 새로운 경제적 기반을 얻지만 기존의 상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쌓인 스트레스는 대개 무력 충돌의 형태로 방출되며 충돌이 벌어진 뒤에는 각각의 국가들이 진정한 경제력에 따라 대략 균형을 찾는다.

지각에 스트레스가 서서히 쌓였다가 갑작스런 지진으로 방출되거나 모래더미에서 경사가 점점 급해져서 계속 불안정성이 높아지다가 사태가 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케네디의 설명과 비슷하게 들린다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 전쟁은 실제로 지진이나 모래더미 게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통계적 패턴을 보인다.”

비시간적인 즉 가역적인 평형 또는 균형이 지배하는 평형계에선 법칙에 따른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얼어붙은 우연에 의해,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 지배하기 때문에 복잡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왜 복잡계는 예측이 불가능한가?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복잡계의 이벤트는 ‘전형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형성이 없다는 것은 정규분포를 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규분포는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곡선이다. 계의 이벤트들이 종모양의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것은 평균값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평균값에서 크게 벗어날수록 그런 이벤트는 더 드물어진다. “120킬로그램인 사람은 몇 명쯤 있겠지만 200킬로그램이 넘는 사람은 아주 예외적이다. 2000킬로그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계의 이벤트들이 정규분포를 그린다면 이벤트가 대략 어느 정도의 값을 갖는다는 기대값(평균의 다른 이름)을 갖는다.

그러면 지진은 어떨까? “지진이 방출하는 에너지가 두배 커지면 지진의 빈도는 4배 작아진다.” 이런 관계를 멱함수 법칙(power law)라 한다. 계가 멱함수 관계에 있을 때 그 계의 이벤트들은 규모불변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냉동감자를 벽에 던져 만들어진 조각을 센다고 하자. 감자 파편의 무게와 개수는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 조각의 무게가 두배가 될 때마다 조각의 수는 6배로 줄어든다.

“몸집을 마으대로 줄일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능력이 있다면 감자 조각을 검사하는데 편리할 것이다. 몸을 콩알만하게 줄엿다고 하자. 이 크기에서 보이는 풍경에 대한 느낌을 얻는다. 여기에서 대략 콩알만한 조각들을 보고 얼마간 크거나 작은 것들도 본다. 그런 다음 몸을 더 줄여서 열배 작은 규모를 조사한다. 이 규모에서도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콩알만한 그키였을 때 자신의 무게와 비슷한 모든 조각에 대해서 그 절반 무게의 조각들은 대략 6배 많다. 몸의 크기를 줄여도 항상 그 전과 같은 풍경을 볼 것이다. 어떤 규모에서도 풍경은 정확하게 똑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이것이 멱함수 패턴의 의미이다. 이 관계에 있는 감자 조각에는 “특별히 ‘선호’되는 크기가 없다. 멱함수 패턴이 나왔다는 것은 정상적이거나 전형적인 파편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감자 조각의 무더기가 규모 불변성을 보인다는 것은 큰 조각과 작은 조각은 단지 크기만 다를 뿐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지진은 멱함수 패턴을 따른다. 그러므로 “큰 지진이라고 해서 작은 지진과 특별히 다른 원인을 가지지 않는다.” 거대한 지진은 아무 이유없이 그런 규모를 갖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진 예측은 불가능하다.

지진은 단층의 마찰력이 단층의 토막들에 쌓이고 마찰력이 쌓인 토막들에 누적된 스트레스가 방출되면 단층이 미끄지면서 지진이 일어난다. 이때 지층 토막이 방출하는 스트레스는 이웃한 토막으로도 전달되어 그 토막의 스트레스를 높인다. 큰 지진과 작은 지진은 처음 스트레스를 방출한 토막이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우연히 토막들의 네트웤의 중심에 있어서 네트웤 전체에 스트레스를 방출할 수 있는 토막이 진앙이었다면 네트웤 전체가 흔들려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지진이 예측 불가능한 이유이고 무시무시한 격변이 아무 경고 없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얼마나 커질지는 지진 자신도 모른다. 지진 자신이 모른다면 우리도 모른다.”

“임계상태에 사는 것들은 엇비슷하게 조직되는 경향이 있고 이 조직은 계의 세부적인 성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계의 기하학적 구조(멱함수 패턴과 프랙탈 패턴)에만 관계된다. 따라서 어떤 것이 임계상태라면, 계의 세부적인 성질들을 거의 무시하면서도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임계상태에 잇으면 인간세계 역시 마찬가지라 말한다. “불행히도 역사가들은 오로지 사건들의 연쇄만을 서술할 수 있고 그 배후에 잇는 심오한 역사적 과정을 잡아내지 못한다. 이 서사는 다만 역사의 변덕스러운 우발성에 존경을 표할 따름이다. 왜 모든 사태가 작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없다. 왜 모래 한 알이 파국을 일으킬 수 잇는지 이해ㅗ하기 위해서는 모래더미의 세부적인 구조를 작은 지역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것을 통해 불안정성이 파급될 수 있는 범위를 알아내야 한다. 오로지 이런 방식으로만 역사가들은 역사를 훨씬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에 어떻게 복잡계 물리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쿤의 과학혁명을 예로 든다. 쿤의 논리를 요약하면 정상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벤트들이 누적되면 정상과학의 개념들의 네트워크에 ‘부적응’이란 스트레스가 쌓인다. 부적응의 임계상태에 있는 것이다. “부적응이 어떤 문턱에 이르면 그 조직과 거기에 기초한 정상과학은 무너진다.” 저자는 과학혁명과 지진의 역학은 동일하다고 말한다.

“정상과학의 연구는 대륙판의 느린 이동과 비슷하고 과학혁명은 지진과 비슷하다. 지진에는 전형적인 크기가 없다. 과학혁명도 마찬가지일까?” 쿤 자신이 그렇다고 말한다. 과학혁명은 “큰 변화일 필요가 없고 그 집단 밖에서도 혁명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으며 어쩌면 25명 이하의 소규모 집단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쿤의 논의는 전형적인 크기의 혁명은 없다는 말이다. 과학의 변동은 규모 불변일 수 있고 패러다임의 개념 네트웤은 지국의 지각처럼 임계상태일 수 잇다.”

그렇다면 복잡계는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세계 역시 예측불가능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관련된 대상에서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수많은 사건의 연쇄에서 나타나는 통계적 패턴이다. 그런 법칙은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서사의 일반적인 성질을 잡아내며 사건들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역사적 과정의 심오한 성격을 반영한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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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바이러스 - 생각을 전염시키는 바이러스, 밈
리처드 브로디 지음, 윤미나 옮김, 이인식 해제 / 흐름출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진화론의 고전이 된 ‘이기적 유전자’는 진화의 단위가 무엇인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다. 진화는 적자생존의 게임이다. 그런데 그 ‘적자’는 정확히 누구인가? 보통 그 답은 ‘종’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란 책 한권으로 진화의 단위는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을 확정짓는다. 그럼 진화가 유전자의 드라마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도킨스는 유전자의 유일한 존재이유는 자기복제일 뿐이라 말한다. 원시 바다에서 유전자가 처음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생존한 유전자는 자기복제에 성공한 유전자 뿐이기 때문이다. 진화는 유전자가 자기복제에 성공하기 위한 드라마일 뿐이라는 것이다.

진화의 주인공이 유전자라면 우리는 그리고 이 행성의 모든 생물은 그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유전자의 존재이유는 그리고 유일한 관심사는 자기복제일 뿐이지 더 똑똑해지고 더 강해지고 더 예뻐지는 것 같은 목적은 가지고 잇지 않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자신의 운반체인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가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우리가 비참하게 살더라도 유전자의 복제만 계속된다면 아무 상관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유전자의 관점에선 토끼가 호랑이보다 더 성공적인 운반체이다. 생태계의 균형 상 호랑이는 숫자가 많을 수가 없다. 귀를 쫑긋 세우고 벌벌 떨며 일생을 보내며 누구의 입에 들어갈까 두려움에 떠는 것이 전부인 토끼의 삶이 호랑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그러나 토끼는 수가 많다. 유전자의 입장에서 어느 종이 더 효율적일까?

오직 자기복제를 통한 자신의 영생만을 원하고 그것 이외의 것은 관심 밖이기에 유전자는 ‘이기적’이라 도킨스는 말한다.

도킨스는 그런 이기적인 자기복제자의 생존논리는 유전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한다. 오직 자기복제를 통해 생존하고 영생하는 것이 존재이유인 모든 것은 이기적 자기복제자이다.

“신종의 자기복제자가 최근 바로 이 행성에 등장했다. 우리는 현재 그것과 코를 맞대고 있다. 그것은 아직 탄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이며 자신의 원시 수프 속에 꼴사납게 둥둥 떠 있다. 그러나 이미 그것은 오래된 유전자를 일찌감치 제쳤을 만큼 빠른 속도로 진화적 변화를 달성하고 있다.”(‘이기적 유전자’) 도킨스는 그 자기복제자의 이름을 ‘밈(meme)’이라 부른다.

도킨스는 문화 전달의 단위를 밈이라 부른다. “밈의 예에는 곡조, 사상, 표어, 의복의 유행, 단지 만드는 법, 아치 건조법 등이 있다. 유전자가 유전자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 정자나 난자를 운반자로 하여 이 몸에서 저 몸으로 뛰어다니는 것과 같이 밈도 밈 풀 내에서 퍼져 나갈 때에는 넓은 의미로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 (‘이기적 유전자’)

밈 역시 유전자만큼이나 이기적이다. 밈은 인간의 창조물이다. 인간이 창조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밈 역시 인간이 생존을 위해 만든 도구이며 유용성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그러나 밈의 자기복제가 성공적인가는 창조자인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와는 그리 상관이 없는 것같다.

“밈은 비유로서가 아니라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에 기생하면서 그 유전 기구를 이용하는 것과 같이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을 위한 운반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데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이라는 밈은 수백만 전 세계 사람들의 신경계 속에 하나의 구조로서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기적 유전자’)

밈은 유용하기 때문에 번성하는 것이 아니라 숙주인 뇌에 얼마나 효과적으로 안착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효과적으로 다른 뇌로 전파될 수 있는가에 따라 번성한다. 밈의 진화에서 적응도는 유용성이 아니라 자기복제의 효율성이 기준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밈의 자기복제 메커니즘은 바이러스에 가깝다.

이책의 저자는 밈의 그런 기생성에 주목한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제목도 ‘마인드 바이러스’이다. 밈을, 문화를 사람의 마음을 바이러스의 메커니즘을 통해 보는 것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가깝다.

밈은 정의상 우리 마음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다. 밈은 세계 그 자체이다. 우리가 밈을 통해서만 세계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땅, 대기, 우주 공간도 모두 밈이다. 땅은 말 그대로 땅이지 우리가 편의상 만들어낸 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진리가 아니라 밈이라고 보기 시작하면 똑 같은 것을 지칭하기 위해 다른 밈(원소, 결정, 아원자 입자 등)을 사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전자현미셩으로 들여다보면 지구의 대부분이 빈 공간이라는 점을 상기하라. 모든 구별은 이간이 만들어낸 것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밈은 우리의 마음 그 자체일 수 있기에 우리의 현실 자체이다. 그러나 밈의 자기복제 메커니즘을 바이러스와 같다고 보는 관점에선 밈이 참이냐 거짓이냐 유용한가 아닌가는 중요하지 않다.

저자는 도킨스가 제시한 밈의 개념에서 더 나아가 실제 밈이 어떤 것들이 있는가를 이책에서 정의한다. 저자는 기본적으로 밈은 세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첫번째는 구별 밈(distinction-meme)이다. 현실을 작은 조각으로 자르는 칼과 같다. 두 번째는 전략 밈(strategy-meme)으로 어떤 원인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 것인지에 대한 믿음을 말하낟. 전략 밈은 일종의 경험법칙으로 신호등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을 때 우회전을 하려면 일단 멈춘 다음 우회전한다, 경찰이 보이면 속도를 늦춘다 같은 것이 그 예이다. 세번째는 삶의 모든 것에 대한 태도인 연상 밈(association-meme)이다. 각각의 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프로그래밍한다.” 소주 광고에 섹시한 여자 사진을 쓰는 것은 쓰는 이유는 우리 뇌에 섹시한 여자와 소주와 연결하는 연상 밈을 심으려는 것이다. “우리가 연상 밈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잇다면 한 사물의 존재가 다른 것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을 유발한다. 결국 행동에 변화가 일어난다.”

“밈의 세가지 분류는 초기에 뇌가 사용되었던 방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뇌는 그런 식으로 우리의 생존과 번식을 도왔다. 동물의 뇌도 구별(어미의 얼굴, 포식자, 먹어도 되는 것), 전략(이동경로, 먹을 것을 찾아내는 방법), 연상(즐겁거나 위험했던 경험의 기억, 친구와 적에 대한 기억)으포 프로그래밍될 수 있다. 밈은 기본적인 뇌 기능을 활용한다. 뇌는 밈이라는 소프트웨어를 위해 설계된 하드웨어다.”

저자는 다시 자연적으로 진화했는가 의식적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밈을 문화 바이러스(natural viruses)와 설계 바이러스(designer viruses)로 나눈다.

도킨스의 원래 이론에서 상당히 나아간 진전이다. 그러나 저자는 밈의 이론을 발전시키려는 의도로 이책을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저자는 문화 바이러스와 설계 바이러스란 분류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밈의 바이러스성을 보여주고 우리가 밈에 휘둘리지 않을 자유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책의 상당부분을 밈이 유용성이 아니라 밈 스스로의 자기복제를 위한 자기복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텔레비전은 밈 진화의 용광로다. 본방 사수와 입소문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프로그램은 재빨리 사라지고 돌연변이와 변종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사업을 운영하고 돈을 관리하고 삶을 개선하기 위한 아이디어들은 우리에게 가장 유익해서가 아니라 가장 잘 퍼지기 때문에 널리 유행한다. 두가지는 관련이 있을 수도 잇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다큐는 ‘조작’, 예능은 ‘표절’, 드라마는 ‘막장’”이란 말이 유행한 적이 이었다. 짜증난다는 수도 없이 하면서 왜 막장 드라마를 계속 보는 것인가? 그 드라마가 ‘성공한’ 밈들로 조립되어 잇기 때문이다.

“냉소적인 사람들은 왜 우리 인생과 문화, 특히 텔레비전에는 예술적이고 진지한 콘텐츠 대신에 무가치하고 저급한 쓰레기밖에 없는 거냐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답은 간단하다. 무가치하고 저급한 쓰레기가 더 훌륭한 복제자이기 때문이다.”

“‘주의를 기울이다(pay attention)’란 표현에서 pay란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에게 주의력은 가장 소중한 자원이다. 우리가 뭔가에 주의를 기울일 때는 의식적인 삶의 한 조각을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저자는 묻는다. 우리의 주의를 뺏으면서 자신의 번식을 위해 우리를 이용하려는 밈들. 대중매체 덕분에 우리는 밈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막장 드라마 같은 것에 소중한 ‘주의’를 빼았기는 것은 그 드라마가 담고 있는 밈들이 “오래전 동물이었던 시절의 잔재인 생존과 번식”과 같은 우리의 본능이 새겨진 뇌의 회로를 건드리기 때문이다. “가장 쉽게 퍼지고 결과적으로 사회에 널리 퍼지는 생각은 우리의 원시적인 뇌에 침투하기 쉬운 생각이다.” 뇌의 버튼을 눌러대면서 밈은 우리의 주의력을 빨아들이고 우리의 삶을 낭비하도록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새로운 밈은 트로이 목마처럼 우리의 유전자 버튼을 이용해 마음 속에 들어온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위험의 경고, 어린아이의 울음소리, 성적 매력 같은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밈이 우리의 유전자 버튼을 눌러 관심을 끌어놓고 다른 밈을 몰래 끌고 들어오면 웬만해서는 넘어가지 않을 도리가 없다.’

저자는 이책의 상당부분을 우리의 원시적 뇌가 어떤 버튼을 우리의 뇌에 남겨두었는지 그리고 그 버튼을 밈이 어떻게 눌러대는지를 보여주는데 할애한다.

생존본능을 예로 들어보자. “위험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자 다시 한번 밈 진화에 불이 붙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것을 대부분 제거했지만 여전히 우리 삶은 위험 밈으로 가득 차 있다.” 저자는 보험업이 번성하고 호러영화가 인기있는 장르인 것을 예로 든다. 그리고 미신이 번성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미신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위험보다 더 좋은 화젯거리는 그리 많지 않으므로 미신은 자유롭게 통요된다. 그래서 미신은 마인드 바이러스가 되어 우리의 주의를 산만하게 하고 행동에 영향을 주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퍼뜨리도록 우리를 프로그래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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