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마크 뷰캐넌 지음, 김희봉 옮김 / 지호 / 200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저자가 이책을 쓰게 된 이유이다. “왜 역사는 따분하지 않은가? 역사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현재의 경향이 계속된다고 볼 수도 없다.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미래는 끊임없이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가 흥미로운 이유이다.”
역사는 우연의 연속이기에 재미있다. 그러나 역사가 우연이기만 하다면 그것은 그리 재미있는 것이 될 수는 없다. 역사는 우연적이면서 규칙적이기에 재미있다.
“우리는 필연적인 일보다는 끝없는 조사와 숙고로만 원인을 알 수 있는 것에 감동한다. 이에 비해 양극단에 있는 뚜렷한 법칙에 의해 그렇게밖에 될 수 없는 상황과 완전히 마구잡이인 상황은 대개 우리의 마음을 끌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역사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대상들이 역사를 제어할 수 없기 때문이며, 역사를 능동적으로 바꿀 방법조차 없이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발성은 우리를 매혹시킨다. 우리는 개별 사건의 인과적인 힘을 알게 된다. 우리는 모든 사소한 일에 일희일비화고 논쟁한다. 그 사소한 일들 모두가 각자 거대한 변화의 힘을 가지기 때문이다. 우발성은 즉각적인 사건이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며 왕국은 말굽에 박을 못이 부족해서 망할 수도 잇다.” (스티븐 제이 굴드, 저자의 인용)
역사는 왜 우발적이면서 규칙적인가? 이책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역사가 과학이 될 수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시도이다.
저자는 과학으로서 역사의 모델을 비평형 통계물리학에서 찾는다. “이런 시스템에서 정확한 예측은 불가능하다. 그러면서도 개별적인 사건들의 무질서 속에는 심오한 규칙성이 들어 있고 아주 간단한 통계법칙에 지배되는 경우도 많다.”
간단한 통계법칙의 대표적인 예는 멱함수(power law) 관계이다.
“모래알을 하나씩 계속 떨어트리면 넓은 모래산이 점점 높이 쌓인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계속 잘 쌓이지는 않는다. 모래더미가 커지면서 경사가 점점 가팔라져 나중에는 모래알이 경사면을 타고 조금씩 흘러내리게 된다. 조그만 산사태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 때 모래알은 아래로 미끄러져서 더 평평한 곳으로 가고 모래산은 더 낮아진다. 이렇게 해서 모래산은 커지다가 줄어들기를 반복하고 그 들쭉날쭉한 윤곽은 영원히 요동친다.”
복잡계를 설명할 때 거의 반드시 나오는 예이다. 이 실험을 고안한 백, 탕, 위젠필드는 모래산이 쌓이고 무너지는 리듬을 이해하려고 했다. “사태의 ‘전형적인’ 크기는 얼마인가? 다시 말해 다음 사태는 얼마나 클 것으로 기대되는가?” 그들의 질문이다. 그들은 컴퓨터 상에서 수천개의 모래더미를 만들고 수백만번의 사태를 일으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답은 없었다: ’전형적인’ 사태 따위는 없었다.
“어떤 때는 모래알 하나가 구르는 것으로 끝나기도 했고, 백 개 또는 천 개가 한꺼번에 구르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수백만개의 모래알이 한꺼번에 굴러내려 더미 전체가 무너지는 ‘격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왜 그럴까? 모래더미가 언제나 무너질 수 있는 불안정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모래더미가 ‘악마 같은 불안정성’에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민감한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를 물리학에선 ‘임계상태(critical state)’라 부른다.
임계상태에 있는 모래더미가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는 ‘역사’가 결정한다. 임계상태에 있는 ‘계’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고 프랜시스 크릭이 말한 ‘얼어붙은 우연(frozen accidnets)’에 민감하다. 모래더미 게임에서 모래알은 무작위로 여기저기에 떨어진다. 더미가 자라면서 모래알은 떨어진 곳에 그대로 ‘얼어붙고’ 그 모래알의 영향은 영원히 그 자리에 고착된다.”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를 발견한 크릭은 ‘얼어붙은 우연을 진화의 본질적 요소라 말했다. 생물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돌연변이는 거의 항상 생물의 생존과 생식 능력을 저하시키고, 따라서 돌연변이를 일으킨 변종은 대개 멸종한다. 그러나 어쩌다 드물게 돌연변이가 적응성을 높여서 집단 전체로 퍼질 수 잇다. 그러면 그 우연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서 그 뒤로 일어나는 그 종의 모든 진화는 이 새로운 도약대에서 시작하게 된다. 진화는 이러한 방식으로 누적된다. 역사는 얼어붙은 우연이 만든 구불구불한 경로를 따라 진행되며 이 얼어붙은 우연이 바로 역사적 우발성이 구체화된 것이다.”
물리법칙이 얼어붙은 우연을 허용하지 않으면 세계는 평형상태가 되어 모든 것은 풍선 속의기체처럼 균일하고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물리법칙이 한 장소에 고착되는 결과를 허용하면 거기에 따라서 미해가 진행되는 바탕이 변경된다. 물리법칙이 역사의 존재를 허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가 개입하는 임계상태에선 시간이 개입하지 않는, 즉 가역적인 ‘평형’ 상태에 있지 않다. 비가역적인 비평형 상태에 있을 때 그 계를 복잡계라 부르며 그러한 계를 연구하는 물리학을 비평형 물리학 또는 복잡계 물리학이라 부른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은 비평형 물리학에서 찾아야 한다. 비평형 물리학의 개념들은 역사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특별히 조율된 것이다.”
저자는 폴 케네디의 ‘제국의 흥망’을 그 예로 든다. “국가의 경제력은 자연스럽게 줄었다 늘었다 한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어떤 국가의 경제적 기반은 점점 약화되고 어떤 국가는 새로운 경제적 기반을 얻지만 기존의 상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서 쌓인 스트레스는 대개 무력 충돌의 형태로 방출되며 충돌이 벌어진 뒤에는 각각의 국가들이 진정한 경제력에 따라 대략 균형을 찾는다.
지각에 스트레스가 서서히 쌓였다가 갑작스런 지진으로 방출되거나 모래더미에서 경사가 점점 급해져서 계속 불안정성이 높아지다가 사태가 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케네디의 설명과 비슷하게 들린다면 이는 우연이 아니다. 전쟁은 실제로 지진이나 모래더미 게임에서 나타나는 것과 같은 통계적 패턴을 보인다.”
비시간적인 즉 가역적인 평형 또는 균형이 지배하는 평형계에선 법칙에 따른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얼어붙은 우연에 의해,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경로의존성(path dependency)이 지배하기 때문에 복잡계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왜 복잡계는 예측이 불가능한가? 그 메커니즘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복잡계의 이벤트는 ‘전형성’이 없기 때문이다.
전형성이 없다는 것은 정규분포를 그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정규분포는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곡선이다. 계의 이벤트들이 종모양의 정규분포를 따른다는 것은 평균값이 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해 평균값에서 크게 벗어날수록 그런 이벤트는 더 드물어진다. “120킬로그램인 사람은 몇 명쯤 있겠지만 200킬로그램이 넘는 사람은 아주 예외적이다. 2000킬로그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계의 이벤트들이 정규분포를 그린다면 이벤트가 대략 어느 정도의 값을 갖는다는 기대값(평균의 다른 이름)을 갖는다.
그러면 지진은 어떨까? “지진이 방출하는 에너지가 두배 커지면 지진의 빈도는 4배 작아진다.” 이런 관계를 멱함수 법칙(power law)라 한다. 계가 멱함수 관계에 있을 때 그 계의 이벤트들은 규모불변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냉동감자를 벽에 던져 만들어진 조각을 센다고 하자. 감자 파편의 무게와 개수는 멱함수 분포를 따른다. 조각의 무게가 두배가 될 때마다 조각의 수는 6배로 줄어든다.
“몸집을 마으대로 줄일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이런 능력이 있다면 감자 조각을 검사하는데 편리할 것이다. 몸을 콩알만하게 줄엿다고 하자. 이 크기에서 보이는 풍경에 대한 느낌을 얻는다. 여기에서 대략 콩알만한 조각들을 보고 얼마간 크거나 작은 것들도 본다. 그런 다음 몸을 더 줄여서 열배 작은 규모를 조사한다. 이 규모에서도 풍경은 거의 비슷하다. 콩알만한 그키였을 때 자신의 무게와 비슷한 모든 조각에 대해서 그 절반 무게의 조각들은 대략 6배 많다. 몸의 크기를 줄여도 항상 그 전과 같은 풍경을 볼 것이다. 어떤 규모에서도 풍경은 정확하게 똑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이것이 멱함수 패턴의 의미이다. 이 관계에 있는 감자 조각에는 “특별히 ‘선호’되는 크기가 없다. 멱함수 패턴이 나왔다는 것은 정상적이거나 전형적인 파편 따위는 없다는 뜻이다. 감자 조각의 무더기가 규모 불변성을 보인다는 것은 큰 조각과 작은 조각은 단지 크기만 다를 뿐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지진은 멱함수 패턴을 따른다. 그러므로 “큰 지진이라고 해서 작은 지진과 특별히 다른 원인을 가지지 않는다.” 거대한 지진은 아무 이유없이 그런 규모를 갖는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지진 예측은 불가능하다.
지진은 단층의 마찰력이 단층의 토막들에 쌓이고 마찰력이 쌓인 토막들에 누적된 스트레스가 방출되면 단층이 미끄지면서 지진이 일어난다. 이때 지층 토막이 방출하는 스트레스는 이웃한 토막으로도 전달되어 그 토막의 스트레스를 높인다. 큰 지진과 작은 지진은 처음 스트레스를 방출한 토막이 어느 위치에 있었느냐에 따라 달라질 뿐이다. 우연히 토막들의 네트웤의 중심에 있어서 네트웤 전체에 스트레스를 방출할 수 있는 토막이 진앙이었다면 네트웤 전체가 흔들려 큰 지진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지진이 예측 불가능한 이유이고 무시무시한 격변이 아무 경고 없이 일어나는 이유이다.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이것이 얼마나 커질지는 지진 자신도 모른다. 지진 자신이 모른다면 우리도 모른다.”
“임계상태에 사는 것들은 엇비슷하게 조직되는 경향이 있고 이 조직은 계의 세부적인 성질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계의 기하학적 구조(멱함수 패턴과 프랙탈 패턴)에만 관계된다. 따라서 어떤 것이 임계상태라면, 계의 세부적인 성질들을 거의 무시하면서도 본질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임계상태에 잇으면 인간세계 역시 마찬가지라 말한다. “불행히도 역사가들은 오로지 사건들의 연쇄만을 서술할 수 있고 그 배후에 잇는 심오한 역사적 과정을 잡아내지 못한다. 이 서사는 다만 역사의 변덕스러운 우발성에 존경을 표할 따름이다. 왜 모든 사태가 작지 않은가 하는 질문에는 아무 대답도 없다. 왜 모래 한 알이 파국을 일으킬 수 잇는지 이해ㅗ하기 위해서는 모래더미의 세부적인 구조를 작은 지역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것을 통해 불안정성이 파급될 수 있는 범위를 알아내야 한다. 오로지 이런 방식으로만 역사가들은 역사를 훨씬 더 깊이 인식할 수 있다.”
저자는 인간의 역사에 어떻게 복잡계 물리학을 적용할 수 있는지 쿤의 과학혁명을 예로 든다. 쿤의 논리를 요약하면 정상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벤트들이 누적되면 정상과학의 개념들의 네트워크에 ‘부적응’이란 스트레스가 쌓인다. 부적응의 임계상태에 있는 것이다. “부적응이 어떤 문턱에 이르면 그 조직과 거기에 기초한 정상과학은 무너진다.” 저자는 과학혁명과 지진의 역학은 동일하다고 말한다.
“정상과학의 연구는 대륙판의 느린 이동과 비슷하고 과학혁명은 지진과 비슷하다. 지진에는 전형적인 크기가 없다. 과학혁명도 마찬가지일까?” 쿤 자신이 그렇다고 말한다. 과학혁명은 “큰 변화일 필요가 없고 그 집단 밖에서도 혁명적으로 보일 필요가 없으며 어쩌면 25명 이하의 소규모 집단에서 일어날 수도 있다.” “쿤의 논의는 전형적인 크기의 혁명은 없다는 말이다. 과학의 변동은 규모 불변일 수 있고 패러다임의 개념 네트웤은 지국의 지각처럼 임계상태일 수 잇다.”
그렇다면 복잡계는 예측불가능하기 때문에 인간세계 역시 예측불가능인가? 그렇지는 않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 관련된 대상에서 우리가 알아내고자 하는 것은 수많은 사건의 연쇄에서 나타나는 통계적 패턴이다. 그런 법칙은 단 하나가 아니라 여러 서사의 일반적인 성질을 잡아내며 사건들의 배후에서 작동하는 역사적 과정의 심오한 성격을 반영한다.”
평점 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