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송 이즈 유 The Song is You
아서 필립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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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즈의 곡 중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는 곡은 아마도 '슈퍼스타'일 것이다. '슈퍼스타'는 순회공연 중인 팝 스타와 팬의 하루 밤 불장난이란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노래한다.

카펜터즈의 음악을 당시 평론가들은 아이스크림 음악이라 불렀다. 쉽게 듣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고전이 되어버린 카펜터즈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평이다. 그러나 그런 평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슈퍼스타의 경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리차드는 그 곡에 밝고 장난스러운 피아노 반주를 입혔다. 그러나 곡이 진행될수록 리차드의 편곡은 캐런의 깊게 가라앉은 보이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곡의 편곡에서도 캐런의 우울한 보이스는 무시된다. 진부하고 맥 빠진 단조의 바다에서 과묵한 캐런의 탄식은 묻혀버린다.

캐런의 내면과 리차드의 만들어진 광택 사이의 모순을 가장 잘 잡아낸 것은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슈퍼스타' 커버이다.

"외로움은 그렇게 슬픈 것이다"란 가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캐런과 소닉 유스는 알고 있었지만 리차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의 기타는 이렇게 달콤하고 맑게 울리는데 당신은 여기 없고 라디오만 있군요." 캐런은 한 때의 불장난을 배신감으로 해석해 혼자 남겨진 외로움의 드라마로 바꾸었다. 소닉 유스의 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쇠톱을 긁는 것 같은 전자기타의 비틀린 피드백, 신디사이저의 화이트 노이즈, 고음과 저음을 거세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전화에 대고 말하는 유령 같은 보컬은 (팝스타라는 환상을 쫓는) 스토커의 불길한 갈망을 그린다.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코러스를 무어가 부를 때면 섬뜩하다. 소닉 유스가 보여주는 것은 카펜터즈 음악의 진실이다.

‘노래가 당신’이란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은 캐런이 잡아낸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말한다.

이 소설은 50을 바라보는 늙은 팬과 팝스타의 이루어지지 않은 로맨스를 다룬다. 자기 나이의 반에 불과한 여자와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남자 사이의 관계는 결핍의 관계이다. 중년의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보는 것은 젊음의 활기이다. 젊은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보는 것은 또래에게는 볼 수 없는 어른의 안정감이다. 서로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대에게 보는 관계이다.

이 소설의 관계 역시 그렇게 이어진다. 케이트가 줄리언에게 본 것은 이런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얼굴이 있었다ㅓ. 아주 멋진 얼굴, 세상을 아는 남자의 얼굴이엇다. 그의 얼굴과 자세에서는 어쩐지 자신감에 넘치는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연상/연하의 함수에 이 소설의 관계는 팬과 팝스타라는 변수가 더해지고 그렇게 더해진 변수 때문에 그들의 방정식은 해답이 나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팬과 팝스타의 관계는 판타지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녀는 노래했다. 어떤 감정이든 주문만 하면 또렷한 윤곽선의 반짝반짝 윤나는 축소모형으로 제조하고 전시해낼 수 있었다. 실연을 회상하고 나서 회상을 순수하게 증류한 노래를 불러, 결국 줄리언(과 백명도 훌쩍 넘는 남자들과 여자들)으로 하여금 그 아픔의 근원을 혼쭐내주고 그녀를 돕고 싶다는 차라리 자신이 아픔의 장본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케이트는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청중이 느끼게 하고 이미 느껴보고도 모르는 감정을 실감하게 했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느낌은 팬과 팝스타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이어준다. “그녀는 딜레마를 맞았다. 성공하려면 그녀와 그녀의 감정들이 진실로 공명해야 하고 군중들로 하여금 말 그대로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지게 해야만 한다. 그녀의 밥벌이라는게 그런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인 사안에 의존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들과 비현실적인 미모를 광고 이미지로 박제하는’ 환상을 다루는 CF 감독으로서 줄리언은 그런 팬과 스타의 관계 역시 자신의 직업 만큼이나 무의미한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캐런 카펜터가 포착한 ‘지독한 상실감과 무의미와 단절’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중년도 저물어가는 줄리언에게 삶은 ‘상실과 결핍이 삶의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사랑하던 아들이 떠나면서 행복한 결혼도 끝나고 왕성한 성적 활력도 잃어버린 초라한 자신. 상실과 결핍을 직시하기에는 무의미에 시달리는 줄리언. 그는 끔찍한 현실을 환상에서 해소하려 한다.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케이트의 목소리는 “줄리언 속에서 진하게 버무려져 굳은 정서-회한, 희망, 슬픔, 흔들리는 야망, 갈망-를” 휘저어 “그를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그 목소리 없이는 차마 이렇게 응축된 감정이 이토록 넘칠 수는 없었다. 이제 나이 든 줄리언은 이런 경험이 얼마나 흔치 않은 것인지 잘 알고 잇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묵 속에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감정들을 밝혀주는 그 목소리를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케이트인가 케이트의 목소리인가? 그녀에게 다가가길 망설이는 이유다. “지금쯤은 알 만도 한데 또 한번 음악의 미망에 이끌려 터무니없는 환상을 품고 만” 것은 아닌가?

줄리언은 한때 스타엿으나 이제는 몰락한 눈앞의 개자식을 본다. “케이트는 어떤 면에서 이 바보와 아주 똑같았다. 그들은 다 불행하게도 그저 사람들이었으니까. 이 마법사와 주술사들은 케이트가 그를 한다는-어떤 면에서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잇다는-소중한 느낌은 환상일 뿐이다. 그뿐 아니라 야심이 있는 공연자가 매니저와 시장 고문과 커리어 플랜 등을 가지고 진부하게 끼워맞춘 가공되고 조작된 환상이었다.

유일하게 진짜배기들, 순수한 이들은 죽은 이들이었다. 죽은 가수의 레코딩은 기술의 개입이 적을 뿐 아니라(따라서 정서적으로 더 믿을 만햇다) 하잘것없는 인간성이 모조리 폐기처분된 후 테이프에 오롯이 순수성만 남았기 때문에 다르다. 오십 대, 육십 대, 칠십 대가 되어서도 사춘기의 감정을 노래하고 당신의 고통에 아이러니한 웃음을 반복해서 날리고 또 날리고 그러면 작위적인 구조물이 된다. 줄리언이 돈 때문에 하는 일보다 중요할 게 없는 아니 심지어 그보다 더 하찮은. 그런데 케이트는 그에게서 연료를 얻고 싶어 했던가? 그의 가치를 증명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랐던가? 신선한 감정과 경험을 갈구하는 그 만족을 모르는 허기를 채워달라고?”

“숭배받는 스타와 누구보다 스타를 잘 이해하는 팬으로서 둘은 서로를 절실하게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를 갈망하는 이유는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이 그들의 관계를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의 관계로 만든다.

그는 아이팟의 목소리만 있는 케이트와 현실에 몸을 가진 케이트의 거리를 환상으로 메운다. “그 여자가 한 사람으로서 그 여자 자체가 이런 기분이 들게 햇다. 그러니 어쩌면 칼턴(죽은 아들)이 이미 박탈한 과거나 미래에서 온 달콤씁^쓸한 고문이 아니라 그의 삶에 현전하는 기쁨이라 느낄 수 잇게 해줄지도 모른다. 삶에 케이트가 잇다면 자유롭고도 구속받는 젊고도 늙은 기쁘고도 서글픈 그리고 용서받은 사람이 될 수 잇다 믿을 수 있었다.”

현실의 여자는 그런 여신이 될 수 없다. 결혼도 해봤고 수많은 여자를 거치면서 그것을 알만한 나이가 된 그는 자신의 환상을 내버려둔다. 그리고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 애써 무시하기에 줄리언은 케이트에게 다가가 현실의 남자가 되는 것을 망설인다.“그냥 전화를 걸어버릴 수 도 있었다. 분명히 그녀를 원했다. 그러나 하루가 또 하루가 지나도 그냥 전화를 걸지 못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저항하는 자기 마음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줄리언에게 그의 아버지가 들려주던 동화에 이런 말이 나온다. “수도승은 그에게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떠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제야 제 슬픔을 잊었어요.’ 토시로는 항의햇다. “그 때가 바로 행복이 끝나야만 하는 때다.” 수돗6ㅡㅇ이 말햇다. “하지만 스승님. 저는 여기서 행복합니다.” 토시로가 우겼다. “아니다. 너는 너의 불행을 감추고 그 대신 거기서 꿈을 만드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그런 줄리언에게 케이트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 빨리 대답해요. 음악 따위 언급도 하지 말고, 어째서 나를 쫓아다녔는지. 내 안에서 어떤 깊이를 보았는지. 하지만 음악 얘기는 하지도 말아요. 지금 당장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들이 좀 있어요.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얘기들이겠지만. 아니면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남아 잇을까요?”

그러나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수집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걸 모으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쩌면 그녀를 모으면 모을수록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면 볼수록 그의 기대에 못미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날지 모른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는 동안 깨닫는다. “실망하고 화가 난 그녀는 그 같은 남자들에게 작고 어리고 재미없고 뻔”할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이유일 수 없엇다. “그녀는 그만두엇다. 완성된 최종본은 워라고 해야 할까? 음률이 맞지 않을 터엿다. 전혀 말이 안되는 코드 진행이엇다. 부모, 아기, 자란 아기, 더 자란 아기, 케이트. 오늘 밤 무대에서는 세상 만물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기분이엇는데 지금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망치고 잇다는 느낌이엇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그를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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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로에 선 일본 - 민주당 정권, 신자유주의인가? 신복지국가인가?
와타나베 오사무 외 지음, 이유철 옮김 / 메이데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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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소중히 하는 것도, 낭비를 없애는 것도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당연한’ 것들이 무너졌습니다.
모자가정의 아이들은 수학여행도, 고등학교도 갈 수 없습니다.
노인은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갈 수 없습니다.
매일 목숨을 끊는 사람이 100명이 넘습니다.
이 현실을 방치하고 콘크리트 건물에는 거액의 세금이 투입됩니다.
도대체 이 나라에 정치가 있습니까?
저희는 콘크리트가 아니라 사람이 소중한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관료들이 아니라 국민 여러분의 눈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수직으로 이어진 이권사회가 아니라 수평으로 이어진 ‘유대’가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도움되고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감동적인 글이다. 2008년 총선으로 일본의 55년 체제는 공식적으로 끝났다. 55년 체제가 끝난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러나 직접적인 이유는, 선거에서 자민당이 무너진 이유는 민주당의 선거 매니페스토가 말하는 일본의 현실 때문이다.

일본이 학교도 갈 수 없고 병원도 갈 수 없고 자살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된 것은 90년대부터 시작되어 고이즈미 수상 집권기에 정점에 달했던 ‘구조개혁’ 때문이다.

구조개혁은 일본 엘리트들이 잃어버린 10년을 겪으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더 이상 일본모델은 통하지 않는다. 구조개혁은 일본모델의 개혁이었다.

일본의 구조개혁 어젠다는 신자유주의 프로그램과 거의 흡사하다. 그러나 그 내용은 비슷하더라도 그 개혁의 대상은 달랐고 개혁의 결과와 영향 역시 다를 수 밖에 없었다.

신자유주의는 미국과 유럽의 전후 복지국가 모델에 대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전후 “일본에서 복지국가는 성립되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 사회를 이끈 것은 기업 사회와 자민당 정치를 중심으로 하는 개발형국가였다. 일본 대기업은 노동운동을 기업 안에 봉쇄하였다. 그 대신 기업 사회는 노동자를 ‘종신고용’, ‘연공임금’으로 신규채용부터 정년퇴직까지 평생동안 회사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불황으로 해고되는 일도 없었다. 기업의 우산 아래 실업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고 연공임금이 오르기 때문에 교육이나 개호에 대한 걱정이 없었다. 노후는 퇴직금으로 생활하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안일함’으로 공적 복지에 관심이 없었다.

기업주의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대표하는 사회당보다 기업의 번영에 일조하는 자민당을 지지했기 때문에 경제성장에 의해 노동계급이 늘어도 노동자 정권을 만들지 못햇다. 오히려 이들은 자민당 정권을 안정시켰고 이것이 경제성장의 지렛대로 작용했다.”

기업의 성장과 함께 증가하는 세금 수입은 도시의 노동자를 위한 복지 대신 지방의 공공사업에 투입되어 자민당의 지지표를 사는 데 쓰였다. 자민당은 경제성장의 과실을 재분배하면서 지방에 일과 고용을 창출했다.

“기업의 우산에 더해 지방 이익 유도라는 우산이 구축된 것이다. 일본에서 그 결과 유럽 복지국가가 정비한 사회보장제도가 기업과 지방이라는 우산으로 대체되었다. 즉 사회보장을 싼 값으로 기업이 대체한 것이다. 기업 사회+자민당의 이익유도형 정치+빈약한 사회보장”이 경제성장과 사회안정의 기둥이 된 것이다.

그러나 잃어버린 10년 동안 누적된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초장기의 디플레이션, 세계화의 압력으로 잃어가는 경쟁력은 일본모델을 감당할 수 없는 사치로 만들었다.

“우선 많은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떠안은 기업 사회가 세계화속에서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력의 유연한 배치를 요구하는 기업에게 걸림돌로 작용했다. 게다가 기업의 안정과 기업우위 정첵을 보장해온 자민당 정치도 이중의 불만 대상이 되었다. 하나는 그 이익유도형 정치가 재정을 부풀려 기업에 대한 부담 증가로 오고 결국 그 부담이 다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엇다. 다른 하나는 지방에 대한 보조금, 공공사업 투자 없이 유지하기 힘든 비효율적인 지방산업이나 농가를 유지시키면서 발생한 기업 경쟁력에 대한 부담과 이에 대한 불만이엇다. 빈약하고 값싼 사회보장제도도 급속한 고령화로 비용이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불만의 대상이 되었다.”

불만이 쌓인 재계는 개혁을 요구하며 ‘글로벌국가’를 주장한다: “현재 세계경제를 주도하는 것은 다국적기업이며 일본이 세계경제의 중심국가들 중 하나로 연명하려면 다국적 기업에게 선택받는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임금, 법인세, 사회보장부담 등 다국적기업 입장에서 ‘고비용’ 경제구조에 대한 개혁”이었다.

노동의 저항도 미미하고 복지제도랄 것도 미미한 일본에서 그런 개혁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노동운동과 복지국가라는 벽 대신 다른 저항운동이 등장하여 개혁의 걸림돌이 되엇다. 다름 아닌 자민당 정치가 그것이었다. 자민은 머리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이해하지만 지방의 이익유도형 정치가 자민당 의원들의 생명줄이엇기 때문에 쉽게 버릴 수 없었다. 즉 개발형 정치가 구조개혁 정치의 ‘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잃어버린 10년 동안 흐지부지 시늉만 할 뿐 개혁은 진척이 없었다. 민주당은 재계의 후원을 받으며 탈개발주의를 내세웠다. 민주당의 존재의의를 반자민당 노선에서 찾은 것이다. 자민당 노선 때문에 피해를 보고 있고 자민당의 지지부진한 개혁에 반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대도시 중산층이 민주당의 지지층이 되었다.

“민주당 창당 이후 이들의 강한 지지 기반은 대도시의 중간층, 대기업 정규직, 관리직이었다.” 이들은 대기업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며 “자신들이 낸 세금이 지방에 빼앗겨 자신들의 삶에 환원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러한 도시 중간층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개발형 정치 타파, 기득권 정치 타파라는 슬로건에 매력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한 기업 경쟁력 회복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에게 답보상태인 자민당의 신자유주의 개혁은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기업/대도시와 이해관계가 다른 “지방은 자민당 지배에 있었다. 민주당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었다. 따라서 민주당은 대도시 지역과 지방에서 이른바 정치 1번지라 불리는 현청 소재지에서만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고이즈미와 함께 정치지형이 달라진다. 고이즈미는 ‘자민당을 바꿔 일본을 바꾸자’ ‘개혁없이 성장없다’ ‘성역없는 구조개혁’을 외치며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따라 개혁을 밀어붙였다. 민주당은 ‘표절’이라 비난했지만 누가 그런 것에 신경쓰겠는가?

“고이즈미 내각은 구조개혁을 통해 일본 사회의 세 기둥을 자르는 작업에 착수했다. 우선 기업 사회 구조개혁이 추진되었다.” 비용을 높이는 정규직을 줄이고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정책이 확대되었다.

“고이즈미가 감행한 불량채권 처리도 기업 사회 해체를 촉진했다.” 불량채권을 정리하지 않은 채 10여년이 흐르면서 은행이 마비되었다. 금융의 마비를 풀려면 불량채권을 정리해야만 햇다. “그러나 은행의 융자 강제 회수와 융자 거부가 진행되면서 지방 산업, 중소기업은 강제적인 도산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는 비효율 산업을 한번에 정리하는 동시에 대량의 노동력을 시장에 공급하여 임금을 낮추고 비정규직화를 촉진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구조개혁의 진면목은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의 해체였다. 고이즈미가 2001년에 ‘자민당을 부수겠다’고 선언한 것은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에 대한 정리 선언이었다. 이것이 ‘삼위일체개혁’이다.”

잃어버린 10년동안 자민당이 경기부양을 한다며 지역구에 아무도 다니지 않는 도로, 교량을 만들고 미술관, 체육관을 지으면서 낭비한 돈은 쌓이고 쌓여 일본정부의 부채는 GDP의 2배에 가깝게 되었다. 이런 규모의 채무를 감당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

예산압박은 지방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져 공공사업 투자와 보조금 삭감이 단행되었으며 “사일본 사회를 지탱해온 세 기둥 가운데 사회보장제도의 구조개혁”으로까지 나아갔다.

고이즈미의 구조개혁은 잃어버린 10년을 끝낸다는 결의에서 나왔고 10년 동안 마비된 일본을 개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이즈미 개혁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분명했다. 한편으로는 대기업 경쟁력 강화의 벽이었던 세 기둥이 한 번에 정리되면서 대기업의 수익률은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사회의 고용과 사회보험을 지탱해온 세 기둥이 잘려나간 결과, 유럽 복지국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사회 파탄이라는 모순이 폭발했다.

그 전형적인 예가 아사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 동안 키타큐슈시에 세 명의 아사자가 나왔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정규직 노동자는 구조조정으,로 기업으로부터 내쫓겼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계약해지를 당했다. 기업으로부터 쫓겨난 비정듀직 노동자를 흡수해온 지방도 구조개혁으로 더는 일자리가 없었다. 최후의 수단으로 생활보호를 신청하지만 접수를 거부당하거나 일단 수급을 받아도 추ㅟ어ㅓㅂ지도에서 ‘퇴직’을 강요받으며 아사에 이른 것이다. 기업 사회와 지방의 우산 그 자체가 구조개혁으로 축소된 결과다.”

“저축을 할 수 없는 세대의 급증도 그 결과다. 1980년대 말 예금이 없는 세대는 3%에 불과했다. 그러나 구조개혁 10년 사이 23%로 늘었다. 구조개혁으로 예금을 야금야금 쓴 결과이다.” 무보험 세대도 마찬가지 결과이며 아동학대, 자살, 범죄 등도 마찬가지이다.

정치권과 재계는 ‘구조개혁의 모순이 사회적 위기를 가져온 것에 놀라며 노선전환을” 받아들인다. 사회적 위기 때문에 자민당은 지지기반인 지방의 반란으로 2007년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한다. 자민당 내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아베 내각이 붕괴하고 “자민당은 구조개혁 급진파가 퇴진하고 점진파가 권력을 차지”한다. 이들이 “가장 먼저 손을 쓴 것은 고이즈미 구조개혁으로 무너진 사회보험의 구조개혁에 대한 제동이었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아소 내각의 “신점진 노선 전환은 국민들의 환심을 가기에 부족한 것이었다. 정책의 내용보다 자민-공명 연립정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구조개혁을 강행한 자민당의 몰락을 보며 같은 보수정당인 민주당은 노선을 선회한다. 오자와는 자민당에서 이탈한 지방의 표심과 노조의 손을 잡고 복지를 강화하는 정강을 내세운다.

민주당은 지방의 표를 얻은데 더해 자민당의 구조개혁의 미진함이 불만이었던 대도시의 표를 얻어 집권에 성공한다. (대도시 중간층은 고이즈미의 퇴진 이후 자민당이 “고이즈미가 추진한 개혁에 역행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다시 말해 “자민당의 낡은 정치에 대한 반발과 고이즈미의 개혁에도 바뀌지 않는 자민당에 대한 환멸이 민주당으로의 회귀를 만들었다.”)

그러면 민주당은 일본을 어디로 이끌 것인가? 저자들은 그 방향이 애매하다고 말한다. 민주당의 정체성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세 그룹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그룹은 당 집행부로 이들은 신자유주의/자유주의파이다.

둘째 그룹은 오자와 그룹이다. 오자와는 이전까지 집행부와 마찬가지로 “자민당의 개발주의정치를 무너트린다는 점에서 일치”하였으나 오자와는 이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전략을 바꾼다. 자민당의 개발주의 정치 즉 족의원 정치에 능통한 그는 “구조개혁에 의해 버려져 자민당에서 이탈한 지방공장, 중소기업, 건설회사, 농가층을 그대로 민주당으로 흡수하여 지방의 자민당 지지기반을 무너트렸다.나아가 오자와는 자민당이 하지 못한 노조를 동원하였다. 렌고와도 연대하였다.” 결국 오자와에 의한 정책선회는 개발주의 정치와 다를 것이 없다. “자민당 이익유도형 정치의 민주당 버전이다. 오자와는 이미 고이즈미의 삼위일체 개혁이 지방을 망친 것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했다. 때문에 그 지방을 민주당 측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지방에 대한 자원 배분이 필요했다.” 오자와의 노선선회는 당의 머리인 집행부와 충돌할 수 밖에 없다.

두 그룹의 공방은 “기존 자민당 내 공방과 비슷하다. 그러나 민주당에는 셋째 그룹이 있다. 이 그룹은 민주당의 중견 의원 그룹이다.” 이들은 지역의 이익집단, 노조와 연대하며 구조개혁 정책에 반대해왔다. “이들은 중앙, 지방을 가리지 않고 구조개혁의 모순을 한 몸에 받았던 사회계층으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점이 이 그룹의 힘이다.” 이들이 앞에서 인용한 “매니페스토의 제작자이며 그 실현에도 힘을 쓰는 그룹이다. 사실 이 그룹이 민주당을 반구조개혁의 기수로 만든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민주당의 ‘수족’이다. 이들은 당의 머리와 몸통 같은 조직적 기반이 없고 개별 정책에선 “전문가이지만 개개의 정책을 초월한 독립된 국가 구상이 없다.”

“머리는 개발형국가를 해체하고 관저주도체제, 지역주권국가의 신자유주의 국가를 지향하는 반면, 몸통인 오자와파는 구조개혁으로 버림받은 지방의 이해실편을 위한 수단으로 자민당이 해온 개발형국가를 민주장이 대신하려고 한다. 즉 퇴보적 정치지향이다. 이에 비해 수족은 국민의 반구조개혁 목소리를 반영하여 왼편의 정치를 지향한다.수족은 명확한 국가의 상이 없어 피상적인 복지지향과 신자유주의 국가 구상이 공존한다.” 머리와 몸통, 수족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가려는 당이 도대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것인가? 저자들은 “당에 꾸준히 압력을 가하는 미국이나 재계 또는 언론의 압력과 당조직 그리고 여러 운동의 역관계ㅔ에 달렸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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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추락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의 세계경제 분석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장경덕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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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의 상당부분은 다른 책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왜 일어났는가, 그 경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되었는가? 등등이 이책의 내용이다.

그러면 이책의 내용은 지금까지 거물 경제학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쓴 책들과 어떻게 다른가? 사실 상당부분은 겹친다. 그 겹치는 내용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데다 깊이 있는 내용도 아니다. 동료학자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책의 가치는 깊이보다는 내용의 폭에 있다. 이책이 다루는 내용의 폭은 지금까지 나온 다른 책들보다 월등히 넓다.

예를 들어 다른 책들은 이번 위기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좀더 거슬러 올라가도 닷컴 버블 이후 연준의 정책까지 이지만 저자는 70년대 통화주의의 등장과 신자유주의의 등장부터 이번 위기의 뿌리를 잡는다. 저자가 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는 이번 위기의 뿌리는 시장근본주의 때문이라 보기 때문이다. 흔히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계경제의 교리가 된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저자는 금융위기의 상시화라 보며 이번 위기는 그 절정이라 본다.

이번 위기는 시장근본주의의 파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장근본주의는 이번 위기로 지적으로 파산했다.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자본시장을 규제햇던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선 금융위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좋은 반증이라 말한다. 그 시절의 숨막히는 규제로 돌아가지는 않더라도 이제 규제를 절대악이라 말할 수는 없는 조건이 만들어졌고 금융규제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 타이밍이라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이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규제 시스템의 구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위기와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유는 금융규제의 정치경제학 때문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실세들과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구단주와 감독의 관계로 비유하곤 한다. 아시아의 정치지도자들 대부분은 정권을 잡으면 마치 새로운 구단주처럼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직은 구단주의 자리가 아니라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감독은 계약에 명시된 임기 동안 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최대목표이지만 동시에 기득권을 잡고 있는 구단주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이와 같이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을 움직이는 실세들의 이해를 정책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 행정부의 현실이다. 즉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건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과 워싱턴 브레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조명진)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입안했던 것은 월 스트리트였다. 70년대 이후 규제완화로 월 스트리트는 가장 큰 혜택을 누렸으며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번 위기는 규제자가 피규제자에게 포획(capturee)되어 피규제자의 입맛에 맞게 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그 동안 미국 행정부의 재무 관련 요직은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독식해왔다.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들을 보면 골드만삭스 회장을 역임한 루빈 재무장관과 볼튼 백악관 비서실장이 있다. 볼튼 비서실장은 골드만삭스의 CEO였던 행크 폴슨을 재무장관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천거한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역임한 로버트 졸릭은 골드만 삭스의 대표이사직을 맡았고 네오콘의 핵심 인물인 월 포비츠의 후임으로 2007년부터 세계은행 총재를 맡고 있다. “ (조명진)

피규제자가 규제자가 되는 시스템에서 과연 제대로 된 견제가 가능한가? 저자는 묻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위기였다는 것이다. 규제자와 피규제자가 구분되지 않는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위기의 책임자를 찾아내고 법정에 세우는 일에는 미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월스트리트를 길들일 필요성은 느끼지만 취임 이후 공언해온 금융 구조조정에는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조명진)

이번 위기를 넘기기 위해 미국정부는 수조달러를 월스트리트에 쏟아부었다. 구제금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이 납세자의 이익을 위해서보다는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위해 쓰여졋다는 것이 저자의 한탄이다.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의 손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조치엿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신용을 완전히 잃었다. 그리고 이번 구제금융이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서 미국인들은 월스트리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게 되엇고 오바마 행정부 역시 신뢰를 잃었다.

저자는 이번 위기를 겪고 나서도 이런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규제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번 위기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권력구조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다룬 다른 책들과 이책의 큰 차이를 보이는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그 외에도 이책은 케인지언인 저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주류 신고전주의학파의 시장근본주의와 그 영향을 받은 월스트리트와 월스트리트에 휘둘리는 워싱턴의 신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다른 축을 이룬다.

이책은 저자의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그리고 경제학 지식이 그리 많지 않더라도 대가가 쓴 책답게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쉽다는 점이 이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논점을 분명하고 단순하게 말들기기 위해 복잡한 현실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비판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나 통화주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고 그 배경 위에서 이해해야만 저자가 말하는 시장과 규제의 균형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논점을 분명하고 쉽게 하기 위해 저자는 그런 복잡한 논리를 과감히 생략한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는 자신의 논적들을 지나치게 바보로 만든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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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의 비밀 - 주는 사람은 알지만 받는 사람은 모르는
박유연 외 지음 / 카르페디엠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비밀’이란 거창한 제목이 붙었지만 이책의 내용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상식들이다. 그러나 그 상식들은 힘이 세다.

이책이 다루는 내용들은 목차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맛벌이가 과연 유리한가? 왜 기사에 나오는 평균보다 내 월급은 턱도 없이 적은가? 월급은 성적순인가? 월급은 능력에 비례하나 연줄에 비례하나? 외모와 월급의 함수관계는? 임금피크제는 무엇인가? 등등

뻔히 아는 내용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디선가 보았거나 읽었을 법한 내용들일 것이다. 이책의 내용은 그런 것들이다. 제목처럼 거창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알아두면 직장생활에 어딘가는 도움이 되고 잡담거리로도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감을 잡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다.

간단하게 말하면 토막상식들이다. 그런 내용을 엮은 책이기 때문에 내용에 어떤 일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급여와 관련된 여러가지 잡다한 상식을 한권으로 묶었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묶인 내용이기에 하나 하나의 항목을 깊게 파고 들지는 않는다. 한 항목에 4-5 페이지 정도가 할당되니 깊게 들어갈 수도 없다. 그러나 그 정도 지면이면 어느 정도 그 항목에 대해선 개괄을 할 수는 있는 분량이다. 실제 이책의 항목들은 제목에 내세운 사항들에 대해 짧은 지면에서 감을 잡을 수 있도록 상당히 요령있게 쓰여져 있다. 그러면서 난해하지 않게 쉽게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읽는 재미를 주도록 잘 쓰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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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 - 외롭고孤 높고高 쓸쓸한寒
몽우 조셉킴(Joseph Kim) 지음 / 미다스북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평전이란 제목이 붙은 이책의 내용은 평전과는 거리가 멀다. 이책은 물론 백석이란 인간의 생애를 다루지만 이책의 관심은 백석이란 인간이 아니라 시인으로서 백석이며 백석이라는 시인이 만든 세계가 한국의 근대예술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를 추적하는데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한다.

저자는 백석의 시가 강력한 영향력을 갖게 된 이유를 민족정신에서 찾는다. 김소월을 배출하기도 했던 평북 정주의 오산학교는 민족주의 교육의 산실이었다. 그 학교를 다닌 백석은 한민족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되었고 시를 쓰는 것을 민족운동으로서 의식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백석의 시는 얻은 것은 이념이요 잃은 것은 예술이라던 당시 사회주의 예술과는 달랐다. 백석은 민족은 그 언어에 살아있다고 생각햇으며 언어를 갈고 닦는 것이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저자는 본다.

“그 나라 말을 오해 보존하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그 나라 문학을 높은 수준에 올리는 것이다.” 백석의 말이다.

백석은 한국어의 아름다움과 그 가능성을 자신의 시에 담는다는 사명감이 있었다. 그 좋은 예는 백석 시의 음악성이라 저자는 말한다. “바로 백석의 시는 시 그대로 노래하는 사실이다. 그래서 제자 강소천이 동요를 짖게 된 것이라는 점을 말씀해셨다. 백석의 시는 조선 말기의 판소리 어법과 맞는 형식이기도 하고 고려 말기에 존재한 외치는 소리 혹은 들판의 소리로도 불리는 사대부 집안의 한글시와도 유사하다고 했다.”

한국어의 강점을 살리는 시였기에 그리고 한국어의 매력을 발산하는 시였기에 백석의 시는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언어의 마력은 다층적인 마력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백석은 시를 보는 사람들이 무지한 사람이든 지성인이든 그 시를 읽고 느끼는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켰는데 1차원적으로 보면 그저 향토적이고 음식을 사랑한 인간적인 모습이 그려져서 좋아하는 것이고 2차원적인 해석을 할 수 잇는 사람들은 그 안에 표현된 인간을 관찰하고 감상할 수 있어서 기뻐하는 것이며 3차원적인 눈으로 시를 볼 수 잇는 사람들은 비유와 상징으로 가득 차 있는 백석 시에서 위로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백석 시의 그런 다층적 깊이가 그의 시가 해방 이후에도 시, 가요, 회화를 넘나들며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한 이유라 말한다.

한국어의 매력, 향토적 소재만을 다루었다면 1차원에 머물렀을 것이며 다른 예술가들에게 그렇게 강한 힘을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모더니즘 시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김기림이 백석을 존경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상이 이책이 말하는 백석의 시세계를 요약해 본것이다. 그러나 실제 위에서 다룬 내용은 이책의 주 내용이 아니다. 이책의 주 내용은 그런 백석의 시세계가 작사가들의 가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대중가요들의 가사와 백석의 시를 비교하며 보여주는 것, 근현대 시인들의 시와 백석의 시를 비교하는 것 등의 영향관계를 따지는데 거의 책의 반 이상이 할당된다.

백석과 한국 근현대 예술사가 더 어울리는 제목이다. 그러다보니 막상 백석의 예술 자체나 백석의 삶은 비중이 일천하다. 평전이라 고른 책에서 지루한 영향관계 고증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평점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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