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추락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스티글리츠의 세계경제 분석
조지프 스티글리츠 지음, 장경덕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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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에서 저자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 내용의 상당부분은 다른 책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가 왜 일어났는가, 그 경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향후 전망은 어떻게 되었는가? 등등이 이책의 내용이다.

그러면 이책의 내용은 지금까지 거물 경제학자들이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 쓴 책들과 어떻게 다른가? 사실 상당부분은 겹친다. 그 겹치는 내용은 그리 새로울 것이 없는데다 깊이 있는 내용도 아니다. 동료학자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썼기 때문이다.

이책의 가치는 깊이보다는 내용의 폭에 있다. 이책이 다루는 내용의 폭은 지금까지 나온 다른 책들보다 월등히 넓다.

예를 들어 다른 책들은 이번 위기 자체에 초점을 맞추며 좀더 거슬러 올라가도 닷컴 버블 이후 연준의 정책까지 이지만 저자는 70년대 통화주의의 등장과 신자유주의의 등장부터 이번 위기의 뿌리를 잡는다. 저자가 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유는 이번 위기의 뿌리는 시장근본주의 때문이라 보기 때문이다. 흔히 신자유주의 또는 워싱턴 컨센서스가 세계경제의 교리가 된 이후 가장 큰 변화를 저자는 금융위기의 상시화라 보며 이번 위기는 그 절정이라 본다.

이번 위기는 시장근본주의의 파산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시장근본주의는 이번 위기로 지적으로 파산했다. 시장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정부가 자본시장을 규제햇던 브레튼우즈 체제 하에선 금융위기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좋은 반증이라 말한다. 그 시절의 숨막히는 규제로 돌아가지는 않더라도 이제 규제를 절대악이라 말할 수는 없는 조건이 만들어졌고 금융규제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 타이밍이라 저자는 말한다. 저자가 이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규제 시스템의 구축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위기와 같은 일은 다시 일어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이유는 금융규제의 정치경제학 때문이다.

“미국을 움직이는 실세들과 미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구단주와 감독의 관계로 비유하곤 한다. 아시아의 정치지도자들 대부분은 정권을 잡으면 마치 새로운 구단주처럼 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직은 구단주의 자리가 아니라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감독과 같은 역할을 한다. 감독은 계약에 명시된 임기 동안 팀 성적을 올리는 것이 최대목표이지만 동시에 기득권을 잡고 있는 구단주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이와 같이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을 움직이는 실세들의 이해를 정책에 반영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미국 행정부의 현실이다. 즉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건 월스트리트의 자본가들과 워싱턴 브레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은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다.” (조명진)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입안했던 것은 월 스트리트였다. 70년대 이후 규제완화로 월 스트리트는 가장 큰 혜택을 누렸으며 정치적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이번 위기는 규제자가 피규제자에게 포획(capturee)되어 피규제자의 입맛에 맞게 시스템이 구축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저자는 말한다.

“그 동안 미국 행정부의 재무 관련 요직은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독식해왔다.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들을 보면 골드만삭스 회장을 역임한 루빈 재무장관과 볼튼 백악관 비서실장이 있다. 볼튼 비서실장은 골드만삭스의 CEO였던 행크 폴슨을 재무장관으로 부시 대통령에게 천거한 인물이다.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역임한 로버트 졸릭은 골드만 삭스의 대표이사직을 맡았고 네오콘의 핵심 인물인 월 포비츠의 후임으로 2007년부터 세계은행 총재를 맡고 있다. “ (조명진)

피규제자가 규제자가 되는 시스템에서 과연 제대로 된 견제가 가능한가? 저자는 묻는다. 그리고 그 결과가 이번 위기였다는 것이다. 규제자와 피규제자가 구분되지 않는 관계는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오바마 행정부는 금융위기의 책임자를 찾아내고 법정에 세우는 일에는 미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월스트리트를 길들일 필요성은 느끼지만 취임 이후 공언해온 금융 구조조정에는 진척을 보이지 않고 있다.” (조명진)

이번 위기를 넘기기 위해 미국정부는 수조달러를 월스트리트에 쏟아부었다. 구제금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돈이 납세자의 이익을 위해서보다는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위해 쓰여졋다는 것이 저자의 한탄이다. 월스트리트의 은행가들의 손실을 국민의 세금으로 보상해주는 어처구니없는 조치엿다는 것이다.

이번 위기로 미국식 자본주의는 세계적으로 신용을 완전히 잃었다. 그리고 이번 구제금융이 어떻게 쓰이는지 보면서 미국인들은 월스트리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을 치게 되엇고 오바마 행정부 역시 신뢰를 잃었다.

저자는 이번 위기를 겪고 나서도 이런 위기가 재발하지 않도록 규제시스템은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라 전망한다. 이번 위기가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권력구조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다룬 다른 책들과 이책의 큰 차이를 보이는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그 외에도 이책은 케인지언인 저자가 자신의 입장에서 주류 신고전주의학파의 시장근본주의와 그 영향을 받은 월스트리트와 월스트리트에 휘둘리는 워싱턴의 신자유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다른 축을 이룬다.

이책은 저자의 입장이 분명하기 때문에 쉽게 읽힌다 그리고 경제학 지식이 그리 많지 않더라도 대가가 쓴 책답게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쉽다는 점이 이책의 단점이기도 하다. 저자는 자신의 논점을 분명하고 단순하게 말들기기 위해 복잡한 현실을 과감하게 생략한다. 예를 들어 저자가 비판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나 통화주의가 나올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고 그 배경 위에서 이해해야만 저자가 말하는 시장과 규제의 균형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논점을 분명하고 쉽게 하기 위해 저자는 그런 복잡한 논리를 과감히 생략한다. 다시 말하자면 저자는 자신의 논적들을 지나치게 바보로 만든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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