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송 이즈 유 The Song is You
아서 필립스 지음, 김선형 옮김 / 현대문학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카펜터즈의 곡 중에서 가장 많이 리메이크되는 곡은 아마도 '슈퍼스타'일 것이다. '슈퍼스타'는 순회공연 중인 팝 스타와 팬의 하루 밤 불장난이란 흔하디 흔한 스토리를 노래한다.

카펜터즈의 음악을 당시 평론가들은 아이스크림 음악이라 불렀다. 쉽게 듣고 잊어버리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고전이 되어버린 카펜터즈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힘든 평이다. 그러나 그런 평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슈퍼스타의 경우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리차드는 그 곡에 밝고 장난스러운 피아노 반주를 입혔다. 그러나 곡이 진행될수록 리차드의 편곡은 캐런의 깊게 가라앉은 보이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다른 곡의 편곡에서도 캐런의 우울한 보이스는 무시된다. 진부하고 맥 빠진 단조의 바다에서 과묵한 캐런의 탄식은 묻혀버린다.

캐런의 내면과 리차드의 만들어진 광택 사이의 모순을 가장 잘 잡아낸 것은 소닉 유스(Sonic Youth)의 '슈퍼스타' 커버이다.

"외로움은 그렇게 슬픈 것이다"란 가사가 무엇을 말하는지 캐런과 소닉 유스는 알고 있었지만 리차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의 기타는 이렇게 달콤하고 맑게 울리는데 당신은 여기 없고 라디오만 있군요." 캐런은 한 때의 불장난을 배신감으로 해석해 혼자 남겨진 외로움의 드라마로 바꾸었다. 소닉 유스의 무어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쇠톱을 긁는 것 같은 전자기타의 비틀린 피드백, 신디사이저의 화이트 노이즈, 고음과 저음을 거세해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전화에 대고 말하는 유령 같은 보컬은 (팝스타라는 환상을 쫓는) 스토커의 불길한 갈망을 그린다. '베이비 베이비 베이비' 코러스를 무어가 부를 때면 섬뜩하다. 소닉 유스가 보여주는 것은 카펜터즈 음악의 진실이다.

‘노래가 당신’이란 제목이 붙은 이 소설은 캐런이 잡아낸 환상과 현실의 거리를 말한다.

이 소설은 50을 바라보는 늙은 팬과 팝스타의 이루어지지 않은 로맨스를 다룬다. 자기 나이의 반에 불과한 여자와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는 남자 사이의 관계는 결핍의 관계이다. 중년의 남자가 젊은 여자에게 보는 것은 젊음의 활기이다. 젊은 여자가 늙은 남자에게 보는 것은 또래에게는 볼 수 없는 어른의 안정감이다. 서로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상대에게 보는 관계이다.

이 소설의 관계 역시 그렇게 이어진다. 케이트가 줄리언에게 본 것은 이런 것이다: “이제 그에게는 얼굴이 있었다ㅓ. 아주 멋진 얼굴, 세상을 아는 남자의 얼굴이엇다. 그의 얼굴과 자세에서는 어쩐지 자신감에 넘치는 힘이 느껴졌다.”

그러나 다른 연상/연하의 함수에 이 소설의 관계는 팬과 팝스타라는 변수가 더해지고 그렇게 더해진 변수 때문에 그들의 방정식은 해답이 나올 수 없는 관계가 된다. 팬과 팝스타의 관계는 판타지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녀는 노래했다. 어떤 감정이든 주문만 하면 또렷한 윤곽선의 반짝반짝 윤나는 축소모형으로 제조하고 전시해낼 수 있었다. 실연을 회상하고 나서 회상을 순수하게 증류한 노래를 불러, 결국 줄리언(과 백명도 훌쩍 넘는 남자들과 여자들)으로 하여금 그 아픔의 근원을 혼쭐내주고 그녀를 돕고 싶다는 차라리 자신이 아픔의 장본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케이트는 자기가 느꼈던 감정을 청중이 느끼게 하고 이미 느껴보고도 모르는 감정을 실감하게 했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느낌은 팬과 팝스타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이어준다. “그녀는 딜레마를 맞았다. 성공하려면 그녀와 그녀의 감정들이 진실로 공명해야 하고 군중들로 하여금 말 그대로 짧은 시간에 사랑에 빠지게 해야만 한다. 그녀의 밥벌이라는게 그런 원초적이고 무의식적인 사안에 의존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델들과 비현실적인 미모를 광고 이미지로 박제하는’ 환상을 다루는 CF 감독으로서 줄리언은 그런 팬과 스타의 관계 역시 자신의 직업 만큼이나 무의미한 환상이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캐런 카펜터가 포착한 ‘지독한 상실감과 무의미와 단절’이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중년도 저물어가는 줄리언에게 삶은 ‘상실과 결핍이 삶의 조건이라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다.’ 사랑하던 아들이 떠나면서 행복한 결혼도 끝나고 왕성한 성적 활력도 잃어버린 초라한 자신. 상실과 결핍을 직시하기에는 무의미에 시달리는 줄리언. 그는 끔찍한 현실을 환상에서 해소하려 한다.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케이트의 목소리는 “줄리언 속에서 진하게 버무려져 굳은 정서-회한, 희망, 슬픔, 흔들리는 야망, 갈망-를” 휘저어 “그를 화들짝 놀라게 만든다. 그 목소리 없이는 차마 이렇게 응축된 감정이 이토록 넘칠 수는 없었다. 이제 나이 든 줄리언은 이런 경험이 얼마나 흔치 않은 것인지 잘 알고 잇었다. 그리하여 그는 침묵 속에서는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감정들을 밝혀주는 그 목소리를 갈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것은 케이트인가 케이트의 목소리인가? 그녀에게 다가가길 망설이는 이유다. “지금쯤은 알 만도 한데 또 한번 음악의 미망에 이끌려 터무니없는 환상을 품고 만” 것은 아닌가?

줄리언은 한때 스타엿으나 이제는 몰락한 눈앞의 개자식을 본다. “케이트는 어떤 면에서 이 바보와 아주 똑같았다. 그들은 다 불행하게도 그저 사람들이었으니까. 이 마법사와 주술사들은 케이트가 그를 한다는-어떤 면에서 그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잇다는-소중한 느낌은 환상일 뿐이다. 그뿐 아니라 야심이 있는 공연자가 매니저와 시장 고문과 커리어 플랜 등을 가지고 진부하게 끼워맞춘 가공되고 조작된 환상이었다.

유일하게 진짜배기들, 순수한 이들은 죽은 이들이었다. 죽은 가수의 레코딩은 기술의 개입이 적을 뿐 아니라(따라서 정서적으로 더 믿을 만햇다) 하잘것없는 인간성이 모조리 폐기처분된 후 테이프에 오롯이 순수성만 남았기 때문에 다르다. 오십 대, 육십 대, 칠십 대가 되어서도 사춘기의 감정을 노래하고 당신의 고통에 아이러니한 웃음을 반복해서 날리고 또 날리고 그러면 작위적인 구조물이 된다. 줄리언이 돈 때문에 하는 일보다 중요할 게 없는 아니 심지어 그보다 더 하찮은. 그런데 케이트는 그에게서 연료를 얻고 싶어 했던가? 그의 가치를 증명하고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영감을 주기를 바랐던가? 신선한 감정과 경험을 갈구하는 그 만족을 모르는 허기를 채워달라고?”

“숭배받는 스타와 누구보다 스타를 잘 이해하는 팬으로서 둘은 서로를 절실하게 갈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이 서로를 갈망하는 이유는 달랐다. 그리고 그 다름이 그들의 관계를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의 관계로 만든다.

그는 아이팟의 목소리만 있는 케이트와 현실에 몸을 가진 케이트의 거리를 환상으로 메운다. “그 여자가 한 사람으로서 그 여자 자체가 이런 기분이 들게 햇다. 그러니 어쩌면 칼턴(죽은 아들)이 이미 박탈한 과거나 미래에서 온 달콤씁^쓸한 고문이 아니라 그의 삶에 현전하는 기쁨이라 느낄 수 잇게 해줄지도 모른다. 삶에 케이트가 잇다면 자유롭고도 구속받는 젊고도 늙은 기쁘고도 서글픈 그리고 용서받은 사람이 될 수 잇다 믿을 수 있었다.”

현실의 여자는 그런 여신이 될 수 없다. 결혼도 해봤고 수많은 여자를 거치면서 그것을 알만한 나이가 된 그는 자신의 환상을 내버려둔다. 그리고 환상이라는 것을 알면서 애써 무시하기에 줄리언은 케이트에게 다가가 현실의 남자가 되는 것을 망설인다.“그냥 전화를 걸어버릴 수 도 있었다. 분명히 그녀를 원했다. 그러나 하루가 또 하루가 지나도 그냥 전화를 걸지 못했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저항하는 자기 마음이 스스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린 줄리언에게 그의 아버지가 들려주던 동화에 이런 말이 나온다. “수도승은 그에게 이제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으니 떠나야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제야 제 슬픔을 잊었어요.’ 토시로는 항의햇다. “그 때가 바로 행복이 끝나야만 하는 때다.” 수돗6ㅡㅇ이 말햇다. “하지만 스승님. 저는 여기서 행복합니다.” 토시로가 우겼다. “아니다. 너는 너의 불행을 감추고 그 대신 거기서 꿈을 만드는 법을 배웠을 뿐이다.”

그런 줄리언에게 케이트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 빨리 대답해요. 음악 따위 언급도 하지 말고, 어째서 나를 쫓아다녔는지. 내 안에서 어떤 깊이를 보았는지. 하지만 음악 얘기는 하지도 말아요. 지금 당장 나 자신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들이 좀 있어요.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얘기들이겠지만. 아니면 우리에게 세상의 모든 시간들이 남아 잇을까요?”

그러나 “그녀는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수집하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그가 자신에 대해 점점 더 많은 걸 모으는 상상을 해보았다. 어쩌면 그녀를 모으면 모을수록 그녀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면 볼수록 그의 기대에 못미치는 존재였다는 사실이 드러날지 모른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는 동안 깨닫는다. “실망하고 화가 난 그녀는 그 같은 남자들에게 작고 어리고 재미없고 뻔”할 뿐이라는 것을.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이유일 수 없엇다. “그녀는 그만두엇다. 완성된 최종본은 워라고 해야 할까? 음률이 맞지 않을 터엿다. 전혀 말이 안되는 코드 진행이엇다. 부모, 아기, 자란 아기, 더 자란 아기, 케이트. 오늘 밤 무대에서는 세상 만물의 꼭대기에 올라앉은 기분이엇는데 지금은 자기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뭔가를 망치고 잇다는 느낌이엇다.” 그리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 그녀는 그를 떠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