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의 종말 - 유럽의 불안한 미래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 골든북미디어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보통 경제공동체로 인식되는 EU의 동기는 경제가 아닌 정치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로 인해 급격히 축소된 지위는 유럽에 심오한 심리적 영향을 끼쳤다. 독일은 자기혐오의 시기에 들어섰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잃어버린 식민지에 대한 향수 그리고 제국과 통치권이라ㅏㄴ 짐을 벗어던진 안도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유럽의 고갈과 함께 찾아온 것은 바로 유럽의 쇠퇴였다.” (조지 프리드먼)

 

EU는 쇠퇴에 대한 대답이엇다. “격하된 지위에 반응하는 독일의 모습은 유럽이 보이는 반응의 축소판이었다. 독일은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두 강대국 사이에 낀 독립적 행위자의 문제로 인식햇다. 소련의 위협은 고정적이엇다. 르러나 독일은 프랑스와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유럽 전체와의 관계를 재정힙할 수 있다면 이렇게 중간에 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앗다. 독일이 생각해낸 해결책은 유럽 전체 특히 프랑스와 통합되는 것인었다. 그러나 유럽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통합은 필연적 결과였다. 한쪽에는 소련의 위협이 다른 쪽에는 미국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의 경제가 통합되길 원했다. 이것은 유럽을 위해서뿐 아니라 분열되기 쉬운 동맹국들을 연합시키기 위해서였다. 유럽 역시 경제 연합은 전쟁에서 회복되는 길일 뿐 아니라 자신들을 한낱 지역세력으로 격하시킨 세계에서 입3지를 회복할 수단이라 판단했다. 되찾을 권ㄹ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연합체에서 찾아야만 했다. 이런 연합은 독일을 유럽에 통합하여 독일 문제를 해결하고 탁월한 독일 경제를 유럽체제의 일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엇다.” (조지 프리드먼)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유럽이 뭉치게 만든 두 이유 중, 소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럽이 잃었던 주권을 회복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물론 그 주권을 정의하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지 프리드먼) EU는 그 노력의 하나였으며 유로는 그 노력의 절정이었다.

 

유로를 낳은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였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그 문제를 소로스는 ‘Two-speed Europe’이라 정리한다. 경제의 속도가 다른 두 지역을 억지로 묶었기 때문에 유로화 위기가 일어났다는 말이다.

 

화폐통합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고 볼 수 있으려면 그것이 성장과 대외충격에 대한 강건성 면에서 만약 회원국들이 국제개방시스템을 유지했더라면 달성할 수 있었을 성과보다 더 높은 성과를 가져다줄때만 그렇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문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먼델은 최적통화이론을 제시하면서 영구 고정환율로 통합된 나라들이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효율성을 누릴 수있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거론했다. 그는 환율이 고정됨으로써 환율을 매개로 한 거시경제적 조정은 사라지겠지만 경쟁적 평가절하와 동일한 파괴적인 경쟁을 초해할 수 있는 국내 물가의 변동은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화폐통합을 형성하는 지역 내부에서는 노동의 이동성이 아주 높거나 강력한 소득 이전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햇다. 유로화 지역이 이 두가지 조건 중 어던 것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예를 들어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 “실제로 2001년의 주가 폭락 때 그랬던 것처럼 불황을 초래하는 충격이 발생하면 유로화 지역의 회원국들은 이들의 구조적 이질성 때문에 비대칭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때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는 독일 및 독일과 가장 직접적인 연계를 맺고 있는 소국들이다. 그런데 공동 통화정책은 유로화 지역의 평균적 상황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이러한 통화정책 아래서는 경기침체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의 이자율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인플레이션률이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유로화 지역 전체로 보면 명목 이자율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보이지만 그 실질 이자율은 경기 침체에 빠진 나라들에게는 지나친 수준이 될 수 있다. 이런 통화정책이 비효율적임에도 외형상으로는 적당하다고 평가될 수있다. 진정한 화폐통합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나야 할 일은 회원국들간의 재정정책의 협조가 이루어지4거나 혹은 연방예산을 매개로 한 재정이전 메커니즘이 시행되는 것이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다시 말해 정치통합이 있어야 화폐통합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로는 정치통합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 문제였다. 화폐통합을 유지하려다 보면 정치통합으로 이어질 것이란 논리엿다. 그러나 이번 유로화 위기는 바로 그 경제통합 때문에 유럽통합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유럽중앙은행의 정책은 주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경제에 맞춰져 있었다.” 유로존에서 이들 국가의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 3대국가가 낮은 인플레이션 그리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유럽중앙읂팽은 정책금리를 낮췄다. 물론 이런 저금리는 인플레이션이 높고 경제성장이 빠른 회원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여기에 유로화는 마르크화의 변신이라는 점이 그 금리를 더 낮췄다. 유로화를 쓰는 것으로 독일의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는 1999 5%에서 2005 0%로 떨어졋다.”

 

유럽통화연맹 가입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테인에게도 기적을 선물했다. 실질금리의 하락으로 인한 총수요의 확대는 더 큰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높은 경제성장은 물가상승을 부추겼다. 그러자 실질 이자비용은 더욱 줄어들어 마이너스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금리는 매우 낮았고 국내소비는 국내총생산보다 더 확대되 이들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적자는 외국은행이나 다른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자금으로 쉽게 메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과열은 부동산 과열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아일랜드돠 스페인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낫지만 그리스 역시 유로존 평군보다 높은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보여주었다. 부동산 거품의 가장 큰 피해는 지중해 클럽 국가들이 국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수요폭증으로 부동산 분야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국영기업들의 임금도 상승했고 연쇄적으로 임금이 올랐다.” 결국 거품은 터질 수 밖에 없었고 지중해변은 쑥대밭이 되었다.

 

소로스는 이 과정을 Two-speed Europe 이란 말로 정리한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의 속도에 남유럽이 맞춰졌기 때문에 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위기가 된 것은 위기 자체보다 대응 때문이었고 유럽통합의 한계 때문이었다.

 

“1993년 출범 이래 2008년까지 유럽연합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렸다. 그리고 그러한 번영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한동안 덮어주었다. 정치체제의 자질은 역경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2008년의 위기와 함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모두 떠올랐으며 감추고 싶었던 국가주의도 모습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당한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대부분의 독일인은 그리스에 대한 원조를 반대햇다. 그리고 대다수 그리스인들은 독일이 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유럽연합의 조건을 따르느니 파산을 택햇다. 금유위기가 완화되면서 긴장상태도 가라앉았지만 2010년 우리는 잔잔한 유럽의 표면 아래에서 들끊는 힘들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조지 프리드먼)

 

이책의 상당부분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가 어떻게 스페인까지 번져나갔는가를 타임라인을 따라 서술하는데 바쳐져 잇다. 그 주 내용은 유럽연합 내의 좌충우돌이다. 어떤 리더십도 없었다. 회원국들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부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남유럽의, 소로스의 말로 하자면 two-speed로 갈라졌다.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 회원국들은 서로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타협을 하더라도 미지근한 것으로 사태를 진화하기에는 한발 늦게 그것도 불충분하게 이루어질 뿐이었다. 이책은 그 분열이 일으킨 우왕좌왕과 혼란, 내홍을 그려간다.

 

독일은 2008~2010년 금융위기 당시 자신들이 부담해야 했던 역할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 독일이 유럽연합의 주변국들에 대한 이해관계를 재고할 때 주변국들 역시 독일과의 통합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따져보게 된다., 이들은 은행 같은 광범위한 경제분야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더욱 분개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경제가 핵심국가들을 위해 설계된 금융정책을 통해 유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양측 모두에게 압력을 가한다.” (조지 프리드먼)

 

유럽은 변했다. “독일의 전후 정책은 나치정권의 범죄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을 토대로 만들어졋다. 그러나 메르켈과 그들 세대의 정치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간접적으로만 전해 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어지면서 전후 독일의 분단은 사라지고 문제가 있는 과거는 더 이상 큰 쟁점이 되지 않앗다. 오늘날 독일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1950-1960년대 사이에 태어났다. 이드은 유럽통합에 무관심하고 일부는 회의적이며 사적으로 적개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유럽연합은 여러 정책 선택지들 중의 하나일분이며ㅑ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독일이 전쟁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럽통합을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졋다는 것이다.”

 

유럽통합의 축은 독일과 프랑스의 단결이엇다. 그러나 독일은 무관심해진 반면 프랑스는 갈수록 약해지면서 파트너로서 가치를 잃어간다. “예전에는 프랑스가 정치적 운전사였고 독일은 경제적 운전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메르켈이 결정권을 쥐고 있고 사르코지는 기자회견을 열어 그녀의 결정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중국만이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뒤를 인도, 일본 브라질 러시아와 독일이 뒤를 따르고 있다. 프랑스는 인도네시아, 터키, 멕시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그리고 영국과 같은 세번째 등급이다. 이런 국가들은 국제적인 논의의 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독일의 파트너로서 자격도 유지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유럽통합의 정점을 목격했다. 향후 10년 동안 밀물이 빠지면서 드러나게 될 것은 무엇보다도 독일의 힘이 될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

 

콜 총리의 세대에게 유럽은 전쟁과 평화를 좌우하는 존재였지만 메르켈 총리 세대에게 유럽은 비용과 편익의 문제 불과할 뿐이다.” 이제 독일인에게 그리고 다른 유럽인들에게도 근본적으로 유럽연합은 경제연합이다. 국방과 달리 경제는 번영을 극대화하는 수단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보다 고귀한 목적ㄹ을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 유럽연합은 유럽의 안전과 복지를 도덕적 목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럽연합의 이상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거나 죽음을 종용하는 고무적인 수사법에는 아무런 기반이 없다.” (조지 프리드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통령의 결단 - 위기의 시대, 대통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닉 래곤, 함규진 / 미래의창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이책의 성격을 한마디로 하자면 미국정치사이다. 이책의 내용은 미국정치사의 흐름을 바꾼 대통령의 결정을 13가지 골라 그 결정이 이루어진 시대적 배경과 그 배경에서 왜 그런 결정을 하게 되었고 어떻게 그 결정을 현실로 만들 수 있었는가를 케이스 스터디로 파고 든다.

 

실질적으로 미국이란 국가의 정체성을 만든 링컨의 노예해방령이라든가 고립주의 국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진로를 바꾸게 한 파나마운하 건설, 2차대전 참전, 원폭투하, 아폴로 계획, 인권법, 닉슨의 중국방문, 레이건의 악의 축 등등이 이책이 다루는 주제들이다. 모두 미국이란 국가의 방향을 바꾼 결정들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저자가 후기에서 말하듯이 그런 결정적 순간들이 13가지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령 베트남 전쟁이라든가 닉슨의 경우 브레튼우즈 체제의 포기 같은 것들이 개인적으로 떠오르는 예이다, 그러나 이 얇은 책에서 미국사를 다 다룰 수는 없고 별 의미도 없다.

 

이책의 초점은 최고위 의사결정자로서 대통령이 정세를 어떻게 이해했었고 그 정세에서 자신이 원하는 결정을 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는가와 같이 짧은 지면에 재미있게 상황을 잘 간추려 요약하고 있다는 점 그러면서도 그 대통령의 성격과 그의 치적등, 그 시대를 잘 요약하는 솜씨가 대단하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잘 간추려진 정보량으로도 상당하다.

 

여기서는 13가지 중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린든 존슨의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정치사에서 마키아벨리스트를 꼽으라면 아마도 린든 존슨이 가장 좋은 예이다.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정치인생을 시작한 존슨은 의회정치의 진수를 배울 시간과 기회가 많앗다. “ 샘 레이번 하원의장이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같은 유명한 사람들을 멘토로 삼고 교훈을 얻어 정부의 각종 스위치들을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유리하게 누르고 당길 수 있는지에 대해 맛본 다음 존슨은 다듬어지지 않은 정치운영능력이 서서히 권력을 향한 강한 열망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매료되었다.

 

정치가로서 그의 자산은 나이만이 아니었다. “나는 정치에 대해 하루 18시간 이상을 생각해본 적은 절대 없다. 잠은 자야 하니까.” 그의 말은 사실이엇다. “그는 그 누구보다 오직 한가지에만 몰두하던 사람이엇다.” 정치는 그의 모든 것이었다.

 

시간과 집중력은 그의 명성을 높여갔다. “존슨은 워싱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그보다 먼저 이곳에 20년 동안 있었던 사람들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존슨의 의원시절 초기를 설명하는 말이다.”

 

상원에 들어갔을 때 그는 원내대표가 되었고 미국 역사상 가장 젊은 나이에 지도자급에 오른 사람이 되었다. 이제 그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그 어떤 입법이나 합의도 존슨의 승인 없이는 이뤄질 수 없었다. 심지어 아이젠하워 대통령조차도 국내문제에 관한 일을 처리하하기 위해서는 이 텍사스주 상원의원의 환심을 사야 했다.

 

존슨이 빠른 속도로 리더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나 운이 아니었다. 그는 상원에서의 힘은 단 한가지에 기초한다는 것을 빠르게 파악했다. 바로 인적관계였다. 존슨은 동료의원들의 이해관계, 욕망, 필요를 이해하는데 자신의 온힘을 쏟았다. 또한 그들의 상황과 관련된 모든 것에 통달함과 4동시에 자신을 그들의 구미에 맞게 조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카멜레온처럼 자신을 각양각색으로 바꾸는 변신과 모방의 달인이 되었다. 북부출신의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남부출신 특유의 느릿한 말투가 딱 부러지고 사무적인 억양으로 바꿔었다. 이와 달리 서부출신 의원들과 대화할 때는 소탈하고 경쾌한 스타일로 말했다. 그러나 남부출신 동료의원들 앞에서 존슨은 그들과 다름없는 듬직한 동요의원이었다. 그는 그들 앞에서 깜둥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사용했고 서빙하던 흑인종업원을 종종 비하했다. 이런 일은 존슨이 이에 반감을 가진 다른 사람 앞에서는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그에게 남은 자리는 이제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닿을 듯하면서 닿을 수 없는 자리엿다. 그가 남부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린든 존슨의 정치경력은 두 가지 상충하는 요소가 만들어냈다. 하나는 남부출신이라는 태생적 요소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자신의 정치력을 끝없이 넓히려는 욕망이다.

 

존슨이 대통령에 당선된 1964년 선거가 있기 전까지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남부 야심가들에게 대통령직은 닿을 수는 없었으나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가까운 자리였다. 이유는 강력한 인종차별이었다. 대부분의 북부와 서부 사람들에게 남부의 인종차별과 야만적 폭력은 그것이 가진 폭력성만큼이나 충격적인 발상이었다. 남부출신들은 국가지도자 혹은 적어도 비중있는 인사가 될 자격이 없다는 선입견이 온 나라에 팽배했다.”

 

존슨 자신은 인종주의자는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그는 연민어린 눈으로 흑인과 히스패닉들을 너그럽게 대했다. 이것은 당시에 온전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행동이었고 누군가의 눈에는 파격으로 비치기까지 햇다. 존슨이 소수자와 불우한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진심어린 관심을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주민 대다수가 히스패닉인 지역에서 젊은 교사로 일하던 시절 그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른 교사들과 다르게 행동했다. 그 약속은 바로 멕시코계 미국인 아이들도 앵글로색슨계 백인 아이들과 동등한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엇다. ‘나는 그들 안에 있는 무엇인가를 일깨우고자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앞날에 대한 열망, 관심, 신념으로 가득 채워주려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남부인이란 꼬리표는 위력적이엇다. 1956년 전당대회에서 존슨은 야심차게 대통령후보로 지명받고자 햇다. 그러나 북부대표들이 그에게 남부 후보란 꼬리표를 붙이자마자 그의 시도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교훈을 얻었다. “존슨은 이제 오직 자신의 이미지를 자유주의자들의 눈에 맞게 바꾸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엿던 민권법을 지지하는 일이엇다.”

 

야망의 첫걸음으로 그는 케네디의 러닝메이트로 나섰다. 8년 후에 대선후보로 나설 생각이었다. 그러나 기회는 더 빨리 왔다. 케네디가 암살당한 것이다.

 

케네디 임기 중이었던 “1963년 초 남부 흑인들의 권리에 무엇인가 조치를 취해야한다는 압력은 절정에 달해있었다. 온 나라가 폭동, 소방호스, 경찰의 전투견, 곤봉, 휘두르는 모습들이 담긴 영상들로 몸살을 앓았다.”

 

뭔가 해야했고 케네디는 하기는 했다. 그러나 미지근한 조치만 취했다. “그는 민권법의 실패가 자신의 모든 입법의제들을 위태롭게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남부의 반발때문에) 재선에도 치명적이라는 사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남부인이기에 존슨은 달라야 햇다. 대통령에 취임한 존슨에게 민권법 입법은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의제였다. “이 시점부터 그는 완전히 민권법 이슈에 전념했다.” 다가올 1964년 선거에서 이기려면 그래야 했다.

 

존슨에겐 선거만이 아니라 자신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될지에 대한 생각 역시 큰 역할을 했다. ‘나는 링컨이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는 대통령이 될거야!”

 

“’누군가는 전 세계에 과시할권력을 원하며 대통령 찬가를 듣습니다. 또 다른 이는 특권을 얻기 위해 권력을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나는 모든 권리를 모든 사람에게 특히 가난한 사람과 흑인에게 주기 위해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것은 역사적 가식일까? 아니면 허심탄회하게 드러낸 진심일까? 아마 둘 모두 조금씩 들어있을 것이다., 존슨은 흑인차별이 존재하던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받아야 했던 끔찍한 차별에 항상 가슴 아파했다. 분명 대통령이 되려는 야망이 존슨에게 동기를 부여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그가 왜 타협이 가능했음에도 당대 가장 해곃하기 어려운 문제에 모든 것을 걸었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다.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은 마키아벨리적인 책략이 진정한 관심과 열정으로 주도권을 잡고 나라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 직관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가는 컸다. “그는 앞으로 수십년 동안 민주당이 남부 선거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존슨의 생각은 적중했다. 수년 동안 남부의 주들은 민주당의 보루에서 공화당의 요새로 변해버렸고 이는 오늘날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공화당의 신보수주의가 미국을 지배하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위대한 사회란 구호로 존슨이 대표했던 민주당의 뉴딜 연합은 “남부와 노조, 도시의 정치집단, 그리고 좌파지식인의 조합”(폴 크루그먼)이었다. 그러나 이 연합에서 남부가 이탈해 공화당의 거수기가 되면서 뉴딜연합은 무너졌고 공화당 지배가 시작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존력 - 위기에서 살아남아 삶의 균형을 회복하는 서바이버 자질 매뉴얼
앨 시버트 지음, 이경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유명한 사진기자 앨리슨 라이트는 라오스의 밀림 속 도로에서 끔찍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너덜너덜해진 팔에선 피가 철철 흐르고 몸은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폐와 횡경막을 다쳐 숨을 쉴수도 없었다. 그 상태에서 상체의 힘으로 버스 밖으로 기어나와 누웠다. 웅성거리는 사람들은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고 떠들었다.” 그녀는 오랜 시간 수련한 요가와 명상을 떠올리며 고통을 견뎠다.

 

그녀가 치료를 비슷한 것을 받기까지는 14시간이 걸렸다. 그날 밤 헬기가 자신을 수송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접하자 이제 죽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순간 앨리슨은 모든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통에 항복하자 모든 아픔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온해졋다. 그녀는 갈 준비를 했다. 사선을 넘나드는 경험을 한 후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게다가 전에는 몰랐던 압도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사랑이엇다. 이러한 감각이 그녀의 결의를 더 확고하게 해주었다. 한동안 호흡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놀랍게도 태국으로 가는 긴 여정이 끝났을 때까지 그녀는 살아있었다

 

본격적인 치료가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등과 골반, 갈비뼈가 골절되었으며 내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다. 심장이 튀어나왔고 비장이 파열되었고 횡경막에는 구멍이 났고 폐는 액체로 가득했다. 마취도중 숨이 멎어 외과의사가 겨우 살렸다.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그녀는 마음의 평정을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을 통제했다. 그녀는 살아남았다. 생존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녀의 뇌는 고통을 차단했다. 그래서 죽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까지도 말이다. 이런 마음 자세로 상황에 맞춰 적응하고 여러 차례에 걸쳐 생존 전략과 태도를 수정할 수 있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살고자 하는 의지와 모든 것을 놓아버리겠다는 마음은 결코 흔들리지 않앗다.”

 

이런 사례를 들으면 보통 놀란다. 감탄한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슈퍼맨의 이야기라 치부하기 마련이다. 나와는 상관이 없는 딴 세상의 이야기란 말이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일을 겪고 이겨낸 사람들은 당신과 별다를 것없는 평범한 사람일 뿐이라 말한다. 단지 그들의 습관이 달랐을 뿐이다.

 

이것은 살아남아야 할 때 살아남을 수 있도록 삼라만상과 관계를 맺는 생활방식에서 비롯되낟./ 앨리슨은 일찍이 경험했던 다양한 일이 위기에 당당히 맞설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켰다고 술회했다. 다시 말해 일상의 습관적인 방식이 위기나 비상사태에 직면해 서바이버가 될 가능성과 밀접한 관련이 잇다는 얘기다.”

 

저자는 그 습관을 3가지로 정리한다.

 

1.     상황에 대한 정보를 재빨리 흡수한다.

2.     뭔가를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3.     가능한 행동이나 반응 등 뭐든 고려한 준비가 되어 있다.

 

저자가 말하는 서바이버의 습관은 요즘 흔히 말하는 회복탄력성과 유사하다. 저자가 말하는 3가지를 보통 하는 말로 하자면 호기심, 자신감, 유연성이라 할 수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재빨리 반응하는 사람은 위기에 움추려들지 않는다. 익숙하지도 않고 생각지도 못한 일이지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평소에 호기심을 갖고 주변을 살피면서 정보를 분석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 정보와 경험이 많고 그런 습관 덕분에 갑작스런 상황이라도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황에 맞춰 자신을 바꿀줄 아는 유연함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회복탄력성과 내용은 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비슷한 자질을 말한다. 저자는 자신이 말하는 서바이버 자질세렌디피티 자질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세렌디피티는 그냥 행운이 아니다. 단순한 우연의 일치도 아니다. 예리한 통찰력을 발휘해 사건을 행운으로 바꾸는 능력이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이 불운이 될지 행운이 될지 아니면 꽝이 될지는 그 사람이 그 사건을 활용할 준비가 되어 있느냐에 달렸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보자.

 

정부가 당신의 예금을 빼앗고 사업체를 몰수하고 당신과 가족을 집에서 강제로 내쫓고 트럭에 태워 멀리 데려간 후 이제부터 그곳에서 살라고 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 이야기는 1941년 일본계 미국인들에게 일어난 실화다.

 

나이토 가족은 유타 주의 솔트레이크시 근교로 강제 이송되었다. 가장인 히데 나이토는 실의에 빠졌다. 그는 모범적인 시민이었다. 오랫동안 도자기를 수입하는 사업해왔다. 가족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미국 정부가 그들 가족이 가진 것을 전부 빼앗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시 16세였던 빌 나이토는 가족이 처한 상황을 직시했다. 그는 아주 작은 자본으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빌은 형 샘과 닭을 키워 달걀을 팔기로 했다. 다행히 사업이 커져 온 가족이 달라붙었다. 4년동안 달걀을 팔아 생계를 꾸렸다. 닭통은 채소와 맞바꿨다. ‘닭이 갈수록 많아져 닭장을 큰 걸로 두 개나 지었습니다. 바닥은 콘크리트였어요! 바닥을 콘크리트로 깐 닭장을 생전 처음 본 이웃 농부들은 깜짝 놀랐죠!’

 

그로부터 70여년이 흐른 후 나이토 형제의 유산에는 다른 개발업자들은 건드리지도 못한 대형 재개발 프로젣트도 호함되었다. 열개가 넘는 사업체와 수많은 건물을 소유한 빌 나이토는 이렇게 말한다. ‘고생을 해야 꿈을 꿀 수 있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상상력을 자극했고 가능한 해답을 찾도록 해줬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온한 신화 읽기 - 바가바드기타는 인도를 어떻게 신비화하였는가
박효엽 지음 / 글항아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책은 바가바드기타의 해설서이다. 그러므로 이책의 내용을 알아보기 전에 바가바드기타가 어떤 책인가부터 알아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누구나 이름은 알지만 그 책이 무슨 책인지 아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바가바드기타는 마하바라타의 일부이다. 예기의 일부인 중용과 대학을 따로 떼어 독립된 책으로 읽는 것처럼 마하바라타 중 일부를 떼어 독립시킨 경우이다. 그러므로 바가바드기타를 이해하려면 원래 있었던 마하바라타란 책이 무엇인가를 이해해야 한다.

 

일리아드, 오딧세이와 비교되는 마하바라타는 인도의 2대 서사시 중 하나이다. 이 서사시가 성립된 시기는 축의 시대가 끝나가던 기원전 500년경이다. “이야기의 천체 윤곽은 기원전 4세기말에 확립되었을 것이다. 축의 시대의 결정적 텍스트들이 사제와 출가자들의 저작인 반면 이 서사시는 크샤트리야 전사 계급의 에토스를 반영한다. 축의 시대의 종교혁명은 그들에게 곤혹스러운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카렌 암스트롱)

 

축의 시대에 일어난 종교혁명의 에토스는 아힘사, 폭력에 대한 반감이었다. 아직도 원시시대 수렵채집생활을 하던 시절의 기억이 남아있던 당시로선 전사들의 악의적인 폭력은 새로운 것이엇고 폭력과 함께 열린 영웅시대도 인간에겐 낯선 것이었다고 카렌 암스트롱은 말한다.

 

영웅시대 이전 아리아인들의 종교는 수렵채집인과 초기 농경민들의 종교가 그러했듯이 호혜주의, 자기 희생, 동물을 사랑하는 태도를 가르쳤다.” (카렌 암스트롱) (아이슬러가 말하는) 협력의 원리가 지배하던 시절, 그리스 신화에서 말하는 황금의 시대였다. 그러나 스티브 테일러가 말하는 자아폭발 이후 협력의 원리는 지배의 원리로 바뀌었고 그들은 약탈자가 되었으며 그들의 종교도 변했다. “이제 습격자들이 갈망하는 신의 모범은 신성한 전사 인드라였다. 아리아인 카우보이들은 싸우고 죽이고 강탈하면서 자신들이 무력으로 세계질서를 확립한 인드라를 비롯한 호전적인 데바들과 하나라고 느꼈다. 그들은 전차와 강력한 청동검을 사랑햇다. 그들은 목축민이었으며 이웃의 가축을 훔쳐 생계를 유지했다. 희생제는 인도 아리아 사회의 영적 핵심이엇다. 그러나 희생제는 경제의 중심이기도 했다. 과거 초원지대의 평화로운 제의는 가축 도둑의 위험한 생활을 반영하여 훨씬 호전적이고 경쟁적으로 변햇다. 아리아인의 희생제는 미국 북서부 원주민 부족들이 거행하는 포틀래치의식과 비슷해졋다. 부족민은 자신의 노획물을 과시하며 많은 짐승을 도살하여 호사스러운 희생잔치를 벌였다. 공동체가 필요 이상의 동물이나 작물을 축적하면 이런 잉여는 태워야 햇다. 늘 이동하는 유목민 집단이 잉여 생산물을 보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이 지역에 만연해있던 폭력이 희생제 때문에 더 증가했다. 희생제가 끝나면 라자는 가축이 남지 않았으므로 재산을 채우려고 다시 습격을 시작했다.” (카렌 암스트롱)

 

광란의 영웅시대가 지나고 아리인들도 정착해갔다. “경제는 약탈보다 농업생산물에 더 의존하기 시작했다. 약탈과 대응 약탈이라는 파괴적 순환을 중단해야 한다는데 점차 합의가 이루어졋던 것같다.” (카렌 암스트롱)그 합의는 기원전 9세기의 전례 개혁으로 나타났고 인도에서 축의 시대를 열었다. 전례개혁의 목적은 희생제에서 폭력을 없애는 것이엇다. 폭력에 대한 반감은 점차 자아에 대한 공격으로 발전한다.

 

악의적 폭력은 비대해진 자아에서 자라난다. 그점을 잘 보여주는 것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이다. “호메로스는 두 시에서 전쟁이 주는 흥분, 동지애의 기쁨, 아리아스테이아-전사가 승리의 흥분에 사로잡혀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되어 앞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상태-의 영광을 찬양한다. 호메로스는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더 강렬한 삶을 산다고 말하는 것 같다. 만일 영웅의 명예로운 행위가 서사시에서 기억된다면 그는 죽음의 망각을 극복하고 소멸할 수 밖에 없는 인간에게 가능한 유일한 불멸을 얻는 것이다. 따라서 명성은 생명보다 소중하며 시는 명성을 얻기 위해 서로 필사적으로 경쟁하는 전사들을 보여준다. 이 영광의 탐구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을 위해 나선다. 영웅은 명예와 지위의 문제에 시달리는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며 시끄럽게 자신의 공적을 떠벌리고 자신의 존엄을 높이기 위해 전체의 이익을 언제든지 희생한다. 케노시스, ‘자기 버리기는 없다. 전사가 자아의 경계 밖으로 나가는 유일한 길은 살해의 엑스타시6스를 경험할 때뿐이다. 전사는 전쟁의 신 아레스에게 사로잡히면 생명의 엄청난 풍요를 경험하며 신과 같은 상태에 이르고 아리스테이아 속에서 자신을 잃고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도륙한다. 따라서 전쟁은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유일한 활동이다.” (카렌 암스트롱) 전형적인 자아폭발(이 개념에 대해선 자아폭발리뷰 참조)의 심리상태이다.

 

자아폭발 즉 타락의 결과로 권태가 인간의 근본적인 상태가 되었고 우리 자신이 비현실성에 대한 인식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것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권태는 우리의 경험에서 사실성을 제거하는 둔감화기제가 작동한 결과 발생한다. 이로 인해 세상은 어슴프레하고 절반만 사실인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실제로 아무 것도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하고 흥미를 끌지도 못하며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잇는 것조차 없어 보인다. 그리고 비현실감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퍼져 나가는 끊임없는 생각의 수다의 결과이다. 전쟁은 이 권태와 비현실감을 덜어주려는 시도의 한 방법으로 발달했을 수도 있다. 바꿔 말하면 전쟁은 권태와 무목적성의 공포가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일종의 오락 내지는 운동으로 그리고 인간이 살아 있음을 느끼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으르도  중요해졌다. 이것이 왜 전쟁 발발이 특히 전장에 나가 싸워야 할 젊은 남성에게 그토록 자주 축하할 만한 일이엇는가에 대한 이유이다. ‘나의 투쟁에서 히틀러는 1차대전의 개전이 그에게 얼마나 활기를 띄게 했는지 정확히 묘사한다.” (스티브 테일러)

 

파스칼의 말마따나 인간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기 방에서 조용히 머무는 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소위 영웅들이란 자들의 폭력은 그 불행의 증상이었다. 9세기 인도의 종교혁명은 그 불행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란 깨달음으로 발전한다. “그들은 분리된 자아인식을 초월할 수 있으며 이 과정을 통해 자아가 초래하는 고통을 초월할 수 있음을 발견하였다. 우파니샤드가 주장하는 세계관은 타락한 세상에서는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다. 우파니샤드는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가정, 즉 우리가 보는 세계가 있는 그대로의 세계인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인도 현인들은 타락한 정신이 하는 거짓말을 풀어내고 있었다. 자아가 고립되었으며 자기 이외의 우주는 저기 밖에 있는데 자기만은 머릿속에 갇혀 있으며 그리고 아무 상관도 없는 외계에 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인식. 그들은 예리해진 자아인식은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거짓된 인식을 주는 일종의 가면현상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오도된 정체성으로 고통받는다.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자아들이라고 믿지만 자아들이 사라져야만 우리으 진정한 본성이 될 수 있다.” (스티브 테일러)

 

우파니샤드에서 시작되어 붓다에서 절정에 이른 케노시스, 자기 버리기는 영웅의 가치들을 깡그리 부정했고 거짓된 자아의 파생물인 무의미한 폭력을 부정했다(아힘사). 영웅시대, 그리스사에선 암흑시대라 부르는 시절을 다루는 마하바라타 역시 그 시대에 대해 부정적이다. “서사시 내내 유디슈티라는 필사적으로 외친다. ‘크샤트리아의 다르마보다 더 악한 것은 없다.’ 전쟁은 신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피의 희생제가 아니었다. 잔혹행위였다.” 호메로스와 달리 마하바라타의 저자는 영웅을 기리지 않는다. “이 서사시의 이야기는 폭력이 더 큰 폭력을 낳으며 불명예스러운 배신은 또 다른 배신을 낳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하바라타는 그 폭력의 시대, 불의의 시대가 어떻게 끝날 수 밖에 없었는가를 주제로 한다. “영웅시대가 폭력적인 결말에 다가가고 있었기 때문에 대규모 희생제의로 질서를 회복해야 했다. 바로 전투가 이런 희생제였다.”(카렌 암스트롱)

 

종교 혁명 이후 전사들은 림보로 밀려 들어간 느낌을 받았다. 그들은 세상의 다르마에 묶여 있기 때문에 출가자나 요가 수행자들에게 감담할 수없었다. 그러나 밝은 베다 신앙은 자신들을 지탱해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낡은 신앙은 때때로 악마적으로 보였다.” (카렌 암스트롱)

 

그렇다면 왕이나 전사는 공동체를 방어하기 위해 싸우거나 죽여야 하는 자신의 소명을 이행하면서 어떻게 동시에 아힘사라는 이상을 존중할 수 잇는가? 축의 시대의 종교혁명은 그들에게 곤혹스런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카렌 암스트롱) ‘마하바라타는 이 딜레마에 대한 고민이며 바가바드기타는 그 고민에 대한 크샤트리아 입장에서의 대답이었다.

 

바가바드기타는 아르주나의 질문과 함께 시작된다. 나는 왜 싸워야 하는가? “아르주나는 적군으로 대면한 친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스승들을 둘러본다. 그러고는 그들을 죽여야만 하는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싸우지 않기로 결심한다.” 바가바드기타는 아르주나의 그 결심이 왜 틀렸는가를 크리슈나 신이 설득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아르주나가 싸워야할 전쟁은 따지고 보면 흑백이 명확하지 않은 동족상잔의 지저분한 싸움이다. “! 왕권의 행복에 대한 탐욕 때문에 친족을 죽이려고 애쓰는 이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려고 우리가 마음먹었다니! 만약 이 전쟁에서 무기를 손에 든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이 무장하지 않은 채 저항도 하지 않는 저를 죽인다면 그것이 저에게는 더 편할 것입니다.”

아르주나는 무엇이 선이고 악이며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알지 못한다고 고백하면서 선과 악, 정의와 불의를 가르는 참된 기준을 알지 못한다고 절규한다. “기타에서 크리슈나의 가르침은 아르주나가 그 무너진 기준을 다시 세울 수 있게 하는 목적을 가질 뿐이다. 회색지대에 놓인 아르주나가 진실한 가르침을 절실하게 필요로하 는 바로 그때 두 사람의 대화는 그 기준에 대한 물음이자 대답이다.”

 

싸움은 상대가 있다. 영웅시대의 전사는 상대는 고려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영광과 자신이 얻을 전리품만 생각할 뿐이다. 그러나 아르주나는 그 상대를 보아야만 했다. 자신의 사촌, 친구, 스승들이 상대였으니. 싸움의 상대, 타자를 발견했을 때 그는 묻는다. 왜 싸워야 하는가? 이 폭력의 의미는 무엇인가? “크리슈나여, 싸우기를 원하여 정렬한 저의 이 친족들을 보고 나니 제 사지는 맥 빠지고 입은 바싹 마르며 제 몸은 전율하고 털끝이 곤두섭니다. 손에서 간디바()가 미끄러져 떨어지고 살갗이 따끔따끔거리며 심지어 서 있을 수조차 없고 제 마음이 빙빙 도는 듯합니다.” 그에 대해 크리슈나가 한 조언의 요점은 마음이 문제란 것이다.

 

라즈니쉬의 해석은 이렇다. “무가치한 자신의 의무가 잘 실행된 타인의 의무보다 낫다로. 자신의 의무 속에서 죽는 것이 낫다오.’ 여기서 자신의 의무와 타인의 의무가 나온다. 아르주나는 무사이기 때문에 무사로서의 자기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기타는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 자신에게 일깨우려는 노력으로 가득한 경전이다. 자신의 본성을 억누르지 말고 자유롭게 하라는 것이다. 크리슈나는 그에게 자기 본성이 무엇인지 계속 상기하면서 본성을 따르는 행동이 무한한 자유를 준다고 가르친다.”

 

아힘사는 보편윤리일 뿐이다. “비폭력은 비본적인 것일 뿐 중요한 것은 아니다. 크리슈나는 보편적인 윤리보다 계급의 윤리가 우선된다고 가르친다. 기타에 나타나는 고민은 이것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죄악이다. 따라서 전쟁에서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 그런데 아르주나는 무사가 아닌가. 무사는 반드시 전쟁에서 사람을 죽여야만 한다. 무사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은 죄악이다. 크리슈나는 이 고민에 대해 확실한 해결책을 내놓는다. 아르주나는 인간이기 이전에 무사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사의 폭력은 업을 쌓는 것일 필요가 없다. 마음의 문제란 말이다. 여기서 기타는 3가지 요가를 제시한다. “기타에서 요가한 정신을 수련하여 보다 더 살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의 길을 가리킨다. 그 세가지 요가는 지혜의 요가, 행위의 요가, 사랑의 요가로 불린다.” 지혜의 요가는 요가학파나 불교의 승려들이 하는 기존의 요가를 말한다. 그러나 나머지 둘은 기타에서 새롭게 제시된다.

 

행위의 요가란 행위를 하되 행위의 결과에 신경 쓰지 말고 행위 자체에 몰두하는것이다. 이것이 기타의 핵심이다. “기타는 행위를 추종하는 것도 아니고 행위를 배척하는 것도 아닌 행위를 추종하면서도 배척하는 새로운 대안을 가르친다. 1의 길도 아니요 제2의 길도 아닌 제3의 길을 가르친다. 1의 길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보통 사람들이 사는 길이다. 2의 길은 속세를 떠난 승려들처럼 고행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길이다. 그리고 제3의 길은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혼합한 길이다. ‘그대의 특권은 행위 자체에 있을 뿐 전혀 결과들에 있지 않다오. 행위의 결과를 행위의 수단으로 삼지 마시오, 그대는 행위를 하지 않음에도 집착하지 마시오. 3의 길은 행위를 하면서도 행위의 결과를 얻지 않는 길이다. 일상인으로서 이 사회를 유지한채 살면서 마치 고행자처럼 절제하는 삶의 길이다. 아르주나는 진퇴양난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싸우려고 하니 친족을 마구잡이로 죽여야 하고 싸우지 않으려고 하니 무사의 의무를 져버려야 한다. 이에 크리슈나는 무척 간단한 해법을 제공하는데 즉 싸우면서 싸우지 않는 법이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이는 말이 되지 않는 엉터리가 아니라 현실에서 충분히 실현가능한 방법이다. 이 방법이 행위의 요가이다. ‘행위에서 무행위를 볼 수 있고 무행위에서 행위를 볼 수 있는 사람들 가운데 지혜로우며 제어된 채로 모든 행위를 한다오.’ 인도의 역사에서 행위와 깨달음은 앙숙 사이였다. 둘은 결코 어울릴 수 없었다. 경이롭게도 기타는 이 둘을 절묘하게 화해했다. 행위의 요가는 행위의 구출이었ㅎ고 동시에 깨달음의 확장이엇다.”

 

좋다. 그러나 행위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여기서 필요한 것이 사랑의 요가이다. “신이 행위를 하는 이유가 되고 근거가 된다. 이 세상의 모든 행위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 모든 행위의 이유를 따지고 따지면 마지막에 신이 있다는 것이다. 신이 모든 행위의 궁극적인 이유이기에 항상 신을 생각하면서 행위를 하라.” 이 대목은 힌두교의 혁명이었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등장이 획기적이었던 것처럼 힌두료에서 크리슈나의 등장은 획기적이다. 인도의 종교사에서 붓다의 등장이 한번의 종교개혁이었다면 기타에서 크리슈나의 등장은 또 한번의 종교개력이었다. 인도고대종교에 대항하여 붓다가 영원불멸의 형이상학을 무너뜨렸다면 크리슈나는 그 속물스러운 세속의 신학을 무너뜨렸다. 무엇에 대한 개혁일까? 고대 인도의 브라흐만 종교에 대한 개혁이었다. 고대의 브라흐만 사제들은 제식이나 제의에 미쳐있었다. 그들은 제식을 통해 모든 것을 이루려 했다. 제식을 통해 신의 축복을 얻을 수 있고 비가 오게 할 수있고 아들을 낳게 할 수 있다. 제식만능주의의 시대였다. 그래서 그들은 속물스러웠다.”

 

그러나 기타에서부터 새로운 풍경이 등장한다. 하나. 여러 신을 숭배하지 않고 최고신만ㅁ을 숭배한다.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가 그 대상이다. . 최고신은 인간에게 공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그에게 공물을 바치지 않아도 된다. . 최고신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이다. 진심어린 마음으로 신을 믿고 의지하는 것. 즉 사랑뿐이다. 인간이 신에게 바쳐야 하는 것은 오로지 감정 뿐이다. 브라흐만 종교에서 사제들만 독점하던 그 어려운 언어는 이제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마음과 감정의 언어로 대체되었다.크리슈나는 이 세상에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말한다. 먼저 신에게 지고한 사랑을 행하는 자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궁극의 비밀을 알려주는 자이다. 궁극의 비밀은 무엇일까? 바로 크리슈나에게 의지하면 구원을 얻을 수있다는 것이다.”

 

행위의 요가에서는 현재 내가 하는 행위가 미래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하지 말라고 한다. ? 미래의 결과는 나의 몫이 아니고 신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신을 생각하면서 현재의 행위에 충실하고 있는 나의 삶은 그 자체로 신에게 구원받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너지는 환상 -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경제위기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된 과제는 금융폭락의 책임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일탈, 즉 느슨한 규제와 거대 금융기관들의 부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정말 위험한 때는 금융폭락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견해가 우리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계속 꿈을 꾸게 만드는 경우다.”

 

탐욕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그런 탐욕이 가능했던 시스템이 문제였다는 말이다. 이야기는 금융화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완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그가 새로운 월스트리트 체제라 부른 것 즉 지난 25년 동안 성장했고 투자은행들과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같은 그림자 금융이 지배하는 체제 탓으로 돌렸다.”

 

새로운 월스트리트 체제란 금융화란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성장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화라는 훨씬 더 광범위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이 금융화라는 생각은 지난 몇십년 동안 급진좌파에게 널리 받아들여졌고 지금은 주류경제학계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화란 무엇인가?” 저자는 금융화의 뜻을 세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이 그랬고 미국에서 J P 모건이 그랬듯이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다. 힐퍼딩의 금융자본론이 고전적인 논의인데 경제사에선 그런 금융자본을High finanace라 부른다. 고등금융의 시대는 대공황과 함께 끝났다. 그러나 자본의 역습에서 뒤메닐과 레비는 신자유주의를 금융 헤게모니의 복원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금융경제학에서 지적하듯이 60년대 이후 기업자금수요의 탈중개화는 은행을 무력화시켰다. 새로운 월스트리트 시스템이라 부를 실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19세기와 같은 형태는 아니다. 저자는 다른 정의가 보완되어야 말한다.

 

둘째는 금융 자체의 자율성이다. 요컨데 금융화는 은행이 산업,상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융부문의 자율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은 공개금융시장에서 차입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금융거래에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한편 금융기관들은 수익성의 새로운 원천을 개인소득과 금융시장 중개에서 찾았다.” 탈중개화의 정의와 상당부분 겹친다. 기업이 직접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주식을 팔며 자동차산업처럼 할부회사를 운영하고 은행이 아닌 AMEX가 카드사업을 통해 은행처럼 영업하는 것, 그리고 기업고객을 잃은 은행이 소비자금융에 뛰어든 것 등등 금융시장의 범위와 규모가 확대되었고 양적팽창은 질적변화를 가져와 금융시장 자체의 동학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보았던 파생상품의 경우가 그런 예이다. 여기서 세번째 의미가 파생된다.

 

셋째는 더 다양한 주체들이 금융시장에 통합되는 과정이다. “진짜 은행뿐 아니라 그림자 금융이라는 지하세계의 주민들, 산업,상업자본가들 그리고 노동계급 가정들도 통합되는 과정말이다. 다시 말해 금융시장이라는 경제구조와 금융기관이라는 특수한 경제주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산업기업과 상업기업이 금융시장에서 예컨대 채권과 CD를 발행해 직접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모기지, 신용카드 등을 통해 개별 소비자들에게 신용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금융은 모든 경제주체를 금융의 그물망 속으로 엮어 넣는다.”

 

저자가 말하는 금융화는 그러므로 금융부문의 자율성 확대,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의 증대, 다양한 경제주체의 금융시장 진입을 뜻한다.” 저자는 파생상품이 금융화의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딕 브라이언과 마이클 래퍼티는 이렇게 썼다. ‘파생상품의 핵심적, 보편적 특징은 모든 자산을 해체하고 분해해서 그 구성요소들로 쪼개고 자산 자체를 거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구성요소를 거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파생상품은 자본의 한 형태를 다른 형태로 전환해 만든 패키지 상품이다. 이 모든 상품들을 다 합치면 전환상품들의 복합체가 형성된다. 그러면 어느 곳에 있는 어느 시간대의 어떤 자본 조각도 다른 자본 조각과 비교, 평가할 수 있게 된다.’ 메타자본의 성격 때문에 파생상품은 1971년 미국이 금환본위제를 포기한 이후 국제통화제도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정장치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파생상품은 모든 형태의 자본(화폐와 상품)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서로 다른 화폐 형태의 차이나 상품과 화폐의 차이를 없애 버린다.’ 금융시장 자체의 작동으로 생겨난 파생상품은 고정장치의 네트웤을 제공해 개벌자본들이 금융불안정에 노출되는 위험을 관리하고 마치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금융시스템 속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은 어디서 오는가이다. 케인즈와 민스키는 자본주의 자체의 불안정성 때문이라 말한다.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고전파 경제학과는 다른 시각의 핵심용어이다. 케인스는 대부부의 경제활동이 합리적 경제적 동기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야성적 충동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케인스의 시각에 따르면 이 야성적 충동은 경기 순환과 비자발적 실업의 주된 요인이다.”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

 

저자는 야성적 충동을 케인스가 자본축적 자체에 대해 말한 것으로 해석한다. “케인스와 민스키도 자본축적이 현대자본주의 경제의 핵심특징이라 봤다. 축적이라는 것은 상당한 생산적 자원을 수익성 있는 듯한 사업에 비교적 오랫동안 묻어둔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래를 놓고 내기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이 말하듯이 그것은 합리적인 동기가 아니라 야성적 충동이라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리스크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란 근본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

 

민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불확실성은 미래를 오늘 다룰 때 나타나는 문제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경제단위들은 과거에 내린 결정의 흔히 뜻밖의 결과에 그럭저럭 대처하고 대응한다. 불확실성의 구체적 표현 하나는 물려받은 자본자산, 금융자산, 새로 형성된 자본자산에 대한 차입투자의행, 즉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겠다는 태도다.” “민스키가 보기에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은 불안정성은 자본주의의 고유하고 불가피한 결함이고 자본주의의 불확실성은 핵심적으로 기업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취약해지는데서 비롯한다.” 민스키는 그 취약성에 따라 자금조달형태를 헤지금융, 투기적금융, 폰지금융으로 나누고 경기순환을 투자의 자신감의 수준이 세가지를 따라 오르내리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민스키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라는 문제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모호하다. 이점이 민스키와 케인스의 공통점이다.”

 

저자는 맑스의 위기론으로 넘어간다. 맑스의 위기론은 이윤율 저하경향이다. “맑스는 이윤율 저하가 경향일 뿐이라고 장조했다. 맑스가 보기에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최종붕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체제에 유용한 에피소드라는 것이다. 실업이 늘면 착취율을 높이기가 쉬워지고 파산으로 자본이 파괴되면 살아남는 기업들은 수익성 있는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잇다. 따라서 경제위기는 이윤율이 다시 높아지고 경제성장이 재개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다시 저자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데이비드 하비로 넘어간다. “그는 자본론을 비판적으로 독해해서 생산의 동역학과 금융현상의 관계를 더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위기론 버전2’를 발전시키려 한다. ‘언뜻 보면 신용제도는 적어도 생산과 소비,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 현재의 사용과 미래의 노동, 생산과 분배 사이의 적대관계를 연결해주는 잠재력이 있다. 또 자본가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계급적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그래서 위기의 요인들을 억제하는 수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용의 사용은 흔히 장기적으로는 사태를 더 악화하는데 교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만 대처할 수 있을 뿐 생산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용이 생산자들에게 잘못된 가격신호를 보내 불균형과 과잉축적경향을 악화할 수 있는 온작 상황이 존재한다.’” 하비가 여기서 염두에 두는 것은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비는 금융은 생산의 문제를 증폭할 뿐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면 생산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문제는 이윤율저하경향이다.

 

“1949~1973년의 시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시기이다. 심각한 불황이 이 성장국면을 중단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결정적 요인은 마이크 키드런이 상시군비경제라고 부른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냉전의 절정기에 미국과 소련이 모두 매우 높은 수준의 군비지출을 유지한 것 때문에 자본의 유기적 구성상승 경향이 상쇄됐고 그래서 1960년대말 닉슨 정부가 군비지출을 삭감할 때까지 이윤율이 높게 유지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73년 이후 세계경제의 혼돈은 단순한 경기순환의 부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목격한 것은 자본이 과잉축적과 수익성의 근본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경제적, 금융적 불안정성의 고질적 패턴이아. 그런 위기를 해결하려면 착취율도 높여야 하고(노동자들이 임금삭감, 노동시간 연장, 노동조건 악화를 받아들이게 만들어서) 굳이 자본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더라도 그 화폐가치를 저하시켜 수익성이 낮은 자본을 제거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의 결과로 이윤의 양은 늘어나고 자본의 양은 감소해 결국 이윤율이 높아질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상당한 구조조정과 재편을 함의한다. 신자유주의가 그런 구조조정이 일어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틀이다. 그러나 이윤율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여기서 저자는 뒤메닐과 레비에게 반대한다. 그 이유는 과잉축적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과잉축적을 해결하려는 방편이었다. “하비는 이 문제를 위기론 버전3에서 다루는데 어떻게 자본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서 공간적 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하는지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일뿐이다.” 공간적 조정은 결국 자본의 총량을 늘려 과잉축적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1997년은 세계경제의 전환점이었다. 미국의 수익성 회복은 절정에 달했다가 그 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미국의 산업, 상업기업들이 느낀 압력을 더 세게 만든 것은 1995년 이후 다른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상승이었다. 이 때문에 외국 경쟁업체들보다 미국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해졌다.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런 하향압력은 미래의 성장을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특히 미국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자들은 이윤율이 오르고 있던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말까지의 시기보다 더 취약한 토대 위에서 경제가 계속 성장하도록 애를 써야 햇다. 신자유주의 정책레짐은 국가가 거시경제관리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 대책을 브레너는 주식시장 케인즈주의라 부른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심각한 불황의 늪에서 건져내기 위해 연준은 지속적 주가상승을 통해 미국국내소비와 투자의 증가를 가속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닷컴버블이 터졌을 때 연준은 그 거품을 주식시장에서 주택시장으로 옮겨놓았다. “신용거품은 미국경제(그리고 미국경제가 세계수요을 유지하는데 핵심구실을 햇으므로 세계경제도) 계속 성장하게 하려는 노력이엇다 비록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익성과 과잉축적의 만성적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시 거품은 공공부문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비효율적인 자본들이 일소되도록 자유방임한다면 그 결과는 장기불황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자본의 대대적 가치저하를 막는다면 과잉축적과 수익성의 장기적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2000년대 말의 경제,금융위기는 통제를 벗어난 금융시스템의 돌발사고도 아니고 우연한 결과도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자본주의가 수십년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낑낑댄 근본적 모순이 여지없이 드러난 순간이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