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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환상 -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10년 8월
평점 :
저자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경제위기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된 과제는 금융폭락의 책임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일탈, 즉 느슨한 규제와 거대 금융기관들의 부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정말 위험한 때는 금융폭락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견해가 우리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계속 꿈을 꾸게 만드는 경우다.”
탐욕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그런 탐욕이 가능했던 시스템이 문제였다는 말이다. 이야기는 금융화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완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그가 ‘새로운 월스트리트 체제’라 부른 것 즉 지난 25년 동안 성장했고 투자은행들과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같은 ‘그림자 금융’이 지배하는 체제 탓으로 돌렸다.”
새로운 월스트리트 체제란 금융화란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성장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화라는 훨씬 더 광범위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이 금융화라는 생각은 지난 몇십년 동안 급진좌파에게 널리 받아들여졌고 지금은 주류경제학계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화란 무엇인가?” 저자는 금융화의 뜻을 세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이 그랬고 미국에서 J P 모건이 그랬듯이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다. 힐퍼딩의 금융자본론이 고전적인 논의인데 경제사에선 그런 금융자본을High finanace라 부른다. 고등금융의 시대는 대공황과 함께 끝났다. 그러나 ‘자본의 역습’에서 뒤메닐과 레비는 “신자유주의를 ‘금융 헤게모니의 복원’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금융경제학에서 지적하듯이 60년대 이후 기업자금수요의 탈중개화는 은행을 무력화시켰다. 새로운 월스트리트 시스템이라 부를 실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19세기와 같은 형태는 아니다. 저자는 다른 정의가 보완되어야 말한다.
둘째는 “금융 자체의 자율성이다. 요컨데 금융화는 은행이 산업,상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융부문의 자율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은 공개금융시장에서 차입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금융거래에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한편 금융기관들은 수익성의 새로운 원천을 개인소득과 금융시장 중개에서 찾았다.” 탈중개화의 정의와 상당부분 겹친다. 기업이 직접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주식을 팔며 자동차산업처럼 할부회사를 운영하고 은행이 아닌 AMEX가 카드사업을 통해 은행처럼 영업하는 것, 그리고 기업고객을 잃은 은행이 소비자금융에 뛰어든 것 등등 금융시장의 범위와 규모가 확대되었고 양적팽창은 질적변화를 가져와 금융시장 자체의 동학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보았던 파생상품의 경우가 그런 예이다. 여기서 세번째 의미가 파생된다.
셋째는 “더 다양한 주체들이 금융시장에 통합되는 과정”이다. “진짜 은행뿐 아니라 그림자 금융이라는 지하세계의 주민들, 산업,상업자본가들 그리고 노동계급 가정들도 통합되는 과정말이다. 다시 말해 금융시장이라는 경제구조와 금융기관이라는 특수한 경제주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산업기업과 상업기업이 금융시장에서 예컨대 채권과 CD를 발행해 직접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모기지, 신용카드 등을 통해 개별 소비자들에게 신용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금융은 모든 경제주체를 금융의 그물망 속으로 엮어 넣는다.”
저자가 말하는 금융화는 그러므로 “금융부문의 자율성 확대,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의 증대, 다양한 경제주체의 금융시장 진입을 뜻한다.” 저자는 파생상품이 금융화의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딕 브라이언과 마이클 래퍼티는 이렇게 썼다. ‘파생상품의 핵심적, 보편적 특징은 모든 자산을 ‘해체’하고 ‘분해’해서 그 구성요소들로 쪼개고 자산 자체를 거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구성요소를 거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파생상품은 자본의 한 형태를 다른 형태로 전환해 만든 패키지 상품이다. 이 모든 상품들을 다 합치면 전환상품들의 복합체가 형성된다. 그러면 어느 곳에 있는 어느 시간대의 어떤 자본 ‘조각’도 다른 자본 조각과 비교, 평가할 수 있게 된다.’ 메타자본의 성격 때문에 파생상품은 1971년 미국이 금환본위제를 포기한 이후 국제통화제도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정장치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파생상품은 모든 형태의 자본(화폐와 상품)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서로 다른 화폐 형태의 차이나 상품과 화폐의 차이를 없애 버린다.’ 금융시장 자체의 작동으로 생겨난 파생상품은 ‘고정장치의 네트웤’을 제공해 ‘개벌자본들이 금융불안정에 노출되는 위험을 관리하고 마치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금융시스템 속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은 어디서 오는가이다. 케인즈와 민스키는 자본주의 자체의 불안정성 때문이라 말한다.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고전파 경제학과는 다른 시각의 핵심용어이다. 케인스는 대부부의 경제활동이 합리적 경제적 동기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야성적 충동’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케인스의 시각에 따르면 이 야성적 충동은 경기 순환과 비자발적 실업의 주된 요인이다.”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
저자는 야성적 충동을 케인스가 자본축적 자체에 대해 말한 것으로 해석한다. “케인스와 민스키도 자본축적이 현대자본주의 경제의 핵심특징이라 봤다. 축적이라는 것은 상당한 생산적 자원을 수익성 있는 듯한 사업에 비교적 오랫동안 묻어둔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래를 놓고 내기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이 말하듯이 그것은 합리적인 동기가 아니라 야성적 충동이라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리스크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란 근본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
민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불확실성은 미래를 오늘 다룰 때 나타나는 문제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경제단위들은 과거에 내린 결정의 흔히 뜻밖의 결과에 그럭저럭 대처하고 대응한다. 불확실성의 구체적 표현 하나는 물려받은 자본자산, 금융자산, 새로 형성된 자본자산에 대한 차입투자의행, 즉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겠다는 태도다.” “민스키가 보기에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은 ‘불안정성은 자본주의의 고유하고 불가피한 결함’이고 자본주의의 불확실성은 핵심적으로 기업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취약해지는데서 비롯한다.” 민스키는 그 취약성에 따라 자금조달형태를 헤지금융, 투기적금융, 폰지금융으로 나누고 경기순환을 투자의 자신감의 수준이 세가지를 따라 오르내리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민스키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라는 문제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모호하다. 이점이 민스키와 케인스의 공통점이다.”
저자는 맑스의 위기론으로 넘어간다. 맑스의 위기론은 이윤율 저하경향이다. “맑스는 이윤율 저하가 경향일 뿐이라고 장조했다. 맑스가 보기에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최종붕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체제에 유용한 에피소드라는 것이다. 실업이 늘면 착취율을 높이기가 쉬워지고 파산으로 자본이 파괴되면 살아남는 기업들은 수익성 있는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잇다. 따라서 경제위기는 이윤율이 다시 높아지고 경제성장이 재개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다시 저자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데이비드 하비로 넘어간다. “그는 자본론을 비판적으로 독해해서 생산의 동역학과 금융현상의 관계를 더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위기론 ‘버전2’를 발전시키려 한다. ‘언뜻 보면 신용제도는 적어도 생산과 소비,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 현재의 사용과 미래의 노동, 생산과 분배 사이의 적대관계를 연결해주는 잠재력이 있다. 또 자본가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계급적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그래서 위기의 요인들을 억제하는 수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용의 사용은 흔히 장기적으로는 사태를 더 악화하는데 교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만 대처할 수 있을 뿐 생산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용이 생산자들에게 잘못된 가격신호를 보내 불균형과 과잉축적경향을 악화할 수 있는 온작 상황이 존재한다.’” 하비가 여기서 염두에 두는 것은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비는 금융은 생산의 문제를 증폭할 뿐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면 생산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문제는 이윤율저하경향이다.
“1949~1973년의 시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시기이다. 심각한 불황이 이 성장국면을 중단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결정적 요인은 마이크 키드런이 상시군비경제라고 부른 것이다. 즉 1950년대와 1960년대 냉전의 절정기에 미국과 소련이 모두 매우 높은 수준의 군비지출을 유지한 것 때문에 자본의 유기적 구성상승 경향이 상쇄됐고 그래서 1960년대말 닉슨 정부가 군비지출을 삭감할 때까지 이윤율이 높게 유지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73년 이후 세계경제의 혼돈은 단순한 경기순환의 부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목격한 것은 자본이 과잉축적과 수익성의 근본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경제적, 금융적 불안정성의 고질적 패턴이아. 그런 위기를 해결하려면 착취율도 높여야 하고(노동자들이 임금삭감, 노동시간 연장, 노동조건 악화를 받아들이게 만들어서) 굳이 자본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더라도 그 화폐가치를 저하시켜 수익성이 낮은 자본을 제거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의 결과로 이윤의 양은 늘어나고 자본의 양은 감소해 결국 이윤율이 높아질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상당한 구조조정과 재편을 함의한다. 신자유주의가 그런 구조조정이 일어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틀이다. 그러나 이윤율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여기서 저자는 뒤메닐과 레비에게 반대한다. 그 이유는 과잉축적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과잉축적을 해결하려는 방편이었다. “하비는 이 문제를 위기론 버전3에서 다루는데 어떻게 자본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서 공간적 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하는지”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일뿐이다.” 공간적 조정은 결국 자본의 총량을 늘려 과잉축적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1997년은 세계경제의 전환점이었다. 미국의 수익성 회복은 절정에 달했다가 그 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미국의 산업, 상업기업들이 느낀 압력을 더 세게 만든 것은 1995년 이후 다른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상승이었다. 이 때문에 외국 경쟁업체들보다 미국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해졌다.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런 하향압력은 미래의 성장을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특히 미국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자들은 이윤율이 오르고 있던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말까지의 시기보다 더 취약한 토대 위에서 경제가 계속 성장하도록 애를 써야 햇다. 신자유주의 정책레짐은 국가가 거시경제관리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 대책을 브레너는 ‘주식시장 케인즈주의’라 부른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심각한 불황의 늪에서 건져내기 위해 연준은 지속적 주가상승을 통해 미국국내소비와 투자의 증가를 가속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닷컴버블이 터졌을 때 연준은 그 거품을 주식시장에서 주택시장으로 옮겨놓았다. “신용거품은 미국경제(그리고 미국경제가 세계수요을 유지하는데 핵심구실을 햇으므로 세계경제도) 계속 성장하게 하려는 노력이엇다 비록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익성과 과잉축적의 만성적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시 거품은 공공부문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비효율적인 자본들이 일소되도록 자유방임한다면 그 결과는 장기불황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자본의 대대적 가치저하를 막는다면 과잉축적과 수익성의 장기적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2000년대 말의 경제,금융위기는 통제를 벗어난 금융시스템의 돌발사고도 아니고 우연한 결과도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자본주의가 수십년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낑낑댄 근본적 모순이 여지없이 드러난 순간이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