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치명적 농담 - 한형조 교수의 금강경 별기別記
한형조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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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각, 틱낫한, 달라이 라마.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로부터 이책의 질문은 시작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국인이 아니면서 한국어를 쓰는 스님들보다 한국에서 더 알려졌고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하버드대 출신이라서? 프랑스에서 활동하기에? 세계의 지도자라서? 그것도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언어가 근본적인 이유라 저자는 말하낟. “그들이 이렇게 폭발적으로 유행하는 이유는 이런 배경 탓이 아니다. 비밀은 그들이 쓰는 언어에 있다. 한문고전을 읽혀보면 학생들이 도무지 번역본을 읽을 수 없다고 불평이다. 유교 경전이든 불경이든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일어, 중국어, 영어 번역본을 던져주면 학생들은 영어 번역본을 선택한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영어 번역본을 통해 해당 문장의 의미를 적어도 애매한 구석 없이 이해할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물론 영어권 동양학자들의 실력이 좋긴 하지만 중국은 모르겠지만 일본학자들보다 더 뛰어나다고 보기는 힘들다. 왜 그럴까?

 

영어가 한문이나 중국어보다 더 우리말에 가깝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19세기 후반에 근본적 변화를 겪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말과 글은 이전의 한자어나 우리 고유어가 아니라 일본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새로 창안한 번안어들과 거기 걸맞는 어법을 주축으로 한다.” 사실이다. ‘술 권하는 사회란 단편을 보면 일본유학씩이나 한 남편이 돌아와서는 술주정뱅이가 된 이유를 물으니 사회가 술을 마시게 한다는 말을 듣고 주인공의 아내는 나쁜 놈이라 욕을 한다. 사회란 말을 처음들어본 것이다. “우리는 한자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전통 한자가 아닌 근대적 신조어로 말한다. 이런 말들은 거의 의미 손실 없이 서구어로 대체할 수 있다. 이방인 포교사들의 성공신화, 그 비결은 그들이 쓰는 언어의 프리미엄에 있다. 그들은 지금 우리가 쓰는 말에 가까운 영어를 쓰고 있고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일상의 체험 위에서 정직하게 설파하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작년부터 인기를 끈 코이케 류노스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는 알기 쉬운 구어로 일상을 통해 불교를 설명한다. 그러나 코이케 류노스케의 책을 불교서적으로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가 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불교교리이다. 단지 그것을 쉽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상의 언어로 말할 뿐이다. 그가 말하는 생각버리기(번뇌귾기), 화내지 않기, 침묵 등등은 모두 불교 수행에 언급되는 주제들이다. 그러나 그의 책은 자기계발서로 읽히지 불교서적으로 읽히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한국에서 불교는 무슨 의미인가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우리말이 달라졌다는 것은 그 말을 쓰는 사람의 생각이 달라졌단 말이며 그 생각의 맥락인 사회도 달라졌다는 말이다. 우리는 전통을 버렸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의 전통은 반 세기 이상을 올라갈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유교나 불교는 무슨 의미인가?

 

의미를 물으려면 먼저 그것이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그 질문을 불교는 철학이냐 종교냐로 이해한다.  유교도 그렇지만 불교가 철학이냐 종교냐에 대한 답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는 것이다. 답이 애매한 것은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불교도 유교도 서양철학과 같은 논리학, 존재론, 인식론의 체계가 없다. 그런 체계는 서구의 전통에서 유의미한 것이고 서구와 다른 문제의식을 가졌던 불교와 유교에게 그런 체계가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물론 풍우란이 처음 중국철학사를 썼을 때 보여주려 했던 것처럼 억지로 끼워맞추려면 또 그런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서양철학과 같은 질문을 가지지 않았던 지식체계가 동일한 틀을 갖는가 묻는 것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러면 종교인가? “불교는 붓다의 가르침이었을 뿐 종교냐 아니냐를 묻지 않았다. 철학이 필로소피의 번역어로 성립한 것처럼 종교 또한 번역어일 뿐이다.” 종교냐 아니냐의 기준 역시 당연히 그들의 기준이고 그 기준은 유일신을 핵심으로 한다. 그런 신은 당연히 불교엔 없다. 그래서 불교는 무신론으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불교가 기독교와 맞서 스스로를 변호하고 선전한 전략의 결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루돌프 오토의 기준처럼 종교의 핵심을 인간의 궁극적 관심으로 전향한다면 불교나 유교는 인간의 구원이라는 최종적 관심으로 돌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깊이 종교이다. 또한 인식론의 복잡성이나 논리적 엄밀성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원래 그리스와 로마에서 그랬듯, 삶의 길을 계시하는 지혜에 대한 갈망과 추구로 규정한다면 불교와 유교만큼 철학적인 것 다시 없다.”

 

철학과 종교의 새 이름이 등장하면서 유구한 전통의 불교와 유교는 때아니게 정체성을 의심받고 정당성을 도전받았다. 그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물음 앞에서 우리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모든 질문은 권력적이다. 누가 묻는가의 주도권을 서구가 거머쥠으로써 질문에 당황한 불교와 유교는 혹은 부끄러워하고 변명하고 저만큼 피해갔다. 그때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물을 수 있어야 햇다. ‘너희들 기준으로는 불교는 종교가 아니다. 유교도 철학이 아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되는가. 가르침이고 배움이면 족하지 않은가.’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물을 수 있었어야 했다. ‘예수는 과연 깨달은 사람이냐’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은 해탈을 위한 적절한 지혜인가 아닌가.’”

 

그렇다면 불교의 구원과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당연히 무아론이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가 말하는 Good News(복음)가 아니다. “누구도 자신이 모르는 것을 새로이 알 수는 없다. 만일 안다면 그것은 마군임에 틀림없다. 마찬가지로 누구도 상대방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 줄 수 없다. 가르침이란 내속에 있던 어떤 것을 새삼스럽게 확인시켜주는, 선가의 말을 빌리면 지시일 뿐이다. 그래서 옛 선지식들이 하나같이 나는 네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햇다.”

 

이미 갖고 있는 것이기에 줄 수 없는 것, 그것을 불성이라 햇다. 그렇기에 저자는 불성을 보는 견성, “돈오는 쉬운데 정말 점수가 어렵다고 한다. 지눌은 돈오란 다름 아니라 마음의 실상에 대한 지적 이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교의 이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되 그 이치를 진정 믿기가 어렵고 그 가르침대로 살기가 어렵다.” “돈교는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 너머에, 깨달음이니, 구원이니, 법계니, 정토니가 결코 없다는 사자후이다. 돈교는 지금 있는 그대로, 우리 자신이 바로 절대임을 그토록 간절히 친절하게 일깨워주려 한다. 그래서 입만 열면 깨달을 바도, 얻을 바도, 설할 바도 없다고 했다. 다만 눈을 들어 쳐다보라고만 했다.”

 

쳐다보기만 하면 되는데 보지 못하니 만공은 몰락한 상궁 나인들이 찾아와 법문을 청할 때 이렇게 말했다: “저 산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도 뚫는데 우리집 멍텅구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

 

단순한 비유만은 아니라 저자는 말한다. “불성이란 바로 지금 역력한 생명의 불가사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쉽게 말하자면 삶의 목표는 쾌락이 아니다.” 아무리 욕망을 채워도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이다. 남부럽지 않게 성공했더라도 그 내면은 여전히 가난하고 불만족스럽다.” 탐욕은 좋은 것이라며 욕망을 무제한으로 채워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다. “삶이 고통스러운 것은 우리가 근본적으로 자기욕구라는 환상속에 있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것이란 생명의 자연적 발현이 아닌 것 모두를 뜻하낟. 그리고 우리의 일상적 욕구와 충동은 이미 심각하게오염되었다. 그래서 늘 넘쳐난다이 진단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내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그러지?’ 그래서 깨달음을 얻기가 어렵다. 깨달음이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낡은 것이다. ‘내가 그동안 오염된 마음으로 살아왔다는 것, 그런데 내 이제 그 실상을 투명하게 알겠다는 발견이 곧 깨달음이다. 그래서 깨달음으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사람이나 세속적 성취욕이 강한 사람, 그리고 사회적 교제와 정치적 성공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유형들은 불교를 가까이하기 어렵다. ‘나 이렇게 살다 갈래하면 대책이 없다. 불교는 아무 것도 줄 것이 없다. 오히려 한사코 뺏으려 한다.

 

무아와 공은 동의어이다. 나는 없다 나는 비었다는 말이다. “()이란 자기 이해와 관심으로부터의 해방을 뜻한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쇼펜하우어의 말을 빌려보자. 쇼펜하우어는 우리가 눈이 있어 보고 귀가 있어 듣는 것이 아니라 보려는 욕망이 눈을 만들었고 들으려는의지가 귀를 만들었다고 한다.보려는 욕망이 없으면 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의 책 제목처럼 세계는 의지의 표상이며 의지의 산물이다.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세계는 법(, 객관적 실제)이 아니라 상(, 주관적 세계) 즉 오로지 식(唯識)이다. “인간의 욕망은 이 세상을 혼란시키고 비참을 증폭시키는 원흉이다. 언어는 그 첨병이다. 언어는 실재를 드러내기보다 감추며 비추기보다 왜곡한다. 그래서 불교는 언어에 대한 불신을 선명히 드러낸다. 어떤 불교학자는 불교의 이런 인식을 언어혐오증이라 부르기도 한다.”

 

욕망이 가린 것을 드러내기 위한 한 방편이 아비달마이다. “아비달마는 타자로 말하고 적는 기술이다. 이 전략은 나의 개입이나 오염이 배제된 순수객관적 사태들 즉 다르마들(諸法)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가령 나는 오늘 그토록 사랑하는 그녀를 떠나보냈다를 아비달마는 매우 부정확하고 들뜬 문장이라 생각하여 이렇게 고친다: 1. 두 물체가 있다. 그리고 2. 사랑한다는 감정과 슬프고 아쉬운 감정()이 있다. 3. 눈문을 흘리는 한 물체가 다른 손 흔드는 물체를 지각()한다. 4. 떠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싶은 충동()이 있다. 5. 이 사건을 의식()하는 과정이 있다. 아비달마의 이 오래된 분석은 무아를 각인하고 그것을 삶 속에 구현하려는 지혜의 방편이다. 나에게 속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남의 것이엇다는 것, 아니 세계는 그 어느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을보여주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는 것을 자기 비우기라 하며 공이라 한다. 내가 느끼는 감정도 내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실제 고승들은 어떤 일의 충격이 잔류하는 기간이 아주 짧고 후유증이 거의 증폭이 안된다고 한다.”

 

불교의 지혜는 우리에게 익숙한 인격과 자아를 오온의 객관()으로 해체하는 작업에서 시작한다.” 예를 들어 8정도의 하나인 정념, 위빠사나는 내 몸의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것을 차갑게 주시하고 관찰하는 일이다.” 방법 자체는 쉽다. 그러나 하기는 쉽지 않다. “1분을 제대로 할 수 있으면 반쯤 도통했다는 소리가 나온다. 느닷없이 끼어드는 차에 대고 바로 욕이 튀어나오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것을 회광반조, ‘아하 내가 지금 마음 속에 화의 불길을 일으키고 있구나하기는 어렵다. 어구나 그것이 일어나고 축적되고 변화하고 사라지는 생주이멸의 과정을 남의 일처럼차갑게 관찰해나가기는 정말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은 무아를 들여다보기 위한 기초작업이다. “무아란 네 자아란 없다는 뜻이라기보다는 너무 많은 자아가 있어 어느 것을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란 뜻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정념으로 들여다보면 우리 각자 천의 얼굴을가지고 있다. “ 그 무상한 변화는 누가 일으키는 것일까. 나는 스스로 정립하는 주체가 아니고 타자에 의해 상황에 의해 세워지는 허수아비요 물거품이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얼굴로서의 주체 혹은 자아는 없다. 이것이 무아의 뜻이다. 달마와 혜능뿐 아니라 셰익스피어도 이렇게 곤혹스럽게 물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이 왜 문제인가? 상은 법의 굴절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모두 나의 이미지()으로만 존재한다. 우리는 다만 욕망과 관심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만 사물을 보고 자신의 이해관계를 기준으로 사람을 만난다. 불교는 그 좁은 새장을 벗어나 자유롭게 창공을 날고 거기서 독수리처럼 세상을 보라는 조감(鳥瞰)의 권고이다.

 

우리는 사람과 만난 적이 없다. 비즈니스 상대는 말할 것도 없고 가장 가깝다는 가족이나 친구도 까마득히 멀어보인다. ‘안아도 안아도 아드간 아내의 허리’ (고은). 그는 나를 좋아거나 싫어라며 나를 찬양했거나 모욕했고 내가 좋아하는 혹은 싫어하는 스타일에 내가 좋아거나 싫어하는 인상에 습관에 또 내가 존경하는 지식 혹은 내가 경멸하는 지적 수준에그런 이미지를 통해서만 상대와 나는 관계를 맺는다. 이것이 우리가 늘 불행한 이유이다. 우리가 염려, 근심 걱정으로 눈멀어 있다면 우리는 황혼의 저녁이나 뜰에 핀 꽃, 아내의 젖은 손이나 남편의 어깨 위에 앉은 비듬을 볼 수 없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근본 조건을 바로 이 염려(sorge)에서 찾았다. 그는 인간의 마음 밑바닥에 깔린 이 불안의 중심을 통찰하고 그로부터 벗어날 수 ㅣㅇㅆ다면 우리는 진정 인간적 삶을 회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이미지들 때문에 우리는 자연과의 생생한 접촉을 잃고 다른 사람과의 의미 있는 만남을 놓치고 만다.”

 

그것과 무아가 무슨 상관인가? 상관이 있다 그것도 근본적인. 상을 만드는 렌즈가 자아이기 때문이다. 스티브 테일러의 말을 빌리자면 자아폭발이 불행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자아폭발과 타락 개념에 대해선 해당 리뷰 참고)

 

인도 현인들은 타락한 정신이 하는 거짓말을 풀어내고 있었다. 자아가 고립되었으며 자기 이외의 우주는 저기 밖에 있는데 자기만은 머릿속에 갇혀 있으며 그리고 아무 상관도 없는 외계에 살고 있다는 무시무시한 인식. 그들은 직접적으로 타락한 정신을 해체했다. 그들은 예리해진 자아인식은 우리가 누구인가에 대한 거짓된 인식을 주는 일종의 가면현상임도 깨달았다. 우리는 오도된 정체성으로 고통받는다. 우리는 우리가 이러한 자아들이라고 믿지만 자아들이 사라져야만 우리의 진정한 본성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두가지의 다른 자신들을 갖는다고 우파니샤드는 말한다. 거짓의, 피상적인 자아자신과 우리의 진정한 자신인 아트만이다.” (스티브 테일러)

 

우파니샤드의 전통에서 요가철학이 태어났다. 붓다가 위빠사나로 정리한 방법과 마찬가지로 요가의 목표는 거짓된 자아를 들여다보고 그것을 해체해 진정한 자아를 드러내는 것을 목표로 개발되었다. 붓다가 한 때 수행했던 고행도 마찬가지 목표를 가졌다.

 

그러나 붓다는 두가지 모두 목표와는 거리가 멀다고 선언했고 자신의 방법을 제시했다. “붓다가 타락한 정신을 초월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이 반항은 훨씬 더 강력해졌다. 우파니샤드는 분석적이라기보다는 서술적이다. 우파니샤드는 이것이 사물의 실체이다. 이것이 세상이 실재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의 진실된 상태이다라고 외치는 거대한 모닝콜 같다. 반면에 불교는 완전히 반대이다. 불교는 사물의 궁극적인 사실에 대하여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런 토론은 시4간과 에너지 낭비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붓다는 타락한 정신이 어떻게 고통을 낳았는지에 대해 심오하게 이해하고 그것을 초월하기 위한 매우 상세하고도 체계적인 방법을 개발했다. 불교는 모든 면에서 타락의 측면에서 보면 완전히 이해된다. 붓다가 말하는 갈망은 자아폭발로 생겨난 권력, , 재산, 향락적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이다. 분리된 자아인식이 존재하는 한 갈망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갈망을 극복하는 것은 (세계와) 분리된 자아인식을 극복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해탈에 도달했을 때 정확히 일어나는 것이다.” (스티브 테일러)

 

붓다가 요가의 방법론을 구체적인 수행법으로 받아들인 것은 당연했다고 스티브 테일러는 말한다. 요가의 명상법은 자아폭발로 비대해진 자아의식을 죽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같은 목적을 갖고 있었기에 도가 역시 독자적으로 비슷한 방법을 개발했다고 그는 말한다. “명상의 전체적인 목적은 자아폭발의 결과들을 제거하는 것이다. 필립 노박은 강력하게 발달한 자아가 어떻게 우리의 정신적 에너지를 독점하는가-자아는 (사하라시아인들이 등장하기 전 조상들이 그러햇고 지금도 남아있는 수렵채집인들의 의식이 그러하듯이) ‘개방적이고 수용적이며 현재중심적인 인지의 기쁨으로 나타나게될 수 있는 에너지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를 설명할 때, 명상을 수행하는 것이 어떻게 이 과정을 역전하는가도 함께 지적한다. 의식구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려면 지속적으로 주의력이 공급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명상할 때처럼 현재에 주의를 집중하면 의식구조는 주의력이라는 자양분을 박탈당하여 약화되기 시작하고 사라져 버린다. 결과적으로 노박의 말대로 마음은 욕망과 걱정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정교하게 만들어내는 데 (즉 생각하는 데)보다 적은 에어지를 쓴 새로운 습관을 얻게 되고현재의 사실을 인식하는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명상 수행은 에너지 재분배의 결과를 낳는다. 정확히 하면 타락과 동시에 발생했던 재분배의 역전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지각하는 데로 돌아간다. 그 결과 당신은 세계 안에 있는 의식의 힘을 인시할 수 있게 되고 원시인들이 알고 있는 강력한 현존과 아름다움을 알게 된다.

 

명상이 자아폭발의 효과들을 제거하는 또 다른 방법은 우리가 주위 환경과 분리되었다는 인식을 약화하는 것이다. 우리의 자아인식은 자아가 만들어내는 생각의 수다로 유지된다. 자아가 조용해지면 그것들의 경계들도 덜 분명해진다. 그리고 자아가 완전히 조용해지면 모든 경계 인식은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우파니샤드가 설명한 우주와의 일체감을 인식하는 체험을 한다.” (스티브 테일러)

 

붓다의 체험을 예로 들어보자. 붓다는 라마풋다 선인에게 非想非非想處란 경지를 배웠다. “이 경지는 생각하지도 않고 생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경지로서 가장 높은 차원인 滅盡定의 바로 앞 단계이다. 숫타니파타(874)는 이 경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있는 그대로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고

생각을 소멸한 것도 아니다.

이렇게 이해한 자의 형태는 소멸한다.

아마 거친 의식들은 생각에 근거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경지가 어떤 것인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유무의 차별을 넘어선 경지일거라고 상상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카무라 하지메)

 

좀 더 말로 할 수 있는 예를 들어보자. 신비주의 철학자 스테이스는 명상의 체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것은 하나가 됨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존재의 현시였다. 방안의 모든 사물들을 통하여 한줄기 광채가 빛났다. 모든 문제들이 사라졌다, 아니 그보다는 문제들이 없었다. 죽음도 없었고 나라는 것도 없었다. 그것은 절대적 황홀의 느낌이었다. 내가 차츰 세상 속으로 돌아오자 이것에 이은 도취감이 뒤따랐다. 참으로 커다란 행복이었다.” (스티브 테일러에서 재인용)

 

죽음도 없고 태어남도 없다는 붓다의 말은 이것을 말한다. “깨달음의 순간 붓다의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은 생존욕의 중심이 완전히 부수어진 것이다. 자기의 중심을 쳐부순다면 그때까지 고뇌하던 자기는 소멸한다. 자기가 소멸하면 세계는 허구로 이루어졌던 것이므로 괴멸해버린다. 그러면 오직 있는 그대로의 세계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카무라 하지메) 항상 차나 한잔 들지라 말했던 조주 선사의 평상심도 이것을 말한다. “도가 무엇입니까?”란 물음에 조주가 차 한 잔 들게(끽다(喫茶去)’라 한 것은 차 한 잔을 마실 수 있으면 도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쉬운 것 같아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이지 차 한 잔 마시기가 어렵다. 내 분노와 슬픔을 타서 차를 마시지 않을 때가 드물고 내 에고와 권위를 타서 차를 권하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차를 빈 마음으로 우려 빈 마음으로 권할 때 거기 모든 것이 있다. ()이라, 무심(無心)은 당연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내가 내 마음의 불순물로 탁하게 오염시킨 차를 뻔뻔스럽게 내놓고 있다는 파렴치를 알기만 하면 차 맛은 훨신 좋아진다.” 조주의 평상심은 그런 것이다. 그 평상심이 깨달음의 내용이고 돈오의 내용이다. 도가 무엇이냐는 물음에 뜰 앞의 잣나무란 한 것도 평상심으로 잣나무를 보는 것을 말한 것일 뿐이다.

 

어느 선사에게 누가 물었다. ‘스님도 도를 닦고 있습니까?’ ‘닦고 있지어떻게 하시는데요?’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잔다’ ‘에이 그거야 아무나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않아 그들은 밥 먹을 때 밥은 안 먹고 이런저런 잡생각을 하고 잠잘 때 잠은 안 자고 이런저런 걱정에 시달리지.”

 

그러므로 깨달음이란 밥을 잘 먹는 것이다. “몸이 음식을 맛볼 수 있도록 나는 마음을 비워주어야 한다. 마음이 차 있다면 음식 맛을 느낄 수 없다. 김치를 밥이나 대학에도 그런 경구가 있다. ‘우리 모두 음식을 먹지만 음식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음식 맛을 느낄 수 있으면 도는 멀지 않다. 불교가 노리는 최상승의 경지를 나는 이곳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인류의 오랜 환상을 떠나 삶의 실제와 만나는 것이므로.

 

밥맛을 아는 것이 깨달음이기에 혜능은 서방정토가 지금 여기 있으니 내가 지금 보여주랴고 했고 화엄은 사바와 법계가 둘이 아니며 그래서 벗어나야 할 사바도 없고 들어서야 할 법계도 달리 없다고 말한다. 화엄은 세상이 이미 완전하고 우리가 이룰 것은 더 이상 없다’”고 선언한다. “화엄은 과격하게도 아무 것도 묻지 말고 아무 것도 따지지 말고 다만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네가 이 세상과 다투는 것을 그치면 세상은 고요해질 것이니 그때 진정 세상이 이미, 우리가 손댈 필요없이 완전하다는 것을 알 것이다.’” 타락한 자아가 깨어지고 깨어져 나가도 세상은 여전히 그대로라는 것이다. 시냇물은 흘러가고 창밖에 차소리는 들리며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말하고 또 들으며 화를 내고 웃는 이 인간만사의 세상일들이 그대로 여여하게 들리는 것이다.”

 

돈오란 깨달음이란 사건이 문득 아주 짧은 시간에 일어난다는 것을 뜻하지 않고 화엄이 말하듯 깨달음이란 원래 오고감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다. ()’깨달음은 이미 여기 와 있다!’는 것, 그러므로 찾거나 이루거나 하는 시간과 점차()로 더듬지 말라는 것을 일깨우는 말이다.선의 실질적 창시자인 혜능은 몸은 보리수도 아니고 마음 또한 거울이 아니다라 했다. 그리고 그곳은 어디 먼지 앉거나 때가 끼는 곳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것은 이미 완전하기에 우리는 더 이상 닦으 것도 찾을 것도 없다. 그것이 돈오이다. 돈오란 깨달음이 이미 와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선은 즉심즉불, ‘네가 곧 부처이니 어디 딴 데서 찾을 생각하지 말라고 다그친다. 그런데 왜 다시 수행이 필요하지? 이미 깨달아 있으면서깨달음에 대한 지적 통찰은 그것을 구체적 삶의 현장에서 살아나가는 일에서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 노력을 우리는 점수라 부른다. 돈오는 쉬운데 점수가 어렵다. 돈오를 살아가는 것이 점수이다. 그것은 끝이 없는 심화와 지속의 실천이다.” 그러므로 돈오란 깨달음이란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선가에서는 이른바 깨달음이란 것을 얻고 나서는 한바탕 배꼽을 잡으며 소 위에 타고 앉아 소를 찾았다며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한다. 깨달음 이후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깨달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불법은 아무 것도 아니다. 실제(實際)를 아무런 두려움이나 공포없이 욕망의 흔적과 조바심 없이 관()할 수 있을 때 그곳이 곧 구원이고 법계이다.. 진리한 피곤하면 눕고 졸리면 자는 것일 뿐, 이 밖에 무슨 특별한 소식은 없다.”

 

마조는 이렇게 말한다: ‘도는 닦아 익힐 필요가 없다. 다만 오염시키지만 않으면 된다. 무엇을 오염이라 하는가. 생사를 의식하여 조작하고 선택하는 일체가 그것이다. 도와 곧바로 만나고 싶은가. 평상의 마음이 바로 도이니라. 무엇을 일러 평상심이라 하는가. 인위적 조작과 주관적 가치판단이 없고, 의도적 선택이 없는 것, 사물에 대한 고착이나 방기가 없고 진리에 대한 환상도 없는 바로 그곳을 가리킨다. 경전에 말하지 않던가 범부의 행도 아니고 성인의 행도 아닌 것, 그것이 보살행이라고. 다만 이렇게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것, 상황에 따라 응접해나가는 것이 바로 도이고 그 셰게가 바로 법계이다.”

 

그러므로 반야심경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리자야 우리는 사물과 세계를 두고 태어난다거나 사라진다고 말할 수 없다. 그곳은 깨끗하다거나 더럽다는 인간적 흔적을 덧붙일 수도 없고 늘어난다거나 줄어든다는 세속적 득실도 운위할 수 없다. 자아의 개입이 근원적으로 차단된 곳이기에 거기 사람과 자연은 구분되지 않으며 주체와 대상 또한 분리될 수 없고 바라보는 시선과 거기 잡히는 풍경도 둘이 아니다. 어디 그뿐인가. 인간에게는 원초적 무지가 있다는 생뚱맞고 그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권유도 쓸데없다. 늙고 죽음의 개념도 없으니 그 늙고 죽음을 초월할 수도 없지 않은가. 생로병사가 도무지 없는 판에 붓다가 초월과 해방의 방법으로 가르친 네가지 성스런 진리 또한 뜬금없는 소리이다. 기억하라. 요컨대 깨달음이란 것도 농담이니, 더구나 그것을 통해 무엇인가를 얻을 것이라는 기대는 더더욱 황당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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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 - 대한민국 경제정의를 말하다
유진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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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다. 일본으로 유학을 간 중국인에게 왜 일본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느냐 물으니 사회주의에 물들까봐라 말했다.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명색이 자본주의인 일본이 더 사회주의적이란 말이다. 강한 평등지향성은 한국이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강한 평등지향성은 그 사회에서 부자를 어떻게 보는가로 측정이 가능하다. 나보다 돈이 많은 것이 부러움의 기준인가 존경의 기준인가이다.

 

평등보다는 자유 즉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의 경우 부는 존경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자유보다는 평등성향이 강한 사회에선 부는 존경보다는 단지 부러움이 기준일 뿐이다. 나보다 잘 난 놈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인데 이 속담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한국인은 부자를 부러워는 하더라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강한 평등성향이 이유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부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지위의 기준이다. 지위에는 존경과 부러움이 모두 따르게 마련이다. 어느 사회든 평등성향과 자유성향(즉 경쟁지향성)은 모두 있게 마련이고 단지 그 비율이 다를 뿐이다. 어느 성향이 더 강한가에 따라 존경과 부러움의 비중이 달라질 뿐 어느 것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얼마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한국인들은 존경을 표시했다. 한국에서 존경이 없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그 지위의 정당성이다.

 

전통이 사라진 한국과 달리 전통의 무게가 장구한 일본이나 유럽에선 여전히 과거의 귀족이었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과거에 조상이 어떠했다는 자체가 권위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전통이 없는 미국의 경우 그 정당화는 실력이다. 어쨌든 부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실력이 있다는 증명이며 지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한국에선 전통도 실력도 지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요약한다. “혼자 힘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학교 다닐 때 철학개론 시간이었다. 젊은 철학과 강사가 맡았던 수업인데 나이든 교수의 의무적인 수업보다 더 생산적인 강의였다. 교과서를 무시하고 현대철학자 한 사람씩을 골라 강사가 그들의 철학에 대해 소개한 다음 그 철학의 기준에 따라 현재의 눈앞의 문제들을 학생들이 발표하게 하는 형식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주제 중의 하나는 동성애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학생들이 찬성, 반대로 발표했던 것이다.

 

그 강의에서 한번은 노직을 다루었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인 노직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탔기 때문인데 강의 중에 그의 이론이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를 설명할 때였다.

 

내가 내 노력으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왜 정부가 그돈을 뺐어가야 하는가? 그런 주장에 대해 내가 했던 질문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내가 벌었다고 주장하는 그 돈에는 남의 몫도 잇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시장근본주의자라도 세금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시장이 존재하려면 경찰과 군대라는 최소한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시장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번다는 주장을 하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에는 여러가지가 잇다. 계약이 지켜질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는 사법시스템, 물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교통 인프라 등은 모두 세금에 대한 국가의 서비스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노력으로 벌었다고 주장하는 돈에는 국가의 몫이 포함된다. 그러나 노직이 반대한 것은 세금 자체는 아니다. 그의 속내는 복지국가였을 것이다. 내가 번 돈에서 국가의 몫이 얼마인지 그리 분명하지 않지만 몫 자체가 잇다는 것은 인정할 수있다. 그러나 왜 국가가 그 이상을 거둬가느냐는 것이다. 내가 돈 버는데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세금은 강도짓이란 말이다.

 

레이건이 좋아하던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복지여왕의 예가 아니더라도 일리가 없는 불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할 몫은 정말 없는 것일까?

 

여러가지 근거가 있을 수 잇지만 저자는 한가지만 언급한다. 도덕적 의무이다. 사회를 가족이라 생각해보자. 맏아들이 성공햇다면 맏아들은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을 도와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 그것이 연대의무다. 돈을 많이 번 맏아들이 부모와 동생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경우 우리는 그에게 도덕적 비난의 화살을 던진다.” 연대의무는 단순히 그러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사람이면 당연히 갖는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당신이 코칭하는 CEO들이 인생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게 뭡니까?’ 애니스에 따르면 CEO들의 소망은 주가상승이나 분기 영업이익률 향상 같은 게 아니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거에요. CEO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해요. 진정한 가치를 지닌 그 무언가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거죠.’” (하워드 블룸)

 

돈이란 것 자체가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돈은 생존과는 무관하다. “인간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이유는 돈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이야말로 인간이 마음 속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보여주는 감정의 산물이다.” (하워드 블룸)

 

그러므로 연대의무는 인간이면 누리고 싶어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무를 무시할 때, 그보다는 그런 권리 자체를 모르는 부자를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렵고 존경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권력은 행사되어야 하고 부는 쓰여져야 한다. 한국의 역사와는 별 상관이 없는 (군사귀족에게나 어울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유행한 이유는 쓰여지지 않는 부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의 부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보다 더 뿌리 깊은 것이라 말한다. 다시 저자는 가족의 비유를 든다.

 

세 명의 자녀를 둔 가난한 부모가 시골에서 근근히 논밭을 부쳐 먹고 살았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세 자녀 중 한명, 맏아들만 대학 공부를 시켯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소까지 내다팔았다. 다행히 맏아들은 공부를 썩 잘했고 의사가 되었다. 돈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가지 못한 둘째와 셋째는 가난을 이어받아 아직까지 어렵게 산다.”

 

저자가 말하는 맏아들은 물론 재벌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는 몰아주기 전략으로 재벌을 키웠다. 없는 형편에 되게 하려면 공평한 것보다는 될 놈에게 몰아주는 것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광복 직후 정부는 시장경제를 도입휴ㅏ는 과정에서 모든 기업과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지 못했다. 경제적 자원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심했던 것도 한 요인이었다. 당시 정부는 특정 기업 또는 특정인에 한정해 다양한 혜택을 주었다. 가난한 부모가 맏아들만 대학에 보내듯 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혜택을 입으면서 성장햇다.” 선택과 집중이란 전략은 성공했고 지금의 재벌이 있게 되었다.

 

“2006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34.4%)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있다고 답했다. 근로자의 복지와 발전에 있다는 응답도 27.8%에 달했다. 반면 기업의 이익과 발전에 있다는 응답은 16.7에 붏과했다. 한편 중국은 응답자의 59.4%가 기업의 목적을 기업의 이익과 발전에 있다고 대답했다. 기업의 목적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있다는 응답은 12.4%에 불과했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보다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더 사회주의적인 답변이 나온 이유는 재벌이 성공하기까지의 역사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가족의 희생으로 성공한 맏아들, 재벌이 가족의 희생을 나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재벌의 나몰라라 하는 것은 얼굴에 철판 깔고 연대의무를 무시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재벌의 성공에는 분명 국가차원의 희생이 있었고 그 희생은 재벌의 성공에 대한 투자였다.

 

기업들에 대한 특혜로 인해 다른 기업들은 그와 같은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햇다. 정부가 국내의 경쟁을 억제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했고 노조활동이 억압되었기 때문에 근로자드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런데 성공하고 나니 계약서에 쓴 일이 없다고 투자에 대한 배당을 무시한다는 말이다. “맏아들이 대학에 감으로써 다른 가족들이 암묵적인 비용을 지불했다면 의사로서 성공한 맏아들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가족에게 해야 함은 당연하다. 비용은 다른 가족들이 지불하고 혜택은 맏아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은 타당치 않기 때문이다. 맏아들이 가족들에게 지원을 한다면 이는 사랑하는 가족이 자신보다 못살기 때문에 돕는 연대의무 차원의 지원은 아니다.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상해야 마땅한 의무이다.” 한국의 반기업정서는 자본주의나 시장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재벌의 배은망덕에 대한 반감이란 말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성공한 맏아들의 도덕적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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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 그 삶과 사상 붓다, 그 삶과 사상 1
나카무라 하지메 외 지음, 이미령 옮김 / 무우수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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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받사여 나는 29세에 오로지 을 찾아 출가햇다. 수밧다여, 나는 출가하고서 50여년을 지내왔으며 바른 이치와 법의 영역만을 걸어왔다. 나 이외에는 진리의 길을 걷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마하파리닙바나경)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토해낸 붓다의 말이다. 여기에서 붓다는 자신이 불교를 창시했다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오직 진리를 체득한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생각하고 있다. ‘진리의 길을 걷는 사람바로 이 말 속에 붓다의 일생이 집약되어 있다. 붓다의 말을 토해 우리는 붓다가 평생 무엇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며 살아왔는지 알 수있다 법의 길을 걸었다는 것. 진실의 길을 걸었다는 것. 바로 그 걷는다고 하는 실천을 설했다. 붓다는 언제나 실천을 중시했다. 동시대 다른 사상가들은 논쟁으로 세월을 보냈으나 붓다는 그런 희론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앗다.”

 

크샤트리야 출신인 붓다는 자신을 바라문으로 이해했다. 그가 생각하는 바라문은 출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길로 결정되는 것이며 그 길을 걷는자는 누구나 바라문이라 불릴 수 있었다.

 

붓다는 결코 바라문교의 전부를 부정하거나 무시하고서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려 하지 않았다. ‘우파니샤드가 설하는 업, 윤회, 해탈과 같은 사상의 틀을 봇다는 고스란히 이어받고 있다. ‘참다운 바라문이란 무엇인가를 설한 내용만을 놓고 보면 붓다야말로 참다운 바라문교의 포교사였다고 말할 수 있다.”

 

붓다는 29세에 깨달았다. 그러나 진리의 길은 깨달음이란 한번의 사건으로 끝이나는 그런 길이 아니었다. 깨달음 후에도 번뇌는 사라지지 않는다. 경전에 나오는 악마는 붓다의 마음 속 깊이 자리잡은 번뇌를 상징한다. “본래 붓다는 어린 시절부터 혼자서 고요히 안으로 안으로 사색하기 좋아하던 사람이었다. 붓다는 결코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가 아니라 오히려 유연하고 기품있고 연약했다고 전한다. 붓다는 일생동안 내면적인 성찰을 한 사람이엇는데 그런 성품은 어릴때부터 지녀왔던 것 같다.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고 무슨 일이든 적극적으로 나서서 즐기는 그ㄹㄴ 유형과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에게 번뇌는 자연스럽고 깨달음 이전이라면 그런 악마가 나타나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악마는 깨달음 후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깨달음을 이룬 뒤에까지도 악마가 자주 나타났다면 깨달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붓다는 그런 악마를 정화해 가면서 일생을 걸어간 자이다. 진리의 길을 걷는 일은 말하자면 번뇌와 미혹과의 긴장관계에 놓이는 일이라 할 수있다. 일단 개달으면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는 말이 아니다. 붓다란 깨달은 자, 눈을 뜬 자라는 의미이다. 그런 사람을 계속하여 깨달아 가게 하는 것, 계속 붓다이게 하는 것은 바로 청정행의 실천이었다. 훗날 이런 경지를 수행과 증득(깨달음)은 한 몸이라는 의미에서 수증불이라고 불렀다.”

 

붓다가 출가한 이유는 생노병사를 넘어선 불사의 길을 얻기 위해서 엿다고 한다. 그러면 붓다는 그 길을 얻었는가? “깨달음의 순간 붓다의 내부에서 일어난 사건은 생존욕의 중심이 완전히 부수어진 것이다. 자기의 중심을 쳐부순다면 그때까지 고뇌하던 자기는 소멸한다. 자기가 소멸하면 세계는 허구로 이루어졌던 것이므로 괴멸해버린다. 그러면 오직 있는 그대로의 세계만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있다든가 없다라고 분별한 세계가 없기 때문에 자신과 세계는 시원하게 통하게 된다. ‘는 무한한 존재가 된다. ‘내가 있다거만한 마음을 부순다면 거짓으로 세워진 세계도 무너져 다르마의 세계(法界) 한 가운데 홀로 우뚝 존재하게 된다. 그야말로 천상천하유아독존이다. 이러한 나는 다르마의 나이다. 다르마의 세계 즉 있는 그대로의 세계에서는 자기는 한정되지 않은 존재 그 차체이기 때문에 당연히 태어남도 없다.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늙고 죽음도 없다. 유체나 마음을 나의 것이라 생각하여 집착하면 늙음이 실체화되고 죽음이 존재하게 된다. 나가 없어지고 나의 것이라는 생각도 없어지면 내가 없기 때문에 늙거나 죽는 일은 없다. 이것이 붓다가 깨달은 불사의 법칙이다. 훗날에는 이것을 不生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러므로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것을 불사의 길이라 햇다. 언뜻 말로는 그럴듯한데 와닿지는 않는 괘변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붓다가 깨달은 직후 사람들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말하기 주저한 이유이다. 붓다가 깨달은 것은 무아이다. 무아는 말로 보여줄 수 없다. 스스로, 직접, 보아야만 알 수 있다. 그것을 볼 수 있게 개발된 방법이 요가였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은 이미 그것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요가는 우리의 세계관을 왜곡하고 우리의 영적 진보를 가로막는 아집을 체계적으로 벗겨내는 것이다.” 건강체조와 별다를 것이 없는 우리가 아는 요가와 달리 원래의 요가 수행자들은 더 좋은 기분을 얻거나 더 정상적인 삶을 살기 위해 이 길을 갔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정상적인 상태를 없애고 싶어했으며 세속적 자아를 지워버리려 했다. 고타마와 마찬가지로 갠지스 평원의 많은 수도자들 역시 논리적이고 추론적인 방법으로 담마를 명상해서는 해방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가 훈련은 깨달음의 무의식적 장애물들을 부수고 인간의 인격을 형성하는 조건들을 없애기 위해 고안되었다. 이 에덴의 평화, 이 샬롬, 이 닙바나를 머리로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물론 붓다는 요기이기를 포기했다. 그가 요가로 얻은 경지는, “그가 얻은 의식의 고양상태는 닙바나일 수가없었다. 이 황홀경에서 빠져나오면 여전히 정열과 욕망과 갈망에 시달렸기 때문이다여전히 세속적 자아는 거기 잇엇다. “닙바나는 일시적인 것일 수 없었다.” (카렌 암스트롱)

 

붓다는 고행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고행의 자기중심주의에 대한 대담한 공격 뒤에 얻은 것은 튀어나온 갈비뼈와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로 약해진 몸이었다. 그럼에도 인간의 한계로부터 나 자신을 끄집어내는 대신, 스스로 더 큰 괴로움을 만들었을 뿐이었다.” (카렌 암스트롱) “붓다는 이렇게 고행을 실천해도 이 길이 열반을 향한 길이 될 수 없을 깨달았다. 몸은 깨달음의 토대이기 때문에 몸을 괴롭히는 고행으로는 평온한 경지인 열반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고타마에게는 이런 방법들이 모두 소용없었다. 그의 세속적 자아는 변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욕망에 시달렸으며 여전히 의식의 싸움들에 푹 빠져 있었다. 그는 우선 명상의 전 단계로 깨어 있는 마음(사티)’이라 부르는 훈련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매순간 자신의 행동을 면밀하게 살폈다. 그는 의식의 파동과 더불어 감정과 감각의 들고남에 주목햇다. 고타마는 깨어 있는 마음을 훈련하는 과정에서 괴로움과 그것을 일으키는 욕망이 어디에나 있다는 사실을 이전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의식하게 되엇다. 그의 의식에 몰려드는 그 모든 사고와 갈망은 아주 짧은 시간만 지속되었다. 모든 것이 일시적이었다(아닉카), 갈망이 아무리 강해도 그것은 곧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 어떤 것도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사람의 이런 덧없음이 괴로움(둑카)의 주된 원인의 하나였다우리는 늘 욕망의 대상을 쫓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결국 그것 때문에 불행질 것임을 알고 잇다.” (카렌 암스트롱) “어떤 사람도 괴로움과 무관할 수는 없다. 즉 괴로움이란 본래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한결같이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인간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붓다는 그 힘이 이성이나 지성과 같은 것이 아니라 마음의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는 거무칙칙한 욕망이라 보았다.마치 오염된 강가에 쌓인 폐수 찌꺼기와도 같이 얼마나 심하게 오염되었고 끈적이며 서로 엉켜있는지 붓다는 이것을 욕망의 더러운 늪이라 표현했다. 붓다는 이것을 無明이라 불렀다. 무명은 내면의 깊은 사유와 선정에 의해서 파악된 인간존재의 근본을 표현한 말이다.” “이런 마음 상태들은 서툴다’.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카렌 암스트롱)

 

고타마는 일반적인 추론적 방법으로 이런 진리들을 사유한 것이 아니다. 그는 요가의 기술을 통해 그런 진리들에 접근했으며 그 결과 이 진리들은 일반적인 추론을 통해 얻은 어떤 결론보다 더 생생하고 직접적이었다. 훗날 고타마는 자신이 창안한 새로운 요가 방법을 통해 완전히 다른 종류의 인간, 즉 갈망이나 욕심이나 아집에 지배되지 않는 새로운 인간이 태어난다고 주장했다…. 고타마가 보디나무 아래에서 닙바나를 성취했던 순간, ‘나는 해방되었다!’가 아니라 그것이 해방되었다!’고 외쳣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카렌 암스트롱)

 

명상은 깨달음에 불가결했다. 수행자가 자기 자신 속으로 깊이 가라앉아 자신의 마음과 몸을 붓다의 요가적 현미경 밑에 갖다놓지 않으면 담마를 현실로 만들거나 직접이해할 수 없었다. 수행ㅈ는 명상을 통해 담마를 실현할 수 잇었다. 빅쿠들은 요가를 통하여 그 교리가 표현하려 했던 진리들과 일체가 될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새로운 인간은 무아의 인간이다. 그러나 무아라고 해서 자기 존재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윤리적 행위의 주체로서 나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고 있다.” 유가의 말로 하자면 붓다가 말하는 진리의 길은 爲己之學, 나를 위하는 길이다.

 

“’어리석고 지혜가 없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원수처럼 행동한다.’ (상윳타 니카야)

 

크든 작든 간에 다른 이의 이익을 위한답시고

자기의 참다운 이익을 소홀히 하지 마라.

자기의 참다운 이익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으면

최선의 노력으로 그것을 성취하라.’ (담마파다 166)

 

자기에게나 남에게 이롭지 않은

악한 일은 하기 쉽다

자기도 위하고 남도 위하는 착한 일은 실로 하기 어렵다’ (담마파다 163)

 

자기를 보호하는 사람은 다른 자기까지도 보호한다. 그런 까닭에 자기를 보호하라. 그러면 그는 언제나 손해를 입지 않을 것이요 그가 바로 현자이다.’ (앙굿타라 니카야)

 

자기에 대한 이런 설법만을 듣고 있자면 이런 가르침이 도저히 무아를 설한 사람의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실은 이것이 무아설의 진정한 뜻이요 내용이다. 즉 아집의 중심을 부수고 계속 과감히 나아간다면 당연히 그 사람의 정신은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이것은 나다, 저것은 나다라고 생각해왔던 것이 거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리릉ㄹ 알게 된다. 인간은 분별심이 있기 때문에 어찌되었든 거짓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살며 그 세계가 진짜로 존재하는 세계라 착각한다. 배가 고플 때는 돌맹이도 먹을 것으로 보이는 이치이다. 그러다 차츰 사물이 올바르게 보여지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알게 되고 자비심이 깊어진다. 아집이 무어지면 바깥의 사물이나 타인과 소통하게 되고 자연히 세계를 받아들이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기적인 자기를 꺾으면 자기의 독자성이 없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도 잇을 것이다. 그러나 정반대이다. ‘이기라는 이름에는 본래 독자성(identity)의 색깔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적인 습관만이 있을 뿐이다.”

 

무아란 꼭 깨달아야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는 것을 모를 뿐이다. 우리가 가끔씩 습관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예를 들면 당신이 아주 열심히 서류나 책에 집중해서 일을 하고 잇다 하자. 당신은 지금 완전히 삼매에 들어 있다. 들어 있다. 거기에는 일을 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다. 서류도 책도 없다. 오직 일이 있을 뿐이다. 시간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주변 세상도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이런 삼매의 상태, 당신이 일 그자체가 되어버린 상태를 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언제나 무의식 중에라도 내가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내가 있다라고 생각하고 또 이 심신을 있다라고 간주하기 때문에 걸핏하면 죽음을 없다라고 생각하게 된다. 내가 있다는 생각이 잇는 한 죽음에 대한 생각은 소멸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죽음을 극복하기란 불가능해진다. 공의 경지에 머무는 일은 내가 있다는 생각의 소멸을 의미한다. 붓다는 결코 어려운 것을 가르치려하지 않았다. 정작 어려운 것은 계속 힘써 노력하는 일이다

 

붓다는 어디까지나 현세에서 당하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그러므로 윤회의 주체는 무엇일까, 자기의 본성은 유한한가 무한한가 등의 실체를 제시하는 형이상학적 사색에는 깊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붓다의 법을 받아들인다면 윤회전생을 믿을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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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클로 제국의 빛과 그림자 - 찬란한 성공 뒤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
요코다 마스오 지음, 양영철 옮김 / 서울문화사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이미 시장엔 유니클로 책이 넘쳐난다. 그렇다면 그 많은 책더미에 이 책을 한권 더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달리 말해 이책은 지금까지 나온 책들과 다른 점이 있는가? 다른 점이 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이책의 목적은 유니클로를 치우치지 않은 시각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어떤 책은 그렇지 않은가? 물론 일부러 잘못된 정보를 주겠다는 저자는 드물다. 책 한권 쓰는 데 들어가는 노력도 노력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걸고 나오는 책을 엉터리로 내려는 저자는 별로 없다. 그러나 문제는 책을 쓰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경영서는 그 정보를 대상인 회사에서 얻는 것이 가장 빠르고 쉽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이다. 이미 사라진 회사인 경우는 다르지만 어느 회사가 어느 홍보부 직원이 기업의 평판을 깎아내릴 정보를 자발적으로 내놓겠는가? 대부분의 경영서가, 주례사가 되는 이유이고 그다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 않는 방법은 있다. 정보의 소스를 저자 스스로 발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자인 저자가 정보를 얻은 방법이다. 저자는 발로 뛰면서 내부 사정을 알기 위해 유니클로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란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그의 고향까지 쫓아가 그의 성장과정을 추적한다. 그리고 유니클로의 사업방식을 이해하기 위해 중국의 하청공장들도 쫓아다닌다.

 

그렇게 얻은 정보들로 만들어진 그림은 홍보부에서 말하는 것과, 야나이 다다시 회장이 자신의 책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당연히 더 현실감 있고 설득력 있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나 저자는 유니클로를 비판하기 위해 또는 비난하기 위해 이책을 쓴 것은 아니다. 저자는 단지 유니클로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유니클로의 미래는 어떨 것인가를 알기 위해 그런 노력을 들였다. 그는 유니클로를 폄하할 생각이 없다. 물류 전문기자인 저자는 유니클로의 업적을 높이 평가한다.

 

“1960년대 들어 백화점에서는 의류를 중심으로 풍부하고 다채롭게 상품을 진열하는 혁신이 일어났다. 이를 일본 의류업계의 1차 유통혁명이라 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를 거치면서는 다이에, 이토요카도 같은 GMS(종합소매업)로 인해 의류의 가격이 내려갔다. 이것을 제2차 유통혁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1990년대의 주된 흐름은 의류 전문점의 등장이었고 200년대 에는 이른바 SPA(제조소매)의 시대가 도래햇다. 이것이 3차 유통혁명이다. 그리고 유니클로는 제3차 유통혁명인 SPA 시대의 주역이 되었다.”

 

다들 알다시피 의류에서 원가는 얼마되지 않는다. 나머지는 부가가치가 아니라 유통비용이다. 유통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인데 유통과정이 복잡한 것은 이유가 있다. 의류는 상품의 특성상 뭐가 얼마나 팔릴지 예측이 쉽지 않다. 그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이 유통구조를 복잡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탁판매제도란 상품이 적중하거나 빗나갈 우려가 매우 큰 의류업계에서 재고부담을 각 유통단계로 분산하기 위한 제도다. 따라서 여기에 참여하는 회사들의 이익은 줄어들지만 업계전체가 안정적으로 상품을 회전시킬 수 있도록 하기위해 만들어진 구조이다.” 그러나 그 리스크는 결국 높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높은 가격을 패션과 브랜드란 포장을 씌워 가릴 뿐이다.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작은 소매점을 할 때부터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패션 상품이 다른 상품과 달리 부가가치 상품이라 할 수 있을까요? 어떤 필수품도 패션 요소를 뺄 수 없을 텐데 의류만 다른 것에 비해 과도하게 패션을 강조합니다. 저는 여기에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니클로 같은 캐주얼 중에서 1500엔 정도 하는 상품은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는 것처럼 혹은 지하철 가판대에서 주간지를 사는 것처럼 구매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이런 의문을 증명한 것은 1980년대 유니클로 1호점을 냈을 때였다. 당시는 거품경제의 영향으로 고가의 디자이너 브랜드나 캐릭터 브랜드의 전성기였다. 그런 업계에서 그는 역주행을 감행한다. “나는 오히려 10대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의류점을 만들고 싶었다. 그리고 아이들 의류점이지만 유행에도 신경을 쓰고 가격은 저렴한 캐주얼웨어를 셀프서비스로 제공하고 싶었다.” 그의 말처럼 주간지를 사듯 가벼운 마음으로 캐주얼웨어를 구입할 수 있는 매장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품을 1000엔과 1900엔짜리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야나이는 훗날 손님으로 넘쳐나는 매장을 보면서 광맥을 찾아낸 듯한 기분이엇다.’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아는 유니클로의 시작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유니클로는 독창성과는 거리가 먼 브랜드이다. ‘한 전직 유니클로 사원은 이렇게 말한다. ‘유니클로에는 오리지널 콘셉트가 없다. 바꿔 말하면 옷을 만드는 데 근본이 되는 콘셉트, 즉 본질이 없다. 유니클로의 히트 상품인 플리스, 히트테크, 브라 톱만 봐도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어떤 옷을 만들고 싶은 기업인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얘기다. 나는 유니클로에서 일할 당시 항상 일류 짝퉁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유니클로가 있게 된 것은 유니클로 1호점의 성공에서 얻은 야나이의 결론 때문이다. “첫째 캐주얼 의류의 수요는 연령이나 성별과 상관이 없다. 둘째 유행하는 상품보다 기본적인 상품의 수요가 더 많다. 셋째 NB가 아닌 PB라도 고객의 요구를 제대로 포착한 상품은 충분히 수요가 있다. 유니클로의 독창성은 캐주얼 의류의 개념을 바꾼 데 있다. 기존의 캐주얼=, 트렌드,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바꾸었다. 새로운 캐주얼 이미지는 캐주얼 컨비니언스즉 가까운 곳에서 구입할 수 있는 생필품이라는 것이다. 유니클로는 기존의 캐주얼이라는 틀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자신에게 맞도록 새로운 시장을 창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고의 전환은 유니클로가 GAP 이 개척한 SPA 비즈니스 모델을 채택할 수 있게 했다. GAP은 복잡한 유통구조가 효율은 물론 이익도 떨어트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료 조달에서 제조, 소매까지 한 회사가 해결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함으로써 1990년대에 미국 캐주얼 의류시장을 석권했다.” SPA 모델은 당시 일어난 물류혁명 즉 SCM(공급망관리)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1990년대 이전까지 물류는 전체 상품유통 중 제조업체에서 도매, 도매에서 소매라는 부분에만 한정해 생각했었다. 그래서 전체적인 흐름의 개선이 아닌 일정한 부분의 최적화에만 골몰했다. 그러나 SCM은 원재료조달부터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상품유통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를 아우르는 것을 말한다. 요컨테 이것이야말로 기업 간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방법이라 여기는 사고체계로 진화한 것이다. SPA는 유통의 시작부터 끝가지 커다란 하나의 흐름으로 간주하고 이것을 전체적으로 관리해 효율을 높이는 것이다.”

 

유행상품이 아닌 필수품으로 캐주얼을 재정의하면서 품목을 줄일 수 있게 되었고 유행보다 기본 수요에 집중하면서 만든 것을 파는 것이 아니라 팔리는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유통만 아닌라 원료부터 생산까지 통제하면서 품질을 일정하게 할 수 있었고 저렴하게 고품질의 상품을 만들 수 있게 되었으며 상품을 100% 판매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재고를 감당할 수 있다. 즉 재고관리가 용이하다. 자사에서 개발해 판매하는 상품이 잘 안 팔릴 경우에는 다 팔릴 때까지 가격을 내릴 수도 잇다. 또 다른 장점은 유통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한 회사가 총괄함으로써 히트상품관련 정보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낭비를 없애 저가로 고품질을 구현하는 SPA 모델은 버블 붕괴 후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시점과 맞물려 시장을 유니클로를 위한 것으로 바꾸어놓앗고 소비자를 바꾸어놓았다. “소비자들은 이제까지 정적가격이라 생각해온 의류가 불필요한 유통과정 때문에 가격에 거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얼마전까지는 젊은 사람들도 경쟁하듯 고급 브랜드를 원했다. 그러나 지금은 패션에 돈을 들인다고 멋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유니클로는 의류업계에 만연했던 겉치레의 허울을 벗겨냈다. 이것이야만로 유니클로가 SPA를 확립함으로써 가져온 가장 큰 변화이다.  

 

그러나 유니클로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유니클로가 야나이 상점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유니클로가 따라했던 GAP의 몰락원인도 마찬가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GAP의 약진을 이끈 주역은 1980년대 전반 GAP 사장이 되고 그 후 CEO를 겸한 미키 드렉슬러였다. 드렉슬러는 고객의 추향을 읽어내고 유행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하다고 할 정도의 능력을 갖고 있었다. 이런 그의 능력은 GAP 급성자으이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GAP의 성장은 2000년부터 오랫동안 하락세를 면치 못햇다.” 그 이유는 이렇다. “GAP처럼 생산을 해외 공장에 맡기면 어쩔 수 없이 리드 타임이 길어지기 때문에 판매 시점보다 수개월이나 앞서 고객의 취향을 예측해야 하는 위험을 항상 안을 수 밖에 없다. 소매업체, 특히 패션 관련 소매업체 사이에는 ‘(불량)재고=죽음이라는 표현이 있다. 불량 재고가 많이 쌓이면 어쩔 수 없이 할인 판매를 하게 되고 따라서 이익률 또한 낮아진다. GAP의 경우 몇 년동안 매장이 떠안고 있는 불량재고를 판매해왔다.” 불량재고가 늘어난 더 결정적 이유는 “200년대 들어 드랙슬러의 예측이 빗나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결국 리드타임이 수개월이 아니라 2주 정도로 짧은 ZARA에게 패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저자는 원 맨 경영이 GAP의 몰락을 불렀듯이 언제든 유니클로 역시 무너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행히 발열 내의나 브라 톱 같은 대히트 상품 덕분에 아직 GAP의 전철을 밟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계속해서 적은 종류의 상품만을 가지고 어림짐작한 수치로 발주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고집하는 한 언젠가 야나이 회장의 센스가 시장에서 통하지 않는 날이 오면 제2 GAP이 될 수 있다.”

 

이상이 이책의 내용이 흘러가는 방향이다. 그러나 이책의 내용은 그보다는 야나이 회장의 원맨경영이 왜 나타나게 되었는지, 실제 회사에서 어떻게 문제를 일으키고 잇는지, 야나이 회장 한사람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구조가 되면서 회사의 문화가 어떻게 경직되었는지 등에 더 많은 지면이 할애된다. 그리고 저비용구조를 위해 직원들이 어떻게 소모되는지 등을 다루는데도 상당 지면이 할애된다. 실제 읽는 재미는 그 부분들이 더 크다. 그러나 전체적인 논리 흐름을 요약하기 위해 그런 내용들은 생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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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칼 - 100년의 잔혹시대를 끝낸 도쿠가와 이에야스
야마모토 시치헤이 지음, 박선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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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대해 저자가 내리는 판결은 간단하다: 재미없는 바른 생활 사나이.

 

사후 장례식이 치러지는 과정을 보면 육친이나 측근 외에 과연 그의 죽음을 애통하게 여긴 사람이 있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그는 정말 대중적인 인기가 없는 인물이엇다. 히데요시처럼 죽은 뒤에도 다이묘는 물론 서민들에게도 인기가 지속되는 현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상은 이에야스라는 인간을 고찰할 때 정말 흥미로운 문제다. 사람들은 분명히 그를 신뢰했다. 이에야스는 노부나가나 히데요시처럼 이치에 어긋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그는 분명 신뢰받는 지도자였다. 그러나 그 신뢰는 컴퓨터에 대한 신뢰와 마찬가지였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는 로봇 같이 완벽한사람으로 보였던 것같다. 예를 들어 히데요시의 헤픈 눈물을 보아 온 사람들은 인간같지 않은 이에야스의 눈물을 볼 수가 없었다.

 

죽음의 병상에 누웠을 때 아들 다테마루의 어머니가 그 죄를 용서해달고 애원하자이에야스는 눈물을 비췄을뿐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아들을 만나겠다고 하지 않았다. “정말 눈물을 닦을 정도로 울었던 적은 있었을까? 아마도 노신인 도리이 모토타다와 헤어질 때뿐이었으리라. 이에야스는 정말 냉혈인간으로 느껴지는 면이 있다. 따라서 사사로이 정에 빠지는일이 없었다. 그의 냉철함이 무엇보다 확실히 드러나는 부분은 여성과의 관계다. 이에야스가 사랑했다고 할만한 여인은 없었다. 여자 때문에 정치를 그르치는 일은 없었지만 남성으로서는 참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그렇다고 이에야스가 아스퍼거 증후군이냐면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의 정을 느끼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자식에게 실망하고 기뻐하고 슬퍼하는 아버지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도 사람이니 때때로 감정이 격해지기도 했분노를 폭발시키는 일도 있어서 사실은 다혈질이 아니었을까생각되지만 강한 의지력으로 자신을 통제했다.권력을 쥔 이후에도 누부나가나 히데요시처럼 감정적이거나 잔혹한 행동은 하지 않앗다. 권력을 쥐면 3년만에 멍청이가 된다고 하고 또 많은 권력자들은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이지만 이에야스는 결코 냉정을 잃는 일이 없었다.”

 

그는 더불어 즐길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무엇에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폭음, 폭식은 물론 여자에게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금욕주의자도 아니니 한마디로 절제가라 할 수 있다. ‘술 때문에란 변명은 그에게 통하지 않았다. 식사도 마찬가지로 지나치지 않게 먹는 것을 최상으로 여겼고 과식은 의지가 약하기 때문으로 보앗다. 만사는 적당한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절연은 금연보다 어렵다고 하듯이 만사를 적당하게 절제하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에야스는 평범하지만 어려운 이 적당히를 평생 지속했다.

 

아무리 봐도 사람같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신뢰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에야스가 스스로를 그렇게 몰아세운 것은 그의 모토가 주의와 경계였기 때문이다. 그런 이에야스를 새가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말로 표현하며 이에야스는 어린 시절 인질 생활로 고난을 겪었고 그 경험이 훗날 그의 성격이나 삶에 큰 영향을 끼졌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묻는다.

 

실제 이에야스의 일생은 당시 다이묘의 삶으로서는 순탄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우선 인질이라는 것도 당시의 인질은 현대의 인질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생명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대해야 하는 동맹관계의 보증인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인질을 증인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그 시대의 일반적인 정황에서는 인질이 되어 편안한 생활을 했다고 표현할 수는 있어도 적어도 고생을 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이에야스를 인질로 받은 요시모토는 인질보다는 피후견인으로 돌봐주었고 이에야스는 유년 시절동안 미카와를 보존하고 동시에 자신을 보호해주고 양육해준 요시모토에게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고 인질로 있던 시절의 이에야스는 후대가 상상하는 만큼 불행하지 않았다.”

 

주의와 경계의 진짜 이유는 하극상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에야스의 조부와 아버지는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당시에 그런 일은 흔했다. 그런 세상에서 믿을 것은 실력뿐이었고 그것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실력 즉 무력이었다.

 

이에야스가 유년기를 보낸 이마가와 가문은 센코쿠 시대에는 별천지였다. “전통적인 형식과 질서가 남아 있었다. 그곳에는 백성들이 귀인으로 받드는 명문가의 슈고가 있었고 교토 조정의 귀족인 구게(公家)와 혼인관계를 맺어 활발하게 교토 문화를 수입해으며 많은 구게들도 직접 이 지역으로 이주한 결과 이마가와 가문 자체가 상당히 귀족화되었다. 노부나가가 무시한 오가사와라류의 제례집이 이곳에서는 모든 질서의 기본이었고 귀족들이 즐겨 읊던 고전 시가인 와카나 상류층의 공놀이인 게마리(蹴鞠)도 유행했다. 귀족적인 문화에 휩쓸려 기개를 잃은 모습도 보였지만 동시에 하극상과 같은 살벌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이에야스에게선 그 귀족문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그는 이마가와 가문을 반면교사로 생각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미카와의 영주라는 자각때문이었을 것이다. “지방의 소영주가 통치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능력은 무력이었다. 개인적인 무술과 무공이 없다면 백성들을 다스릴 수도 지배권을 확립할 수도 없었다. 센고쿠 시대에는 당연히 개인적인 무공보다 전투 지휘 능려과 뛰어난 용병술이 높이 평가되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부하를 자유자재로 움직이려면 지휘관 자신의 개인적인 무력도 필요했다.” 지방의 소영주에 불과했던 이에야스의 출발점은 소부대의 최전선 지휘관이었다.”

 

개인적으로 뛰어난 무인이기도 했고 지휘관이기도 했던 이에야스는 스스로 훈련을 통해 무공을 닦았으며 무술훈련은 일종의 취미와 같았다.” 그러나 이마가와 가문에서 교육을 받았으면서도 한시나 와카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렌가나 다도에도 취미가 없었으며 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한 마디로 이런 교양 계통에는 모두 서툴렀다.” 물론 이에야스가 학문을 즐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에게 학문이란 당시 통용되던 한시에 능하고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학문은 정치학이고 군사학이었다.

 

영주로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휘하 토호들의 영지를 보장해주는 것(소령 안도)이었고 센코쿠 시대에 그 능력은 무력이었다. “따라서 센고쿠 시대의 장수에게 무력은 절대적이었다. 물론 무력과 동시에 모략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에야스의 생애를 살펴보면 모토나리처럼 하나의 모략에 이어 또 다른 모략을 세우거나 하지는 않았다. 늘 정정당당하게 대진해서 결전을 벌였다. 그는 그런 전투를 통해 승리를 얻지 못한다면 심복도 얻을 수 없다고 믿었고 그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아케치 미쓰히데가 잘못 생각한 점이다.그는 혼노 사에서 노부나가를 쓰러뜨렸지만 아무도 그 휘하로 달려오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를 쓰러뜨리면 주도권을 쥘 수 있으므로 오히려 모두가 노리는 먹잇감이 되었다. 미쓰히데가 노부나가를 쓰러뜨린 것은 대규모 암살사건이었지 정정당당한 전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승리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에야스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이에야스는 너구리 영감이라 통용된다. 이런 이미지는 히데요시가 죽은 후나 오사카 성 함락 후에 생긴 듯하다. 그전까지 이에야스는 의리의 사나이로 통했으며 센코구 무장치고는 분명히 의리파였다. 마음만 먹으면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지만 그는 히데요시나 히데요리 모두 암살하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는 명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부나가가 쇼군을 얼마든지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정치적으로만 대결한 것과 같은 이유엿다.

 

노부나가의 천하포무는 히데요시에게도 이에야스에게도 적용된다. 말하자면 무력으로 천하를 통일하고 무력의 위압으로 정권 질서를 수립하는 일은 당시로서는 상식 이전에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단지 무력으로 제압하려면 암살과 같은 잔꾀는 소용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정정당당히 전투에서 승리하는 과시적 이벤트 효과가 필요했다. 이에야스가 천하라는 것은 스스로가 지닌 운명이 있어 인력이 미치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단순한 운명론자라는 뜻은 아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전자으이 승패 또한 운명에 따른 ㄴ것, 따라서 천하를 손에 넣으냐 마느냐 또한 운명이라는 의미엿으리라.”

 

그런 이에야스였기에 상대방이 자신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깨끗하게 복종햇고 일단 따르기로 햇다면 그에 맞게 상대방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그는 이마가와에 복종했으며 오다와의 동맹에서도 그의 지위는 좀더 특별대우를 받는 오다 가문의 무장에 지나지 않았다. 고마키-나가쿠테의 경우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종합적인 전력에서는 자신이 히데요시에게 뒤처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엇다. 히데요시와 이에야스는 대등하게 강화를 맺었지만 이에야스의 위치는 또다시 도요토미 정권 속에서 조금 특볋란 대우를 받는 일개 부장, 히데요시의 명에 복종하는 일개 제후였다. 그런 삶을 당연하게 받아들인 그로선 자기보다 약하면서도 자신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 자는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일종의 증오심마저 느꼈던 듯하다. 요도기미와 히데요리가 그 대표적인 예다. 이에야스는 상대가 자신보다 강력하다고 판단하는 한 동요하지 않았다. 이에야스가 문제삼는 것은 오로지 무력뿐이엇다.”

 

그러나 그가 그런 신념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생애 대부분을 그다지 권모술수가 필요하지 않은 위치에 있었기때문이며 그의 적성이기도 했다고 저자는 본다. “그의 전투는 늘 평범하고 재미없는 정공법이었다. 그 때문인지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것은 세키가하라 전투와 오사카 전투 그리고 또 하나가 미카타가하라의 패전 정도다. 게다가 이런 전투에서 세운 무공의 대부분은 오다 노부나가의 그늘에 가려져 눈에 띄지 않았다.”

 

센고쿠 영주로서 이에야스는 특별하게 순탄했다. 그것은 그의 운이기도 했지만 주의와 경계란 그의 태도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센고쿠 시대라 하면 흔히 무법천지를 떠올린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 사건들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신겐은 아버지 노부토라를 추방했고 아들 요시노부를 죽였다.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잔혹하기 그지 없는 일이었지만 당시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다. 노부나가도 모토나리도 자신의 동생을 죽였고 히데요시도 조카를 죽였다. 이에야스도 자신의 자식인 노부야스와 아내, 손녀 사위인 히데요리까지 죽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권력층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사건이었고 일반인들까지 같은 상황이었던 것은 아니다. 백성들이 이런 짓을 했을 때는 처벌을 피할 수 없었다당연한 일이다. 민중들까지 무법천지에 빠진다면 가장 곤란한 것은 센고쿠다이묘 자신들이기 때문이다. 영내의 투쟁과 혼란은 호시탐탐 국경을 넘보는 이웃 지역에게 틈만 보일 뿐이다. 지배자들은 무력으로 대내외적으로 투쟁하면서도 영내에서는 가능한한 평온한 법치체제를 유지하려고 애썼다.” 이에야스가 인질 생활을 한 이마가와 가문이 좋은 예이다. “이마가와 가문도 당대에는 혁신적인 통치자였다.” 이에야스가 천하를 통일한 후 보여준 법치주의의 신념은 이마가와 가문에서 유년기를 보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것이 이마가와 가문의 인질로 있던 시절의 이에야스에게 미친 가장 큰 영향인지도 모른다.”

 

법치주의는 단지 이마가와 가문만의 것은 아니었다. 법치주의는 영지경영의 한 방법일 뿐이었다. 영지가 안정되어야 경제력이 생기고 무력을 유지하는 것은 경제력이다. 따라서 생산력 증강은 당시 센고쿠 무장들의 지상과제였으며 유능한 다이묘들은 모두 영내 개발에 힘을 쏟았다. 이런 점에서 센고쿠 시대는 경제성장과 기술개발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제는 영내의 치안 유지엿고 이것이 방위의 기본이었다.”

 

만일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명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다면 이에야스는 미적 감각이 가장 떨어지고 번득이는 재능도 재치도 느낄 수 없는 인물일 것이다. 노부나가도 히데요시도 이에야스를 건실하고 의리 바르며 충실한 2인자로 취급했다. 만일 이에야스가 히데요시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역사가들은 히데요시가 만년에 가장 실력있는 신하를 잃어 큰타격을 입었다고 기록했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당시 사람들에게 다양한 측면에서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이런 재능을 싹틔우고 자라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가?

 

우선 이에야스는 가이도 제일의 활잡이로 전투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뛰어난 지휘자였다. 이에야스가 자신의 무용을 자랑하지는 않았지만 남들이 스스로 이에야스의 무공과 지휘 능력에 고개를 숙였다. 다음은 통치력과 부하들을 이끄는 통솔력이다. 이는 속전속결로 이루어진 간토 영지 이동과 또 새로운 봉지에서 일사천리로 진행된 지배권 확립과정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세번째가 그의 재정능력이다. 노부나가와 히데요시, 이에야스 세사람 중에서 이에야스는 화려한 것을 싫어했으며 가장 검소했다. 구두쇠나 다름없었지만 세사람 중에서 재정능력이 가장 뛰어난 자는 이에야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능력을 키운 바탕이 바로 그의 학문이었다.”

 

그리고 이에야스의 능력에는 정략도 포함된다. 무장으로서 이에야스는 정공법을 선호했다. 그것은 모략으로 이기는 것은 이긴 것이 아니라는 그의 판단이기도 했고 그의 위치가 그리 모략을 필요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당대 센고쿠다이묘들처럼 모략을 쓸 줄 몰랐던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뿐이다. 그러나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그가 전쟁을 수단으로 선택할 수 있는 정치가가 되었을 때 그에겐 다른 능력이 있어야 했다. 무장의 전쟁과 정치가의 전쟁은 다르며 이에야스가 무장으로서 싸웠던 전투와 그가 정치가로서 싸웠던 전투는 다르다. 이에야스 정권의 미래가 걸려있었던 세키가하라가 “‘작전의 전투가 아니라 정략의 전투’”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눈앞에서 승부가 결정되는 전투와 정치는 다르다. 정치는 정책이란 결과를 낳는 일이지만 정책이란 결과를 얻기 위해선 권력을 얻고 유지해야 한다. 권력을 얻고 유지하는 일은 소모적인 일이다. 그러나 그런 소모적인 일을 하지 않으면 정책을 실현할 수 없다. 그 소모적인 일을 정략이라 한다.

 

모스카가 말하듯 권력을 지향하지 않으면 권력을 얻거나 행사할 수 없다. 그러므로 권력욕이 없는 자는 통치력이 없다는. 권력욕이 없는 자를 통치자로 삼고 싶다. 민중의 꿈은 말 그대로 꿈이다.” 그리고 (다른 리뷰에서 다루었듯이) 그것이 유교의 성왕론이 허구일 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모스카는 능력있는 정치가란 정책적 능력과 정략적 능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라 했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그런 인간은 극히 드물며 만일 그런 정치가를 가진 국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이라 햇다. 그의 기준으로 보면 이에야스는 정책능력과 정략능력을 함께 갖춘 희귀한 정치가였다. 이에야스가 정략가로서 유능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점만 지나치게 부각해서 그를 너구리 영감으로 평가한다면 정책가로서 그가 보여준 탁월한 재능을 간과할 수 있다. 그저 모략만 뛰어난 너구리 영감이 267년이나 이어지는 도쿠가와 막부의 평화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겠는가. 이에야스는 아시카가 말기부터 오다와 도요토미 시대를 거치면서 천하의 백성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잘 알고 있었다. 또 그 바람으로 정책적으로 실현하는 수단과 능력을 지녔다. 사람들의 바람은 한 마디로 전쟁은 이제 지긋지긋하다. 평화로운 법치체제 아래서 생존할 권리를 보장해달라였다. 그리고 이에야스가 실현한 사회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현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고 법치제도 아래에서 사적인 권력 생사를 제한하며 보수적인 질서가 형성된 사회였다.”

 

물론 천하의 바람을 실현하는 것은 그 자신과 가문을 위한 것이기도 했다. “야스토키나 이에야스나 모두 근본을 따지자면 모두 현지에서 세력을 키운 관리이거나 혹은 지방의 호족 출신으로 하극상을 통해 천하를 손에 넣은 자들이다. 이 하극상의 권력자가 무엇보다 두려워하는 것은 후계자가 나타나 자신이 그랫듯이 하극상을 일으켜 자신을 쓰러트리는 일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대에서 하극상ㅇ르 끝내고 이후로는 자신의 통치 아래 질서있고 영속적인 법치사회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노부나가의 노선을 따를 수 없었다.

 

노부나가는 天下爲公이란 비전을 위해 살았던 이상주의자였다. 자신의 가문을 위해서도 아니엇고 자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그린 이상에 따라 세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살았다. 그가 그렸던 천하에는 온세상을 불태우는 다이묘들의 자리는 없었다. 그렇기에 얼마든지 쇼군이 될 수 있었으면서 쇼군이 되지 않았다. “’’시바 료타료는 노부나가가 봉건제를 배제하고 중앙집권제를 수립했을 것이라 예측했다. 사실 그런 시각에서 노부나가의 행동을 살피면 히데요시와의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노부나가는 다이묘 절멸 작전을 시행해 센코구다이묘들의 가문을 잇달아 멸망시켰다. 확실이 전쟁으로 획득한 영토는 일단 부하에게 하사하지만 대대로 소유권을 보장하지 않으며 상속권도 인정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명령을 내려 빼앗고 다른 영지를 준다. 그 지위를 유지한다면 다이묘지만 파면된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히데요시는 내심 이런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왜냐하면 다이묘들이 항거한다면 스스로가 곤란한 입장에 처하기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반대정책을 폈다. ‘본령 안도를 미끼로 상대방의 전의를 꺽고 항복시켰으며 그 대가로 자신의 부하로 이용했다. 히데요시의 방식은 학실히 능률적이며 센고쿠의 통합이라는 점에서보면 가장 희생도 적고 손쉽다.”

 

이에야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에야스는 당시 다이묘, 특히 히데요시의 은혜를 입은 장수들로 불리는 신흥 중소제후의 심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한마디로 히데요시 님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출세를 하고 얻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었다. 동시에 오랜 전란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이제는 오로지 손에 넣은 것을 보존하고 유지하면서 누군가가 일가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만을 바랐다.” 히데요시 사후 2인자인 이에야스에게 자연스럽게 힘이 모아진 이유이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히데요시 시스템의 문제를 잘 알고 있었고 언제 자신의 위치가 뒤집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사람을 끄는 강한 매력이 있었던 히데요시와 달리 이에야스는 인기가 없었다. “이에야스의 명성은 천하를 제압했지만 사람들은 어디까지나 그가 두려워 굴복했을 ㅃ누 좋아서 따른 것은 아니었다. 이에야스는 특히 인간미나 유머 감각, 장난기, 그리고 상대에 대한 서비스 정신이 부족햇다. 히데요시라면 현대 서비스 업계에서도 최고경영자로 당당히 성공했을 인물이지만 이에야스라면 불가능햇을 것이다. 이에야스는 평생 놀이도 모르고 장난기도 없었다. 반면 히데요시는 늘 유머러스하고 흥겨웠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항상 빈틈없고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인기가 없는게 당연하지만 그 자신도 인기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는 얄미울 정도로 자율적인 인간이었다. 이에야스는 사람들이 신뢰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경우너시하게 되는 타입이었다. 도요토미 가문은 대체적으로 관대했지만 이에야스가 천하를 손에 넣으면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시대가 올거라고 사람들도 예감했다. 물론 센고쿠의 혼란이야 지긋지긋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속에서 맛보았던 자유는 읽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센고쿠다이묘들이 원한 것은 신중하고 온화하고 관용적인지도자, 즉 전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면서도 자신들을 일일이 간섭도 않고 소령 몰수도 않는 지도자 고도의 자치권과 자주성을 인정해주고 자신들이 영지 내에서 왕처럼 ㅅ행세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지도자엿다ㅣ. 배부른 소리다.”

 

센고쿠 시대의 자유는 피가 없이는 불가능한 자유였다. “누구나 원한다면 싸워서 이긴다면 그리고 적을 죽여 없앤다면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시대엿으며 어느 사회나 존재하는 계급의 차이가 완전히 무시된 시대였다. 그점 만을 평가한다면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시대였다.”

 

비천한 농민에서 지존까지 올라선 히데요시는 이 혁명의 시대의 총아였다. 히데요시 정권은 센고쿠 시대란 하극상 사회의 결정체였다. 그러나 그 혁명은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조건인 자유를 지워버려야만 가능하다. 히데요시의 기적은 사람들에게 자유와 혁명이 공존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런 환상을 줄 수 없는 이에야스는 항상 비교당해야만 했다. 특별하게 이에야스를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많은 다이묘들이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반대쪽에 섰고 서고 나서도 미지근하게 싸운 것은 그런 이유였다. 그러니 이에야스가 자신의 체제가 오래 갈 것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붉은 여왕의 체스판서 달리는 것처럼 제자리에 머물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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