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내추럴 - 고대의 현자를 찾아서
그레이엄 핸콕 지음, 박중서 옮김 / 까치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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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라스코 지하 동굴에서 안내원이 손전등을 껐을 때의 효과는 엄청나다. 한 방문객은 이렇게 회상했다. ‘갑자기 모든 감각이 멈추고 수천년의 시간이 무너져 내린다. 그보다 더 짙은 어둠은 겪어보지 못햇다. 그건 뭐랄까, 완전히 넋이 나가는 경험이었다. 동서남북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방향감각은 모두 사라지고 태양이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어둠 속에 서 있게 된다.’ 대낮처럼 밝은 의식이 꺼지고 나면 떠나온 지상세계의 모든 금심과 요구들포부터 아득히 멀어지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17000년전 구석기시대 조상들이 꾸며놓은 이 동굴 중 첫번째 동굴에 이르기까지 방문객들은 지하 20미터에 위치한 창자처럼 구불구불한 경사진 굴속을 24미터쯤 더듬더듬 내려가야 한다. 그때 안내원이 갑자기 손전등을 천장에 비추면 거기 그려진 동물들이 마치 바위 속에서 불쑥 나타난 것처럼 드러난다. 움직이는 동시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들소, , 사슴, 황소 때들의 행렬 뒤로 불룩한 배와 길고 날카로운 뿔을 가진 낯선 맹수 한 마리가 거닐고 있다.” (카렌 암스트롱)

 

유럽의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가 처음 발견된 것은 19세기 말이었다. 그때서야 발견된 이유는 그 동굴들이 접근이 힘든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페슈메를 내부의 통로와 회랑은 비교적 드나들기 쉽고 안전하게 재정비되었지만 고대인들은 낭떠러지를 오르고 좁은 통로를 기어가는 등의 위험을 감수하며 이곳까지 들어왔을 것이다. 이곳에 한번 들어왔다 나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용기와 의지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으리라.”

 

동굴은 분명 그만한 어려움을 겪을 가치가 있는 곳들이다. “페슈메를은 자연이 이루어낸 최초이자 최고의 경이 가운데 하나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곳의 광경을 접한 사람들은 누구나 신비로운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계속해서 걷다 보니 몽환적인 기분이 들었다. 마치 어떤 다른 우주, 난쟁이와 요정이 사는 딴 세상으로 내려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왜 거기다, 그 힘든 곳에다 그림을 그렸는지는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다. 이 책은 그 수수께끼에 관한 책이다.

 

후기 구석기 시대의 동굴벽화가 처음 발견된 것은 1879년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서였다. 그러나 그 벽화는 학계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조작되었다는 혐의만 씌워졌다. “아마추어였던 사우투올라의 발견은 당시의 고고학계와 마찰을 빚었고 결국 그의 일생을 망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알타미라의 가치에 대해서 제법 정확한 가설을 세웠음에도 사우투올라에게는 세가지 약점이 있었다. 첫째는 그가 (고고학계의 주류인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인이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알타미라 동굴이 (프랑스가 아닌) 스페인에 있었다는 것이고 셋째는 그가 (교수가 아닌) 아마추어 고고학자였다는 것이었다.”

 

주류였던 프랑스 고고학계는 어떤 증거를 내놓아도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과학적인 방법론에 기초해 학계가 인정할 만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이야말로 선사시대 동굴벽화에 관한 최초의 저술이며 오늘날로 따지면 노밸상 감이라 할 업적이었지만 가뜩이나 매몰찬 학계의 증오만을 더더욱 불러일으켰을 뿐이었다.” 프랑스에서 발견된 것이었다면, 프랑스인이었다면 교수였다면 인정받을 일이엇지만 학계는 외부자의 것은 인정하지 않았고 그를 사기꾼으로 몰았다. 결국 사우투올라는 홧병으로 죽는다.

 

그후 유럽 곳곳에서 동굴벽화가 발견되면서 결국 프랑스 학자들도 알타미라를 진짜로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후 한 세기 가까이 그들은 도대체 그 벽화가 무슨 의미인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설명할 수 없었다. 프랑스 학자들은 몇가지 이론을 내놓기는 했다. 그 벽화가 토템을 그린 것이란 이론이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벽화에 그려진 동물들이 다양하다는 사실을 무시해야만 성립되는 이론으로 일고의 가치도 없었다. 그러나 선사학의 교황(학맥의 중심에서 교수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잇던)이 내놓은 것이란 이유만으로 수십년동안 통용된다. 그가 죽은 후 결국 이론은 페기되고 애니미즘적인 사냥주술을 위한 그림이었다는 이론이 나오지만 당시 그들이 사냥한 동물과 그려진 동물은 달랐다. 역시 폐쇄적인 학파의 리더가 제시한 이론이란 이유만으로 도전받지 않다 그가 죽자 폐기되었다. 그후에도 몇가지 이론이 제시되었지만 모두 반박되었고 고고학계는 벽화를 해석하려는 시도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냥 벽화를 분류하고 숫자를 부여하는 의미없는 작업만 계속했다. 그러나 여전히 의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떤 장면을 기록할 때마다 기록자는 먼저 그것을 해석해야 했다. 가령 어떤 것을 춤추는 장면으로 분류하면 곧이어 그것이 상상적인 것인지 제의적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결국 이는 기록자가 어떤 그림을 쓱 쳐다보기만 해도 그것이 무엇을 묘사한 장면인지 알 수 있다는 식의 전제를 깔고 잇는 셈이다. 결국 통계에서 해석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해석으로 통계를 만드는 셈이었다.’ 남아프리카의 험한 산과 들을 헤매던 루이스-윌리엄스는 결국 이런 식의 연구가 그야말로 엄청난 시간과 정력의 낭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분노했다. 그는 결국 자신이 연구한 산족의 암벽화와 유럽의 후기 구석기시대 동굴벽화를 비교하면서 느끼게 된 흥미에다 기존의 무의미한 연구방법에 대한 분노와 좌절로 이제껏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었다.”

 

산족은 부시맨으로 알려진 !쿵족의 친척이다. !쿵과 달리 산족은 19세기말 유럽인들에게 의해 마지막 한 사람까지 사냥당하기 전까지 수만년동안 암벽화를 그려왔다. 그들이 그린 암벽화는 유럽의 후기 구석기 동굴벽화와 매우 유사하다. 루이스-윌리엄스는 산족이 암벽화를 무슨 의미로 그렸는가를 알면 유럽의 동굴벽화도 의미를 알 수 있다는데 착안한다. 그 단서는 19세기에 작성된 민족지였다. “산족문화에 관한 19세기의 기록은 노트로 100여권, 12000여 페이지에 달했다.”

 

민족지의 기록은 암벽화가 샤먼의 그림이라는 것이다. “이들 자료에 따르면 기-(산족의 샤면)이 그린 방대한 암벽화는 산족이 믿는 특정한 초자연적 영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을 묘사한 것이었다. 산고 사회에서 기-텐은 영의 세계와의 접촉을 담당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이들이 지닌 초자연적 능력()이란 유체이탈을 통해 영의 세계에 다녀오는 것을 말했다. 현대의 인류학자들은 대부분의 고대 종교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이와 비슷한 내용을 샤머니즘적이라는 말로 통칭한다. 어떠한 문화에서건 샤먼은 변성의식상태를 초래하고 제어하는 능력을 지닌 것으로 여겨진다.”

 

변성의식상태란 흔히 트랜스라 불리는 의식상태이다. 산족은 길고 격렬한 춤을 통해 트랜스로 들어갔지만 아마존의 샤면은 아야후아스카란 식물의 DMT 성분을 이용해 트랜스 상태로 들어간다.

 

샤머니즘 자체는 단순히 어떤 신앙체계나 의도적인 연구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트랜스에 돌입하기 위한 기술인 동시에 그로 인한 체험을 통해 어떤 사건을 해석하고 행동의 지침을 얻는 기술이다. 샤머니즘에 따르면 다른 세계, 다시 말해 저승은 우리의 물질세계 너머에, 배후에, 위에, 아래에 즉 어디에나 존재하며 그곳에는 비록 보이지도 않고 형체도 없지만 우리에게 해를 끼치거나 덕을 베풀 수는 있는 초자연적인 존재가 산다. 대부분의 사름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물질세계에만 머물기 때문에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임무는 오로지 샤먼에게만 주어진다.”

 

루이스-윌리엄스는 유럽에서는 12000년전까지, 남아프리카에서는 100년까지 그려졌던 벽화들이 모두 샤먼이 트랜스 상태에서 본 것을 그린 것이라 말한다. “아프리카의 산족이 남긴 암벽화와 유럽의 후기 구석기시대 암벽화가 다르리라는 것은 사실 누구나 예상할 수있다. 오히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 두 가지가 서로 무척 닮았다는 점이며 바로 이 점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유럽의 벽화와 산족의 암벽화에 공통으로 나오는 주제는 여러가지이다. 가령 지그재그, 나선형, 물결문양, 격자문양. 체크문양, 거미줄, “사다리 문양을 비롯해서 스페인의 알타미라와 엘 카스티요에서 발견되었던 문양 중 상당수가 역시 남아프리카에서도 발견되며그 추상적인 문양들이 구상화에 겹쳐져 그려진 양식도 유사하다. 그뿐 아니라 선사시대 동굴미술의 수수께끼는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동물 즉 서로 다른 종의 특징을 결합한 키메라나 머리나 다리나 꼬리가 여러 개 달렸거나 혹은 괴물처럼 보이는 동물의 그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후기 구석기 시대 유럽과 남아프리카의 암벽화에 공통으로 드러나는 주요개념을 요약하면 이렇다

 

반인반수의 모습을 지닌 인간, 혹은 완전히 동물로 변신한 인간,

동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 몸에 창이나 화살을 맞은 인간,

다른 동물로 변신한 동물, 혹은 두 개 이상의 종들의 혼합종으로 변신한 동물,

기이한 외모를 지닌 동물과 완전히 낯선 동물,

기하학적 문양

단순히 텅 빈 캔버스가 아니라 역동적이고 침투적인 암벽 표면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나타나는 이런 공통점의 열쇠는 트랜스 상태에서 본 것이 동일하기 때문이라 루이스-윌리엄스는 말한다. “루이스-윌리엄스의 신경심리학 이론은 변성의식상태에서 나타나는 6가지 형상, 7가지 원칙, 그리고 3단계 과정으로 이루어진 모델인 셈이다. 1단계에서는 체험자가 오로지 내시현상(안내섬광이라고도 하며 신경학적인 구조 때문에 보이는 기하학적 문양)만 경험한다. 2단계에서는 체험자가 내시현상을 도상적 형태로 (가령 지그재그 모양을 뱀의 형태로0 변화시키려고 시도한다. 3단계에서는 체험자가 일종의 소용돌이나 회전터널에 둘어싸인 느낌을 받는다. 소용돌이의 가장자리는 마치 TV 화면처럼 사각형의 격자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화면으로부터 도상적 환각이 생성되고 나중에 가서는 내시현상이 도상적 환각(즉 진짜 환각)으로 대체된다. 가령 들소인간과 같은 반인반수 혼합의 형상 같은 경우 (환각제를 이용한) 현대인 실험 참가자들도 트랜스의 제3단계에서 종종 목격하는 것으로 그때는 영상들이 현란하게 결합되어 체험자는 기묘한 환각의 세계에 들어서게 된다. 가령 신경심리학 연구의 선구자인 클뤼퍼는 메스칼린을 직접 복용한 뒤에 어떤 사람의 머리에 고양이 털이 수북하게 자라더니 곧이어 사람의 머리가 고양이 머리로 바뀌는 광경을 보았다고 기술했다. 이처럼 반인반수를 목격하거나 혹은 스스로가 반인반수로 변하는 듯한 경험은 환각제 실험에서도 종종 보고된다. 어느 해시시 체험자는 이렇게 말했다. ‘여우 생각을 했더니 내가 갑자기 여우로 변신해 있었다. 긴 귀와 부숭부숭한 꼬리가 눈앞에 보였고 나 자신이 해부학적으로 완전한 여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선사시대의 반인반수는 (종전에 주장된 것처럼) 의식용 의상이라기보다는오히려 환각이라고 해야 더 잘 설명되는데 왜냐하면 거기에 뭔가 비현실적인 특징이 분명히 나타나있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에게 이 환각은 신경계 즉 변성의식상태를 통해서 서로 다른 도상적 이미지가 결합된 형식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므로 루이스-윌리엄스는 변성의식상태로부터 유래한 종교가 이후 미술의 발생에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후기 구석기시대 미술의 특색은 선사시대 미술가들에게 신경학적으로 내재되어 있었던 셈이다. 그들은 그림을 발명할 필요도 없엇고 단지 모래 위나 부드러운 동굴 벽에 투사된 머릿속의 이미지를 거기에 고정시키면 그만이었다. 바로 거기서부터 미술의 역사가 첫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후기 구석기 유럽과 남아프리카 암벽화의 구도는 이런 공통점이 잇다. 지평선과 같은 원근법적 구도를 완전히 무시한 채 마치 붕붕 떠잇는 것처럼 비례가 맞지 않는다. 암벽 표면이 그림의 배경이 아니라 도상들 사이에 드리워진 휘장이나 막처럼 여기고 사용한다. 이미 그려진 그림 위에 다른 그림이 겹쳐진다. 이런 구도는 트랜스 상태에서 보는 것이 그렇기 때문이다.

 

첫번째 단계로 화가가 동굴이나 암벽 은신터에서 변성의식상태에 들어간다.

두번째 단계로 그들은 동굴이나 암벽 은신처의 벽과 천정 뒤에서 갑자기 솟아오른 듯한 환각을 체험한다. 이때 환각은 여러 개가 서로 겹치며 나타나고 여기저기 떠오른 듯하며 비례나 위치는 완전 무시된다.

세번째 단계로 트랜스 상태가 지나가면 화가는 자신들이 본 환상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동굴이나 암벽 은신처의 벽에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곳을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로서 확립하거나 기념한다.”

 

접근하기 힘든 곳에 벽화를 그린 이유는 그곳이 트랜스 상태로 들어가 신성과 만나는 성소였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는 루이스-윌리엄스의 이론이다. 그러나 루이스-윌리엄스는 그들이 본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벽화로 그려진 것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뿐이다. 저자는 거기서 더 나아가 트랜스 상태에서 그들이 본 것이, 그리고 우리가 보는 것이 무엇인가란 질문을 한다.

 

샤머니즘은 트랜스에서 보는 초자연이 실제로 있다고 믿을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우리의 현실에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과학자들은 이런 생각 자체를 환각으로 치부하지만 사실 과학은 환각이 어떤 작용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서조차 규명하지 못하며 특히 신경학에서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아는 수준 이상으로 더 멀리 나아가지도 못한 상황이다. 결국 샤머니즘의 핵심-우리의 정신이 다른 층위의 현실을 경험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경험이 지금의 현실에 어떻게든 이바지할 수 잇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과학에 반대되는 것ㅇ리다. 과연 그렇한 실체는 근거가 없는 의식상의 허구에 불과할까? 샤먼들의 증언과 서구인의 환각제 실험에서 매우 유사한 결고가 나온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우선 저자는 환각제를 통해 우리가 트랜스로 돌입할 수 있다는 그 현상 자체의 의미를 묻는다. 먼저 저자는 윌리엄 제임스와 올더스 헉슬리의 이론을 검토한다.

 

이산화질소를 이용해 트랜스 상태에 들어간 후 윌리엄 제임스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정상적으로 깨어 있는 의식, 혹은 합리적 의식은 여러 의식의 양태 중 하나에 불과하며 마치 영사막처럼 얇은 차단막 뒤에는 그와 다른 잠재적인 의식의 형태가 존재한다.”

 

환각제를 여러 번 복용했던 헉슬리는 두뇌와 신경계와 감각기관의 주 기능은 생산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소거적으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한 감압밸브의 역할을 한다. 이런 기관은 우리가 무가치하고도 부적절한 지식의 무더기에 압도당하거나 혼란을 느끼지 않게끔 우리가 언제든지 인식하고 기억할 수 있는 지식은 대부분 차단함으로써 오로지 실질적으로 유용한 소수의 특별히 엄선된 지식만을 남겨둔다.”

 

이를 환각제 LSD를 처음으로 합성한 호프만은 이렇게 달리 말한다. “우리가 LSD의 영향 아래에서 또다른 현실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두뇌, 즉 수신자의 채널이 생화학적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이ㅏㅆ다. 이때 수신자는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현상과는 다른 즉 그에 상응하는 또다른 파장에 맞춰진다. LSD와 다른 다른 환각제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자아라는 수신기의 채널을 바꿔줌으로써 현실의식의 변성을 초래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트랜스에서 경험하는 것은 또다른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현실은 장구한 세월 동안 인간에게 알려졌고 지금도 알려지고 있으며 그 예로 저자는 샤머니즘 뿐 아니라 UFO 피납자들의 경험을 예로 든다. UFO 피납자들의 증언은 대개 외계존재에 납치되어 하늘에 떠 있는 우주선(혹은 수중이나 지하)로 끌려가 고통스럽고 불쾌한 체험을 한 뒤에 집으로 되돌려 보내졌다는 것이다.”

 

UFO 피납자들을 연구한 정신의학자 존 맥은 이 현상을 트라우마적 사건에 수반된 정신장애의 일종으로 규명하려는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피랍자에 대한 심리학적 검사에서도 이들이 주장하는 경험이 정신적이거나 정서적인 장애에서 비롯되엇다는 증거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들은 실제 무언가를 경험한 것이다. 그 경험이 무엇인가가 문제이다. “외계인 피랍현상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현상의 범주 자체가 서구의 주류 과학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의 가시적 물질세계에 관한 것도 아니고 결코 우리의 세계 안에서 드러날 것같지도 않다는 점이다.”

 

UFO 피납자들이 말하는 항목 중 하나라도 경험한 사람은 전체의 2%이다. UFO 피납자들은 환각제에 의존하지 않고도 스스로 트랜스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라 저자는 설명한다. 전체 인구의 2%가 그런 사람들이며 UFO에 피납되었다는 주장은 샤먼이 트랜스에서 경험하는 것과 동일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피랍자는 ;떠오른상태로 UFO까지 끌려갔다고 주장하며 샤먼들은 입문 단계에서 대부분 하늘을 날았다고 증언한다.” 공통점은 많다. “‘뭔가 바늘처럼 날카로운 것이 비스듬한 각도로 목을 찔렀다.’ ‘외계인이 30센티 길이의 바늘에 손잡이가 달린 도구를 들고 왼쪽 귀 아래에서 두개골 쪽으로 찔렀다.’ ‘30센티는 되는 금속기구가 콧속을 통해 두뇌로 약 15센티나 삽입되어 뭔가를 부숴가면서 내 두뇌에 도달하려 했다.’” 이 증언들을 샤먼들의 환각체험과 비교해보자. “’입문자는 종종 검은 악마 셋에게 붙잡혀 온몸이 조각조각 잘리고 머리가 창에 찔리며 살점이 사방팔방으로 흩뿌려진다.’ (야쿠트족) ‘영은 입문자에게 창을 던져 목 뒤를 뚫고 혀를 지나 입으로 나오게 한다.’ (아룬다족, 호주) ‘머리에는 뱀을 한마리 집어넣고 코에는 마법의 물체를 꿴다.’ (와라뭉가족, 호주)”

 

저자는 샤먼의 환각 체험과 유사한 것으로 서구의 요정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그외에도 많은 종교사의 사건들이 샤먼의 환각 체험으로 설명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3세기의 마니교 창시자인 마니는 자신이 열두 살때부터 번갯불과 함께 나타난 천사에게 가르침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교도들은 예언자 마호메트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코란의 내용을 계시받았다고 믿는다. 기독교의 사도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에 하늘에서 빛과 목소리에 그만 땅에 떨어져 사흘동안 눈이 멀었다. 바울의 회심사건이야말로 샤먼의 입문과정과 유사하다. 원시 기독료도 가운데 그노시스파는 특별한 종류의 사물의 본성에 관한 지식을 통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는데 이때 그런 지식은 가르침이 아니라 계시를 통해 입문자에게 전해진다고 믿었다. 또한 그들은 우리가 사는 현실이 근본적으로 환상이며 영혼은 오로지 환각상태에 들어가야만 진정한 현실을 볼 숭 있다고 주장했다. 잔 다르크는 영의 세계이며 그곳의 초자연적 거주자들과 직접 의사소통함으로써 기적적으로 왕과 조국을 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천사가 아니라 악마의 목소리를 들었단즌 교회의 판정에 의해 처형당했다.” 교회에 의해 마녀로 몰린 여성들의 경우도 중상모략만은 아니며 샤먼 현상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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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떻게 끝나는가
크리스 임피 지음, 박병철 옮김 / 시공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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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우주 여행자가 태양계로 접어들어 세 개의 행성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는 크기가 지구와 비슷한데 대기의 주성분은 질소이고 이산화탄소가 조금 섞여 있으며 산소는 전혀 없다. 두번째 행성은 이산화탄소로 이루어진 걸쭉한 대기가 지표면을 두텁게 덮고 활화산과 간헐천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가. 세번째 행성은 조금 작은데 대기가 엷고 육지 표면에서 얕은 호수가 여기저기 눈에 뜨인다. 이 세개의 행성에는 모두 미생물이 번창하고 잇다. 이것이 30억년전의 태양계의 모습이다. 첫번째는 지국이고 두번째는 금성, 세번째가 화성이다. 30억년 전만 해도 금성과 화성이 지구보다 더 살기 좋은 행성이었다. 금성은 처음 생성된 후 거의 10억년 동안 바다가 있었고 운석의 집중 충돌기 뒤에 생명체가 형성될 시간은 충분히 있었다. 따지고 보면 지구는 생명체에게 가장 이상적인 환셩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구는 생존가능한 환경의 극단에 속한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생명이 있는 행성은 지구뿐이다. 그 이유를 제임스 러브록은 가이아란 말로 설명한다. “생명체와 물질 환경은 하나의 결합된 계로 진화해왔으며 이로부터 기후와 화학성분을 샌존에 적절한 상태로 유지하는 자체제어능력이 개발되었다. 러브록은 지난 수십억년동안 지구에 도달한 태양 에너지가 25%나 증가했음에도 대기의 온도가 크게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또한 그는 불안정한 기체인 대기 중 산소가 지각 속의 광물과 빠르게 결합하여 사라져야 함에도 오랜 세월 동안 대기의 성분이 변하지 않았다는 점도 신기하게 여겼다. 강물이 바다에 계속 유입되고 있음에도 바다의 염분 농도가 세포 활동에 적절한 값을 유지하는 것도 신기하긴 마찬가지였다. 결국 러브록은 어떤 거시적인 계가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안정된 상태가 유지된다고 결론지었다.” 러브록은 자체제어능력을 가진 이 시스템을 가이아라 불렀고 생명체가 그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지구의 환경 자체를 바꿔왔고 자신에 맞게 그 환경을 유지해왔다. 그러나 생명의 미래는 영원할 것같지는 않다. 물론 50억년 후 태양의 수명이 끝날 때 지구도 사라질 것이고 지구가 사라질 때 생명이 남아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생명의 종말은 그전에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태양 때문이다. 태양계가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태양은 25% 더 뜨거워졌다. 지금까지는 그 변화에 지구의 시스템이 적응할 수 있었고 생명이 살 수 있는 조건으로 평형을 맞출 수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앞으로 5억년동안은 온난화가 가속되면서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가 바다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적으로 지구 온난와가 뜨거운 이슈로 부각되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하지만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바다로 이동하려면 아직 멀었다.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앞으로 한참 동안 증가할 것이란 이야기다. 앞으로 이산화탄소가 바다로 유입되면서 대기 중 농토가 감소하면 나무를 비롯한 식물들은 더 이상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된다. 그후로 지구에는 악재가 계속되낟. 얼음층이 녹으면서 적도 지방에 홍수가 덮치고 따뜻해진 바닷물은 성층권까지 증발하고 지구는 서서히 말라간다. 지구는 황량한 사막으로 변할 것이다. 그대로 태양은 사정없이 내리쬐고 심해 바닥의 퇴적층에 저장되었던 이산화탄소까지 대기에 유입되어 온난화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결국에는 이 기체마저 우주로 날아가 버린다. 앞으로 35억년 후에 어떤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면 바싹 마른 바위 외에는 가져갈 게 없을 것이다. 지구의 일생을 펼쳐놓고 보면 시작과 끝이 매우 비슷하다. 메마른 불모지에서 시작하여 활기찬 생명으로 우글대다 다시 메마른 불모지로 끝난다. 지구의 일생을 십억년 단위로 펼쳐보면 대륙이 나타나고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생명 활동에 필요한 수준 이하로 떨어지고 바닷물이 끊어오르고 지표면이 바싹 구워지면서 완전히 소독되고 지구가 죽음의 나선운동을 시작하면서 태양에 빨려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미래가 그리 아름답지 않다는데 대체로 동의한다.”

 

대멸종은 여러 번 있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공룡을 쓸어버린 운석충돌이다. 그리고 지금이 또 한번의 대멸종 시기라 학자들은 본다. 인간이 환경을 바꾸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에 생태계가 거기에 적응할 시간이 부족하고 종들은 빠르게 사라진다. 종들이 사라지는 속도는 과거의 대멸종과 맞먹을 정도이다.

 

인간이 대멸종을 불러올 수 잇을 정도의 힘을 갖게 된 것은 과거에 멸종직전에 갔던 사건 때문이었다. “9~135000년전 아프리카 대륙은 심한 가뭄에 시달렸다. 화석에서 채취한 DNA를 분석해보면 당시의 인구수에 심각한 병목현상이 나타났음을 알 수 잇는데 학자들은 그 무렵의 인구가 2,000명 내외까지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멸종직전의 인류는 뇌의 용량을 키우고 더 영리해지는 방법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자신이 부른 대멸종도 넘길 수 잇을지는 의문이다. 물론 인간이란 종 자체가 멸종하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명도 그럴지는 알 수 없다.

 

문명이 살아남는다면, 지구상에서 생명 자체가 멸종하기 전에 우주로 나가 생명을 퍼트릴 수 잇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도 생명을 영원하게 해주지는 못한다. 우주 자체도 끝이 잇기 때문이다. 단지 그 시간이 상상할수도 없을 정도로 장구할 뿐이다.

 

별은 우주가 어렸을 때 사방에 퍼져있던 기체로부터 탄생햇다. 빅뱅이 있고 약 140억년이 지난 지금 대부분의 기체는 사라졋고 늙은 별들이 자신이 지닌 기체의 일부를 외부로 방출하고 잇다. 이 기체는 우주 초기의 가벼운 기체가 아니라 핵융합을 거쳐 개조된 무거운 기체이다. 외형상으로는 재활용이 이루어지는 것 같지만 효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 시간이 충분히 흐르면 이 재활용 사이클은 완전히 멈출 것이다. 결국 끝까지 남는 것은 적색 왜성이다. 이들은 거의 1조년 동안 핵융합을 근근히 유지하면서 간신히 빛을 발할 것이다. 10조년이 지나면 드디어 적색왜성까지 모든 연료를 소진하게 된다.” 은하의 모든 별이 죽은 후에도 연성계를 이룬 죽은 별들이 합쳐져 다시 핵융합반응을 일으키는 별이 되는 간간히 일어날 수 있으니 “100조년 후, 또는 그보다 먼 미래에도 은하수에서 별이 생성될 수 있다. 그래도 은하수는 빛의 상당부분을 잃는다. 지금은 4000억개에 달하는 별들이 빛을 발하지만 100조년 후에는 100개 남짓한 왜성들이 핵융합 한계 온도를 간신히 넘긴 상태에서 희마하게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별의 시대는 이것으로 끝이다. 자연은 은하수의 에너지 효율을 서서히 저하시켜 종말로 몰고간다.” 그리고 물질 자체도 사라질 것이다. “10 100승년이 지나면 양성자는 모두 붕괴되고 별들도 사라지고 블랙홀도 모두 증발한다. 남는 것은 뉴트리노와 전자, 양전자, 그리고 관측가능한 우주보다 파장이 긴 광자들뿐이다. l기에 일어나는 모든 물리적 과정은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다.”

 

우울한 미래이다. 현재의 천체물리학에선 우주는 무한히 그리고 더 빨리 팽창할 뿐 다시 수축할 것으로 보지는 않으니 엔트로피를 리셋할 이벤트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주는 식어가면서 죽은 상태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은하가 완전히 증발하려면 100*10억년쯤 걸린다. 이것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이해하기 위해 시간 스케일을 다시 조정해보자. 100조년을 1년으로 간주할 때 우주의 나이 137억년은 10시간에 해당된다. 이제 시간을 더 앞축해 은하가 모두 증발할 때까지 거리는 시간을 1년으로 잡아보자. 그러면 이 달력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빅뱅은 1우러1일 새벽 0시에 있었고 지금 우리는 그로부터 13초분의 1이 지난 시점에 와있다. 제야의 종이 이제 막 울리기 시작하는 새해 벽두이다. 마술 같은 사건으로 가득 찬 이 우주에서 마지막에 어떤 일이 일어나건 그게 무슨 상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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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의 미래를 말하다 - 끝없이 반복되는 글로벌 금융위기, 그 탈출구는 어디인가?
조지 소로스 지음, 하창희 옮김, 손민중 감수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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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쉽지 않은 책이다. 그 이유는 이책이 한권의 책으로 묶일 것이란 전제로 쓰이지 않은 시사칼럼을 편집했기 때문이다. 칼럼을 묶었다고 다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칼럼의 성격이다. 이책에 실린 칼럼은 저자가 FT에 연재한 것이다. 저자의 주분야도 그렇지만 지면 자체의 성격이 경제일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유력경제지에 실리는 글의 성격상 그때 그때 이슈가 되는 경제정책에 대한 저자의 코멘트가 되었다. 그러므로 칼럼이 쓰일 때의 정황을 알고 있고 그 정황에서 왜 이런 글이 나올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이책에 묶인 칼럼은 암호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상당히 유용하다. 저자가 이번 금융위기와 그로 인해 촉발된 유럽위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 수 있고 그 자신의 진단에 근거해 그 위기에 대한 대책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저자가 금융위기와 유럽위기를 어떻게 보는가에만 한정하겠다. 그가 말하는 구체적인 대책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상당히 기술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소로스는 이번 위기의 원인이 된 시장근본주의의 오류를 지적한다. “금융시장은 자율규제에 맡길 경우 반드시 균형으로 수렴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버블을 형성하기 쉽다.” 전후의 브레튼우즈체제는 그런 경험의 교훈에 따랐고 내가 금융분야에 첫 발을 내디뎠을 무렵 은행과 통화는 엄격한 규제의 대상이었다. 이는 세계대공황과 2차세계대전을 겪은 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세계대공황의 영향으로 시작된 케인스 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었다. 두 차례 오일 쇼크 이후 산유국들은 막대한 흑자를 기록한 기록한 반면 석유 수입국들은 엄청난 적자를 감내해야 햇다.” 오일 머니를 순환시켜 이들간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상업은행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순환은 기존의 규제에서 벗어난 장소인 유로달러 시장에서 일어났다. “바로 여기서부터 은행은 직접적인 규제 제약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이번 위기로 터진 슈퍼버블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70년대 오일 머니의 리사이클을 맡았던 은행들은 그 돈을 정부채권에 투자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인플레이션 시기 각 국가에 제공된 신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붕괴에 이르자 1982년 슈퍼버블로 인한 첫번째 국제은행체제의 위기가 발생했다.” 이때의 위기는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으려는 미국 주도의 개입으로 해소된다. “바로 이 시점에 브래디 채권이라는 것이 도입되어 질서 잇는 부채구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대 중반의 저축대부조합 스캔들이다. 그 다음으로 발생한 중대한 국제적 위기는 1997년 아시아를 중심으로 발생했2000년 닷컴버블로 그리고 2008년에 미국의 주택버블이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슈퍼버블은 끝난 것이 아니다. “각국 정부는 부도 위기의 상업신용응ㄹ 국가신용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금융기관을 보호햇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개입으로 슈퍼버블은 또 다시 계속 확대되었다. 슈퍼버블 시기에 형성된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금융시장은 균형에서 한참 벗어난 상태로 운용되엇다. 격국 2008년 금융체제를 위기에서 구제햇던 국가신용도 그 신뢰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저자는 슈퍼버블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한 원흉으로 잘못된 이론, 효율적 시장가설을 지적한다. 우끼는 것은 효율적 시장가설에 따르면 버블이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버블은 만들어졌고 그것도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규모로 만들어졌다.

 

저자는 버블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인간행위에 대한 포퍼의 이론에서 끌어낸다. “행위자는 먼저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인지기능이라 할 수 잇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상황에 영향을 주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이를 유발기능(Causative Function) 또는 조작기능(Manipulative Function)이라 정의할 수 잇다.” 행동이란 상황을 인식하고 그 인식에 따라 상황을 조작하려는 것이며 인식에 따라 달라진 상황은 다시 인식에 영향을 주고 결국 행동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인지기능과 조작기능은 동시에 작용하면서 루프를 이루며 상호순환관계를 만든다. 저자는 이를 재귀성(Reflexivity)라 정의한다. 저자는 재귀성을 불확실성의 원천이라 말한다.

 

불확실성의 원인으로 오류의 가능성은 널리 알려져 잇지만 재귀성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잇다. 이는 재귀성이 인식과 조작이라는 두가지 서로 다른 영역을 연걸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완벽을 추구하며 불확실성의이란 변수는 무시하거나 없애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금융시장이다. 경제이론에서는 금융시장을 해석할 때 재귀성이 의도적으로 무시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이다.

 

저자는 오류의 가능성과 재귀성이라는 두가지 요인 때문에 금융버블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모든 버블은 현실의 트렌드와 그 트렌드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는 두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1.     시장 참여자들이 트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이 같은 관심으로 인해 트렌드 자체와 그에 대한 해석이 모두 심화된다이 해석에는 인식의 오류가 수반되낟.

2.     어떤 이유에서든 트렌드가 중단될 수 있는데 이 경우 인식의 오류에 위협이 된다인식의 오류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버블은 확대되지 않는다그러나 트렌드가 중단되어도 인식의 오류가 계속 존재하게 된다면 트렌드와 인식의 오류는 더욱 힘을 얻는다.

3.     참여자들의 인식이 점차 기저현실과 동떨어지게 되어 참여자들이 서서히 모순을 인식하게 된다마침내 확신하는 참여자들보다 회의적인 참여자들이 많아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이르게 되낟.

4.     진실이 밝혀지기 직전에는 관성으로 인해 잠시 동안은 트렌드가 지속될 수 있다.

5.     그럼에도 트렌드가 역전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6.     그런 다음에는 불신이 만연해 트렌드가 반대방향으로 강화된다.

7.     어떤 형태이든 항상 신용이나 레버리지가 존재하므로 버블은 비대칭적 형태로 발전하여 서서히 확대되다 급격히 붕괴하며 결국 사라진다.

8.     이러한 과정을 형성하는 다양한 단계들은 그 순서만 사전에 정해져 잇다버블의 규모와 지속 기간은 예측할 수 없으며 어느 단계에서든 중단될 수 있다버블이 최대규모로 확대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버블성장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버블의 성장은 양의 피드백과 음의 피드백에 따른다. “양의 피드백은 인식오류를 장화하지만 음의 피드백은 인식오류를 바로잡는다.” 두 피드백은 서로 상쇄되기 때문에 양의 피드백이 음의 피드백을 압도할 만큼 규모가 큰 버블을 생성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적 시장가설은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양의 피드백은 존재하지 않으며 음의 피드백을 통해 인식과 기대가 현실에 완벽하게 들어맞아 균형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양의 피드백은 존재했고 음의 피드백을 완전히 압도할 수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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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 자유 시장과 복지 국가 사이에서
토니 주트 지음, 김일년 옮김 / 플래닛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미래는 독재와 함께 하지 않을까? 확실히 그렇게 보였다. 1945년 연합국이 승리를 거둔 이후에도 이러한 우려는 가시지 않았다. 불황과 파시즘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 에서 떠나지 않앗다. 전후의 시급한 과제는 이 엄청난 승리를 자축하고 나서 전쟁 이전의 일상응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1914년에서 1945년 사이에 겪었던 경험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게 해줄 방법을 찾는 것이엇다.”

 

‘1984’는 전후 유럽의 분위기를 가장 잘 나타낸 작품이다. 48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아내를 잃고 자신의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아는 오웰의 절망에서 태어났지만 개인적인 불행보다는 전체주의는 언제든 가능하다는 아마도 전체주의가 미래일 것이라는 절망이 더 컸다. “수백개 사단을 거느리고 동쪽에 버티고 있는 붉은 군대와 이탈리아와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에서 득세하고 있던 공산당과 노동조합.” 국무장관 마셜이 유럽을 방문했을 때 본 광경이다. “마셜 플랜은 2차대전 이후의 상황이 1차 대전 히우에 벌어졌던 사태들보다 더 나쁜 결말로 치달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의 산물이엇다.”

 

히틀러가 몰락하고 나서 한참이 지난 후에 그에 대해 평가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일부 국외자들은 더러 최소한 그는 독일인들에게 일자리를 되돌려주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트탈린이 어떤 결함을 지니고 있었든 간에 최소한 그는 소련을 대공황으로부터 지켜 냈다는 평가를 내리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이탈리아의 기차가 제 시간에 맞춰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무솔리니에 관한 농담조차 그 행간에는 다음과 같은 항변이 담겨 있었다.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두번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으로 문명을 되돌리는 일은 가능해보이지 않았다.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했던 사람은 바로 메이너드 케인스였다. 영국의 클레먼트 애틀리, 프랑스의 드골, 그리고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이르기까지 당대 혁신적인 법안의 통과를 이끌었던 일련의 정치가들과 마찬가지로 케인스 역시 천성적으로 보수주의자였다. 당대 대부분의 주요 정치 지도자들은 모두 케인스에게 매우 익숙했던 평화로운 시절에 태어난 노신사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모두는 충격적인 대격변의 시절을 겪은 자들이엇다.”

 

그러나 더 이상 그들이 젊은 시절을 보냈던 아름다운 시절(Belle Epoque)로 돌아갈 수는 없었고 그 시절의 가치를 그대로 되살리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전간기에 자본가들은 이미 스스로 자기 이익을 최선으로 지켜낼 능력이 전혀 없음을 분명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뭔가 달라져야 했다. 그리고 그일은 국가가 해야할 일이었다.

 

그 결과 아주 역설정인 상황이 벌어졌다. 당시에 사회주의적인 것으로 불릴만한 변화들 덕분에 자본주의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전후 초창기에 정책 논쟁은 도덕적인 성격을 띠었다. 실업, 인플레이션, 그리고 농민들이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토지를 내팽개치고 극우정당으로 달려가게 만든 농산물 가격폭락 등은 단지 경제적 쟁점이 아니었다. 성직자에서부터 세속의 지식인에 이르기까지 당시 모든 사회구성원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공동체의 윤리적 일관성을 가늠하는 시금석으로 간주했다. 모두가 국가를 믿었다. 이는 전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불과 얼마 전에 경험했던 끔찍한 공포를 두 번 다시 겪고 싶어하지 않았고 공익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의 자유를 제한하는데 기꺼이 찬성했기 때문이었다.”

 

이후의 한세대를 프랑스에선 영광의 30년이라고 불렀고 이 시절의 정점에서 맥밀런 수상은 이렇게 장담했다. “’이렇게 좋은 시절은 앞으로 다신 오지 않을거요.’ 그가 옳았다. 극단주의 세력이 다시 부상할지 모른다는 우려는 자취를 감추었다. 서양은 번영과 안녕의 황금시대에 들어섰다. 거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편안한 거품에 파묻혀 과거에는 감히 꿈도 꾸지 못했던 삶을 누렸고 희망찬 시선으로 미래를 기대했다.”

 

전후 사회민주주의의 기적은 보편주의란 마술에 의해 성취된 것이었다. 중간계급의 공포와 불만이야말로 파시즙ㅁ을 권좌로 불러들인 원동력이었다. 중간계급을 민주주의 지지자로 돌려세우는 일은 전후의 정치의 중요한 과제였다. 그리고 이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쉽지 않은 일을 해낸 것이 보편주의의 마술이었다. “중산층은 더 이상 소득에 견주어 혜택을 받지 않았다.” 이전에 복지란 중산층에겐 단지 돈만 내고 자신은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젠 무상교육에서부터 무료 혹은 저가로 제공되는 의료 혜택, 공공연금, 실업보험에 이르기까지 노동자, 빈민층이 누리는 것과 똑같은 혜태ㅑㄱ을 누렸다. 살아가는데 필수적인 많은 부분들이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충당된 결과 유럽의 중산층은 1960년대에 이르면 자신들의 가처분 소득 수준이 1914년 이후 그 어트 때보다 높아졋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다.”

 

저자는 영광의 30년이 가능했고 무려 한 세대동안 잘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고 말한다. 지적 혁명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맹신과 사직인 이익 추구가 항상 공익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믿음은 완전히 끝장났다. 두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사람들 대부분은 일상생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은 불가피하다고 믿었다. 전시경제는 전쟁이란 목적을 위해 온 나라를 전쟁기계로 바꾸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이렇게 묻기 시작했다. 그러면 평화를 위해서도 같은 일이 가능하지 않을까? 시장은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데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 그 빈틈을 메워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퍼졌다.”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특히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사회주의란 분배의 개념이엏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규제받지 않는 경쟁이 낳은 결과에 분개햇다. 그들은 급전적 미래를 꿈꾸기보다는 더 나은 삶의 방식을 가능하게 해줄 가치들을 되찾으려 했다. 베아트리체 웹 같은 영국의 초기 사회민주주의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사회주의를 공교육, 공중보건서비스, 의료보험, 공원과 운동장, 노약자와 실업자에 대한 공적지원 등으로 규정했다. 정부가 이러한 일들을 맏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대미문의 것이엇다. 2차대전 이후 사회적 목적의 실현을 위해 재정을 운용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책임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영광의 30년은 그 자신의 영광 때문에 무너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영광의 30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공동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된다는 합의였으며 국가에 대한 신뢰였다. 그러나 국가의 성공은 자신의 무덤을 팠다고 저자는 본다.

 

“1945년 이후에 태어난 자들에게 복지국가와 그 제도들은 과거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그저 일상적인 삶의 조건에 불과했다. 그들에게 복지는 지루한 일상 그 이상이 아니었다. 60년대 중반에 대학에 입학한 베이비붐 세대는 다른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다.” 복지국가의 합의는 중간계급의 동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전쟁 직후 그 동의의 이유를 기억하지 못하는 세대들은 복지국가를 가능하게 했던 지적 혁명을 뒤집어놓았다. “위대한 이상을 품고 1960년대를 살아온 우리 세대는 결국 자유주의를 파괴해버렸다. 그것은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자유주의적이었기 때문이다그 세대의 일원인 케밀 파야의 말이다.

 

더군다나 영광의 30년의 성과 자체가 그 시절을 가능하게 했던 지형을 부수어놓았다. “중간계급에게 실제로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든지 간에 뉴딜의 개혁정책들과 스칸디나비아의 사회민주주의, 영국의 복지국가는 모두 육체노동자들과 농민들의 지지에 우선적으로 의존했다. 그러나 1950년대 내내 육체노동에 종사하는 프롤레타리아는 지속적으로 파편화되면서 감소했다. 전통적인 공장 노동자와 광부, 그리고 운수업 종사자에 대한 좌파의 집착은 자동화와 서비스업의 부상, 그리고 여성 노동자의 증가로 더 이상 설자리를 찾지 못했다.”

 

정치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중간계급도 변했다. “워싱턴에서부터 스톡홀름에 이르기까지 지난 시절의 개혁가들은 모두 정의, 기회균등 혹은 경제안정 같은 목적을 공유했고 이러한 목적은 공동의 노력으로만 달성할 수있다고 확신했었다. 지나치게 억압적인 하향식 통제와 조정이 가질 수 밖에 없는 수많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은 이런 문제접들을 사회정의를 위한 비용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비용을 기꺼이 지불할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사회정의란 목적이 이미 이루어진 시절만 경험한 젊은 세대에게 그런 목적은 더 이상 호소력이 없었다. 대신 “60년대 세대를 하나로 뭉치게 만든 것은 모두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각자의 필요와 권리였다. ‘개인주의’. 즉 모든 사람은 사적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자신의 욕망을 어떠한 제한 없이 표현할 자유가 있으며 이 모든 권리는 사회에 의해 존중되고 제도화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점차 그 시대 좌파의 슬로건으로 자리잡았다. ‘네 멋대로 하라’ ‘감정을 해방하라’ ‘전쟁 대신 사랑을 하자이러한 목표들은 본질적으로 사적인 목표일 뿐 공익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하다. 60년대의 정치는 사회나 국가에 대한 개인적인 권리들의 총합으로 전개되었다. 개인적 정체성, 성 정체성, 문화적 정체성 들 정체성의 문제가 공적 담론을 잠식했다. 이러한 정체성의 정치란 급진주의적 정치의 파편화와 맥이 닿아 있었고 다문화주의란 그럴듯한 모습으로 변신하기도 했다. 그 시절에 좌파가 된다는 것은 자기본위적인 자기개발적인 그리고 놀라울 정도로 자신만의 관심사에 매몰된다는 것을 뜻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목표를 공유한다는 의식의 퇴조였다. 전후 수십년간 이어져온 합의는 붕괴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그러나 확실히 부자유스러운 합의가 사적 이해관계의 절대성을 둘러싸고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사실상 그들의 감정은 사적 자유에 대한 열광과 공적 구속에 대한 짜증으로 확실히 나위너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새로 등장한 우파 역시 이와 똑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신자유주의란 통칭되는 우파의 탄생은 그들의 적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것이었다. 70년대 중반 이후 30년간 이어진 보수주의의 승리와 그로 인한 근본적인 변화들은 필연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일종의 지적혁명이 낳은 결과였다. 대략 10년 남짓한 짧은 기간동안 공적 담론의 지배적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기존 패러다임이 국가의 적극적 개입과 공동선의 추구였다면 새로운 세계관은 마거릿 대처의 악명 높은 명언으로 요약될 수 있었다. ‘사회 따위는 없다. 오직 개인과 가족이 있을 뿐이다.”

 

정부가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이고 사회따위는 없다면 국가의 역할 역시 다시 한번 조정자에 불과한 것으로 축소되어야 햇다. 이제 정치가가 할 일은 개인들의 삶에 최대한 간섭하지 않으면서 개개인이 자신에게 이로운 일을 잘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엇다. 케인스식 합의와 비교해보면 사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숭 있다.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기능이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게 하는 수단을 제공하는 데 그친다면 그런 자본주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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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시대의 중국 - 중국은 과연 세계의 지배자가 될까
사토 마사루 지음, 이혁재 옮김, 권성용 해제 / 청림출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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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로 미국의 소프트 파워는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 워싱턴 컨센서스라 요약되는 미국 모델이 무너지면서 중국 모델, 베이징 컨센서스가 힘을 얻고 있다. 이를 지적하면서  금융위기 이후의 세계질서를 분석하는 방법론의 초점은 세계를 베이징 컨센서스권과 워싱턴 컨센서권으로 나눌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미국의 네오콘 논객으로 유명한 로버트 케이건은 새시대에는 민주국가와 전제독재국가 사이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때때로 대립하는 시대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티벳 문제에 대해 중국을 지지하거나 적어도 묵인하는 국가의 수가 상당하다는 것을 보면 이런 주장은 현실적으로 들린다. 무려 110개국 이상 적게 잡아도 64개국이다. “베이징 컨센서스권의 구체적 범위를 보여주는 또 다른 예는” 2010년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식에 중국의 요청으로 불참한 국가들과 중국의 입장에 지지와 이해를 표명한 국가의 수이다. 100여개국에 달한다.

 

그러나 베이징 컨센서스권이란 개념엔 실체가 있는가? “베이징 컨센서스권의 확대와 결속에는 한계가 있다. 베이징 컨센서스권에 속한 국가일지라도 각국의 계산은 저마다 다르다. 그들은 서방의 비난을 반박하며 자국의 정당성과 체제를 유지한다는데 계산이 일치한, 응집력이 약한 정치연합에 불과하다.”

 

하나의 정치적 실체로 묶이기에는 한계가 뚜렷한 모래알일 뿐이란 말이다. 더군다나 그 중심이 되어야 할 중국 자신의 문제 때문에도 더더욱 그러하다. “원자바오 총리는 2011 3월 기자회견에서 프랑스 기자로부터 중국은 독자적인 발전모델을 구축했는데 다른 나라들도 중국 모델을 도입할 수있다고 보는가란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우리의 개혁은 여전히 모색단계이며 중국의 발전이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답변했다.” 워싱턴 컨센서스와 달리 베이징 컨센서스는 보편성이 없다는 말이다. 보편성이 없기 때문에 하나의 세력으로 뭉칠 수 있는 능력도 없다. 보편성이 없는 가장 큰 이유는 일당 지배를 통해 성공하는 중국 모델을 응용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면 중국 모델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개발독재를 통한 일당 지배이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중국 공산당의 통치 능력에 있다. 중국은 문제의 발견과 해결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일당 지배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등지의 독재자의 통치능력이 반드시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으며 중국의 일당 지배 모델이 효율적으로 운용되리라는 보장도 없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회 각층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진다. 따라서 민주적인 해결과정은 정권안정의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베이징 컨센서스권의 국가 모델은 영원히 이어지는 지속가능한 정치경제 모델은 되지 못한다. 중국도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베이징 컨센서스 동맹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중국모델이란 것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중국 스스로도 잘 알고 잇고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잊을만하면 제기되는 중국 붕괴론의 근거이다. “민주화를 추진하지 않으면 이익 분배는 편중되고 빈부 격차는 시정되지 않는다. 관료의 부패도 만연하게 된다. 13억 인구와 56개 민족을 안고 잇는 중국공산당과 정부는 사회를 안정시키는데 고군분투하지만 이익 편중 등으로 인해 중국 모델은 지속가능한 통치모델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중국은 붕괴하게 된다.”

 

그러나 어쨌든 중국 모델은 살아남았고 앞으로 영원히 그렇지는 않겠지만 붕괴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 저자는 통치의 대차대조표란 개념으로 정리한다. 이 대차대조표에서 자산은 정부의 통치능력, 부채는 과제를 나타낸다. 부채(과제)가 자산(정부의 통치능력)을 넘어서면 부채 초과 곧 불황에 빠진다. 정권의 안정도가 떨어져 정구너교체 압력을 받는다. 일본의 경우 하원인 중의원에서는 여당, 상원인 참의원에서는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왜곡국회와 비슷하다. 왜곡국회에서는 통치력이 저하되며 이는 정치의 대차대조표가 불황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빈부격차, 관료의 부해와 독직, 환경오염 등 부채가 막대하다. 부채만 볼 때 중국은 분명 파산이 눈앞에 와 있는 것같다. 중국 붕괴론이 나오는 근거다. 그러나 부채에 비해 경제성장의 혜택과 공산당의 인적 자산, 신속한 정책 실행이 가능한 통치기구 등 자산이 두터워 부채와 자산이 균형을 이룬다.”

 

다시 말해 중국의 정치력이 비결이란 말이다. 이책은 그 중국의 정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성실하게정리하는 책이라 보면 될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소개한 통치의 대차대조표와 같은 체계적인 이론에 따라 체계으로 쓰인 대작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앞에서 소개한 개념은 이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라 정리해본 것으로 이책의 한 챕터에 불과하다. 물론 그 챕터에서 나름 깔끔하게 공산당의 자산이 정리되고 있기 하지만 책 전체와는 상관이 없다. 이책의 내용은 그보다는 중국에 유학을 갔었고 4년동안 주재기자로 근무하면서 보고 들은 바를 나름 체계적으로 분야를 나눠 중국정치를 개관할 수 있게 한권으로 책으로 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이책이 다루는 범위는 방대하다. 정치엘리트들의 파벌과 그 파벌의 역학(그 역학의 구체적인 예로 시진핑이 차세대 지도자로 선출된 과정을 크게 다룬다.), 정치개혁의 진행과정, 그리고 주변국들이 촉각을 세울 수 밖에 없는 중국의 외교정책과 그 결정 메커니즘, 국방 등의 중국정치의 현안을 성실하게 개관한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서는 이책은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잇다. 그러나 위에서 소개한 통치의 대차대조표와 같은 깔끔하고 체계적이면서 독창적인 안목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중국전문가라면 다들 아는 수준의 상식적 프레임에서 각 분야를 정리한다고 보면 이책의 수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넓은 영역에 걸쳐 간략하게 정리되었다는 점은 이책의 미덕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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