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낸시 휴스턴 지음, 손영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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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핑거는 빈서판에서 우리 인간은 30% 정도의 유전과 30% 정도의 공유환경, 그리고 놀랍게도 나머지30%정도는 우연에 의해서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여기 등장하는 4명의 6살 박이들은,닮았으되 다르며, 다르지만 공통된 역사의 유전자가 관통하고 있다.


사실 나치가 인류에 남긴 상처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많은 변주들이 있다.내가 전에 읽은 사랑의 역사도   소재는 비슷하다. 그 소설을 담박에 읽고 나서 그냥 서럽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울음...울음말이다. 그건 공감일 수도 있고, 뭐랄까 서러움일 수도 있었다. 허나 확실한 건, 주인공들의 삶에 일치하는 공감이라고 하기엔,뭔가 어색하고 진실은, 그 사랑을 위해 대서양을 건너고, 죽도록 외로운, 어린 시절 고향에서의 사랑만 평생 품고서도, 한 인간이 늙어갈 수 있다는 것, 오로지 평생을 그렇게 그리고, 기다리고 추억하면서 살 수도 있다는게, 서럽고 서럽고 또 서러웠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그럴 수도 있는 존재이다.


여섯살 난 소년, 소녀들의 기억 속에서 해체되고 복원되는 것이 어찌 사랑뿐일까, 시간도 그렇고 역사도 그렇다. 우리 모두의 여섯 살들이 모여, 어른이 되고 역사가 되고, 또 그것은 미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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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07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과 같은 존재가 되기 위해 30프로 정도는 우연에 의해서라는 것이 놀랍지만 사실인 것 같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언급하신 [사랑의 역사]는 니콜 크라우스 인가요? 저는 그 소설을 재미없게 읽었거든요. 그런데 울음이란 단어를 거듭 언급하신걸 보니 제가 그 소설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테레사 2012-02-07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니콜 크라우스의 소설이에요^^.
 

현명한 사람은,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는 지 안다. 

나는 그런 축에 들지 못한다.

해서 늘 허둥대거나, 안타까워 하거나, 지치거나 조급하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 대형서점이 들어선지 얼마 안되어서 였나. 구경한답시고 갔다가 카프카의 아포리즘이란 책을 발견했다. 

우리가 천국에서 쫓겨난 것은 너무 성급했기 때문이고, 또 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 조급하기 때문이라고 씌어 있었다. 당시 나는, 희곡을 자주 읽곤 하였다. 아마도 나 역시 멋진 희곡을 써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때 읽은 희곡들, 생각이 별로 안난다. 아니다 제목들은 생각이 난다. 다만 어떤 내용이었나가 뚜렷하지 않다. 그땐 달리 뚜렷하게 성공하고 싶단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해 보면 정말 대책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미했다, 내 인생 전체가.

돈을 밝히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가 된다거나 성공한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일부러라도. 

하지만, 얼마나 위선적이었던가.

실은, 멋진 인생이란 말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그 숨길 수 없었던 욕망의 실체라니.

새해엔 나 자신에게 솔직하기,를 시도해 보자.

숨긴다고 드러나지 않을 것도 아닌데,



그러게, 연민이라는 감정은 도대체 인간의 생존에 어떤 이로운 점이 있어, 이토록 오랫동안, 인간에게 붙어 있는 것일까. 연민 이후로 전진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이 엉뚱하고 곤혹스런 감정이, 어떤 의미에서는, 나에게는 소용없는 무언가 같다.

오늘 폐지 줍는 할머니의 90도나 굽은 등을 보았다. 새벽에 버스를 갈아타는 데 문득, 쓰레기가 그득 넘쳐난 휴지통을 보았다, 아저씨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혹시 이곳 담당 아저씨가 아픈 건 아닐까, 아프면 누가 대신 나오나? 갑자기 몸이 안좋아 못나올 경우,하루치 임금은 깎이는 걸까? 그러다가 다음 계약에 불이익이라도 당할 지 모르니 아파도 정말, 쓰러져 의식이 없지 않는한 나와야 하겠지? 그제 읽은 황정은의 소설 속 곡씨 같은 곡씨들은 정말 있겠지? 우엑 메스꺼워질 만큼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들을 살아지기 위해 먹어야 하는 그런, 운명들....

점심도시락을 먹으면서, 음식의 맛을 음미하라고 했던 어떤 구절이 생각나 꼭꼭, 씹어 먹어본다. 맛이고 뭐고, 이런 것들을 섭취해야 하는 본능때문에 나는, 이렇게 먹는 것일까? 달걀, 콩자반,김치, 현미밥. 과일...왕오디쨈과 커피한잔.

다시 연민이란 감정으로 간다.이 효용가치로 따지면, 내게 정말 불필요하다싶을 정도로 소용없는 감정,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침통해 진다. 어쩔 수 없이 반복되면서도,딱 거기서 멈추고 마는, 그래서 나를 괴롭히기 가장 좋은 소재가 되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네가 세상을 바꿀거야? 네가 혁명이라도 하겠단 거야? 


마음이 너무 아파, 그냥 아플 뿐이야. 이 세계의 무작위성과 운명의 임의성, 그리고 평균연령의 상승. 자원의 한계. 모든 인간은 존귀하게 태어났다는 말의 공허함.

그렇다면 왜 폐지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있는거야? 왜 곡씨처럼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남의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들이 있는거냐고?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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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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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는 아니지만 꿈속에서 그냥 머물고 싶은 때가 더러 있다. 나오고 싶지 않은데 꼭 그때만 맞추어 오줌이 마렵다든지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린다든지 식기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든지 하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 난 후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산티아고를 만나거나 소년을 만나지는 않았다. 다만, 한 멋진 남자와 같은 집에 살고 있었고, 그와 연애를 하는 두근두근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멋진 남자였지만, 그는 어쩐지 어떤 남자 배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실적이지 않는 꿈을 꾸고 나면 늘 그렇듯, 여전히 이따위 꿈이나 꾸면서 내 인생 대부분을 살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노인과 바다는 나의 언니가 좋아했던 소설이다. 언니는 지금 머나먼 유럽 땅에서 아이와 남편과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언니는 노인과 바다를 읽고 먼 바다를 꿈꾸었을 법하기도 하고, 또는 인생이란 바다에서 멋진 무언가를 건져 올렸다 하더라도 그건 한때 잠시일 뿐, 어떤 식으로든 잃게 되기 십상이라는 어린 소녀로서는 다소 버거운 각성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헤밍웨이를 좋아했다. 왜였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지만, 언니의 조건상 지금 모국어로 번역된 헤밍웨이를 읽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소녀들은 자신보다 좀 위인 소녀들에게서 자극을 받는 모양이다. 나는 언니가 주로 보던 명화극장이며 팝송이며 심지어 언니가 학교 무용시간에 작품발표용으로 떠 놓은 카세트테입에 담긴 클래식작품으로 처음 영화나 노래, 클래식을 접했더랬다. 뭐 따지고 보면 언니가 첫째였기에 그만큼 누리는 것이 풍부했다. 부모님은 중학교에 입학한 기념으로 지금으로 치면 오디오데크를 사 주었고, 발레를 배우게 했으며 주판학원도 보냈다. 아마 미술에 소질을 보였던 것으로 보아 미술학원도 다녔을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난다. 말이 난김에 언니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언니는 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거나 너무 호기심이 많았거나 아니면 내가 너무 고지식해서 누구나 지나야 하는 유년시절의 품행이었음에도 내겐 그렇게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지만,좀 유별났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던 때 였나보다. 난 국민학교도 아직 안들어갈 정도로 어려서 기억이 안나는데 그 마을에 어느날 서커스단이 공연을 왔다. 아버지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서커스단이 천막을 치고 재주를 부리는 공연장 근처를  얼씬거리는 호기심 많은 학생들을 잡아내거나, 선도하여 집으로 보내야 하는 악역을 맡았으나 그 학생지도 역할을 핑계로 공연장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언니의 국민학교 친구들이 엄마에게 언니가 서커스구경하러 천막 속으로 입장했다고 일렀다. 엄마는 서둘러 아버지에게 알렸고 함께 현장으로 뛰어갔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언니는 어느 중년 아줌마 치맛자락을 요령껏 잡고 마치 그 아줌마 딸인양 하며 천막안으로 입장했다는 것. 물론 자유롭게 입장한 아버지 눈에 띄어 그길로 곧바로 집에 돌아와야 했지만 말이다. 이뿐인가? 친구 집에  놀러가 밤이 새도록 돌아오지 않아 할 수 없이 아버지가 나를 앞세워 찾으러 간 적도 있다. 또 중학교 담임인가 아무튼 어떤 선생님을 남이 보기엔 좀 심각하게 좋아해 부모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기도 했다. 


언니가 노인과 바다를 읽었던 시절로부터 이제 너무 멀리 온듯도 하다. 막연한 막막함과 두려움,그러면서도 떠나지 않던 기대 같은 것, 그런 것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멀리 가버린 어떤 것일까. 십대에 접어든 언니의 아들이 반항으로 우리의 옛날을 되풀이 하는 것, 이것이 인생인가. 내가 허황된 꿈들을 도대체 얼마나 되풀이 해 꾸어야, 인생의 길이의 끝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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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2-02-01 1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테레사님, 우와, 저 오늘 아침부터 이 책 읽기 시작했거든요. 아직 몇장 못 읽었어요. 해파리를 만난 산티아고에 대한 부분까지 읽었거든요. 채 읽기도 전에 이 책에 대한 테레사님의 추억을 읽게 되네요.

테레사님이 언니를 생각하셨듯이 저는 제 여동생 생각이 나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고 있는 제 여동생은, 역시 테레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제가 본 영화를 보고 제가 듣는 음악을 들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의 팝송을 틀어놓고 둘이 열심히 가사를 외우기도 했구요. 저는 재주가 없었지만 동생의 그림 숙제를 대신 해준적도 있어요. 아무도 내 숙제를 대신 해주지 않았는데, 왜 저는 동생의 숙제를 해주기도 한걸까요?


동생은 지금도 여전히, 제가 들려주는 음악을 들어요. 제가 빌려주는 책을 읽구요.
:)

테레사 2012-02-01 1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어느 자매들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군요. 하지만, 저는 언니가 지금 자신의 삶은 제쳐두고 조카에게 매달려 있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자신의 인생을 살라!고 하고 싶은데, ..어쩐지 이건 너무 건방진 것 같고, 또 이런 말이란 게, 사실 무슨 의미가 있는 건지도 자신이 없어져요.

재는재로 2012-02-01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등학생때 읽었을 때는 무슨 내용이 이렀나 노인이 바다가서 물고기 잡고 그 물고기를 ???
하는 내용따위를 왜 읽나 했는데 지금에 와서 다시 읽을려고 하니 막상 손에 펼치기 두렵네요 그때와는 다른 재미를 느낄수 있을지
 

나는, 감상적인 편이다. 자주 눈물이 나고, 쓸데없는 순간에 감정이입을 한다.

지금도 그렇다. 

새해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

지금보다 냉철하고, 지금보다 감상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지혜로워 졌으면 한다.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인지 문득문득 깨닫고, 옷깃을 여몄으면 좋겠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욕심내지 않고, 그러나 꼭 해야 하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피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테드 창이 멋진 소설을 써, 그 책을 내가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실체에 이르는 길을 제대로 읽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주의 시작과 끝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

무엇보다 제대로 된 문장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아름다운 문장과 감동이 있는 글들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멋진 책들을 만나는 행운을 여전히 누렸으면 좋겠다.


가볍고 따뜻한 이불, 새로운 매트리스, 피아노, 사랑스런 친구, 비데,


아 그리고 이 모든 것들보다, 우선적으로 우리 동네 뉴타운 완전 해제 되기를 바라고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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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떠났다는 소식을, 나는 누구보다도 늦게 알았다. 그 다음날이었으니까, 우리식구 중에서는 가장 늦은 셈이다.

내가 유달리 그분과 친분이나 일면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분은 운동권이었고, 한때 대통령 후보자로 거론되며 MBC일밤에 부부가 함께 나온 적이 있었는데, 참 어색하고 수채화같이 희미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고문을 받았고 그래서 몸이 아프다고는 했지만, 겉으로 그리 표가 나지 않아 그저 그러려니 했다.


보건 복지부 장관이었을 당시, 내가 아는 이의 남편이 그의 수행비서였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그저 그랬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인물에게 지역구를 내주어야 해서, 그 지역구 주민들이 모조리 미워보였던 적도 있었지만. 


간간히 남동생에게서, 대통령이 될 만한 분은, 세상에 오로지 그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사를 보면, 국민은 아직 그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그분은 지금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하겠다며 나선 너무도 위기스러운 인물 박근혜씨의 아버지 박정희 시절 긴급조치 9호로 시련을 당한 분이었다.


그리고 고문.

고문이라니, 고문...상상도 할 수 없는 짓거리다.

나는 도무지 그 고문을 설명할, 형용할 어떤 단어도 문장도 찾지 못하겠다. 내가 어떻게 고문을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같이 겁쟁이에 편하게만 살아온, "살아남은 자"가, 도저히 입에 올리지도 못할 짓거리를 당한 그분의 삶을.


나는 다행히도 고문이 은밀하게, 그러나 공공연히 행해지던 시절을 겪지 않았다. 운이, 참 좋았다.

그래 운이라고 하자. 운이라고밖에는 달리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운이 나빠 일제시대에 태어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운이 나빠 군사독재 시절을 견뎌야 했던 선배 운동권들, 운이 나빠 수배되고, 고문받고, 죽어야 했던 이름없거나 이름있는 민주열사들.


그분들이 있었기에, 운이 좋았던 나는, 이렇게, 산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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