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명한 사람은, 어떻게 시간을 활용하는 지 안다. 

나는 그런 축에 들지 못한다.

해서 늘 허둥대거나, 안타까워 하거나, 지치거나 조급하다.

내가 다니던 대학에 대형서점이 들어선지 얼마 안되어서 였나. 구경한답시고 갔다가 카프카의 아포리즘이란 책을 발견했다. 

우리가 천국에서 쫓겨난 것은 너무 성급했기 때문이고, 또 천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은 너무 조급하기 때문이라고 씌어 있었다. 당시 나는, 희곡을 자주 읽곤 하였다. 아마도 나 역시 멋진 희곡을 써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때 읽은 희곡들, 생각이 별로 안난다. 아니다 제목들은 생각이 난다. 다만 어떤 내용이었나가 뚜렷하지 않다. 그땐 달리 뚜렷하게 성공하고 싶단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멋진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해 보면 정말 대책없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목표가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미했다, 내 인생 전체가.

돈을 밝히는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가 된다거나 성공한다거나 하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일부러라도. 

하지만, 얼마나 위선적이었던가.

실은, 멋진 인생이란 말에 이미 내포되어 있는, 그 숨길 수 없었던 욕망의 실체라니.

새해엔 나 자신에게 솔직하기,를 시도해 보자.

숨긴다고 드러나지 않을 것도 아닌데,



그러게, 연민이라는 감정은 도대체 인간의 생존에 어떤 이로운 점이 있어, 이토록 오랫동안, 인간에게 붙어 있는 것일까. 연민 이후로 전진해 본 적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이 엉뚱하고 곤혹스런 감정이, 어떤 의미에서는, 나에게는 소용없는 무언가 같다.

오늘 폐지 줍는 할머니의 90도나 굽은 등을 보았다. 새벽에 버스를 갈아타는 데 문득, 쓰레기가 그득 넘쳐난 휴지통을 보았다, 아저씨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면서 혹시 이곳 담당 아저씨가 아픈 건 아닐까, 아프면 누가 대신 나오나? 갑자기 몸이 안좋아 못나올 경우,하루치 임금은 깎이는 걸까? 그러다가 다음 계약에 불이익이라도 당할 지 모르니 아파도 정말, 쓰러져 의식이 없지 않는한 나와야 하겠지? 그제 읽은 황정은의 소설 속 곡씨 같은 곡씨들은 정말 있겠지? 우엑 메스꺼워질 만큼 남이 먹다 남은 찌꺼기 음식들을 살아지기 위해 먹어야 하는 그런, 운명들....

점심도시락을 먹으면서, 음식의 맛을 음미하라고 했던 어떤 구절이 생각나 꼭꼭, 씹어 먹어본다. 맛이고 뭐고, 이런 것들을 섭취해야 하는 본능때문에 나는, 이렇게 먹는 것일까? 달걀, 콩자반,김치, 현미밥. 과일...왕오디쨈과 커피한잔.

다시 연민이란 감정으로 간다.이 효용가치로 따지면, 내게 정말 불필요하다싶을 정도로 소용없는 감정,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침통해 진다. 어쩔 수 없이 반복되면서도,딱 거기서 멈추고 마는, 그래서 나를 괴롭히기 가장 좋은 소재가 되는,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네가 세상을 바꿀거야? 네가 혁명이라도 하겠단 거야? 


마음이 너무 아파, 그냥 아플 뿐이야. 이 세계의 무작위성과 운명의 임의성, 그리고 평균연령의 상승. 자원의 한계. 모든 인간은 존귀하게 태어났다는 말의 공허함.

그렇다면 왜 폐지줍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있는거야? 왜 곡씨처럼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남의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들이 있는거냐고?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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