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떠났다는 소식을, 나는 누구보다도 늦게 알았다. 그 다음날이었으니까, 우리식구 중에서는 가장 늦은 셈이다.

내가 유달리 그분과 친분이나 일면식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분은 운동권이었고, 한때 대통령 후보자로 거론되며 MBC일밤에 부부가 함께 나온 적이 있었는데, 참 어색하고 수채화같이 희미한 인상이라고 생각했다. 고문을 받았고 그래서 몸이 아프다고는 했지만, 겉으로 그리 표가 나지 않아 그저 그러려니 했다.


보건 복지부 장관이었을 당시, 내가 아는 이의 남편이 그의 수행비서였는데,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기도 했다. 그저 그랬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인물에게 지역구를 내주어야 해서, 그 지역구 주민들이 모조리 미워보였던 적도 있었지만. 


간간히 남동생에게서, 대통령이 될 만한 분은, 세상에 오로지 그분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족사를 보면, 국민은 아직 그를 대통령으로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그분은 지금 한나라당을 위기에서 구하겠다며 나선 너무도 위기스러운 인물 박근혜씨의 아버지 박정희 시절 긴급조치 9호로 시련을 당한 분이었다.


그리고 고문.

고문이라니, 고문...상상도 할 수 없는 짓거리다.

나는 도무지 그 고문을 설명할, 형용할 어떤 단어도 문장도 찾지 못하겠다. 내가 어떻게 고문을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같이 겁쟁이에 편하게만 살아온, "살아남은 자"가, 도저히 입에 올리지도 못할 짓거리를 당한 그분의 삶을.


나는 다행히도 고문이 은밀하게, 그러나 공공연히 행해지던 시절을 겪지 않았다. 운이, 참 좋았다.

그래 운이라고 하자. 운이라고밖에는 달리 이 어처구니 없는 사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

운이 나빠 일제시대에 태어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운이 나빠 군사독재 시절을 견뎌야 했던 선배 운동권들, 운이 나빠 수배되고, 고문받고, 죽어야 했던 이름없거나 이름있는 민주열사들.


그분들이 있었기에, 운이 좋았던 나는, 이렇게, 산다.


민주주의자 김근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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