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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1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인규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자주는 아니지만 꿈속에서 그냥 머물고 싶은 때가 더러 있다. 나오고 싶지 않은데 꼭 그때만 맞추어 오줌이 마렵다든지 아버지의 발소리가 들린다든지 식기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든지 하는 것이다.
노인과 바다를 읽고 난 후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산티아고를 만나거나 소년을 만나지는 않았다. 다만, 한 멋진 남자와 같은 집에 살고 있었고, 그와 연애를 하는 두근두근한 인생을 살고 있었다.
깨고 싶지 않을 정도로 멋진 남자였지만, 그는 어쩐지 어떤 남자 배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현실적이지 않는 꿈을 꾸고 나면 늘 그렇듯, 여전히 이따위 꿈이나 꾸면서 내 인생 대부분을 살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노인과 바다는 나의 언니가 좋아했던 소설이다. 언니는 지금 머나먼 유럽 땅에서 아이와 남편과 씨름하고 있을 것이다. 언니는 노인과 바다를 읽고 먼 바다를 꿈꾸었을 법하기도 하고, 또는 인생이란 바다에서 멋진 무언가를 건져 올렸다 하더라도 그건 한때 잠시일 뿐, 어떤 식으로든 잃게 되기 십상이라는 어린 소녀로서는 다소 버거운 각성을 했을 수도 있다. 어쨌거나, 헤밍웨이를 좋아했다. 왜였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지금도 그럴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지만, 언니의 조건상 지금 모국어로 번역된 헤밍웨이를 읽지 않는 것만은 분명하다.
소녀들은 자신보다 좀 위인 소녀들에게서 자극을 받는 모양이다. 나는 언니가 주로 보던 명화극장이며 팝송이며 심지어 언니가 학교 무용시간에 작품발표용으로 떠 놓은 카세트테입에 담긴 클래식작품으로 처음 영화나 노래, 클래식을 접했더랬다. 뭐 따지고 보면 언니가 첫째였기에 그만큼 누리는 것이 풍부했다. 부모님은 중학교에 입학한 기념으로 지금으로 치면 오디오데크를 사 주었고, 발레를 배우게 했으며 주판학원도 보냈다. 아마 미술에 소질을 보였던 것으로 보아 미술학원도 다녔을 것 같은데 정확하게 기억은 안난다. 말이 난김에 언니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언니는 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거나 너무 호기심이 많았거나 아니면 내가 너무 고지식해서 누구나 지나야 하는 유년시절의 품행이었음에도 내겐 그렇게 보였던 것인지도 모르지만,좀 유별났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 경남의 작은 시골마을에 살고 있던 때 였나보다. 난 국민학교도 아직 안들어갈 정도로 어려서 기억이 안나는데 그 마을에 어느날 서커스단이 공연을 왔다. 아버지는 선생님이었기 때문에 서커스단이 천막을 치고 재주를 부리는 공연장 근처를 얼씬거리는 호기심 많은 학생들을 잡아내거나, 선도하여 집으로 보내야 하는 악역을 맡았으나 그 학생지도 역할을 핑계로 공연장을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다. 그런데 언니의 국민학교 친구들이 엄마에게 언니가 서커스구경하러 천막 속으로 입장했다고 일렀다. 엄마는 서둘러 아버지에게 알렸고 함께 현장으로 뛰어갔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언니는 어느 중년 아줌마 치맛자락을 요령껏 잡고 마치 그 아줌마 딸인양 하며 천막안으로 입장했다는 것. 물론 자유롭게 입장한 아버지 눈에 띄어 그길로 곧바로 집에 돌아와야 했지만 말이다. 이뿐인가? 친구 집에 놀러가 밤이 새도록 돌아오지 않아 할 수 없이 아버지가 나를 앞세워 찾으러 간 적도 있다. 또 중학교 담임인가 아무튼 어떤 선생님을 남이 보기엔 좀 심각하게 좋아해 부모님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기도 했다.
언니가 노인과 바다를 읽었던 시절로부터 이제 너무 멀리 온듯도 하다. 막연한 막막함과 두려움,그러면서도 떠나지 않던 기대 같은 것, 그런 것들이 지금의 우리에게는 멀리 가버린 어떤 것일까. 십대에 접어든 언니의 아들이 반항으로 우리의 옛날을 되풀이 하는 것, 이것이 인생인가. 내가 허황된 꿈들을 도대체 얼마나 되풀이 해 꾸어야, 인생의 길이의 끝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