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잡아라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9
솔 벨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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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민음사 <오늘을 잡아라> 중 167쪽)

이 문장은 다시, 폐부를 찌른다.
그래서 예전에 썼던 페이퍼를 다시 본다....ㅜㅜㅜ

무려14년 전에 쓴 페이퍼다.



<어두운 가로수길>이라니. 얼마나 서정적인가! 먼지가 부옇게 이는 어느 여름날이어도 좋다. 만약 한낮의 지루한 해가 사라진 뒤의 가로수길이라면 열기가 가신 땅거죽으로부터 스멀스멀 어둠은 무한히 피어오를 것이다. 만약 그것이 겨울날 차갑게 식어버린 대지 위라면, 가로수들은 텅빈 주변보다 더 비어버린 제몸의 균형을 맞추며 모질게 서 있을 터이다.



모스크바는 명료한 도시다. 6월의 모스크바가 건조한 대기와 그것보다는 조금 윤택한 태양이 명랑하게 빛나던 도시라면 모스크바의 12월은 화끈하다. 그 맛은 에스프레소의 그것만큼 따끔하지만 결코 불쾌하지 않다. 검고 가는 자작나무가 늘어서 있는 아파트단지는 또 얼마나 소설적인지. 이즈음 정강이까지 빠지는 희디 흰 눈은 깊이를 척도할 수 없다. 우주의 깊이만큼 심오한 느낌을 준다. 프라스펙트 레닌(레닌대로)은 여전히 길게 죽 뻗어 있을 것이며, 유고자빠드나야역 근처에는 피부색이 짙은 콧수명의 남자들과 코끝이 휜 여인들이 추위도 잊고 바구니를 든 채 혹은 좌판에서 물건 값을 흥정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9세기 러시아의 작가 이반 부닌(1870-1953)의 <어두운 가로수길>은, 딱 이 즈음에 집어들기 좋은 “제목”이다.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이 책을 집어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사랑 이야기니 술술 읽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13년에 걸쳐 쓴 단편들은 저마다 사랑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컨대 표제작인 “어두운 가로수 길”은 “모든 게 사라진다고 잊히지는 않아요”라는 문장으로 압축될 것이다. 이 문장은 가혹하리만치 서글픈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마치 얼마 전 마종기 시인의 선집에서 발견한 “전화”라는 시에서 받은 느낌과 닮기도 하였다.




당신이 없는 것을 알기 때문에/전화를 겁니다./신호가 가는 소리/ 당신 방의 책장을 지금 잘게 흔들고 있을 전화 종소리, 수화기를 오래 귀에 대고 많은 전화소리가 당신 방을 완전히 채울 때까지 기다립니다. 그래서 당신이 외출에서 돌아와 문을 열 때 내가 이 구석에서 보낸 모든 전화소리가 당신에게 쏟아져서 그 입술 근처나 가슴 근처를 비벼대고 은근한 소리의 눈으로 당신을 밤새 지켜볼 수 있도록/다시 전화를 겁니다./신호가 가는 소리.(마종기/ “전화” 전문)




어려운 시어를 쓰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 평이한 언어들이 빚어내는 정서는, 사랑의 어떤 측면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약간 아찔함을 느꼈을 정도였다. <어두운 가로수길>에서 부닌이 보여주는 사랑의 모양들도 제각각 사랑의 한 부분들을 건드린다. 오래된 기억으로만 남아있는 첫사랑을 다시 만나는 초로의 남자에게 사랑이란, 죽음 뒤에서라도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며 전쟁터로 떠나는 남자에게 사랑이란, 변심한 애인에게 한발을 날린 사내에게 사랑이란, 연민일 수도 희생일 수도 질투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이란 “삶에서 행복은 없지만 그 삶에서 번갯불 같은 순간들이 있고, 그 순간들로 인해 살아”가는 어떤 것이라는 문장에 우리도 함께 공감하게 된다면 “시간에 대한 희망을 제외하고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라고 묻는 듯 깨달은 듯 던지는 문장은 이렇게 들릴 수도 있다. “우리는 시간과 함께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아닌가요?”라고.


부닌은 러시아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1933) 인물이긴 하지만 그다지 우리나라 독자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나 역시 대학 때 처음 접했던 작가라 거의 잊고 살았다. 비대중적인 비영미권의 작품을 펴낼 생각을 한 출판사(지만지)를 다시 고쳐 보지 않을 수 없다(불행히도 이 책은 현재 인터넷 서점에서 품절이라고 정보가 뜬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책은 작년에 읽었다가 그다지 깊은 인상을 받지 못해 옆에 밀쳐 둔 책이다. 그러다가 얼마전 다시 펴들게 된 것이다. 그 계기는 뜻밖에도 올 6월 손창섭 작가의 죽음이라고 해야겠다. 어느 신문에서 “스스로를 지운 사람”이라고 명명할 정도로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며 살았다는 이력이 눈길을 끌었던 데다 그가 쓴 그 유명한 “잉여인간”을, 실은 정식으로 읽어보지도 않았다는 일종의 죄책감 비슷한 무엇이 내게 있었던 모양이다. 해서 “잉여인간”이 실린 단편집 <비 오는 날>을 읽어보기로 하였다. 손창섭은 작가가 되기 전 일본으로 건너가 중학을 다니는데 이 때 읽은 작가들 중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가 있었다. 작가 소개에 따르면 손창섭은 체호프의 작품 중에 “아뉴쉬까”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아뉴쉬까”라니. 아름답지만 서글픈 사랑이야기인 바로 그 “아뉴쉬까”라니 말이다.


줄거리는 대강 이렇다. 모스크바 대학에 다니는 귀족 청년이 방학 때 부모의 영지로 온다. 이 집에는 안나라고 불리는 사랑스런 소녀가 있다. 이 청춘의 귀족 청년은 하녀인 이 소녀에게 마음이 끌리게 된다. 둘은 눈 내리는 언덕에서 함께 썰매를 탄다.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오면서 청년은 소녀의 귀에다 대고 속삭인다. “아뉴쉬까(안나의 애칭)... 아뉴쉬까...”. 방학이 끝날 무렵 청년은 떠난다. 남은 소녀는 생각한다. 청년과 함께 썰매를 타고 언덕을 내려올 때 귓가에 들려오던 그 소리는 사랑의 속삭임이었던가, 바람소리였던가. “안나....아뉴쉬까...아뉴쉬까...사랑해....”.


나에게 “아뉴쉬까”는 이런 줄거리로 남아있다. 혹시 번역이 되어 있나 찾아보았으나 허사였다. 외국어로 읽었고 소련에서 짧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영어자막과 함께 보았던 기억도 난다. 이렇게 일깨워진 정서는, 한 옆에 밀쳐둔 부닌의 <어두운 가로수 길>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책을 고르는 기준이나 계기는 별의 수만큼이나 다양할 터이지만, 나에게는 신문의 서평일수도, 출판사에서 보내오는 신간알림 메일일수도 또는 술자리에서 옆사람들이 주고받은 한마디 품평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번처럼 한 작가의 죽음과 그 죽음에 연쇄적으로 반응한 일련의 개인적 추억일 수도 있다.


반면 부닌보다 43년 늦게 노벨 문학상을 받은 미국의 작가 솔 벨로의 <오늘을 잡아라>는 한 건방진 남자가 내뱉은 말 때문이다. “솔 벨로 읽어봤어? ...문체란 그런거지.” 영화 <질투는 나의 힘>이란 영화에서 출판사 편집장이란 작자가 부하 직원에게 의기양양하게 한마디 던진다. 특별히 이반 부닌보다 대중적인 면에서 형편이 나아보이진 않는 이 작가는 이렇게 나에게 각인되었다. 문체라..문체라... 영미문학전공자들에게는 익숙할지 모르지만, 그 역시 번역본이 별로 많지 않는 것 같다. 다른 작품이 있을 법하지만, 나에게 그의 책으로는 <오늘을 잡아라>가 처음이었다. 솔직히 제목은 무슨 자기 개발서나 주식 거래 지침서 같다는 느낌을 준다. 예전에 나온 번역서는 “그날을 잡아라”라고 했는데, 좀 뜬금없어 보이기도 한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아마 어느 제목이 더 적절한지 나름의 판단이 설 수도 있겠다.


주인공 윌키(토니 윌헬름의 애칭)는, 한마디로 실패한 인간의 조건은 다 갖추었다. 은퇴한 의사 아버지는 소통불능이고, 하나밖에 없는 누나는 소식을 못 듣고 산지 오래되었다. 얼마 전에 직장에서 쫒겨났으며, 이혼은 해주지 않고 별거중인 아내는 늘 돈을 요구하며 괴롭힌다. 이것이 윌키의 외부 조건이라면 그 자신의 내면은 어떤가? 사가꾼 브로커에게 속아 헐리우드에 갔으나 단역배우조차 되지 못한 채 10년을 허비했다. 늘 켤코 선택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일을 최후에는 선택하고 만다. 이제 마흔 줄을 넘긴 윌키는 자신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잘 알고 있다. 내일은 아직 오지 않았고 어제는 이미 지나갔으니 오늘을 잡을 밖에 도리가 없다. 허나 이런 처지를 자각한다고 해서 나아질 리가 있는 것인가? 실패를 내정한 어리석은 짓이란 걸 잘 알면서도 사기꾼에게 가진 돈 전부를 맡기는 것이 윌키 같은 나약하고 어리석은 이의 숙명일까? 배반당한 걸 깨닫는 눈간 느닷없이 낯선 사람의 장례식 행렬을 마주친다고 하여 달라질 것이 있던가? 그는 실컷 울었고, 눈물은 또 다른 시작의 전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판도라가 가장 마지막으로 남겨두었다던 희망이 보일지는. 인생은 바닥이고, 바닥에서 솟구치기 위해서는 적어도 발구름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자의식은 우리의 삶을 바닥에서 끄집어 내 주는 실제적 도구는 되지 못하는 듯하다. 다만, 도구를 찾아야 할 구실을 주는 정도는 되겠지만. 종국에는 행동만이 변화로 이끄는 열쇠이리라.


단 하룻동안에도 일생을 산 것 같은 날들이 있는 법이다. 윌키가 단 하루동안 뉴욕 브로드웨이 거리를 걸으면서 겪게 되는 일은 결국 우리의 전생애일 수도 있다. 너무 절망적이라 허무감조차 사치로 느껴지는 어떤 날의 ‘오늘’처럼 말이다. 결국 우리는 지나간 어제를 돌이킬 수 없고, 오지 않은 “내일” 때문에 몸달을 필요가 없다. 다만, 오늘을 잡을 밖에. 하지만 이건 너무 뻔한 교훈 같다. 그래도 어쩌란 말인가, 생각만큼 교훈대로 안되는 것이 인생인 것을. “자네에게 고통과 결혼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 그런 사람들이 좀 있거든. 그들은 고통과 결혼해서 꼭 부부처럼 함께 먹고 자고 하지. 그러다가 즐거움을 알게 되면 자기가 간통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가 된다니까. ?”(167쪽) 다만 이렇게 톡쏘는 구절에서조차 위안을 느낄 수밖에. 이 위안은 보편성을 확인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안도 같은 감정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군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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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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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책은 올해의 책 목록에 없는 건가? 왜?왜?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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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명의(아주) 짧은 역사
헨리 지 지음, 홍주연 옮김 / 까치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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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이끌리어, 책을 산 적이 있다.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라는.
지구가 만들어진게 45억년 전이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 인간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이 700만년전이던가? 여튼 그 기나긴 인류의 여정에서 현생 인류가 그리고 현대의 우리라고 불리는 인류까지 기간은 불과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서 아마도 이 책은 인간의 존재론적 한계와 지구, 우주에서 차지하는 너무도 미미한 흔적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며, 마침내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인식하는데까지 이를 것이란 기대를 품게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정치철학자가 쓴 책이었고,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 읽고 팔아버렸다. 나에게 있어 '읽고 팔았다'는 소장할 가치도 , 감흥도, 여운도, 그리고 소중한 인식의 전환도 없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뭐 그렇단 이야기.
그런데..지구생명의 아주 짧은 역사는, 내가 이전의 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에 기대했던 그 무엇을 충족시켜주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고 해야 할까?
읽고 나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를 것이다.
그것은 설명 불가의 어떤 인식, 깨달음 비슷한 어떤 것...그리고 그야말로 하찮은 인간, 호모사피엔스...절멸하고 말 운명...이라는 진실이 주는 그 무엇.
물론 지금은 아니다.
아주 아주 많은 시간이 흘러, 지구가 변하고 그 운명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인간 또한 변하고,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이 우주의 먼지로 사라질 것이라는 지구생명의 역사의 예정된 미래이지만, 지금의 우리는 아니다. 지구 종말은 아주 먼 이야기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반드시 멸종할 것이란 단언은, 얼마나 무시무시한 충격의 일격을 가하는지.
그 이야기를 헨리 지는 아주 아주 축약해서 들려준다. 지구가 어떻게 생겨났고, 요동치며 변화하는 지구에서 생명이 어떻게 근근이 생명을 이어왔는지,
한마디로 그동안 읽어 온 많은 지구이야기, 진화이야기의 축약판이면서, 앞으로 인간의 운명이, 그리고 지구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헨리 지답게 담담하게 들려준다.
이야기꾼답게 속도감 있으면서도 재미까지, 그리고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고고학적, 생물학적 발견까지 무엇보다 참고서적까지 꼼꼼하게 담았다.
물론 결론은 단 하나, 지구 위의 모든 생명은 언젠가는 끝장날 것이다. 지구도 서서히 자신의 생애주기를 다할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야겠지만. 그 모든 인간의 이야기, 흥망성쇠, 욕망들까지도 다 한단층의 희미한 흔적으로 남았다가 ,,마침내 그것조차 사라질 것이다.
그 어떤 뛰어난 예언가들의 그것보다 더 절절하고도 정확한 이 예언은,지금 나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면서, 어쩐지 심오하고도 장엄한 깨달음을 주는 것 같다.

그리고 한동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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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락을 읽을 때 쯤,숨이 막히고 형언하기 어려운 슬픔과 공허함이 엄습하지 않는다면, 이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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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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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 교내는 늘 이런 구호들로 가득했다.
반전, 반핵, 양키 고우홈.
그 말들이 정확하게 역사적,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배우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이 말들이 엄청난 말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입밖으로 이 단어들을 내뱉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다.
어떤 이들은 집회 중에도 혼자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고,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구호를 따라했다.
그건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20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로지 공부만 했던 모범생(?)이던 나에게 그것은 문화적 충격이었고, 인식의 격변이었고, 어른이 되는 신고식 같은 거였다.
그렇게 한 세월이 갔지만, 나는 여전히 집합 속의 한 개체이고, 어리둥절한 어린아이에 불과하고,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반전 반핵을 외치지 못한다.
나는 반전, 반핵의 정신에 찬성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대로에서 큰 소리로 그 구호들을 선창할 만큼 내면화되어 있지 않고,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릴때부터 우리가 늘 보아오던 1,2차 세계대전영화에서와 같이 연합군,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선한 세상의 유일한(나만 그랬던가) 우리편이이라고 믿고 있는 편의 군인이 아니라, 적이라고 알고 있는 독일군, 전쟁을 일으킨 적국의 군인의 이야기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고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하는 지도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18,19,20살 아니 그 이하의 어린 나이에 기성세대의 부추김과 알지 못하는 시대적 분위기, 혹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책임감에서 전쟁터로 보내진 그리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얼마전에 읽은 그들이 지니고 다닌 것들이란 소설(베트남전에 참여한 미군의 이야기)과 어쩌면 같은 궤일까?
전쟁은 엄청난 일상의 동요, 상실, 평온의 증발일 터이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친구를 사귀고, 농담을 하고, 밥을 얻으러 다녀야 하고,잠을 자고, 용변을 봐야 하는 현실이다.
어디서든 인간은 살아야 하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 현재형이다.
아마도 무기가 좀더 현대화되고 살상이 짧고 강렬한 방식으로 바뀌었을지는 몰라도, 몸이 부서지고, 달아나고, 피가 흐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리고 죽음.
영원한 끝, 이 지구상을 다녀간 인간종이 1800억명 정도라고 하는데, 그 1800억분의 1이었던 확률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 먼지가 되는 것

그리고 다시는 복원될 수 없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전쟁속에서 견디기 어려운 여러가지 중 하나가 찢어질 듯한 신음과 고함, 죽어가는 소리, 부상당한 자의 고통스런 숨소리...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냄새..피냄새..상처에서 나는 고름냄새...악취....
인간의 감각이 인내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서는 전장터......

레마르크의 개선문과는 또다른 반전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반전 반핵의 구호를 내 마음속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그 어떤 방식으로도 전쟁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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