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전선 이상 없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67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홍성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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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처음 들어갔을 때, 교내는 늘 이런 구호들로 가득했다.
반전, 반핵, 양키 고우홈.
그 말들이 정확하게 역사적, 사회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배우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이 말들이 엄청난 말임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나는 입밖으로 이 단어들을 내뱉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다.
어떤 이들은 집회 중에도 혼자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며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고,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들이 구호를 따라했다.
그건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20살 아무것도 모르면서 오로지 공부만 했던 모범생(?)이던 나에게 그것은 문화적 충격이었고, 인식의 격변이었고, 어른이 되는 신고식 같은 거였다.
그렇게 한 세월이 갔지만, 나는 여전히 집합 속의 한 개체이고, 어리둥절한 어린아이에 불과하고, 여전히 내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반전 반핵을 외치지 못한다.
나는 반전, 반핵의 정신에 찬성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대로에서 큰 소리로 그 구호들을 선창할 만큼 내면화되어 있지 않고, 여전히 부끄럽고, 여전히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어릴때부터 우리가 늘 보아오던 1,2차 세계대전영화에서와 같이 연합군,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선한 세상의 유일한(나만 그랬던가) 우리편이이라고 믿고 있는 편의 군인이 아니라, 적이라고 알고 있는 독일군, 전쟁을 일으킨 적국의 군인의 이야기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키고 실질적 책임을 져야 하는 지도부의 이야기가 아니다.
18,19,20살 아니 그 이하의 어린 나이에 기성세대의 부추김과 알지 못하는 시대적 분위기, 혹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고향을 지켜야 한다는 당연한 책임감에서 전쟁터로 보내진 그리고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얼마전에 읽은 그들이 지니고 다닌 것들이란 소설(베트남전에 참여한 미군의 이야기)과 어쩌면 같은 궤일까?
전쟁은 엄청난 일상의 동요, 상실, 평온의 증발일 터이지만,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친구를 사귀고, 농담을 하고, 밥을 얻으러 다녀야 하고,잠을 자고, 용변을 봐야 하는 현실이다.
어디서든 인간은 살아야 하니까.
우크라이나 전쟁은 지금 현재형이다.
아마도 무기가 좀더 현대화되고 살상이 짧고 강렬한 방식으로 바뀌었을지는 몰라도, 몸이 부서지고, 달아나고, 피가 흐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그리고 죽음.
영원한 끝, 이 지구상을 다녀간 인간종이 1800억명 정도라고 하는데, 그 1800억분의 1이었던 확률의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 먼지가 되는 것

그리고 다시는 복원될 수 없는 것.
그것이 전쟁이다.


전쟁속에서 견디기 어려운 여러가지 중 하나가 찢어질 듯한 신음과 고함, 죽어가는 소리, 부상당한 자의 고통스런 숨소리...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그리고 냄새..피냄새..상처에서 나는 고름냄새...악취....
인간의 감각이 인내할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서는 전장터......

레마르크의 개선문과는 또다른 반전 소설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반전 반핵의 구호를 내 마음속으로부터 끄집어 내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어떤 명분으로도, 그 어떤 방식으로도 전쟁은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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