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5대 비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고현동 외 옮김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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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를 읽겠다면 여러모로 이 번역이 낫겠다 싶은데 리뷰 하나 없는 게 안타까워서 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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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 소설을 말하다 내일을 여는 지식 어문 43
박광희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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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이‘ 소설을 말하다,가 아니라 커트 보니것‘의‘ 소설을 말하다. 커트 보니것이 직접 말하는 소설에 대한 이야긴 줄. 물론, 커트 보니것‘의‘ 소설을 말하다여도 커트 보니것에 관한 것이라면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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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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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은 어느 특정한 공간, 즉 지하실 안의 입자이자 동시에 만콥스키 철사를 통해 하나의 파도가 된다. 나는 파(波)가 되어 여기 아닌 다른 곳에 있을 수 있고, 여기 있지 않은 누군가도 나와 함께 여기 있을 수 있다.
여기 이 지하실에 나의 자주색 관광버스, 손잡이를 크롬으로 도금한 버스가 있음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알베르트 기온도 그가 지금 어떤 영화 속에 있는지 말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작업은 예술이다.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 내가 어디 있는지 모르더라도 나를 생각하리라는, 어쩌면 나는 있지도 않은 결혼사진 속의, 왼쪽 윗니가 빠진 노인일 수도 있다. 동시에 있지도 않은 학교 운동장에 있는 빼빼 마른 어린아이일 수도 있다


여기 이 지하실에 나의 자주색 관광버스, 손잡이를 크롬으로 도금한 버스가 있음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알베르트 기온도 그가 지금 어떤 영화 속에 있는지 말할 수 없으므로 우리의 작업은 예술이다.


241-142쪽에 걸쳐 있는 문장이다.


우리는 누구나 '만콥스키 철사'를 머리 위에 갖고 있다. 

그건 우리가 처한 저마다의 현실, 저마다의 시공간.


우리 몸은 보이지 않는 입자와 파동이다. 

그래서 있지도 않은 결혼사진 속에도 윗니 빠진 노인으로 등장할 수 있고

있지도 않은 학교 운동장에 빼빼 마른 어린아이로 머물 수 있다.


우리는 자그마치, 그런 존재들이다. 


만콥스키 "철사는 다른 철사를 건드리지 않는다".(240p)

어느 "시공간에서든 저마다의 영화가 상영되는 중이"다.(240p)


저마다의 영화를 상영하면서

다른 철사를 건드리지 않기-.


자신의 만콥스키 철사를 좀, 잘 쓰기-.


다른 철사를 건드리지는 말고,

파동으로 진동을 주기.


그렇게 영향을 주고 받고

연대하기.


소설 속에서 시종 레오를 괴롭히는 배고픈 천사가 

우릴 잡아먹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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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 트리스탄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
토마스 만 지음, 안삼환 외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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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개인의 운명과 동시대인들의 일반적 운명 사이에 은밀한 유사성 내지는 일치하는 점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왜 예술작품에 명성을 부여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중략)

그들이 찬사를 보내는 진정한 이유는 

눈금으로 잴 수 없는 어떤 것, 바로 공감 때문이다.



그의 평소 주장에 의하면, 모든 위대한 재능에는 품위를 향한 자연스러운 갈망과 욕구가 천부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모든 작가적 발전은 회의와 반어라는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어 품위를 향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반항적으로 기어오르는 상승의 도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431p)

베니스에서의 죽음.


규율과 품위의 수호가 창조의 근간이었던 아센바흐는 소년을 연모하면서 규율과 품위를 스스로 깨뜨리는 인물로 변모한다

그가 베니스로 떠나면서 품었던

자신의 창조에 결핍되었다고 느낀 것이 결국은 탈도덕이었던 걸까.


아니, 

그 어떤 가시적인 탈선이나 일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소년에게 단 한 마디, 말도 걸어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을 탈도덕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가 규율이나 품위를 저버렸다고 할 수 있을까.


소년에 품는 연정이 없는 상태로

창조란 게 가능은 한 걸까.


그에게 소년은 아름다웠을 뿐이다.

'美'소년이었을 뿐이다.


창조는 죽었다 깨도 부인 못한다.


'아름다움()'을 좇는 작업임을.


그 가시적 형태가 협소한 인간의 눈에 

실제로 아름답거나,

아름답지 않거나


그건 중요하지 않다.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아센바흐는,

'가련한 사람'이란 소설을 저렇게 쓰고

자신이 '가련한 사람'이 되었다.


무기력과 패덕 때문에, 그리고 윤리적인 불신 때문에 

자기 아내를 애송이의 품속으로 떠다밀고,

마음속 깊숙이에서 비열한 행동을 저질러도 된다고 믿으면서

자시느이 유별난 운명을 만들어가는 나약하고 어리석은 건달이...


자신이 창조한 인물 되기.


어쩌면 작가의 출발점이 도착점이 그곳일 지도.

그의 평소 주장에 의하면, 모든 위대한 재능에는 품위를 향한 자연스러운 갈망과 욕구가 천부적으로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모든 작가적 발전은 회의와 반어라는 온갖 장애물을 뛰어넘어 품위를 향해 의식적으로, 그리고 반항적으로 기어오르는 상승의 도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 P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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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위대한 강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진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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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가능한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히,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의 욕망이 닿지 않게, 일은 다 일어났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이 좌절을 받아들이고 그로써 숙명에 전율해야 한다]


이 당연한 말을 이제껏 한 사람이 없어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


소설은 하지 않은, 혹은 하지 못한 좌절을 연습하는 공간이다.


나는,

좌절다운 좌절을 언제 했던가.


오늘 내가 한 좌절은 좌절다운 것인가.

그렇다면 소설을 눈여겨 보리라.


누군가의 소설에 그 좌절이 등장할 테니.


그런 좌절만 할 수 있다면

나의 매일이 좌절이라 해도 웃으며 좌절하리.


전율할... 나의 숙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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