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존재론이 도착했다!
내용물이 새 나가지 못하게 비닐로 싼 센스. ^^
텍스트가 꽉 찬 책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비닐을 뜯기도 머뭇거려진다는.
언어 존재론과 더불어
앤드류 포터의 <상상 속의 삶>부터 읽어볼 참이다.
어떤 책을 주문했는지 알면서
왜 책박스를 열 때는 설레는 걸까.
사실은, 솔직히 말해 그새 까먹었다.
사나흘이면 책이 오는데-미국까지, 참 놀라운 일이다. 알라딘 만세다!-
그새 뭘 주문했는지 잊는다.
책을 하나 집어들 때마다, "아, 맞다. 이 책." 이런다.
그럴 때면 얼마나 즐거운지.
책마다 다른 얼굴, 다른 속내.
갈피를 넘길 때면 공기 중에 흩어지는 새책 냄새.
그리고 또 한국 냄새.
거짓말 아니다.
그런 게 난다.
갈피마다 배어 있을 한국의 공기 내음.
이 책 박스를 쌀 때도 기계를 쓸까?
아니지 않을까?
난 무지하게 아날로그적으로 생각한다.
누군가가 손에 목록 종이 하나를 들고
눈앞에 쌓인 책 중에서 해당되는 걸로 골라든다.
그리고 박스에 차곡차곡 담는다.
주문자 이름을 본다.
내 이름이다.
이 사람, 또 책 샀네...
같은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도 해줄까.
그렇게 담아서 테입으로 잘 봉하고 트럭에 싣는다.
난 그렇다고 믿고 싶다.
그래서 책 표지에 어린, 책 박스에 어린 누군가의 체온을 감지하고 싶다.
책은 그런 거다.
누가 누구를 위해 짓고, 쓰고, 싸고, 보내고...
난 그런 박스를 오늘 내 방안에서 연다.
읽은 책보다 읽지 못 하는 책이 더 많은데도
계속 책을 사는 이유.
사람 만나는 일보다
책 만나는 일이 더 설레는 이유.
그건 나만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