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 열린책들 세계문학 6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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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2년여 간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다. 1년에 많아야 2-3권 쯤 읽었나 보다. 읽고 나도 뭘 읽었는지조차 모를 정도이다. 물론 재미는커녕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소설 읽기를 중단한 듯하다. 아니, 그냥 읽기 싫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겠다. 하지만 와중에 명작이라는 소설들은 계속 사재기를 하고 있었다.

 

2013년 1월 10일에도 역시나 습관 차 알라딘 중고서점 신림점에 들렀다. 콜렉션하는 책이 들어왔나 하고 둘러본 것이다. 한 주에 한 두 번 정도는 내가 원하는 아이템을 건지곤 한다. 이날도 그랬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소설은 좀처럼 읽지 않지만 수집은 꾸준히 하는 편이라 유럽 소설 코너에 자주 기웃거린다. 그러다가 열린책들의 미스터노 세계문학 시리즈 두 작품을 발견한 것이다. 체홉의 단편선과 까라마조프의형제들 2권(1권은 그 다음날 구매).

 

10일 날 알라딘에 들러 책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집에서 나올 때 책을 챙겨 오는 걸 깜빡했기 때문. 버스에서 읽을 책을 꺼낼 순간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던 것이다. 크로스백을 갖고 나오면서 백팩에 있던 문고본을 옮겨 넣는 다는 걸 잊었던 모양이다.

 

지하철을 탔을 때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알라딘에서 구매한 소설을 읽는 것 외에는 갖고 있는 책이 없으니. 뭐, 소설을 읽지 않고 멀뚱하게 가는 것 보다야 10배 쯤 낫다. 휴대폰 갖고 노는 것 보다는 2배 쯤 유익하고. 분량 상 비교해 보니, 딱 결정이 나 있었다. 체홉 단편선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3)을 보기로 했다. 단편집이라 짧은 호흡의 작품들 위주로.

 

이 책은 내가 읽는 첫 체홉 작품이다. 그가 어떤 소설들을 썼고 또 어떤 스타일의 작품을 쓰는 작가인지 전혀 몰랐다. 아는 것이라곤 체홉이라는 작가의 유명세 정도. 그래서 아주 오래 전 고전읽기 모임의 주제 도서였다는 사실 뿐. 당시 소설은 읽기 싫었기에 책은 사지 않고 모임도 패스했다. 그러하기에 책은 진작에 구입했어야 했다. 많이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 체홉을 만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그리고 새 책이 3200원 이라니, 얼마나 착한 가격인가!

 

어쨌든 신림역을 출발함과 동시에 펴든 첫 번째 단편이 「어느 여인의 이야기」였다. 전철에 그날따라 떠드는 인간들이 많아 읽는데 집중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러시아 사람 이름들은 왜 그렇게 길고 기억하기 어려운지. 그냥 데면데면 글자들을 읽고 줄거리를 대충 파악해 가며 읽고 있었다. 극히 짧은 분량(47면~51면)밖에 안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쯤에 이르니 처음 상황을 도저히 기억할 수 없는 거다. 다시 집중해서 처음부터 읽어야 했다.

 

아, 그런데 당산역 부근을 지날 때 쯤, 줄거리를 완전히 파악하며 단편을 다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뭐시냐.....꽤 오래 전에 키냐르의 <혀 끝에서 멤도는 이름>을 읽은 직후의 느낌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직관적으로 느껴지지만 말할 수 없는 뭔가로 인해 한 동안 멍 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3개의 역이 그냥 지나가 있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몰랐다. 내가 어디 있고, 뭐 하러 가는지 까맣게 잊고, 오로지 ‘삶’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다.

 

그리고는 심히 불편했다. 나만 홀로 멈춰 버린 듯한 삶의 실체를 마주하는 느낌 때문에. 급기야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을 위해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지’에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 삶의 비루함 때문에 속이 울렁거렸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간신히 참으며 목적지에 도달할 때까지 그냥 무참히 서 있었다. 손에 든 책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체홉의 소설은 그렇게 나에게 왔다. 단 다섯 페이지만을 읽고 나는 그가 천재 작가임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아주 심플한 이야기 속에 어떻게 삶의 본질적 단면을 담담히 담아 낼 수 있는지 놀랍고 놀라웠다. 평이한 이야기에 삶의 페이소스를 얹는 것은 아무 작가나 할 수 없는 재능이다.

 

이날 집에 와서 단편 몇 개를 더 읽어 봤지만 역시나 명불허전이었다. 「농담」과 「쉿」을 읽고 나서는 작가의 유머와 기지 그리고 풍자의 극한을 맛볼 수 있었다. 정말 그는 미시적인 이야기로도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풍자를 능숙하게 플롯에 담아 낼 줄 아는 소설가 중의 소설가였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본 직후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은 모두 펜이 아닌 막대기로 쓴 것처럼 여겨진다.’는 고리키의 전언이 내가 하고 싶은 지점을 명확히 짚어 줬다. 체홉의 단편집을 읽고 나니, 내가 전에 그리도 열독했던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들이 그렇게도 초라하게 여겨지는 거다. (뭐, 이상문학상 수상작뿐이겠는가)

 

소설 읽기가 따분해 질 때 만난 체홉의 단편들은 소설 읽기의 재미를 다시 발견하게 해 주었고, 단편 소설의 매력을 다시금 일깨워주기 충분했다. 그의 작품을 읽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의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 준다. 그래서 돈이 제일이라는 이 시대에 적어도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갖는 가치를 생각하며 살 수 있게 된다.

 

[덧]

* 이 리뷰는 지난 1월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을 읽고 노트에 써 놓은 글을 옮긴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과는 두어 달 정도의 시간 차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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