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체홉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열린책들, 2005)을 매우 인상깊게 읽었다. 지하철 안에서 멍하니 그냥 가는 것보단 나은 것 같아 읽기 시작한 소설집. 작년과 올해 통틀어서 유일하게 읽은 소설집이다. 단언컨대 내가 올 해 다시 소설책을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해 준 원동력은 바로 체홉의 이 소설집이다.

 

 

지하철에서 단 1편의 작품, 그것도 5페이지에 불과한 소설을 읽었지만 정신적 감흥은 꽤 오래갔다. 그가 단편소설의 천재 작가임을 단박에 알 수 있는 그런 작품들이었다. 소설에서 나에게 이런 정도의 포스를 느끼게 한 건 키냐르의 <은밀한 생> 이후 처음이었다.

 

체홉의 소설들을 얼마나 재밌게 읽었던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읽은 후 감동은 더 말해서 뭣하랴. 체홉의 유머 단편집도 있어 찾아 봤는데, 그건 또 얼마나 웃기던지. 작품들을 읽으며 찬탄해마지 않았다.

 

그의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체홉은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이다. 그는 우리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예술가이다."라는 수전 손택의 말이 계속 머리를 멤돌게 한다. 정말 고개가 끄덕여지며, '암, 그의 작품을 읽으면 정신적으로 성숙해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도 그럴것이, 간결한 문체 속에 녹아 있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유머와 위트 이면에 '인간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고 짧은 이야기 속에서 체홉이 잡아 내는 인간에 대한 통찰은 놀라울 정도이다. 그래서 그의 단편들을 읽으면 내가 정신적으로 성숙해 지는 느낌이 마구 들게 된다.

 

그런데, 어제부터 '정신이 성숙한다'는 말이 계속 생각나는 거다. 그러면서 의문점이 계속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정신이 성숙한다는 게 도채체 어떤 의미일까?'라는 물음. 그리고 여기에 완전히 사로잡혀 버렸다. 걸을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사우나에서도, 도무지 생각을 멈출수가 없다. 조금만 짬이 나면 이 생각이 튀어나온다.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정신이 성숙해진다'는 게 아주 이상한 표현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당연한 것도 자꾸 생각하면 이상하게 보이는 것처럼, 내가 미쳐가고 있는 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긴했다.

 

하지만 분명해 보였던 건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는 명제였다. 헤겔이 말위에 탄 나폴레옹을 처음 보고 '저기 절대정신이 있다'고 외친 것처럼 정신은 있는 것이지 성숙하는 건 아니다. 마찬가지 실례로 '시대 정신'이 있는 것이지, '시대 정신'이 성숙하는 건 아니지 않는가.

 

내친김에 더 나아가 보기로 하자.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인간이 정신적인 존재라는 건 확실해 보인다. 어떤 이상을 추구하고, 소설을 즐기는 면을 보면 말이다. 더군다나 먼 옛날부터 형이상학이라는 이론을 정초해 낸 것을 보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어떤 고귀한 능력'이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천부인권 사상'이라는 것도 있지 않나.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불가침(남에게 침해받지 않을)의 기본적인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는 사상 말이다. 생명권, 자유권, 평등권과 같은 기본권 등등.

 

그러니까 인간의 '정신'은 '천부인권 사상'처럼 인간이면 누구나 갖고 태어나는 고귀한 능력이다. 그렇다면 분명해 진다. 천부인권이 성숙한다? 이건 너무 이상하고 말이 되지 않는다. 뭐가 성숙하는가? 천부인권은 성숙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드러나는 정도에 있다. 사회의 발전 상황에 따라 완전히 드러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단지 각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잘 발현되지 못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기쁘게도, 나의 이런 생각은 약 200년 전 혜강(1783~1877) 최한기 선생의 철학에 닿아있다. 혜강은 자신의 기(氣)철학을 펼치면서 아주 명쾌하고도 설득력 있는 설(說)을 내 놓았다. 그게 바로 기일분수(氣一分殊)론이다. (사실 기일분수론은 거슬러 올라가면 서경덕 임성주 등의 기철학자에게서도 볼 수 있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복잡하니, 뼈대만 보도록 하자. 상황을 현대적으로 설정해 보면 이렇다. 다섯 개의 물이 든 비커에 각각 투명한 구슬을 넣는다. (순서대로 1번부터 5번까지) 그리고 1번을 제외하고 2번 비이커부터 먹물을 단계적으로 떨어뜨린다. 마지막 5번 비커의 구슬이 안보일때까지.

 

그러면 다섯 개의 비커는 처음 맑고 투명한 비커에 담긴 비커부터 마지막 5번 비커까지 먹물의 농도에 따라 배열된다. 1번 비커는 아주 투명하여  구슬이 선명하게 보인다. 2번 비커부터 4번 비커까지는 먹물의 탁함 때문에 구슬이 선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보인다. 4번 비커는 잘 안보이지만 5번 비커와 비교하면 그래도 비커에 구슬이 담겨져 있는 형태는 볼 수 있다. 5번 비커는 물이 너무 시커멓게 되서 구슬조차 볼 수 없다.

 

혜강 선생의 설명에 따라 해석해 보면, 여기서 구슬은 인간 정신이고 먹물의 탁함 정도는 개인의 기질 차이다. 1번 비커는 기질에 나쁜 것이 전혀 섞이지 않아 본연의 인간 정신이 모두 발현되는 예이다. 그에 비해 5번 비커의 상황은 기질이 너무도 탁하여 인간 본연의 정신이 하나도 드러나지 못하는 예이다. 2번부터 4번 비커의 상황은 기질의 탁함 정도에 따라 인간 정신이 발현되는 정도가 다른 예들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단지 개인의 기질에 따라 단계별로 드러나는 정도가 다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인간의 정신이 성숙한다'는 생각을 문제의식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서양 사상에 기반한 지성의 산물 때문인 듯하다. 베르그손이 말한대로(<창조적 진화> pp305-306) 지성은 항상 지성과 맞아 떨어지는 '어떤 느낌'을 찾는다.

 

그 '어떤 느낌'이 정신이 될 때 우리의 지성은 정신에게 명백한 공간 표상을 암시해 준다. '성숙'은 당연히 '미성숙'을 전제한다. 미성숙과 성숙의 이 간극, 다시 말해 정신은 단번에 공간을 획득하고 그 속에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일단 공간의 형식을 소유한 정신은 우리의 필요에 따라 개념을 재단한다. 그러하기에 '정신이 성숙한다'는 이 비유는 지성에게 너무도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밖에 없게 된다.

 

하지만 위에서 지적했다시피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정신을 공간적으로 구획할 수도 없거니와 이로부터 확장(또는 연장)되는 인격화는 더욱 문제점을 심화시키기 때문. 다시 강조하지만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 오로지 발현될 뿐이다.

 

그런 고로 우리가 문학 작품들을 읽고 감동을 느끼는 행위는 우리의 정신이 성숙해 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외물에 휘둘려 드러나지 않았던 고귀한 정신이 비로소 문학을 만나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는 과정인 것이다.

 

 

 

덧.

1. 그럴듯한 말일수록 의심해 보는 깜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게 되는... 설날의 깊어가는 밤이다.

2. 하반부에서 베르그손의 <창조적 진화>(아카넷, 2005) pp305-306 부분을 나름 이해하여 논의 전개 과정에 적용시켜 봤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쓴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 번역본이 너무 좋지 않아 '지성성과 물질성'부분을 10번 이상 읽었는데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정말 이해 할 수 없을 정도의 비문이 넘쳐났다. 본문에 해석된 베르그손의 이론이 오독이라면, 이는 순전히 번역자(번역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음)때문이다. 나는 나름대로 이해하기 위해 10번 이상 읽고 고 박홍규 교수의 <창조적 진화>강독도 참고 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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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4-02-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Yamoo 님 덕분에 저 책 ..장바구니에 바로 넣었습니다..~~

"정신은 성숙할 수 없다..오로지 발현될 뿐이다.."

자주 꺼내보게 될 것 같은 문장입니다

yamoo 2014-02-03 17:11   좋아요 0 | URL
새벽숲길님 반갑습니다!

혹시 체홉의 소설을 아직 만나지 못하셨다면 이 기회에 읽어보심 좋을 듯싶습니다. 저는 재작년에 읽을 기회가 있었습니다만, 일 때문에 읽지 못하다가 몇일 전에야 읽게 되었습니다. 늦게 만났지만 그래도 지금쯤이라 안도됩니다^^

페이퍼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페크pek0501 2014-02-02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홉의 작품에 반하셨군요? 행복한 일입니다.
저도 어떤 작품에 매료될 때마다 저의 행복지수가 올라가는 것만 같아요.

"인간의 정신은 성숙하는 게 아니다."
- 아, 어려워라...
생각해 보겠습니다. ^^

yamoo 2014-02-03 17:13   좋아요 0 | URL
네^^ 반했어요.ㅎ 그쵸, 즐거운 일입니다. 앞으로 체홉의 작품이 번역되면 낼름 사 볼 예정입니다..ㅎ

흠...생각해 보시고, 나름 답을 내시면 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