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학자들은 매우 잘난 척 한다”
나는 이 문장을 논리학 교재 연습문제에서 처음 대했다. 학부 논리학 수업시간이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당사각형에 관한 문제였다. 어떤 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문장은 AEIO 중 I명제로서 일명 특징긍정 명제라는 사실만 또렷이 기억한다.
그런데, 당시 이 문장을 대하면서 떠올린 사람이 도올 김용옥 이었다. 잘난 척 하면 알아주는 사람. 자화자찬의 1인자. 그때 내가 바로 떠올리는 도올의 이미지였다. 뭐, 지금도 이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후 도올보다 더한 학자들이 있다는 사실에 도올은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옛 생각을 하게 된 건, 다름 아닌 지젝 때문이다. 내가 한 동안 참석하지 못했고, 지금도 여전히 참석하고 있지 못하는 세미나에서 지젝의 <시차적 관점> 읽기가 한창이다. 주말에 이 세미나에 참석 중인 친한 후배를 만났는데, 후배의 말에 따르면 진도가 중간 정도 나갔단다.
내가 지젝 세미나에서 같이 읽은 책이라곤 <까다로운 주체>와 <신체없는 기관>이 유일하다. 나머지 책들은 전부 참석을 하지 못했고, 읽지도, 책을 사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번역 때문에 신경질이 무지 많이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 인지 이 책을 사기 위해서 알라딘에 들어와 검색을 했다. 그랬더니 로쟈님의 페이퍼 중 한 대목이 책 서평 맨 위에 올라와 있다.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1989) <부정적인 것과 함께 머물기>(1993) <까다로운 주체>(1999)의 뒤를 잇는 주저이며, 스스로 대작(Magnum Opus)라고 칭한 대표적인 저술이다.”
‘스스로 대작이라고 칭한 대표적인 저술’이라는 표현에 빵~ 터졌다.ㅋㅋ 와~~지젝도 이제 자화자찬을 늘어놓는 학자들의 대열에 합류한 셈인가. 하기사, 800페이지가 넘는 책인데, 오죽하려나..
이 책에서는 지젝이 뇌과학의 최신성과와 헤겔-라깡주의를 연결시키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다는데, 아...지젝은 지젝거리지 않는 곳이 없구나. 역시, 도올과 같은 류인가?! 철학자이면서 넘보지 않는 영역이 없으니.... 와~ 자기 자랑질까지 닮아 있다. 하하~ 그런데, 자기 철학에 대한 저런 확신을 보면 그 포스가 왠지 쇼펜하워에 근접하는 것 같다.
자화자찬의 1인자 쇼펜하워
철학자 아니, 전 세계의 학자 중에서 쇼펜하워만큼 잘난 척을 심하게 한 학자는 거의 없는 듯하다. 뭐, 고 양주동 박사는 우주보라고 하고, 이어령 교수는 그보다 한 술 더 떴다고 하지만 그래도 쇼펜하워만큼 확신에 찬 자기 자랑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아주 진지한 학술서로서의 주저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다가 다음과 같이 써 놨다면 게임 끝이라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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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야 완성된 나의 저서를 동시대인에게나 내나라 동포에게가 아니라 인류에게 내 놓으며, 그것이 그들에게 결코 무가치한 것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무릇 좋은 것의 운명은 언제나 그러하듯이, 비록 그 가치가 후세에 가서야 비로소 인정을 받게 된다하더라도 말이다. 말하자마면 나의 두뇌가 거의 내 뜻에 거역하다시피 하면서 오랜 생애를 통해 쉴 새 없이 자신의 작업에 전념해 온 것은, 일시적인 환상에 사로잡혀 덧없이 사라져 가는 동시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을유문화사본 ,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P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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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워는 이렇게 서문에서 자기 책의 가치를 ‘인류’까지 동원하며 자랑질하고 있다. 서문에는 자기 책이 너무도 독창적이어서 이 책을 읽기 위한 방법도 자세히 서술해 놓았는데, 자신의 천재적인 철학을 제대로 이해하기위해서는 자기가 가르쳐 주는 방법대로 읽어야 자신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있단다.
이 지나친 자기 자랑질 때문에 그는 베를린 대학의 교수 자격 심사에서도 탈락했다. 쇼펜하워는 1819년 베를린 대학에 제출한 자기소개서(교수임용 이력서)에서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와 동일한 논조로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자기는 어렸을 때부터 너무 총명해서, 외국어(프랑스어)를 금새 배워 자신의 모국어까지 까먹을 정도였고, 갖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학문에 정진해서 괴테에게 까지 인정받았다고 쓰고 있다(물론 이건 사실이다). 여기까지였으면 좋았을 텐데 한 발 더 나아가 괴테의 색채론보다 자신의 색채론이 더 뛰어나다고 확신한다면서, 비슷한 논조로 블러블러 자랑질 한 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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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오직 배우고 싶은 욕구에만 사로잡혀 있던 나의 심경에도 변화가 생겨 앞으로는 남을 가르치고 싶은 욕구를 지니게 되었다. 나의 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지금 여기 베를린 대학의 영광스러운 철학과에 자리를 신청한 것이다.” (집문당 본 p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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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끝냈다.
나는 천재이고 지금 가르치고 싶은 열기에 불타고 있으니, 당연히 나에게 교수 자리를 얼른 확보해 달라는 뉘앙스다. 어떤 학자가 저런 식으로 자기소개서를 쓸까? 대단한 쇼펜하워다. 이런 자화자찬의 자기소개서를 보는 베를린 대학의 교수들의 심정을 알만했다. (그래도 나중에 교수로 임용되긴 했다. 그래서 자기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헤겔과 동시 간에 강의를 개설했지만 수강생은 달랑 1명 이었다나..ㅎ)
하지만 그가 천재였던 건 분명해 보인다. 괴테가 쇼펜하워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의 모친에게 “당신은 천재 아들을 두었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라고 상찬할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쇼펜하워는 자기 철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다른 에세이에서도 “내 책 첫마디만 읽어보아도 내 책의 위대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쓸 정도이니.
아, 진짜 징할 정도의 자기 자랑이다. 그의 ‘천재론’에 대한 에세이에서도 천재는 곧 쇼펜하워 자신을 가리키는 언어로 가득 차 있다.
또한 시기심도 심했다. 쇼펜하워는 자신의 철학에서 모든 소유와 명예 같은 것은 배제해야 될 무가치한 것이라고 뻔질나게 주장했다. 하지만 그 자신은 이름을 날리지 못해서 안달하고 번민해야 했다. 드디어 말년에 자기 저서가 독일과 그 이웃나라에 두루 읽히며 대학 강단에서까지 자기 철학이 강의 되고 있다는 기사를 보자, 자기 기사들만 스크랩해서 자랑질을 일삼았다고 한다. 정말 징그러울 정도의 자화자찬이다.
그래도 그 자신이 예언한 것처럼 쇼펜하워는 이 책을 출간한 이후에 정말 유명해졌다. 괴테로부터의 인정과 니체에 의해 재해석된 쇼펜하워는 이후 반이성을 대변하는 철학의 중조로서 칭송되고 있으니, 사람의 삶이란 참 요지경이다. (흠, 그러고 보니 쇼펜하워를 칭송한 니체도 잘난척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철학자군~)
여러모로 재미있고 기이한 철학자다. 하지만 쇼펜하워의 철학책은 의외로 평이하다. 관심있는 분들은 일독하면 좋을 듯하다. 특히 <쇼펜하워 인생론>이 대중적으로 널리 성공했다고 전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