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에 봤던 뮤지컬인데, 생각이 나서 기록해 둔다.
내가 생전 처음 소극장에서 연극이라는 것을 관람한 것은 작년 8월 초였다. 무대가 있고 배우가 있으며 막이 있는 살아 숨쉬는 희곡을 본 것이 처음이었다. 배우들이 바로 내 눈앞에서 리얼한 연기를 펼치는 광경이 사뭇 충격으로 다가왔다. ‘아~ 이래서 연극이라는 것을 관람하는 구나’하고 생각했다. 영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현장감과 생동감이 전해져 왔다.
함께 연극을 관람했던 지인이, 생전처음으로 연극이라는 것을 봤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못하시면서 신기한 듯 쳐다보았다. 그로부터 이 주일 뒤, 그분으로부터 좋은 공연이 있으니 같이 보러가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다. 선약이 있었지만 선약을 조정하여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공연의 실체는 뮤지컬 이었다. 내가 생전 처음 소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했다는 말에 그분이 나를 염두해 두고서 이 뮤지컬에 초대한 모양이다. 보고 난 지금 그 분에게 정말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정말 재밌게 봤고, 돈 아깝지 않은 알찬 뮤지컬이었다.
뮤지컬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것은 아니다. 대학 1학년 때 KFC를 하도 많이 먹어서였는지, 그 회사의 본사로부터 뮤지컬 티켓이 2장 선물로 배송되어 왔다. 많이 팔아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그 뮤지컬이 윤석화 주연의 <아가씨와 건달들>이었는데, 여자친구와 같이 본 최초의 뮤지컬 이었다. 그땐 공짜표라서 그런지 단지 재밌었다는 느낌만 있었다. 하지만 입장료가 얼마인지 알고나서는, 내 사전에 입장료를 내고 뮤지컬을 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다짐했었다.
상당한 시간이 흘러 2번째로 본 뮤지컬은 결론적으로 상당히 재밌었고, 충분히 입장료를 지불하고서도 볼 가치가 있음을 느꼈다. 사전 정보 없이,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본 뮤지컬 이었기에 더욱 재밌었는지도 모른다.
대학로 SM아트홀에서 오후 4시 30분에 본 <스페셜 레터>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선전 팜플렛을 100퍼센트 실현한 뮤지컬이었다는 점이다. ‘본격 명랑 뮤지컬’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공연은 웃기고 활기찬 에너지를 느끼기에 충분했고, ‘당분간 이런 뮤지컬은 없다’는 카피가 거짓이 아님을 입증한 뮤지컬이었다.
현 뮤지컬 시장이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를 이룬다고 하는데, 뮤지컬 시장에 전혀 문외한인 나와같은 사람에게는 별로 중요한 정보가 아니다. 대세건 아니 건 오늘 본 뮤지컬은 정말 웃기고, 재밌고, 씁쓸했다.
웃기고 재밌었던 이유는 배우들이 하나같이 개성강한 캐릭터들의 역할을 아주 잘 소화했다는 점이다. 씁쓸했던 것은 군대시절의 똑같은 상황과 아무개 병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뮤지컬은 남자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는 군대의 취사병에 대한 이야기를 기발한 구성과 역동적인 안무 그리고 적절한 노래로 풀어낸 작품이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얘기가 회자되고 있지만, 이 뮤지컬에서의 축구장면은 가장 파워풀하고 신나는 장면 중의 하나였다. 이 부분에서 여자분들의 즐거운 반응은 거의 최고였던 것 같다.^^
여자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얘기를, 힘찬 안무와 역동적인 음악으로 되살려내어 여성 관객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 낸 것은 이 뮤지컬의 연출력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이 그렇게 시종일관 재밌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순전히 캐릭터들의 힘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개인적인 경험상, 이런 뻔한 이야기가 재미있을려면 캐릭터들이 대표성을 가져야 하며, 그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가 완벽히 그 역을 소화해 내야한다. 뮤지컬은 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우선 캐릭터들이 군대에서 누구나 한 명쯤은 있는 캐릭터들이다. 얼빵한 신병, 신병 때문에 갈굼당하는 일병, 꺽였지만 여전히 한탕까리서 자유롭지 못한 상병, 그리고 만고의 병장과 병장킬러 하사관. 거기다가 독특한 성격을 가진 캐릭터 설정까지. 군대 생각이 새록새록 나서 씁슬할 정도였다.
군대이야기뿐만 아니라 군대에 간 친구를 매개로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두 커플의 이야기도 재밌었다.
결론적으로 <스페셜 레터>는 매우 잘 만들어진 뮤지컬이라는 점이고, 돈을 내고 봐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은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연극과 뮤지컬에 시큰둥한 나같은 사람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멋진 작품이다. 나를 이 뮤지컬에 초대해 준 지인에게 거듭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